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11)
211화. 전쟁의 전조 (7)
척박한 황야의 계율 아래, 투쟁은 분명 걸어갈 가치가 있는 길.
하지만 투쟁과 황야의 신, 아탈라는 용기를 내되 만용을 부리지 말란 말도 똑똑히 덧붙였다.
아무리 행상인이 전보다 강해졌다 해도, 혼자 제국의 성기사들에게 맞선단 건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가진 무기까지 죄다 내버린 채로는 더더욱.
분수를 알고 철저한 준비 끝에 강적에게 맞서는 건 용기지만, 제 분수도 모르고 무작정 부딪히는 건 만용이다. 카딤은 재차 헛소리 말고 무기나 챙기라고 권고했다. 그런데도 던컨은 한사코 혼자 델루타나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자기는 괜찮다고 하다가, 그 무기들은 나으리께서 쓰시라고 설득하다가, 절대 성기사와 정면으론 안 맞서겠다고 다짐하다가, 태세를 전환하여 요행에 불과했다던 제 업적들을 뽐내다가, 그 어떤 말도 먹히질 않자 결국은…… 제일 우려하던 내면의 근심을 털어놓았다.
“그, 그렇지만, 행여 그새 또 큰일이 터지면 어떡합니까? 나으리가 황야 쪽에서 동료분을 찾는 게 늦어져서, 이번에 대마법사 분과 같은 비극이 벌어지…… 면…… 어떡…… 하나…… 싶어서…….”
얼마나 무례한 우려인지는 잘 알아, 말할수록 목소리가 쥐구멍으로 기어 들어갔다.
아직 손에 묻은 동료의 피가 채 마르지도 않은 분께, 또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단 얘길 꺼내다니……. 옛날이었다면 창자를 뽑아 노끈을 만들겠단 협박을 듣거나, 그것을 실제로 실천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망발이었다.
카딤은 그늘진 석벽처럼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던컨을 질책하거나 위협하진 않았다. 그동안 겪은 일을 감안하면 충분히 할 만한 우려였으니.
“시릴은 아마, 멜리사와 달리…… 괜찮을 거다. 그 녀석은, 나를 비롯한 나머지 넷을 합친 것보다도 인내심이 깊은 자였으니. 아직은 생사 유무부터가 불확실하기도 하고.”
“죄, 죄송합니다, 나으리……. 절대 그분께서도 그리됐으리란 말이 아니라…….”
“아니다. 다만, 생각해보거라. 만에 하나 시릴까지 비뚤어져 세계의 존망을 위협하게 됐다 쳤을 때, 내가 그걸 혼자 황야로 가서 막았다 한들…….”
……지키려던 자들이 죄다 죽은 뒤라면, 그건 그냥 헛고생이지 않나?
카딤은 뒷말을 삼켰다.
이건, 자신이 물러지고 큰 취약점이 생겼단 걸 인정하는 말이었으니. 또한,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해 제 아군과 맞서길 사주한 아크팔라딘의 고결함과…… 지나칠 만큼 적나라하게 상충되는 이기심이었으니.
하지만 한없이 진심에 가까운 말이기도 했다.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무고한 생명을 구하는 것, 참으로 고결하고 훌륭한 명분이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건 되면 좋고 아니면 마는 부차적인 이유에 불과했다. 카딤이 지독한 광증에 시달리며 온갖 역경에 맞서고, 이 낯선 세계를 구하려 애쓰는 핵심적인 이유는 결국 이것들이었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자들을 지키는 것, 그리고……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
이젠 저 행상인과 그 일가도 1회차의 동료들과 같이 ‘지키고자 하는 자’들의 선상에 놓였다. 다만 델루타나에 가기로 결심한 이유가 꼭 그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엔 또 다른 ‘중요한 목적’도 있었다.
일전에 드래곤이 말해줬던 정보, 딱 한 번 천벌의 위력이 약해졌던 ‘시기’.
‘가짜 엘가를 섬기던 왕국이, 어둠과 혼돈의 신의 나라와 전쟁을 벌였을 때……. 결국은 적들을 멸망시키고 승리했으나, 저들도 적잖은 피해를 입었을 때……. 그래, 틀림없이 그 시기에 다른 때보다 천벌의 위력이 약해졌었느니라.’
만일 제국과 동맹 사이에 전쟁이 터진다면, 그 ‘시기’가 비슷하게 재현되어…… 정말로 그게 가짜 엘가의 약점인지 파악할 수 있을 터.
던컨이 돌연 입을 다문 야만인을 멀뚱하니 바라봤다. 카딤은 심사를 추스르고 적당히 말을 돌렸다.
“……하여간, 네놈이 내 투쟁의 길에 동참하는데, 나 또한 그러지 말란 법은 없지. 네 가족들이 뭔가 변을 당하면 훗날 네놈이 날 제대로 돕지도 못할 테고.”
“나, 나으리…….”
“가져가라, 네 무기들을. 앞으론 이것들을 절대 네 품에서 떨어뜨리지 말거라. 전사가 가진 무기를 떨어뜨려 놓아도 되는 건, 다른 무기를 들었을 때나 죽었을 때밖에 없다.”
던컨은 눈시울을 붉히고 ‘지옥불 단검’과 ‘세계수의 단검’, 그리고 ‘면도칼’을 받들었다.
이루 말 못할 감격과 든든함이 마음 한가득 충만하게 차올랐다. 이 위대한 전사가, 자신의 투쟁마저 미루고 친히 가족들을 지켜주겠다니……. 나중에 나으리가 설사 지옥에 가더라도, 지옥 끝까진 힘들어도 문턱까진 따라가 돕겠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그 감동은 거품처럼 빨리 가라앉았다.
“어, 근데 나으리……. 델루타나까진 거리가 꽤 멀어서 말을 구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만……. 이 주변은 온통 허허벌판이라 당최 어디서 구해야 될지…….”
“……말? 말이 왜 필요하지. 이미 말보다 빠른 탈것이 있는데.”
“예? 그게 무엇입니까요?”
굵직한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키나 싶더니, 허공을 선회하며 느릿하게 밑으로 떨어져, 끝내 몸뚱이 밑에 달린 것들을 가리켰다.
말보다도 몇 배는 더 튼실한 근육으로 꽉꽉 찬, 하루 만에 가뿐히 수백 킬로미터를 주파할 수 있는 다리를.
“사정이 급하니 전처럼 여유 부리며 달리진 않겠다. 부지런히 뒤쫓아 오도록.”
“…….”
던컨은 떠올렸다. 과거, 황금 가도에서 마소처럼 질주하는 야만인의 꽁무니를 토악질을 해 가며 뒤쫓던 악몽을.
‘그게…… 여유 부리며 달리던 거였다고?’
수염 달린 낯짝이 대번에 시체처럼 해쓱하게 질렸다.
*
‘황금의 도시’ 델루타나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 비보는 정확히 어느 대저택의 집무실로 날아들었다. 마법으로 빚은 비둘기는 창문에 닿자마자 바람결처럼 흩어졌으나, 발톱에 들렸던 서신만큼은 창틈을 넘어 전달됐다. 근래 부쩍 잔주름과 흰 머리가 늘어난 노신사가 그걸 주워 들고 편지칼로 겉봉을 뜯어 살폈다.
그리고 서신을 다 읽은 후, 긴장하여 바라보는 동생과 거한에게 내용을 전달했다.
“에렌스코 대주교가 기어코 제국군을 휘어잡고, ‘성전군’이라 포장하여 출병시켰다는군.”
“…….”
“선발대 병력의 규모는 1만 5천에서 1만 7천 사이, 대략적인 구성은 중보병 6할, 경보병 3할, 기병 1할 정도로 추산. 전쟁의 명분은…… 오만방자한 동맹으로부터 선황제가 선사한 자치권을 몰수하고, 이 대륙의 불신자와 이교도를 말살시키기 위한 ‘성전’을 개전한다는 것.”
“…….”
“성도 인근뿐 아니라 변방의 귀족들에게까지 참전하란 칙령이 내려졌고, 교단의 사제와 성기사들에게도 총동원령이 내려졌다는군. 무엇보다 가장 안 좋은 소식은…… 외지를 떠돌던 ‘데카그램’들마저 집합해 참전했다는 거고.”
흐릿하게 아른거리던 전쟁의 불길이 기어코 점화된 순간.
렘타나의 참사관, 엔리코는 가쁘게 호흡을 골랐다. 군세의 수장, 골타란도 미간을 팍 찡그리며 인상을 썼다.
오직 튜리스 가문의 수장, 펠리코만이 담담한 태도를 지켰다. 그는 각오했던 일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대곤 서신을 갈기갈기 찢어 내용을 말소했다.
“그 대주교, 보통 인물은 아닌 줄 알았다만, 설마 집권한 지 한 달도 안 돼서 전쟁을 일으킬 줄은 몰랐군. 악마 토벌에 힘쓰던 병력마저 다 빼냈으니, 당분간 온 대륙에 악마들이 신나서 활개 치겠어.”
“…….”
“하여간 최후의 수단으로만 쓰라 당부한 ‘바람깃 전서구’를 보낸 걸 봐선, 성도에 파견된 첩자들은 모조리 발각돼 처분당한 것 같네. 그러니 이제부턴…… 갖고 있는 정보들만으로 대책을 세워보도록 하지.”
묵묵부답. 모두가 막막한 심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델루타나의 현 상황은 총체적 난국이라 봐도 좋았다.
거들어줘도 모자랄 다른 대도시들은 자기 잇속만 챙기는 중이었고, 참사회엔 아직도 제국과의 적대를 반대하는 의원들이 즐비했고, 고위층 일가가 피신했단 소문이 퍼져 시민들의 여론도 흉흉해졌고, 이젠 적의 사정을 알아낼 수단마저 끊겼다. 이 와중에 닥쳐오는 1만이 훌쩍 넘는 대군은 사실상 대처 못할 천재지변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보다 큰 위협은 역시 제국의 최고위 성기사, ‘데카그램’이었다.
제국과의 전쟁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먼 과거, 제국은 진작 한 차례 동맹을 침공하여 복속시킨 바 있었다. 하지만 그 과거의 전쟁엔 ‘성전’이나 ‘대전쟁’ 따위의 뻑적지근한 이름표가 붙지 않았다.
왜냐하면 ‘데카그램’에게 하룻밤 만에 도시 하나가 소멸당해, 동맹이 사흘도 안 가 항복했으니까.
1만 명이 넘는 대군이나 그보다 더 많이 올 지원군은, 이길 확률이 한없이 희박할망정 어쨌든 교전이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그 성기사들은 아니었다. 아무리 많은 병력을 동원한다 한들, 창칼 한 자루로 성벽을 부수고 눈 깜짝할 사이 수백, 수천 명을 학살하는 괴력난신들을 저지하는 건 불가능한 일.
그러므로 ‘데카그램’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과거와 같은 참사가 벌어질 걸 잘 알고 착실히 대비해왔으니.
상황이 영 안 좋았다. 그나마 가용할 만했던 마법사들은 마탑에서 복귀 요청이 떨어졌고, 북부의 군벌들에 파견을 요청한 유물병은 온다는 말도 없었고, 비장의 패로 삼았던 ‘악마 학살자’는 행방이 묘연해졌고……. 펠리코와 엔리코 형제는 공연히 토도독, 토도독 팔걸이만 두들겨댔다.
그러나 가만히 죽으란 법은 없는지, 운명은 한 가지 희망을 남겨뒀다.
“참사관. 그저께 내가 좋은 소식이 하나 있다고 말한 것, 기억하나?”
“……기억하오. 도중에 라뮬렉 의원과 개들이 끼어들어 듣지 못했지.”
“그래, 그때 말하려던 소식이 바로 이에 관한 것이었다.”
골타란이 제 팔뚝에 그려진 문신을 들이밀었다. 형상은 조악해도 평범한 문신은 아니었다.
우우웅 – !
주먹을 꾹 쥐자, 문신에서 흘러나오는 싯누런 광채.
엔리코가 먼저 부릅 눈시울을 치뜨고, 뒤이어 펠리코마저도 휘둥그레 토끼눈을 떴다.
“그건…… 대체 무슨…….”
“이건…… 특별한 힘을 준다는, 아탈라인들의 문신 아니오……? 이전에 카딤 공에게서도 비슷한 걸 봤던 것 같은데…….”
“그와 비슷한 거지. 뭐, 대전사님의 것에 비견하기엔 택도 없는 위력이지만, 여러 개를 동시에 쓰면 나름 쓸 만할 거다. 그리고 ‘저들’이 살아있는 한, 계속 양산할 수 있단 장점도 있고.”
골타란이 문밖에 대기하던 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불굴의 군세’ 전사들이 누군가를 엄중히 호위하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신원을 감추기 위해 면포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무리.
면포를 걷자 일제히 면면이 드러났다. 나이대는 스물 안팎, 건강한 미색을 지닌 아탈라인 여인들. 긴장한 몸짓과 표정에는 어리숙함이 묻어났으나, 눈동자 깊숙한 곳에는 광대한 황야의 의지를 내다보는 통찰이 담겨 있었다.
골타란이 엄숙하게 그녀들을 소개했다.
“황야의 아버지를 받드는 사제, ‘황야의 무녀’들이다. 이미 몇백 년 전에 대륙에서 자취를 감춘 자들이었다만…… 얼마 전부터 이렇게, ‘신통력’을 느끼고 새로이 신내림받는 자들이 생겨났지.”
““……!””
이후 호위하던 전사들을 물린 다음, 나직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추측건대, 대전사님께서 세상에 돌아온 덕에 생긴 일이 아닐까 싶더군. 그분은 투신과 인간을 잇는 매개자시니까. 좌우간 이들의 보조를 받는다면…… ‘불굴의 군세’와 참사군의 전력이 지금보단 훨씬 더 강해질 거다.”
튜리스 형제의 얼굴에 차츰 화색이 감돌았다. 밀폐된 폐광에서 비로소 숨통을 틔워주는 구멍을 하나 찾은 기분.
그러나 이들은 말 그대로 숨구멍에 불과할 뿐, 완벽한 활로는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 해도 ‘데카그램’에 맞서긴 확실히 무리일 거다.”
“…….”
“새로운 황야의 무녀들은 막 신통력만 되찾았을 뿐, 강력한 주술이나 비전에 관해선 까막눈이다. 현재로선 딱 이렇게 적당히 힘을 강화하는 문신을 새기는 정도가 한계지. 이들이 잠재력을 전부 발휘하려거든, 반드시 고대의 주술에 관해 전승되는 자료나 가르침을 줄 자를 찾아야만 할 거다.”
떠오른 화색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엔리코가 막막하단 투로 물었다.
“골타란 공, 옛 황야의 무녀들은 벌써 몇백 년 전에 자취를 감췄고…… 심지어 그대들의 고향인 ‘황야’는 제국령 너머에 있지 않소? 대관절 어디서 그런 자료나 가르침을 줄 자를 구한단 말이오?”
“방법이 없진 않다. 동맹령 곳곳에도 옛 황야의 무녀들이 봉인된 유적이 있으니. 나 또한 아곤의 투기장에 머물 적, 한 무녀에게 긴밀히 도움받은 적이 있었지.”
“그게 정말이오? 그렇다면 그자는 지금 어디에 있소?”
“……죽었다. 그 무녀는 대전사님을 능멸하여, 그분의 도끼 아래 합당히 심판당했다. 망자에겐 미련을 갖지 말고 빨리 새 유적을 찾는 편이 좋겠지.”
끝내 형제의 얼굴에 나타났던 화색은 사색으로 뒤바뀌었다.
제국의 군대가 언제 들이닥치질 모를 상황인데, 언제 어디서 그런 유적을 찾아내고, 또 어느 세월에 이 풋내기 무녀들을 키워낼지……. 펠리코와 엔리코는 고심에 잠겨 다시 토도독, 토도독 팔걸이를 두들겨대기 시작했다.
골타란은 잠시 창가 너머 먼 하늘을 바라봤다.
씁쓸한 눈동자 속에 문득, 끝까지 자신만을 대전사라 일컬었던 어느 늙고 어리석은 무녀의 모습이 어렸다.
*
두근두근,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흘끗흘끗, 눈깔이 주변을 훑었다. 슬금슬금, 제 발 저린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델루타나 북부 외곽, 라뮬렉은 황급히 토굴을 벗어났다. 신묘한 이적으로 원거리에서 소통한 덕에 밀고의 흔적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긴 헌신 끝에 기어코 약속받은 전언만이 달콤하게 귓가에 맴돌았다.
‘……‘성전’이 끝난 뒤엔 델루타나의 통치기구가 참사회에서 총독부로 바뀔 거요. 그때까지 계속 엘가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뭇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면, 총독 자리는 필히 그대의 것이 될 것이오.’
델루타나를 탈출하는 것도, 정보를 밀고하는 것도, 아크팔라딘과 협상하는 것도 전부 성공적이었다만…… 마음 한쪽에 남은 불안감은 지워지질 않았다. 어쩌면 항시 곁을 지켜주던 맹견들 없이 홀몸이어서 그런 걸지도. 한시 바삐 개들이 있을 델루타나의 저택으로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갑자기 세상이 뒤집혔다.
“어헉!!”
쿵 – !
얼얼하게 깨진 코로 흘러드는 흙먼지. 쿰쿰한 기침을 터뜨린 후에야, 누군가 자신을 기습하여 맨바닥에 처박았음을 깨달았다.
“쿨럭쿨럭! 누구, 누구냐, 네놈!”
“…….”
“나는 델루타나 참사회 의원, 라뮬렉 볼가루이스다! 누군진 모르겠다만, 네놈 지금, 큰 실수하고 있는…….”
라뮬렉은 말을 하다 말고 멈췄다. 목덜미로 스산한 금속의 한기가 스며들었기에. 뻣뻣하게 목을 틀어 괴한의 정체를 확인한 뒤에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되었다.
그저께, 생이빨로 제 개의 주둥아리를 물어뜯었던 미친 야만인…… 이 거느린 야만인 전사 중 하나.
“……명색이 의원이란 작자가, 뒤꽁무니에선 제국의 첩자 노릇이나 하고 있었던 건가.”
율리아의 명을 따라 뒤쫓아 온 아탈라인 전사가, 투척도끼를 힘껏 찍어누르며 인상을 팍 찡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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