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17)
217화. 별 분쇄자 (6)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물음표가 속내에 잇따라 박혔다. 공허한 질문이 끝없이 메아리쳤다.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엘가의 복음으로도 해석이 불가능한 괴현상이었다.
그럼에도 ‘복음을 전하는 별’ 앙겔리온는, 실낱같은 이성을 부여잡고 이 상황을 이해해 보려 애썼다.
‘야만인이 중앙 광장의 복음체들을 궤멸시키면서까지 피난 구역으로 갔다……. 그런데 갑자기 방향을 틀어 공방 쪽으로 오더니, 늙은이가 만든 신병을 요구했다……. 그리고 복음을 외워 성흔의 ‘제약’을 발동시켰다…….’
앞선 것들은 야만인이 누군가를 찾다가, 피난 구역에서 늙은이의 소식을 들었다 치면 대강 인과가 맞았다. 그러나 마지막 일만큼은 불가사의, 그 자체였다.
정황상 야만인이 성흔의 효과와 제약을 모조리 간파한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미리 복음이 적힌 종이를 준비해왔을 리도 없으니. 하지만 이걸 대체 무슨 수로 알아낸…… 아니, 제약의 발동 조건은 그렇다 쳐도, 내가 여기로 소환된다는 사실까진 대체 어떻게…….
허나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진실을 밝히고 의문을 해소하는 것보다 수천 배는 시급한 일, 그것은 바로…….
――――― 콰 – 앙!!! 콰르르르르…….
……저 인두겁을 쓴 괴물로부터 살아남는 것.
“커헉!! 크헉, 쿨럭, 쿨럭…….”
발길질 한 번에 공방의 벽을 뚫고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갑옷 덕에 목숨을 부지한 거지, 맨몸이었다면 육편이 되고도 남을 일격이었다.
저 야만인의 무력 역시 크나큰 불가사의였다. 거진 상위권 데카그램에도 비견할 만큼 압도적인 힘. 게다가 중앙 광장의 복음체를 무력화시킨 걸로 알 수 있듯, 놈은 사이한 신비를 부리는 재주까지 있었다.
동맹에 이런 괴물이 있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다. ‘아곤의 성난 뿔’이란 놈이 꽤 빼어나다고 듣긴 했다만, 별들에 견줄 정돈 아니라 들었는데……. 이건, 흡사 별들마저 삼키는…… 대주교의 조카와 어느 아크팔라딘을 죽인…… 에렌스코 대주교가 그토록 찾아다니는 악귀와도 같은…….
……‘악귀’?
패래래래래랙 ―――― 꽈 – 앙!
“크허억!!”
흉갑을 강타하는 도끼날, 부러진 갈비뼈가 또 부러졌다. 앙겔리온은 일단 잡념을 정리하고 적을 상대하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성흔의 제약을 어기면, ‘천벌’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은 무조건 직접 저 야만인을 심판해야만 했다. 허나 그건 절대 불가능했다. 자신은 결코 일신의 무력으로 데카그램이 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버티는 것이라면?
맨몸으로 왔다면 그마저도 불가능했을 터. 다행히 앙겔리온은 완전히 맨몸으로 소환된 건 아니었다.
“영원한 광명의 주인께서 내 육신에 ‘찬란한 빛의 예복’을 지어 입히시고, 내 영혼을 복토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육신에 ‘찬란한 빛의 예복’을 지어 입히시고, 내 영혼을 복토로 인도하시는도다…….”
우우우우웅 – !!!
복음이 허공에서 새하얀 섬광을 불러냈다. 엘가의 신기에 조응하여 판금 갑옷이 본 모습을 드러냈다. 철갑이 환하게 발광하며 피륙의 형상으로 하늘하늘 풀어지더니 온몸을 칭칭 감쌌다.
이윽고 앙겔리온은 빛나는 철갑의 피륙에 겹겹이 둘러싸인 모습이 됐다.
시야가 차단되고 거동도 힘들어졌으나, 방어력만큼은 월등해졌다. 맞을 때마다 갈비뼈의 개수를 몇 배로 늘려줬던 투척도끼의 충격이 거의 다 상쇄됐다.
퍼 – 걱!
카딤이 도끼를 회수하며 접근했다. 누에고치처럼 변한 적의 꼬락서니를 보곤 미간을 팍 구겼다.
“……기껏 둥지 밖으로 꺼내놨더니, 이번엔 고치 속인가.”
“…….”
“어지간히도 벌레 새끼처럼 처박히는 걸 좋아하는군.”
――――――― 뻐 – 억!!
괴력이 실린 정권이 피륙을 강타했다. 앙겔리온은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전달된 피해는 적었음에도, 육중한 진동이 뱃가죽을 오그라붙게 만들었다.
――――――― 뻐 – 억!! 뻐 – 억!!
――――――― 써걱 – !! 써거걱 – !!
그렇지만 긴장과 불안이 점차 가라앉았다. 이 갑옷, ‘찬란한 빛의 예복’은 평범한 갑옷이 아니라 엘가의 ‘신병’, 그것도 방어에 한해선 손꼽히는 성능을 자랑하는 신병이었다. 야만인의 주먹질도, 도끼질도, 칼질도 요란한 울림만 남겼을 뿐 전부 무리 없이 막아냈다.
‘이만하면…… 한동안은 안전하게 버틸 수 있겠지.’
물론 생각 없이 무작정 시간만 끄는 건 아니었다. 앙겔리온은 사전에 든든한 원군을 불러놓은 참이었다.
데카그램의 일곱 번째 자리를 차지한 아크팔라딘, 비타레스.
아무리 저만한 괴물이라 해도, 2명의 ‘별’을 동시에 상대하긴 무리일 터.
‘계속 이곳에 숨어 비타레스 경이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틴다……. 그리고 경에게 드워프 신의 신병을 전달한 다음, 남은 복음체와 사역마를 모아 협공하고, 마지막에 내가 직접 야만인의 숨통을 끊어 심판한다……. 그러면 제약을 해결했으니 ‘천벌’을 면하고, 난 원래 있던 방 안으로 돌아가게 될 거…….’
……라고 장밋빛 미래를 그릴 즈음, ‘찬란한 빛의 예복’이 찢어졌다.
――――――――― 콰과과, 콰과과광 – !!!
우렁우렁하게 울려 퍼지는 우렛소리. 수십 겹이나 겹쳐졌던 피륙이 단번에 갈라졌다. 한 뼘 남짓 벌어진 틈새로 시퍼렇게 날뛰는 도끼를 꼬나쥔 야만인의 자태가 드러났다.
“아직도 밖으로 기어 나올 생각은 없는 건가.”
“아아, 으하아아아악!!”
“그래. 그 고치를 관짝으로 삼고 싶거든, 계속 그렇게 안쪽에만 처박혀 있거라.”
――――――― 파지직, 파지지직 – !
카딤이 재차 뇌격에 벼락을 점화했다. 번뜩이는 광채, 만개하는 뇌광과 열압이 방구석 아크팔라딘의 콩알만 한 심장을 콱 짓눌렀다.
앙겔리온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남은 피륙을 덧대 갈라진 틈새를 보강하는 것, 혹은 남은 피륙을 풀어 상대방을 저지하는 것. 전자는 무의미한 발악이라 생각했기에, 피륙을 가닥가닥 풀어내고 야만인의 팔뚝을 휘감았다.
우우웅, 후우우웅 – !!
하지만 그것도 무의미한 발악인 건 마찬가지였다.
찍, 찌지직, 쩌저저적 – !!
야만인이 팔뚝을 힘껏 당기자, 철갑의 피륙은 붕대보다도 쉽게 끊어졌다. 연성만 부드럽게 늘렸다 뿐이지, 인장력과 강도는 여전히 판금 이상인 재질이거늘……. 앙겔리온은 끝내 괴력에 견인된 벼락에 직격당하는 꼴을 면치 못했다.
번쩍 – !!
――――――――― 콰과과, 콰과과광 – !!!
“그아, 하아아…… 끄아아아아아악!!”
시야가 시퍼렇게 타들어 갔다. 신경이 저릿하게 마비되고, 근육이 미친 듯이 펄떡거렸다. 엘가의 신기 덕에 목숨만은 부지했다만, 도저히 이 날벼락을 한 번 더 버틸 자신은 없었다.
결국 앙겔리온은 몸을 감싼 피륙을 다 풀었다. 누더기 뭉치가 된 갑옷 밖으로 기어 나와 쥐구멍을 잃은 생쥐처럼 달달 떨었다. 곧 거대한 손아귀가 멱살을 움켜쥐고 그를 들어 올렸다.
“컥, 커헉, 커허…….”
“쇠망치 영감의 유작을 어디다 숨겼는지 말해라. 이제부터 딴소리를 하면 도끼로 사지를 하나씩 끊어버리겠다.”
“그, 그, 그게 무슨 말……! 자, 잠깐만 이교도여…… 일단 진정하고, 차분하게 협상을…….”
쩌 – 걱!
시작은 오른쪽 다리부터, 카딤은 자신이 한 말을 똑똑히 지켰다.
“아, 하아, 끄아아아아아악!!”
도끼날에 찍힌 다리 몽둥이가 앙상한 고기 토막처럼 나가떨어졌다. 남은 사지를 지키려면 곧장 딴소리를 삼가야 했을 테지만, 공황에 빠진 앙겔리온은 평상시 버릇대로 복음을 외우고 말았다.
“흐흑, 지엄한 빛의 인도자시여…… 끄으윽,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흐흑, 마옵소…….”
쩌 – 걱!!
“끄헉, 끄아아아아아악!!”
“사지를 다 끊은 다음엔 골통이다. 남은 세 번의 헛소리는 보다 신중하게 하도록.”
‘복음을 전하는 별’은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엘가의 복음이 도움이 안 될 때도 있단 교훈을 얻었다. 왼쪽에 달린 것들과 골통이라도 지키기 위해 급히 야만인이 바라던 정보부터 털어놓았다.
“그, 그 늙은이가 만든 요물은 서쪽 성문 바깥으로 옮겨뒀다……! 그렇지만…… 흐끅, 그렇지만 그건 정말로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을 게다……. 끄흐윽…… 왜, 왜냐하면…….”
“……그걸 다른 ‘별’에게 건네주기로 했다는, 그 헛소리 때문인가.”
“…….”
앙겔리온은 심연 같은 야만인의 눈동자를 빤히 바라봤다. 그 순간, 어쩐지…… 데카그램이 한 명 더 늘어나도 이자를 상대할 순 없을 거란 예감이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러므로 진실을 과장해 허풍을 떨었다.
“그래……. 끅, 하지만, 그분께선 혼자 오시는 게 아니다……. 다른 데카그램 두 분과 종군 사제들도 델루타나를 점령하기 위해 같이 오시기로 했다……. 그러니, 끄윽, 이 타락한 도시와 함께 파멸하고 싶지 않거든…… 얌전히 그 요물을 포기하고 나를 놓아주거라, 이교도…….”
겁에 질려 벌벌 떨거나 태세를 전환해 싹싹 빌길 바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최소한 협상이 가능할 만큼은 긴장할 줄 알았건만, 되돌아온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럼 혹시 ‘어둠을 삼키는 별’이란 놈도 같이 오나?”
“……뭣?”
“1좌는 봉인돼 있어서, 지금 있는 성기사들 중엔 그놈이 가장 강하다 들었는데.”
“아, 아니……. 카시우스 경께선 대주교님을 보좌하시느라 아직 출전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네놈, 어떻게 1좌께서 봉인되셨단 사실을…….”
“아쉽게 됐군. 그래도 당장 네 명 정도 길동무로 보내주면 영감도 크게 섭섭해하진 않겠지.”
“…….”
“남은 놈들은 나중에 기회를 봐서 정리하기로 하고…… 우선 영감의 유작을 감춰둔 곳으로 안내하거라.”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고 얼빠진 표정을 짓던 앙겔리온은, 무슨 말인지 이해한 후론 날벼락 같은 경악으로 이목구비를 와락 일그러뜨렸다.
이자는…… ‘데카그램’을 모조리 절멸시킬 생각이었다.
*
델루타나의 피난 구역은 흡사 용암 구덩이 위에 올려진 솥단지와 같았다.
“제기랄, 지금이라도 빨리 여길 빠져나가야…….”
“아아아아악!! 내 발!! 내 발!!”
“혹시 머리가 벗겨지고 팔뚝에 큰 흉터가 있는 사람 못 보셨나요? 얘야, 혹시 여기서 그런 사람 못 봤니?”
“어허어엉…… 엄마, 엄마…….”
“여러분, 도시 밖으로 도망가실 필요 없습니다! 중앙 광장에 모였던 괴물들이 모조리 다 뻗어버렸다고요!!”
겨우 도망쳐온 부상자들이 도시를 탈출하려는 무리에 떠밀려 짓밟혔다. 피붙이를 찾는 여인들 사이로 부모 잃은 고아들이 엉엉 울며 떠돌았다. 행인들은 그들에겐 관심을 주는 대신, 목격한 걸 떠드는 호사가들에게만 귀 기울였다. 수만 명에 이르는 생존자들이 뒤섞여 천태만상의 혼란을 부글부글 끓어 올렸다.
던컨은 그 뒤숭숭한 아수라장을 한참 헤맨 끝에, 기적적으로 가족의 행방을 아는 자들을 찾아냈다.
“……휠레드 부인과 그 자제분 말인가? 그분들께선 용무가 있어 며칠 전에 델루타나를 떠나셨다.”
‘불굴의 군세’에 속한 아탈라인 전사들. 골타란이 모두에게 부인의 행방을 기억하라 신신당부를 해둔 덕이었다.
문제는 전사들이 던컨을 알아보질 못했다는 점.
“그분들이 어디로 갔냐고? 왜 그런 걸 캐묻는 거지?”
“그, 그, 그, 제가 바로 휠레드 부인…… 이 아니라, 율리아의 남편입니다요! 아내하고 아들하고 찾으려고, 엿새 만에 대수림에서 여기까지 뛰어왔는데…….”
“……뭐? 대수림이면 거의 동맹령의 끝자락인데, 거기서 여기까지 엿새 만에 뛰어왔다고? 지금 그딴 헛소리를 우리더러 믿으란 건가……?”
전사들은 행방을 말해주긴커녕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사실 그들은 이미 던컨을 본 적 있었다. 아니, 아예 절까지 올렸었다. 아곤의 교외, 노예들을 해방시키고 군자금을 준 은인들을 ‘불굴의 군세’가 환송하는 자리에서.
허나 그땐 거리도 멀리 떨어진 데다가, 모두의 초점이 온통 카딤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이 쪼그만 행상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동안 휠레드 부인의 재산을 노리는 사기꾼들이 워낙 많았기에, 다들 경계심이 매우 강해진 와중이기도 했고…….
전사들이 눈치를 주고받다 슬쩍 도낏자루를 쥐었다. 그걸 본 던컨도 기겁하여 덩달아 단검과 칼자루를 잡았다.
다행히 상황이 더 꼬이기 전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음……? 저분 혹시…….”
“어? 더, 던컨 씨 아니십니까?”
난데없이 지나가던 병사들이 아는 체를 했다. 낯설지 않은 감람빛 비늘, 한 개에 1천 루덴, 한 조각에 1백 루덴에 팔아치웠던 악마의 부산물…… ‘히드라의 비늘’로 만든 갑옷을 걸친.
“엇! 병사님들은 그때 그…….”
엔리코 참사관 휘하에 있던 참사군 병사들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