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별 분쇄자 (10)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 법이다.
‘황금의 도시’ 델루타나가 동맹에서 가장 큰 대도시라곤 하나, 그것보단 직경이 훨씬 작았다. 며칠 안 가 온 도시에 소문이 퍼지고, 모든 시민들의 입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리게 됐다.
“그 얘기 들었소? 악마 학살자가 델루타나를 공격했던 제국의 성기사들을…….”
“……그냥 성기사도 아니고, ‘데카그램’이라고 예전에 하루아침에 도시 하나를 멸망시켰던…….”
“……악마 학살자가 그 어마어마한 망치를 휘둘렀더니, 두 놈 다 한 방에 곤죽이 되어 버렸다고…….”
“서쪽 성벽이 무너진 이유도 악마 학살자와 성기사가 싸우다가…….”
“맙소사, 레밀리온이시여……. 그게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인지…….”
과거엔 황금 가도의 악마들을 학살하고, 이제는 제국의 별들을 떨어뜨린 용병, ‘악마 학살자’.
거론할 화제가 그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참사회 의장의 실종, 수많은 희생자들, 복음체였던 자들의 처우, 반파된 도시 복구, 전쟁의 향후 전망…… 사실 델루타나엔 그보다 현실적이고 시급한 안건들이 즐비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온종일 악마학살자 이야기만 하기 바빴다.
그자는, 델루타나를 구원한 ‘영웅’이었으니까.
다른 대도시들이 외면하고, 참사회 의원들마저 분열되고, 고위층의 가솔들은 달아나고, 기어코 항거 불능한 제국의 비대칭전력에 의해 멸망 직전까지 갔던 ‘황금의 도시’를, 일신의 무력만으로 구원한 ‘영웅’이었으니까.
그야말로 전설이나 신화에서나 볼 법한 대국적인 위업. 금화 한 닢으로 도시를 구했다는 황금의 맹주, 레밀리온 정돈 돼야 간신히 비길 공적이었다. 악마 학살자가 델루타나 최대 유명인사가 되고, 그 일거수일투족이 뭇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가 된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물론 악마 학살자에 대한 반응이 모두 같진 않았다.
압도적인 강함은 강렬한 동경을 낳지만, 동시에 강렬한 의구와 질시도 함께 낳기 마련. 혹자들은 경외하고 찬미하여, 혹자들은 폄훼하고 의심하여, 이내 델루타나 각처에서 그 용병을 두고 뜨거운 대립이 일어나게 됐다.
“아니, 생각해 보십쇼! 한 사람이 등짝에 빛나는 칼이 달린 괴물 수천 명을 쓰러뜨리고, 성벽과 땅을 초토화한단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왜 안 되겠어요? 마탑의 마법사들 같은 경우도 있고, 이미 제국의 성기사들이 그러는 것도 봤데…….”
“그 작자들하곤 경우가 다르지요, 경우가! 마법사들은 마법을 써서 그런 거고, 성기사들은 엘가의 축복을 받아서…….”
“그치도 뭐, 아탈라인들이 믿는 투신을 섬기지 않겠습니까? 골타란 장군이 얼마나 강했는지 생각해보면, 또 아예 터무니없지만은 않은…….”
“아아, 됐소! 댁들은 실컷 믿으시오! 나는 그 기둥뿌리만 한 망치로 휘두르는 걸 내 두 눈으로 보기 전까진, 절대로 못 믿겠으니…….”
다만, 무력에 대한 의혹만큼은 빠르게 불식됐다.
복음체는 절멸됐으나, 아직 거리 곳곳엔 엘가의 사역마들이 남았다. 악마 학살자는 델루타나에 남아 그것들을 정리하며 위명이 허구가 아님을 몸소 입증했다.
――――― 후 – 웅, 퍼거거거걱!!
– 케 – 헹!!
– 케헥!!
파멸적인 망치질에 새하얀 맹견들이 무참히 분쇄당하고, 수십 구가 넘는 시체들이 거리에 널브러졌다. 두 눈과 두 귀가 달려 있는 한 다들 그 압도적인 강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트집거리를 잃은 자들은 또 다른 의문을 제기했다.
대체 왜 저만한 괴력난신이 갑자기 나타나 델루타나를 돕고 있는가? 그것도 대륙 최대 세력인 제국과의 대립까지 불사하며? 혹여 도시 전체를 거머쥐려는 야심을 품은 게 아닐까?
“당연히 그 튜리스 가문의 참사관과 뭔가 약조를 맺었겠지요. 그동안 그 가문이 알게 모르게 악마 학살자를 엄청 두둔해 왔잖아요?”
“아니오, 내가 듣기론 그 북문 쪽에서 공방 일 하던 쇠망치 영감하고 관련이 있단 얘기가…….”
“아곤에 있을 적에 그자가 골타란 장군의 경쟁자였는데, 장군이 자릴 비운 사이 도시를 장악하려고…….”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해결될 문제였으나, 그럴 만한 용기가 있는 자는 없었다. 그는 먼발치에서 봐도 까무러칠 만큼 흉흉한 살기를 풍겼으니. 말을 걸긴커녕 아무도 근처에 갈 엄두도 못 내, 명성과 화제성에 비해 악마 학살자는 썩 유유자적한 생활을 했다.
여하튼 시민들의 예측은 다 빗나갔다. 카딤이 델루타나로 오고, 떠나지 않고 남게 된 근원은 바로 이 쪽지를 남긴 행상인이었다.
‘……나으리, 나으리께서 이 쪽지를 보고 계신다는 건, 제가 이미 그곳에 있지 않다는 뜻이겠지요. 이 불초 던컨, 우선 나으리의 허락도 없이 떠난 것을 깊이 사죄드리며…….’
대충 자기 혼자 가족들을 찾으러 갈 테니, 여기 남아 사람들을 지켜달라 부탁하는 내용.
행여 또 물가에 내놓은 애 취급이라도 받을까 걱정했는지, 주저리주저리 길게도 사족을 달아놨다.
가족들이 떠난 운타나는 멀지 않아 금방 돌아올 거라느니, 고통받는 델루타나 사람들에겐 나으리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느니, 주저 없이 쇠망치 영감을 구하러 간 나으리와 병사들을 보며 생명의 가치와 진정한 투쟁에 대해 고찰하게 됐다느니, 홀로 가족을 데려오는 사명을 감당하고 한층 더 성장하여 금의환향하겠다느니…….
헛바람이 잔뜩 든 쪽지를 주섬주섬 집어넣으며 카딤은 생각했다.
‘……미친 잡상인 새끼.’
*
전쟁은 대장간의 화덕불에 꺼질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갑옷과 창칼은 물론, 하다못해 시체를 파묻을 삽을 빚기 위해서라도.
그러나 한때 델루타나에서 가장 큰 호황을 누렸던, 이 공방의 화덕불이 다시 피어오를 일은 요원해 보였다. 건물을 지탱하던 벽과 기둥이 붕괴됐을 뿐 아니라, 명망을 지탱하던 솜씨 좋은 공방장마저 한 줌 흙으로 돌아갔으니.
폐허가 된 공방에 찾아오는 손님은 이제 딱 한 명밖에 남지 않았다. 눈두덩이 퉁퉁 부은 어느 수척한 소녀.
다만, 오늘만큼은 어느 거구의 사내도 발자취를 더했다.
“역시, 여기 있었군.”
“어, 아…… 용병님.”
잔해를 넘어 다가가는 카딤. 넋을 놓고 있던 굴락의 손녀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무런 접점도 없을 듯한 두 사람이지만, 딱 한 가지 공통 분모가 존재했다.
마음속에 어느 절름발이 대장장이가 남긴 유산을 품고 있단 것.
“아, 용병님……. 죄, 죄송해요. 용병님 덕에 그래도 할아버지의 시신을 무사히 수습했는데…… 그동안 감사하다고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려서…….”
“……아니, 상관없다. 오히려 더 서둘러 와서 영감을 구하지 못해 미안하군.”
“아뇨, 아뇨, 그건 절대 용병님 잘못이 아닌 걸요……. 근데 요새도 시내에 남은 괴물을 정리하느라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여기까진 무슨 일로……?”
“그건, ‘이것’에 관해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지.”
쿵 – !
쇠망치 영감의 역작, ‘별 분쇄자’가 만들어진 터전 위에 놓였다. 소녀는 착잡하게, 카딤은 새삼스레 그 형상을 훑었다.
이 망치가 보통 무기가 아니란 건 이미 완벽히 입증됐다. ‘큰 거’라는 주문에 충실한 크기와 중량, 그토록 거칠게 싸웠는데도 흠집 하나 없는 내구도, 집착이 느껴질 만큼 사용자에 딱 맞게 설계된 안착감과 균형감, 절륜한 위력을 선보였던 ‘충격 축적’까지…….
앞선 조건만으로도 너끈히 에픽 등급을 매길 만한 무기. 그런데 이 망치의 진가는 따로 있었다.
우우웅 – !
성기사의 골통을 분쇄한 후, 새파란 ‘인챈트’ 각인 옆에 새하얀 각인이 하나 늘어났다. 열 갈래로 갈라진 별, 십각성 문양의 각인.
데카그램 제7좌, ‘생명을 사르는 별’의 ‘성흔’이었다.
그저 모양만 흉내 낸 장식이 아니었다. 발동하면 정말로 그 ‘성흔’과 똑같은 효과를 낸다는 걸 시험해보고 온 참.
정황상 ‘이름을 벼리는 자’를 썼을 때와 같이, ‘별 분쇄자’란 작명으로 인해 망치에 새로운 특수효과가 생긴 게 아닌가 싶었다. 아마…… ‘이 무기로 데카그램의 일원을 죽일 경우, 그 성흔을 강탈한다’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사기 효과였다. ‘고유특성’에 준할 만한 엘가의 이적을 강탈한다니? 그게 사실이라면, 이 망치는 최상위 등급인 ‘레전더리’를 가뿐히 넘어 ‘아탈라의 심판’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했다.
물론 그 명성이 자자한 북부의 드워프들이 섬기는 신이 축성한 ‘신병’이니 납득 못할 일은 아니었으나…… 여전히 제작자가 어떻게 그를 불러냈는지는 미지수. 그러므로, 카딤이 묻고자 하는 건 이것이었다.
쇠망치 영감이 이걸 만드는 동안, 무언가 드워프 신이 나타날 만한 계기나 낌새가 있었느냐.
소녀는 처음엔 잘 모르겠다고 답했으나, 고민 끝에 머뭇머뭇 제 생각을 털어놓았다.
“아시겠지만 할아버지께선…… 정말, 목숨을 걸고 이 망치를 만드셨어요……. 제가 비록 뵌 지는 얼마 안 됐지만, 할아버지가 정말 멋지고 존경할 만한 분이라 생각하게 된 계기가…… 온 힘을 다해 이걸 만드시는 걸 보고서였거든요…….”
“…….”
“그러니까, 아마 드워프 신께서도…… 드워프들의 신이기에 앞서 한 분의 대장장이로서 감복하신 게 아닐까 싶어요. 손재주를 타고난 드워프도 아닌 인간이, 그것도 나이 들고 몸도 불편한 인간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저렇게까지 쇠를 빚을 수 있구나 하고…….”
일생을 바친 지성으로 천상을 감복시켰다, 라…….
고루하고 허황된 얘기였다. 허나 고루함은 모든 전설의 숙명이며, 허황됨은 모든 기적의 미덕. 쇠망치 영감의 ‘투쟁’에 그만한 자격이 있단 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카딤은 어느 정도 해답을 얻은 눈빛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굴락의 손녀 역시 카딤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었다.
“저…… 용병님. 근데 그 망치, 써보시니 어떻던가요……? 정말로 저희 할아버지께서 목숨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훌륭한 무기였던가요?”
듣기 좋은 말로 포장하는 말재주 따윈 없었다. 카딤은 진심을 담아 솔직히 답했다.
“과분할 정도로 훌륭한 무기다. 하지만, 과연 영감의 목숨까지 바칠 만한 가치가 있었는진 모르겠군.”
“…….”
“이 세상 어딘가엔 분명 이보다 뛰어난 무기도 있겠지만,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네 할아버지보다 뛰어난 대장장이는 없을 테니.”
“……!”
그 말을 들은 후, 소녀는 망연히 멈춰 섰다.
무채색이 된 눈동자, 그 안에 서서히, 서서히 일렁이는 색조가 돌아오고.
불식간에 시간이 역행했다.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뒤덮었다. 폐허가 된 공방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연신 울리는 쇳소리, 이글거리는 화덕불 열기, 모진 삶의 담금질에도 끝까지 쇠망치를 놓지 않은 어느 노인의 모습과 함께.
‘할아버지, 할아버진 그동안 정말…… 어떻게 버티셨던 거예요? 제가 할아버지였으면 진짜, 너무 억울하고 힘들어서 그냥 다 포기하고 주저앉았을 텐데…….’
‘끌끌끌, 이 할애비라고 왜 안 그랬겠더냐? 단지…… 언젠가 지금 같은 때가 올 거라 믿고, 은인의 부축을 받아 겨우겨우 다시 일어난 게지…….’
‘예? 지금 같은 때요?’
‘그래, 바로 지금. 이렇게, 내 모든 걸 바쳐 은인에게 줄 역작을 만들고…….’
까 – 앙! 까 – 앙! 까 – 앙!
‘……이렇게, 너를 만나 얘기할 순간만을 위해서 말이다, 아가.’
깨진 앞니와 주름마저 무색게 하는 환한 미소. 아른거리는 기억이 밀려와, 소녀는 또 한 번 눈앞이 부옇게 흐려지는 걸 막지 못했다.
한편, 카딤은 소녀의 손에 들린 무언갈 발견했다.
가는눈을 치떴다가 픽, 헛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피는 못 속인단 건가.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지. 언젠가, 쇠망치 영감마저 뛰어넘는 대장장이가 이 자리에 나타날지.”
“……예? ……엇!”
무심코 반문했다가, 화들짝 놀라 손을 뒤로 감추는 소녀. 그저 조부의 유품을 수습했을 뿐이라고 변명했으나 이미 늦었다. 남몰래 망치질을 연습하느라 배긴 굳은살까지 다 들통난 뒤였으니.
“네 이름은 무엇이지.”
“아, 제, 제 이름은…… 헤파이스…… 헤파이스요.”
“그래, 헤파이스. 네게 아탈라의 투지, 그리고 화덕과 모루의 가호가 함께 하길 빌지. 그 쇠망치가 훗날 또 어떤 ‘역작’을 만들어낼지 기대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카딤은 등을 돌렸다.
헤파이스는 우두커니 떠나가는 전사를 바라봤다. 그 뒤태엔 천년을 버틸 강철과도 같은 강건함이 서려 있었다. 다만 그녀의 초점은 차츰 다른 쪽으로 옮겨갔다. 전사의 등짝에 매인, 늙은 대장장이의 피땀이 어린, 앞으로 틀림없이 별보다 많은 전설을 써 내려갈 거대한 은빛 망치로.
만일, 할아버지처럼…… 내 손으로도 저런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두근, 심장이 뜻 모를 박동을 발했다. 홀린 듯이 땅에 떨어진 고철 조각을 주웠다. 한 걸음, 한 걸음, 벅찬 맘을 추스르고 모루를 향해 다가갔다. 한 손으론 굳게 쇳조각을 고정하고, 한 손으론 힘껏 쇠망치를 들어올렸다.
비록 지금은 무의미한 두들김에 불과하나, 언젠간 이 망치질이 또 다른 ‘역작’을 빚어내길 기원하며.
까 – 앙!
한 시대를 마무리한 쇠망치가 새로운 첫 울림을 발했다.
*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그동안 델루타나에 일어난 굵직한 사건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실종됐던 펠리코 의장이 결국 숨진 채 발견된 것. 복음체 사태의 원흉이 제국과 내통한 의원, 라뮬렉 볼가루이스로 밝혀진 것. 그리고 무엇보다…… 악마 학살자가 엘가의 사역마 한 마리를 붙잡아 어느 양조장에 풀어놔, 주변 일대가 발칵 뒤집힌 것.
그 의도가 양조사들을 해치는 게 아닌, 개젖술을 빚어 누군가의 묘에 흠향하기 위함이었음이 밝혀지며 간신히 오해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늑대보다 큰 맹견의 젖으로 술을 빚는단 발상 자체가 이미 상식 밖의 것. 시민들 중엔 불가해한 야만인을 두려워하거나 경계하는 자들이 늘어났다.
모쪼록 그럼에도 악마 학살자는 필수불가결한 파수꾼이었다. 그가 사역마의 씨를 말리고 도시를 지킨 덕에, 황금의 도시는 불안불안한 가운데도 평화를 유지했다.
다만 카딤은 슬슬 떠날 생각을 했다. 금방 돌아오겠다던 던컨이 도통 기별이 없었기에.
결국 기다림이 너무 길어져, 델루타나를 떠나기로 결단했을 즈음…….
던컨이 돌아왔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가족들, 그리고…… 전혀 상상치도 못한 대규모 인파와 함께.
“위대한 휠레드 가문의 초대 가주, 명재경각의 위기에서 도시를 구한 ‘운타나의 구원자’이자, 무엄한 제국의 성기사를 처단한 ‘은거울 호수의 사신’! 던컨 휠레드 님께서 행차하십니다! 다들 앞길을 비켜주십시오!”
선봉에 선 기수가 목청껏 외쳤다. 뒤따른 군악대가 북을 두들기고 나발을 불었다.
둥, 두둥, 두두둥 – ! 뿌우우우, 뿌우우우 – !
본대의 중앙에는 백마를 탄 행상인, 그 양옆에는 흑마를 탄 아내와 아들. 그 뒤로는 죄인처럼 고개 숙인 귀부인과 가솔들이 줄줄이 뒤따르고, 행렬의 외곽을 아탈라인 전사들과 참사군 병사들이 엄중히 지켰다. 요란한 구경거리에 몰려든 시민들이 토끼눈을 뜨고 바삐 웅성거렸다.
“뭐야, 저 사람은 누구야……? 왜 수염을 저렇게 염소처럼 기른…….”
“어머, 옆에 계신 분은 휠레드 부인 같은데…….”
“어? 저저, 따라오는 사람들, 그 운타나로 피신했다는 명가의 가솔들…….”
“…….”
이건 뭐…… 금의환향 정도가 아닌데.
카딤은 보기 드물게 흐리멍덩한 눈을 했다. 그동안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건지 짐작도 안 갔다. 머지않아 던컨도 카딤을 발견했다.
“어엇! 나, 나으리!”
반색하며 다가오려 했다만…… 안타깝게도 이 위대한 행상인은 승마술엔 영 조예가 없었다. 고집 센 백마가 도통 방향을 안 틀고 앞으로만 나아가, 던컨은 결국 애처로이 모가지를 꺾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나으리, 제가 ‘데카그램’을 잡았습니다! 제가 혼자서! 가족들도 구하고! 이 사람들도 다 구하고! 데카그램에 속한 아크팔라딘도 한 명 잡았…….”
“던컨 휠레드! 던컨 휠레드! 던컨 휠레드!”
“운타나의 구원자!! ‘은거울 호수의 사신’에게 레밀리온의 황금 같은 영광이 있으라!!”
둥, 두두둥, 두두둥 – ! 뿌우우우우 – !!
그 외침도 금세 떠들썩한 소음에 파묻혀 사라졌다. 저 멀리 안장을 거꾸로 타고 나아가는 휠레드 가문의 초대 가주와, 그를 둘러싸고 연호하는 추종자들을 바라보며 카딤은 생각했다.
‘……미친 잡상인과 떨거지 새끼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