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은거울 호수의 사신 (6)
‘수면을 비추는 별’이 떨어졌다 하나, 운타나가 평화를 되찾은 건 아니었다. 여전히 성내엔 성기사들과 1천 명의 성전군이 남아 있었다.
대장과 부대장을 동시에 잃은 그들은 완전히 폭주하기 시작했다. 수뇌를 살해한 범인을 밝히기 위해, 불신자들을 단죄하기 위해, 때론 그냥 분노와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시민들을 붙잡아 고문하고 학살했다.
하지만 그 횡포는 고작 하룻밤 만에 종결됐다.
“병사들 앞으로!! 용맹한 자에겐 레밀리온 님의 황금 같은 축복이 있을지어니!!”
“패배를 모르는 만병의 주인께서 우리의 창과 도끼를 축성하신다!! 아 – 탈 – 라 – !!”
“엇……?”
“어어……?”
다름 아닌, 참사군과 불굴의 군세의 협공에 의해.
은거울 호수에서 풀려난 델루타나 참사군과 군세의 전사들, 그리고 해자의 물속에서 풀려난 운타나 참사군이 연합하여 성전군을 야습했다. 머릿수는 열세였으나, 밤의 어둠과 사태의 돌발성이 연합군의 편을 들어줬다. 성전군은 오합지졸처럼 두들겨 맞다가 성 밖으로 후퇴하길 택했다.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도개교를 다 건너기도 전에 웬 홍수가 밀어닥쳤으니.
쿠과과과과과과과 – !!!
“으허어억!! 이게 무…… 쿠르르르릃…….”
“도, 도망…… 어헙! 푸그르르르릃…….”
여름도 아니고, 장마철도 아니고, 이 한겨울에 홍수라니?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는 재난이었다. 그 급작스런 물결에 절반 이상이 익사하거나 동사하고, 간신히 살아남은 절반은 극심한 저체온증에 시달려 성전군은 전원이 전투 불능이 되고 말았다.
기묘한 재난에 관한 소문은 금세 퍼졌다. 시민들은 그 원인에 대해 열띤 토론을 나눴다. 마탑에서 대마법사가 왔다느니, 천상의 신이 벌을 내렸다느니, 은거울 호수의 사신이 노했다느니…… 대부분의 의견은 초자연적인 이적이란 쪽으로 귀결됐다.
사실 이는 천벌도, 심판도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가 왜곡 구멍을 통해, 해자의 물을 끌어다 범람시킨 것일 뿐.
……물론 평범한 소시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또한 초자연적 이적이나 다름없긴 했다.
좌우지간 운타나는 비로소 제국의 침략에서 벗어났다. 비록 성문 앞이 온통 꽝꽝 언 빙판길이 되었다만……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도시가 멸망하고, 시민들이 몰살당할 뻔한 위기에 비한다면.
그리고 운타나의 지도층과 델루타나의 피신 행렬이 접촉하며, 마침내 진실이 수면 위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아크팔라딘을 처치하고, 엘가의 별을 떨어뜨리고, 성전군을 수몰시켜 도시를 구원한 영웅이, 바로 어느 한 행상인이란 진실이.
*
운타나 참사관저 3층, 참사관의 집무실.
때는 코끝이 떨어지도록 칼칼한 바람이 부는 저녁. 길거리는 아직 정비가 제대로 안 돼 난장판이었다. 그럼에도 참사관저 앞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운타나의 구원자!! 운타나의 구원자!!”
“‘은거울 호수의 사신’께서 우릴 수호하신다!!”
“운타나와 은거울 호수에 영광을! 얼어 죽어 마땅한 엘가의 개들에게 파멸을!”
“‘은거울 호수의 사신’에게 레밀리온의 황금 같은 축복이 있으라!!”
나름 북부 지방답게, 운타나 사람들은 감정 표현이 썩 풍부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니 이렇게 챔피언을 본 투기장 관객들처럼 흥분하여 날뛰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
창밖을 내다보던 운타나의 참사관이 혀를 내둘렀다.
“제가 여기 부임한 지가 18년째인데, 저치들이 저러는 꼴은 처음 봅니다. 겨울철마다 몸속의 피를 얼려 먹나 의심 가던 작자들이었는데……. 아, 물론 공께서 이룩하신 위업을 생각하면, 저 또한 거리로 나가 함께 연호하고 싶은 마음이지만요.”
“어, 흐흐, 어엄……. 아뇨.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습니다만…… 험험.”
가죽 의자에 앉아있던 손님이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옹색한 인상, 지저분한 염소 수염, 도무지 대단한 사람처럼은 안 보이는 볼품없는 외양. 그러나 이자의 위업은 숱한 증언들로 명백히 입증된 뒤였다. 참사관은 창가에 커튼을 치고, 깊이 허리 숙여 새삼 감사를 표했다.
“모쪼록, 크나큰 헌신과 활약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던컨 공. 공이 아니었다면, 필시 운타나는 제국에 처음으로 정복당한 도시란 치욕을 떠안았을 겁니다. 공께선 진정 ‘운타나의 구원자’란 칭호를 받기에 합당하신 영웅이십니다.”
“흐흐…… 에이, 아닙니다. 저야 뭐, 그냥 제 가족들을 구하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던컨의 입가가 헤벌쭉 벌어졌다. 이렇게 대놓고 영웅 대접받는 건 처음인지라, 점잖은 티를 낼래야 내기가 힘들었다.
“어, 그런데 말입니다, 참사관님. 저를 부르는 호칭이 그거 말고도 하나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아, ‘은거울 호수의 사신’ 말입니까?”
“예, 예, 왜 사람들이 저를 그렇게 부르는 겁니까요?”
잠시 은거울 호수 밑에서 익사자를 잡아먹는단 사신의 전설을 말해주는 참사관.
던컨의 낯짝이 대번에 해쓱해졌다. 참사관은 그걸 불쾌하단 의미로 오인하여, 여기 사람들은 ‘사신’을 외세로부터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기기도 한다고 첨언했다. 실은 던컨은 그냥 섬뜩한 전설에 겁먹어서 그런 거였다만…….
모쪼록 몇 차례 더 위업에 대해 극찬한 후, 참사관은 던컨에게 적절한 보답까지 약속했다. 델루타나 참사회에서 수령 가능한 훈장, 그리고 영웅에 걸맞은 예우와 의전.
“지금부터 공과 휠레드 가문의 일원분들께선 운타나에서 의전서열상 참사회 의장 이상의 예우를 받게 되실 겁니다. 떠나실 때도 참사군이 보유한 군마 중 가장 뛰어난 준마를 대여해드리고, 기수와 군악대를 차출하여 목적지까지 환송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순간, 행상인의 희열은 최대 한도를 넘어섰다. 일말의 부담스러움을 느낄 정도로.
“어휴, 아, 아뇨, 그러실 필요까지는……. 도시가 아직 어수선해서 뭐 챙겨주기도 힘드실 텐데, 그냥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디…….”
“아뇨, 공께선 충분히 이만한 대우를 받으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그리고 약소하지만, 참사회 측에 연락하여 5백만 루덴 가량의 포상금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거절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겠지요! 운타나는 이제부터 제 제2의 고향이니, 곤란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이 던컨 휠레드를 찾아주십시오!”
“하하하…….”
이후 대화의 주제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들로 넘어왔다. 목소리를 낮추고 진중하게 토로하는 참사관.
“아시다시피, 공께서 쓰러뜨린 성기사는 보통 인물이 아닙니다. 데카그램, 제국에서도 최중요 핵심 전력으로 평가받는 ‘별’이지요. 그런 자를 쓰러뜨렸으니, 이제 제국과 엘가 교단 측은 공을 요주의 인물로 지목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처단하려 들 겁니다.”
“……예?”
“물론 공 본인께선 초인적인 무위와 지혜를 겸비하셨으니 괜찮으시겠지만…… 친지분들께선 얘기가 좀 다르겠지요. 그러니, 당분간은 사모님과 자제분께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시는 편이 좋을 거라 사료됩니다.”
던컨은 망연히 입을 쩍 벌렸다.
이건 미처 상상치 못한 여파였다. 가족들을 구하려고 한 일이 되레 가족들을 더 큰 위험으로 몰아넣다니……. 아니, 사실 대놓고 최고위 성기사를 죽였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다만……. 심장이 쿵쿵 거세게 발길질하고, 호흡이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가빠졌다.
그럼에도, 이전보다 월등히 빨리 당황을 추슬렀다.
‘수면을 비추는 별’을 죽이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자는 여태껏 카딤과 자신을 추적해온 데다가, 가족들과 숱한 사람들을 인질로 잡고 있었으니.
아탈라의 대전사가 내려준 금언을 되새겼다. 투쟁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법. 쓸데없이 후회하며 전전긍긍하는 대신, 앞으론 절대 아무도 가족들, 그리고 나으리를 못 건드리도록 투철히 대비하고 후환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육신도, 정신도, ‘격’도 한층 더 성장한 채로 결연히 다짐하는 던컨.
참사관은 표정을 보고 속내를 짐작했는지, 잠시 잔잔한 미소를 떠올렸다 조언을 덧붙였다.
“엘가 교단이 동원할 만한 위협 수단은, 역시 또 다른 ‘별’이 유력하겠지요. 사실 여타 데카그램의 성기사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대처할 방법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딱 한 명만큼은…… 절대 상대하시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누, 누구 말입디까?”
“데카그램 제2좌, ‘어둠을 삼키는 별’. 그자를 마주하면 상황을 불문하고 무조건 도주하십시오. 목격한 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자는 그 어느 성기사와도…… 아니, 그 어느 인간과도 ‘격’이 다른…… 그야말로 상궤를 초월한 존재와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는군요.”
던컨은 거기까진 ‘아, 이 참사관은 정보력이 정말 좋구나’하고 흘려넘겼다. 하지만 그다음 튀어나온 말까지 흘려 넘기진 못했다.
“그리고 당분간 왜곡 구멍의 사용은 자제하시지요.”
“……예?”
“밤이라 해서 ‘굽어살피는 눈’의 주시에서 완전히 안전한 건 아닙니다. 이번엔 천운으로 그냥 넘어갔다만, 계속 이렇게 대놓고 어둠의 성법을 쓰다간 ‘천벌’을 면키 힘드실 겁니다.”
“……!!”
터 – 엉!
던컨이 자리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스스로도 놀랄 만치 날쌔게 접근해 세계수의 단검을 들이밀었다. 참사관은 침착하게 무언갈 탁상 위에 올려놓고 두 손을 들었다.
“경계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걸 보시면 제 정체가 무엇이신지 바로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가 내민 물건은 다름 아닌, ‘망국의 은화’였다.
잊힌 신 교단에 속했음을 증명하는 성유물. 이윽고 참사관은 눈을 감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성호에 상응하는 몸짓을 취했다.
“아, 일레니아 양이 저번엔 인사도 없이 떠나 죄송했다는 말을 전해달라더군요.”
“…….”
아니, 대학의 고고학자까진 그러려니 하는데… 18년차 참사관이 위장 직업이라고?
던컨은 가짜 고고학자에 이어 만난 가짜 참사관을 한참이나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봤다.
*
모든 정리를 마치고 운타나를 떠날 때가 됐을 무렵.
델루타나에서 피신 온 고위층 일가는 다시 은거울 호수 앞에 집합했다.
3선 의원의 아내도, 유서 깊은 명가의 고명딸도, 델루타나 경제를 거머쥔 부호의 자제들도, 참사회 의장의 딸도 얄짤없었다. 한평생 남의 무릎만 꿇리며 살아온 자들이 죄다 거꾸로 무릎을 꿇었다. 호숫가에 서 있는 어느 한 사내 앞에.
덩치도 작고 형편없이 생긴 사내였으나, 감히 그 누구도 반항할 엄두는 못 냈다. 저자는 무려 제국의 최고위 성기사, 엘가의 ‘별’을 쓰러뜨린 영웅이었으니.
그저 전해듣기만 했다면 허황된 소문으로 치부했을 터. 허나 그들은 호수에 갇힌 채, 호숫가에서 벌어진 전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봤다. 때문에 저자가 ‘별’까지 꺾을 만큼 초인적인 강자이며, 홀로 능히 저들 모두를 도륙 낼 수도 있단 걸 똑똑히 알 수밖에 없었다.
사실 켕기는 게 없다면, 그냥 사내를 칭송하며 비위만 맞추면 될 일. 하지만 그들은 켕기는 게 너무나도 많은 입장이었다.
전쟁 중에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단 것, 사내의 처인 휠레드 부인을 줄곧 무시하고 모욕했단 것, 무엇보다…… 볼가루이스 부인을 중심으로 다 함께 제국과 내통하려던 정황이 발각됐단 것.
즉, 이자가 마음만 먹으면, 그들 모두를 내란죄로 고발하거나, 여기서 즉결 처형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터.
“…….”
“…….”
“…….”
촉새처럼 쉬지 않고 떠들던 모든 귀부인들이 쥐 죽은 듯 침묵을 지켰다. 항상 사교계의 중심에 있었던 볼가루이스 부인은 외딴섬처럼 고립됐다. 기다림이 길어져 피가 바짝바짝 마르고, 다리에 쩌릿쩌릿 쥐가 오를 즈음.
던컨이 초췌해진 귀부인과 자제들을 쓱 훑어보곤 말했다.
“그…… 여러분, 일단 일어나시죠.”
““…….””
“다들, 몸단장 좀 단단히 하고 다시 모이십쇼. 그래도 명색이 델루타나 사교계를 주름잡던 분들인데, 그러고 계신 꼴을 보니 안쓰럽구만요.”
흠칫, 동정심 가득한 눈길을 보내는 던컨과, 그 옆에 선 율리아를 번갈아 살피길 잠시.
모든 귀부인과 자제들이 앞다투어 일어나 수행원과 시녀들을 찾았다.
“알렉세이, 알렉세이, 어딨어! 내가 가져온 드레스랑 브로치 좀 갖다줘!”
“메리스, 이리와! 내 향수 어디다 뒀어? 세리엔, 너는 귀걸이랑 목걸이랑 골라놓고…….”
“루브라, 이 계집애는 또 어딜 간 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내를 모욕하고 역모를 꾸민 자들더러 몸단장을 하고 오라니? 설마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건가?
다만, 이 생각만큼은 모두 일치했다. 여기서 최대한 아름답고 기품 있게 꾸민 부인들에게만 저 사내가 자비를 베풀 거라고.
“뭐? 그 드레스를 전부 운타나에 두고 왔다고? 꺄아아아악!! 정신 나갔어, 너?”
“몽드메드 부인! 그 연지 아까부터 건드리지도 않던데, 안 쓸 거면 저 좀 빌려주세요!”
“안 쓰긴요! 저 쓸 것도 모자라니까, 손 치우고 다른 데 가서 구하시죠!!”
“세자르 부인!! 이건 제 반지잖아요? 왜 이걸 부인 댁 시녀가 갖고 있는 건데요?”
호숫가는 악다구니 쓰는 귀부인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자신을 꾸미고 남을 견제하며 전쟁하듯 치장하길 한세월.
마침내 머리를 땋고, 향수를 뿌리고, 드레스와 장신구를 걸치고, 필사적으로 맵시를 가꾼 사교계의 꽃들이 겨우겨우 호숫가에 재집합했다. 목숨줄을 틀어쥔 사내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인위적인 미소와 함께.
물론 귀부인들의 추측은 틀렸다. 던컨은 그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다 전해 들었고, 감히 가족들을 무시하고 모욕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맘도 없었다.
“여러분, 치장은 다 마치셨습니까?”
““호호호, 예에!””
“어휴, 다들 멀끔하니 보기 좋구만요! 그러면 이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저 호수에 입수하십쇼.”
““……예?””
귀를 의심하며 싸늘히 얼어붙는 귀부인들.
이 한겨울에, 기껏 사력을 다해 꾸몄더니 물속에 빠지라니?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였다. 그러나 던컨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을 가리키며, 얼음장보다 차가운 목소리로 다시금 말했다.
“가장 늦게 들어가는 세 분은 가문 전체를 내란죄로 고발하도록 하겠습디다.”
““……!!!””
이윽고 귀부인들은 목숨을 걸고 물가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백만 루덴 짜리 드레스를 찢고, 십만 루덴짜리 구두도 집어 던졌다. 앞서가는 자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뒤따라오는 자들에게 다리를 걸었다. 체면도, 평판도 잊고 발끝만 담가도 진저리쳐지는 냉수에 투신했다. 여기저기서 숨 막히는 비명소리와 절규가 울려 퍼졌다.
“꺅!! 꺄아아악!! 살려줘요!! 살려줘요!!”
“꺄아아아아악!! 앗, 차갓, 아드드드득, 차갓…….”
던센이 멍하니 그 아비규환의 현장을 바라보다, 슬며시 율리아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엄마, 저 아줌마들…… 이상해. 지난번엔 천막 안에만 있어도 춥다더니, 지금은 이렇게 추운데 물에 들어가서 수영하고 있어…….”
“……그러게 말야, 던센. 되게 이상한 아줌마들이네.”
잠시 후, 귀부인과 자제들이 와들와들 떨며 호수에서 기어 나왔다. 꽃단장했던 흔적은 조금도 남지 않은, 동사하기 직전의 쥐새끼 같은 몰골. 특히나 가장 늦게 입수해버린 세 명은 이미 심장마비에 걸린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내란죄의 처벌치곤 싼값이었다. 살아남은 귀부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얼기 전에 물기를 닦고 털가죽 망토를 두르려는 찰나였다.
던컨이 수건과 망토를 일일이 뺏어 집어던졌다. 그러곤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어휴, 다들 많이 추우시지요?”
““예, 예에…….””
“자, 그럼 몸 좀 녹일 겸, 이대로 델루타나까지 뛰어가도록 합시다! 이번에도 가장 늦게 도착하는 세 분은 가문 전체를 내란죄로 고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거짓말이 아니란 걸 입증하듯 즉시 앞장서 뛰어나가는 던컨. 귀부인들은 찬물에 빠졌을 때보다 더 큰 오한을 느꼈다.
자비를 구걸하듯 율리아를 돌아봤으나, 돌아오는 건 저들이 했던 것과 똑같은 무시뿐. 하릴없이 귀부인들과 자제들은 맨발로 흙길을 허둥지둥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율리아와 던센은 잠시 동안 그 인과응보의 행군을 지켜보다 느긋하게 발걸음을 뗐다.
그런데 떠나기 직전, 던센이 갑자기 호숫가를 가리켰다.
“어, 엄마? 아직도 물에서 안 나온 아줌마가 있나?”
“응? 무슨 소리니, 던센?”
“아니, 저기에 그림자가…… 어? 사라졌다? 방금 전까진 뭐가 분명 있었는데…….”
“…….”
수면을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대는 던센.
그 위엔 오로지 스쳐 가는 구름의 자취뿐이었다. 율리아는 잘못 봤겠거니 생각하며, 부드럽게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걸음을 뗐다. 군세의 전사들과 참사군 병사들도 덩달아 발을 떼며, 피신 행렬은 마침내 운타나를 구원한 영웅을 뒤따라 본격적으로 금의환향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렇게 일장 호숫가에 찾아왔던 손님들이 전부 떠나가자.
은거울처럼 반짝이는 빙판 밑, 구름 그림자 한가운데 숨어 있던 얼룩이 깊은 물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