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33)
233화. 빛을 등진 별 (1)
황금의 맹주, 레밀리온이 돌아왔단 소식은 금세 동맹 방방곡곡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파급력은 고작 막대하다는 말로는 턱없이 모자랄 정도였다.
마치 동맹령 전역이 세기의 챔피언이 탄생한 투기장 한복판이 된 것 같았다. 가족, 친지는 물론이거니와, 데면데면했던 이웃도, 이를 갈던 철천지원수도, 빚쟁이와 채권자도, 뭇 동맹인이라면 죄다 일심동체가 되어 껴안고 밤낮없이 환희의 축제를 벌였다.
“레밀리온 님이 돌아오셨다!! 위대한 황금의 맹주가 우리들 곁으로 돌아오셨어!!”
“드래곤의 친우께서 우리를 수호하신다!! 간악한 악신을 섬기는 제국의 군대와 성기사들은, 맹주님께서 내지르는 포효 앞에 짚단 더미처럼 무너지리라!!”
“이, 이봐! 그, 그 모닥불을 끄게나! 자네 집까지 불타고 있네!!”
“크하하학, 그까짓 게 무슨 상관이오! 레밀리온 님이, 무려 레밀리온 님께서 돌아오셨다는데!!”
불손하게도, 맹주의 귀환을 의심하는 무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델루타나 시민이 아니고선 직접 그를 영접할 기회가 없었던 데다, 델루타나에서도 대회담 이후론 공공연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니.
“그런데…… 진정 레밀리온 님께서 돌아오신 게 맞긴 맞습니까?”
“흐음, 이상하긴 하지요……. 어떻게 동맹을 떠나신 지 2백 년이 넘었는데 여태 살아계실 수가…….”
하지만 그 의혹은 금세 일축됐다.
“갈렌타나 참사회 일동, 참사회 의장 도클레스 바로프 외 100인은 ‘지식의 도시’의 명예를 걸고, 돌아오신 황금의 맹주께 절대적인 충성을 맹세하는 바요.”
“베스타나 참사회 일동, 참사회 의장 콘라드 부칼루티 외 100인 역시 이하 동문입니다.”
“나, 마탑 장로회 2석, ‘끝없는 광풍’ 웬디고트는 일 평생 갈고 닦은 신비와 마탑이 축적한 모든 지식을 걸고, 위대한 동맹의 시조께서 귀환하셨음을 보증하노라……!!”
참사회의 모든 의원들, 그리고 마탑의 차석 장로가 각 도시를 순회하며 맹주의 귀환을 알렸다. 심지어 ‘끝없는 광풍’은 바람의 환영으로 레밀리온이 귀환을 선언하는 모습을 재현하여, 육안으로 맹주를 접견하고자 하는 동맹인들의 갈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줬다.
거기다 분열된 도시를 묶는 ‘자유도시 동맹 재결성 조약’에 대한 내용이 퍼지고, 제국의 최고위 성기사인 ‘데카그램’이 3명이나 전사했단 것까지 사실로 드러나며, 동맹은 완전히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그 영향은 즉각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참사군 자원 입대율이 10배 가까이 뛰어오른 것, 각 도시의 부호들이 앞다투어 군수 물자와 용병을 지원한 것, 마탑의 배틀메이지들이 전선에 나설 준비를 시작한 것…… 무엇보다 출신에 관계없이 모든 동맹인들이 서로를 한 몸처럼 여기게 됐단 것.
전쟁은 흐름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명백히 동맹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성전군이 엘가의 영광을 드높이겠단 사명을 지녔다 한들, 아예 지상에 왕림한 신적인 존재를 중심으로 규합한 동맹군의 사기를 넘어설 순 없었다.
루카오니아 제국과 엘가 교단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운타나와 델루타나를 함락 직전까지 몰아붙였던 형세는 역전되어, 국경 지대를 사수하는 것마저 차츰 버겁게 됐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는 쪽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사기가 충천하여 일당백의 전투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쪽, 혹은…… 일당백을 넘어서는 압도적인 무력으로 적을 초전박살내는 쪽.
전자가 글러먹은 제국이 희망을 걸어볼 만한 건 후자의 방식뿐. 엘가의 별, ‘데카그램’이 다시 전선에 나선다면 밀리는 형세쯤이야 가뿐히 재역전할 수 있긴 했다. 허나 그마저도 선뜻 택할 만한 방법은 아니었다.
별들을 떨어뜨린 동맹의 악귀, ‘악마 학살자’의 존재 탓에.
그들이 별을 동원한다면 동맹도 그 악귀를 내세울 게 뻔했다. 만일 데카그램이 떠난 사이 그자가 제국령에 침범한다면…… 전쟁의 흐름은 정녕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하여 교단 측은 새로운 ‘별’의 투입을 유보하고, 신중하게 동향을 예의주시하는 중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악마 학살자’를 주시하는 건 동맹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황금의 맹주에 버금가는 영웅이었다만, 대회담 당시 저질렀던 일 탓에 크나큰 두려움을 샀다. 만일 그자가 전향하거나 변심한다면…… 동맹은 속수무책으로 패전할 게 뻔했다. 하여 적잖은 의원들이 강박적으로 그의 동향을 살피고, 어떻게든 발을 묶을 수단을 강구하고 있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제국과 동맹, 양측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된 ‘악마 학살자’는, 이 격동의 전란 속에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는 제 이름에 걸맞게…… 악마를 사냥하고 있었다.
*
‘별 분쇄자’는 이름대로 엘가의 별을 분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 그렇지만 다른 걸 분쇄하는 데도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 콰 – 앙!!
– ……카학!
일격에 머리통이 곤죽처럼 뭉그러졌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핏덩이 위로 시신경 다발이 붙은 눈깔이 데구르르 굴러 나왔다. 녀석이 악마였단 증거는 이제 다 자란 뿔 하나, 그리고 각륜이 새겨진 작은 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종류는 신비종, 등급은 상급으로 승격 중이었던 중급 악마.
“으학, 으하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악!!!”
멀찍이서 지켜보던 생존자들이 기겁하여 달아났다. 소리만 들어선 구해진 게 아니라 겁박당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카딤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감사 받으려고 한 일도 아니었으니.
망치머리에 묻은 살 찌꺼기를 훔치고, 슬그머니 밑을 바라봤다.
모든 사람이 악마로부터 구원받은 건 아니었다. 그가 오기 전부터 악마에게 홀렸던 한 여인은 죽음을 면치 못했다. 마기를 흠뻑 들이마시고 사술에 저주받은 탓에, 그 차갑게 식은 몸뚱이엔 느타리버섯처럼 온통 손가락이 다닥다닥 돋아나 있었다.
화르르르르륵 – !!
괴물들이 살점을 먹고 마물이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곧장 지옥불 단검으로 시체를 불태웠다. 다만 악마의 시체만큼은 바로 태우지 않고 잠시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악마는 고통과 절망을 먹고 자란다. 인간의 고통과 절망이 양산되는 참극은 악마들에게 있어선 더없이 반가운 호사였다. 게다가 고위 악마 이상으로 높은 악마들은 여타 악마들을 종복으로 거느리고, 그것들이 모은 절망의 일부를 취하는 것까지 가능했다.
즉, ‘전쟁’은 모든 악마들을 성장시키는 사육제이며, 대악마의 탄생을 촉발하는 전야제나 다름없었다.
잊고 있었다. 이 2회차의 세계가 들짐승처럼 악마가 창궐한 곳이라는 걸. 아니나 다를까, 전쟁의 여파로 뿔을 얻고 승격하는 악마들이 속속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사실 이 축제를 끝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따로 있었다. 곧장 제국령을 침공해, 엘가 교단을 쳐부수고 전쟁을 종결하는 것.
그러나 그건 해선 안 될 일이었다. 자신이 제국령을 침공하느라 자릴 비우면, 엘가의 별들도 모조리 동맹령을 침공할 터. 예견된 상호확증파괴 아래 숱한 사람들이 죽고 고통과 절망을 양산하여, 대악마의 강림을 거꾸로 앞당길지도 몰랐다.
게다가 세계수지기의 예지몽이 빗나간 적 없단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게 전쟁을 끝내봤자 결국 대악마는 나타난다는 것이긴 했다만…….
그럼에도 가만 있을 순 없었다. 카딤은 쉬쉬하고 있는 엘가의 별들 대신 활개 치는 악마들을 죽이러 나섰다. 물론 이렇게 조무래기 몇몇을 잡는 정도로 대악마의 강림을 막긴 택도 없겠지만, 악마 사냥에 열중한 데에는 따로 이유가 있었다.
막대한 피를 연소하여 불꽃을 피우는 심화 경지, 신기 제2형, ‘혈겁화’를 준비하기 위해.
쩌거걱 – !
현재로선 그것이 카딤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기계적으로 목 위로 붙은 찌꺼기를 거둬내고, 사냥한 신비종 악마의 피를 수통에 받았다. 며칠간 인벤토리에 잔뜩 모아둔 핏물들이 움직임마다 찰랑거렸다.
한데 어느 순간, 갑자기 카딤의 눈동자가 선홍빛으로 달아올랐다.
몇 차례 겪어본 일인 듯 즉각 대처하는 카딤.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꾹 쥐고 충동을 억눌렀다. 그러나 후신경으로 파고드는 혈향은 점점 더 강렬하게 욕망을 자극했다.
짧은 유예를 지나, 악마의 피를 향한 ‘갈망’이 다시 깨어난 지도 벌써 며칠이 됐다. 밀린 핏값을 받아야겠다는 듯 한층 더 그악스러운 기세로.
아직 ‘광증’까진 폭발하지 않았다만, ‘갈망’이 돌아온 이상 그것도 시간 문제였다. 현재의 육신으로 충동을 꾹꾹 억누르다 광증이 폭발하면 어떤 대참사가 벌어질지 몰랐다. 결국 한 모금만 피를 들이켜, 그나마 혼자 있을 때 갈망을 해소하려는 찰나였다.
불현듯 귓가로 파고드는 흐느낌.
‘……죄송해요, 죄송해요, 카딤 님……. 제, 제 주술이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카딤은 황급히 고개를 틀었다.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겨울 바람만이 천연덕스레 흙먼지를 비질하고 있을 따름. 허나 환청의 여운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정처 잃은 시선이 땅바닥을 망연하게 굴러다녔다.
이윽고 카딤은, 재차 레밀리온에게 전해 들은 또 다른 예지몽의 내용을 떠올렸다.
‘……그대가 두 눈에 붕대를 감은 백발의 무녀와 만나는 장면을 보았다고 했네. 이 또한 시기와 장소는 불명이라 했지. 다만, 살갗이 불타고 얼어붙는 듯 매서운 열기와 한기가 동시에 느껴졌던 걸로 보아, 평범한 인간이 갈 만한 장소는 절대 아니었던 것 같다고…….’
“…….”
아직, 큰 의미를 부여하긴 이른 예지였다.
가짜 인간을 만들 방도가 판치는 세상이다. 그 또한 어둠의 성법으로 빚은 분신이나, 모습을 훔친 악마 따위일지도 몰랐다. 또 두 눈에 붕대를 감은 무녀가 세상에 그녀 하나만 있을 리도 없었다. 아주 닮은 다른 자이거나, 동경심으로 위대한 무녀를 흉내 낸 무녀일 수도 있지.
하지만…… 마음에 동요가 생기는 건 불가피했다.
300년 전, 작별 인사 한마디 못 받은 채 덩그러니 남겨지고, 눈먼 몸으로 발가죽이 닳도록 온 대륙을 방황하고, 끝내 혼백과 신통력을 모조리 바쳐 자신을 위한 주물을 예비한, 그 옛 동료가 살아있을 수도 있단 작은 가능성. 그 가능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대전사의 심장 속에는 메마른 폭풍이 몰아쳤다.
모쪼록 예지몽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그 꿈 또한 반드시 실현되긴 할 터이니.
카딤은 망설임 끝에 피를 받은 수통을 집어넣었다. 그러곤 대신 독주가 든 수통을 꺼내 쭉 들이켰다.
‘대악마’의 강림, 그리고 ‘시릴’에 관한 진상을 확인할 때까지, 최대한 오래 맨정신으로 버텨내기 위해선…… 악마의 피를 마시는 건 어떻게든 자중해야만 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카딤은 계속 악마들을 사냥하고 피를 모을 계획이었다. 한데 발걸음을 떼기도 전에 별다른 일이 터졌다.
먼 들판에서 던컨이 내달려왔다. 세상 그 어느 파발마보다 신속한 속도로.
“나으리, 나으리!! 허억, 허억……. 큰일났습니다, 큰일!”
“…….”
여긴 델루타나에서 3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이었다. 범상한 소식을 전하려고 찾아온 건 아닌 듯 보였다.
미상불 예상은 적중했다. 국경 지대, 골타란 장군이 가 있는 최전선에 ‘데카그램’이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무려 두 명이나.
한데 고작 그 정도로 ‘큰일’이라고 하긴 무리가 아닐까 싶었다. 이미 델루타나에서 두 놈을 동시에 족친 전례가 있지 않았던가? 늘 그렇듯, 카딤은 던컨이 별것도 아닌 걸로 호들갑을 떤다 생각할 뻔했으나…….
아니었다.
“그, 그게 말입니다요, 나으리! 그, 전선에 나타난 데카그램 중 한 명이…….”
*
대륙 중앙, 제국과 동맹의 국경 지대.
시체들이 널브러진 전장을 가운데 두고, 어느 거한과 초로의 사내가 대치했다.
거리는 1킬로미터 남짓. 짧은 거리는 아니었으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음을 못 알아챌 수가 없었다. 바로 목전에서 노려보는 듯 쐐기처럼 날카로운 눈빛과 강렬한 존재감 탓에.
공통점을 찾기 힘든 두 사람이었다.
한쪽은 호리호리한 체구, 한쪽은 근육질로 우람한 체구. 한쪽은 찬란하게 빛나는 창, 한쪽은 혈흔으로 얼룩진 도끼. 한쪽은 백색 판금 갑옷으로 중무장한 차림, 한쪽은 거친 가죽 갑옷만 걸친 차림. 한쪽은 빛과 질서의 신을 섬기는 성기사, 한쪽은 황야와 투쟁의 신을 섬기는 야만전사.
둘의 공통점은 오롯이 하나뿐이었다. 각자의 진영에서 최대 전력으로 평가받는 인간 흉기들이라는 것.
그러므로 두 사람이 맞붙는 전투의 결과에 따라, 이 전장의 승패도 가려지게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
하지만 오늘도 충돌은 없었다. 초로의 성기사는 잠자코 시선을 거두고 물러났다. 전장에 있던 성기사들과 병사들도 그를 뒤따라 후방으로 회군했다.
동맹군 총사령관, 골타란 장군은 착잡하게 미간을 구겼다.
“……저자의 이명과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했지?”
부관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했다.
“분명…… ‘진실을 꿰뚫는 별’ 헨다르크라고 전해 들었습니다, 장군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