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빛을 등진 별 (8)
‘아크팔라딘’은 명실상부, 카딤이 잊지 못할 1회차의 악몽이었다.
정의롭고 공정한 과거의 엘가 교단에서도 모난 돌 같았던 존재. 과도하게 강대한 힘 탓에 광신과 만용에 빠져버린 존재. 그 존재의 위험성을 간과함으로 인해, 멜리사는 뿌리째 혀를 뽑혔고, 시릴은 허물처럼 모든 피부가 벗겨졌고, 카딤 자신은 사지의 뼈가 박살 나고 관절이 뒤틀렸다.
나중엔 퇴색되어 버린 기억이긴 했다. 마경에서 보다 끔찍한 악마를 만나고 더한 고초들을 겪으며, 아크팔라딘과의 조우는 떠올리면 한숨이 나오는 추억담 정도로 남게 됐다.
하지만 모든 힘이 초기화된 2회차, 그 악몽은 생생한 색채를 얻고 되살아났다. 한동안 카딤으로 하여금 강박적으로 엘가 교단을 경계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1회차의 힘을 거의 되찾아, 이젠 슬슬 마음이 해이해져 가는 시점이긴 했다만…….
– 휘우우우우웅!!
……이 연로한 ‘아크팔라딘’의 강함은, 잊어가던 경각심을 되새기게 해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질풍을 짓밟은 듯 광휘마를 몰아, 가차 없이 창을 내지르는 헨다르크.
쐐 – 액!
창대가 심지가 되고, 창날이 뇌관이 되고, 빛무리가 폭약이 됐다. 대포처럼 격발된 찌르기는 망치머리에 맞닿아 맹렬한 폭발을 일으켰다.
―――――― 콰과과광 – !!
묵직하게 몸을 떠미는 충격, 카딤은 급히 발 간격을 넓혔다. 넘어지는 꼴은 면했으나, 발바닥으로 흙바닥을 부스러뜨리며 십 미터를 넘게 뒤로 미끄러졌다.
헨다르크의 신병, ‘루카온의 유성’은 천 근에 이르는 망치에 비하면 한없이 가벼운 장창. 그러나 탈인간적인 사용자의 근력과 창촉에서 격발된 빛의 폭발력이 중량 차이를 완벽히 상쇄했다. 덕분에 힘겨루기에서 밀리긴커녕 외려 근소하게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다만, 무기의 단점을 상쇄한 건 카딤도 마찬가지였다.
후웅, 후 – 웅 ――――― 꽈 – 앙!!!
“……흡.”
쉴 틈 없이 날아드는 반격, 헨다르크가 급히 말고삐를 휘어잡았다. 낙마하는 꼴은 면했으나, 당장이라도 안장 위에서 미끄러질 것처럼 휘청거렸다.
아무리 무기술에 능한 자라도 ‘별 분쇄자’만한 거병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건 불가능한 일. 그러나 초월적인 전사의 괴력은 그걸 솜방망이처럼 가뿐히 다루게끔 했다. 덕분에 빛살 같은 창날을 줄줄이 받아치며 이렇게 반격할 틈까지 노릴 수 있었다.
탐색전은 오래가지 않았다. 현 상태론 서로의 역량이 비등비등하다는 것도, 각자의 이유로 물러날 수 없단 것도, 진심으로 상대를 죽일 작정이란 것도, 피차 절절히 깨닫게 된바.
빛나는 창을 든 기사, 거대한 망치를 든 전사, 두 괴력난신은 사활을 건 채 본격적으로 격돌하기 시작했다.
“흐어어어어업 – !!”
– 휘우우우우웅 – !!
―――――――― 쩌 – 엉!!
충돌하는 일 합, 만개하는 충격파. 불가항력적인 반작용에 한 걸음 밀려나기 무섭게 도로 달려들어.
―――――― 쾅, 콰 – 앙!!! 콰과과과과광 – !!
이 합, 삼 합, 사 합……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거듭 악착같이 맞부딪혔다. 마치 밀집 지대를 떠도는 혹성들처럼, 양쪽 다 충돌로 입을 피해 따윈 아랑곳 않고.
실로 그 격돌은 인간의 전투보단 떠돌이별의 충돌을 연상하게 했다. 각막 아린 섬광이 번뜩이고, 귀청을 두들기는 폭음이 연거푸 울려 퍼졌다. 우연히 곁에 다가온 소소리바람이 격동의 와류에 휘말려 갈기갈기 찢어발겨졌다.
승부가 한쪽으로 기울질 않는 용호상박의 형세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다만 무수한 전장을 헤쳐온 노련한 투사인 두 사람은, 상대가 뭔가 흐름을 뒤엎을 수단을 준비하고 있단 걸 직감했다.
그리고 먼저 패를 드러내 판을 뒤흔든 건……
휘우우우우웅 – !
……착실히 망치에 모은 ‘충격’을 발산한 카딤 쪽이었다.
――――――――― 콰아아아아아앙 – !!!
– 위히히히히히힝…….
‘충격 축적’, 막대하게 쌓인 충격이 일거에 용오름처럼 폭발했다. 직격당한 광휘마는 불식간에 산멸해 빛 알갱이로 흩어졌고, 곧장 말고삐를 놓고 몸을 뺀 헨다르크도 충격파에 휘말려 까마득히 떠오르는 꼴을 면치 못했다.
“……흡!”
자칫하면 꼼짝없이 추락해 치명적인 추가타를 입을지도 모를 상황. 그렇지만, 헨다르크는 위기를 자신의 패를 내보일 기회로 전환했다.
체공한 채 회전의 역방향으로 몸을 틀어 자세를 고정. 오른팔을 뒤로 빼고 상완근을 팽팽하게 당겨 힘을 축적. 창끝에 이글거리는 빛무리를 응축하고, 정확히 목표물을 조준하여 투척.
“악귀에겐…… 빛의 심판이 있으리라…….”
쐐애애애애애액 – !!
신병, ‘루카온의 유성’이 이름대로 추락하는 유성처럼 쏘아졌다. 번뜩, 카딤이 온 세상을 반으로 가르는 빛줄기를 포착한 지 채 0.1초도 지나지 않아.
겨울 벌판에 종말이 도래했다.
쩌 – 엉!!
――――――― 콰과과과과과과과 – !!!
팽창하는 폭염이 대지를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몰아치는 폭압이 거인의 한숨처럼 만물을 떠밀었다. 단 한 번의 투척에 번천헌지의 파장이 천지를 뒤덮고, 반경 수백 미터가 폐허처럼 초토화됐다.
그러나 헨다르크는 알았다. 고작 이 정도 공격으로 쓰러질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흙먼지가 걷히자 폭심에서 기이한 자태가 드러났다.
마치…… 화산재를 뒤집어쓴 거목과도 같은 모습.
그건, ‘목질화 악마의 문신’을 발동한 카딤이었다. 금철목을 둘러 일순 방어력을 높인 것. 그는 너절하게 불탄 목피를 떼어내곤 목에서 명멸하는 문양을 쓸었다.
우웅, 웅, 웅, 우웅…….
“처음 봤을 때부터 만만치 않은 놈이란 건 알고 있었다만…….”
“…….”
“……생각보다 더 제법이로군. 이 나무 껍데기가 아니었으면 천벌에 맞은 네 동료처럼 됐을지도 모르겠어.”
진심이었다. 폭발을 막아 낸 후, 몸에 두른 금철목이 죄다 벗겨졌을뿐더러 ‘불과 얼음의 가호’까지 한 방에 거의 효과가 다했다. 산개한 화기를 한 점으로 집중하기만 한다면, 미상불 ‘천벌’만 한 위력을 발휘할지도 모를 일격이었다.
공격의 화력만 절륜한 게 아니었다. 다른 데카그램을 피떡으로 만든 ’충격 축적’을 역이용해 공격 기회로 써먹다니, 내구력과 전투 감각 또한 발군이라 할 만했다. 단언컨대 그동안 마주친 아크팔라딘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과거의 압도적인 ‘아크팔라딘’을 상기시키는 상대.
놀란 건 피차 마찬가지이긴 했다. 헨다르크의 표정이 착잡하게 굳었다. 처음 만났을 땐 힘을 약하게 조절해도 겨뤄볼 만했는데, 이제는 전력을 다해도 대적하기 힘든 난적이 됐으니…….
공교롭게도, 카딤 또한 첫 조우의 순간을 떠올렸다.
“혹여, 아직도 이마로 도끼를 받아낼 수도 있나.”
기습적으로 허리춤에서 쏘아지는 뇌격.
―――― 쐐래래래래랙 – !!
아크팔라딘은 처음처럼 이마로 받아내는 대신, 투구를 숙여 투척도끼를 피했다. 야만인의 입꼬리에 비릿한 조소가 내걸렸다.
“그때처럼 대놓고 맞아 줄 여유는 없나 보군. 하기야, 상판대기에 흠집이 늘어나면 제자들이 보고 울까 봐 걱정된다고도 했었지.”
“…….”
“한데…… 이젠 상관없지 않나? 그 제자들은 어차피 대주교란 놈에게 모조리 죽을 테고, 네놈도 여기서 죽을 텐데.”
예상치 못한 악독한 도발. 놀랄 겨를도 없이 비슷한 조롱이 잇따랐다. 아크팔라딘의 눈에서 노호한 불길이 타오르고, 뿌득, 이를 악무는 소리가 면갑 너머까지 흘러나왔다.
그런데 조롱한 쪽도 딱히 유쾌하단 낌새는 아니었다.
“……왜,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나?”
카딤은 외려 정색했다.
“나더러 극악무도한 악귀라 하지 않았더냐. 그래서 원하는 대로 어울려 줬다만.”
“…….”
“하여간…… 노망이 나도 단단히 났나 보군. 이딴 싸구려 도발에도 홀랑 넘어가는 걸 보니.”
“……무슨, 말이냐.”
“그 진실을 간파하는 ‘성흔’은 뒀다가 어디에 써먹을 생각이지. 설마 정말 내 쪽에 고이 바치려고 아껴두는 건 아닐 테고.”
“……!!”
말이 끝나기 무섭게, 헨다르크가 노기를 꺼뜨렸다. ‘진실을 꿰뚫는 별’로 카딤의 조롱이 위악적인 허언임을 파악했기에. 까마득한 어둠에 파묻힌 별은 잠시 자신이 진실을 통찰할 수 있단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자연스레 뒤따르는, 저 사내가 ‘악귀’가 아니라는 자각. 그러나 헨다르크는 고개를 내젓곤 스스로의 생각을 완연히 부정했다.
“아니, 내 성흔은…… ‘진실을 꿰뚫는 별’은…… 불완전하다.”
“…….”
“내가 보는 진실은…… 한낱 미욱한 피조물이 믿는…… 개인적 진실에 불과하다……. 결코 빛처럼 명징한…… 진리를 관통하는…… 절대적 진실이 아니다……. 이 세상에 절대적 진실을 통찰하는 존재는…… 오직 저 지엄한 빛의 인도자, 엘가…… 그리고 그에게 간택받은 사도인 대주교밖에 없나니…….”
“…….”
“……내가, 틀렸다. 그대는, ‘악귀’다. 그대는 대주교가 말한 대로, ‘악귀’가 틀림없다. 그대는 인두겁을 쓴, 이유 없이 엘가의 대행자들을 도륙 낸, 끝내 이 세상을 도탄에 빠뜨릴 극악무도한 ‘악귀’여야만 한다……. 그래야, 그래야, 그래야만, 그래야만…… 내가 그대를 죽이고…….”
……참혹한 고통을 겪는 어린 것들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아크팔라딘은 끝내 속내를 내뱉지 못했다. 하지만 목구멍 너머로 스러진 그 울분은 황량한 숨결을 타고 전사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수십 년 만에 전쟁터에서 적으로 해후한 형제처럼 묵묵히 서로를 노려보길 한세월.
유용했던 거래를 감안해 자비를 베푼 걸까, 지켜왔던 신념에 일말의 경의를 표한 걸까, 이도 저도 아니면…… 소중한 자를 희생했던 기억을 떠올려 시련을 준 걸까.
아탈라의 대전사는 엄숙하게 최후의 권고를 내렸다.
“마지막으로 한번, 기회를 주겠다.”
“…….”
“제자들의 목숨을 포기해라. 엘가 교단을 떠나고, 신념을 지켜 무고한 자들을 위해 끝까지 ‘투쟁’해라. 그리하면 네 목숨을 거두지 않겠다, 아크팔라딘.”
‘진실을 꿰뚫는 별’은 덜컥, 심장이 하복부로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육중한 망치질보다 한결 더 뼈아픈 지적이 이어졌다.
“네 스스로가 그 누구보다 잘 알 테지. 지금 네 창이 향한 방향이 틀렸다는 걸. 네놈이 진정 창날을 겨눠야 할 적수는 나와 동맹인들이 아니라, 너를 공갈하는 대주교와 그 녀석을 비호하는 잡신 쪽이다.”
“…….”
“생각해 보아라. 그렇게 대주교의 개가 되어 명을 따른다 한들, 네 제자들을 구하리란 보장은 없다. 아니, 되레 그게 쓸 만한 목줄이란 걸 깨달은 대주교 놈에게 더 악독하게 휘둘리기만 하겠지. 반면 제자들을 포기하면, 네가 지키고자 한 다른 것들만큼은 확실히 지킬 수 있다.”
“…….”
“사방이 밤의 어둠에 물들더라도 제자리에서 길 잃은 자들을 인도하겠단 신념을. 그리고 별처럼 많은 무고한 자들의 생명을.”
저 말은, 한때 자신이 저자에게 내뱉은 고백이었으니.
자가당착에 빠진 성기사가 견갑을 떨었다. 객혈을 토하듯 힘겹게 응어리진 육성을 내뱉었다.
“……그 입을, 닫아라. 더 이상 간교한 혀로…… 엘가와 그 사도를 모함하지 말지어다……. 내가 믿어온 진실은 비틀린 허상에 불과하고, 오직 대주교가 고한 진실만이 참된 진상이나니…….”
“아니. 그놈이 진실된 게 아니라, 네놈이 진실을 외면하고 패배와 굴종을 택한 거겠지. 놈을 이길 자신이 없어서, 가진 걸 잃을 게 두려워서, 모든 걸 걸고 맞설 강단이 없어서.”
“제발, 제발, 닥쳐라……. 네놈이 무얼 아느냐……? 내 제자들은, 그 아이들은, 내 늙은 심장이나 고루한 영혼보다도 훨씬 더 귀중한 보물이었다……. 그 아이들이 손가락을 잘리고, 눈알을 잡아 뽑히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대해…… 네놈이 대체, 대체 무얼 안다고…….”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겠지. 설마 잊은 건가?”
“……뭐?”
“말하지 않았나. 나는 악마들을 창궐시킨 옛 동료를 내 손으로 죽였다.”
끝내 심장이 멈춘 듯 얼어붙는 헨다르크.
손등에 새겨진 성흔은 변함없이 저 말이 진실임을 일러바쳤다. 대전사는 단조로이 ‘불과 얼음의 가호’를 쓸었다.
“그 덕에 더 큰 재앙을 막고 이 세상을 구했다만…… 아직도 그게 내 손에 죽은, 꺼지지 않는 불길을 품었던 여인의 목숨보다 더 가치 있는진 모르겠군. 그럼에도 그녀를 죽였던 건, 그것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네 제자들은 내 옛 동료와 달리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그건, 네가 나더러 구해달라 한 동맹인들도 마찬가지다. 고작 좀 더 아끼는 수십 명을 구하기 위해, 수백만 명을 죽이려 드는 미치광이 광신도의 앞잡이가 되는 게…… 과연 진실로 ‘해야만 하는 일’이라 생각하느냐?”
“…….”
“……그릇된 ‘투쟁’을 그만두어라. 신념을 버리고 굴종하느니, 차라리 모든 걸 잃더라도 끝까지 강적에게 맞서다 산화해라.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투쟁과 황야의 신의 이름으로 너와 네 제자들의 최후를 축복하겠다.”
오랜 침묵. 바람과 숨소리조차 멎은 정적이 흐르고.
대전사의 마지막 권고에 대한 아크팔라딘의 대답은…….
“신의 뜻은…… 가장 깊은 심해보다도 그윽하여…… 한낱 피라미만도 못한 인간이 헤아릴 수 없나니…….”
……또다시 빛이 깃든 창을 투척하는 것이었다.
쐐 – 액!
―――― 콰아아아아앙 – !!
폭발이 망가진 대지를 더 깊게 파헤쳤다. 투구에 갇힌 시선이 천상의 태양을 우러르고, 혼백을 넝마처럼 찢겨버린 듯한 목소리가 뒤따랐다.
“대주교를 배신할 순 있으나…… 엘가를 배교할 순 없다……. 신념을 꺾을 순 있으나…… 신앙을 버릴 순 없다…….”
“…….”
“이 모진 고통도, 시련도, 시험도…… 결국 찬란하게 빛나는 진실로 향하는 과정임이 틀림없나니……. 언제나 이 땅을 굽어보는 광명의 주인께서는…… 필시 무언가 거룩한 뜻을 품고 계실 거다……. 부디, 부디,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진심 어린 간증이라기보단, 무너지는 신앙을 지키기 위한 발악에 가까운 읍소.
카딤도 슬쩍 흘겼다. 지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참극을 방관하는 저 천상의 눈깔을. 제 종복까지 가차 없이 심판하면서도 자신만은 내버려두는 불가해한 신의 눈동자를.
그러다 문득, 늘상 흐린 마경에서조차 저 태양을 향해 기도를 올렸던, 어느 독실한 사제를 떠올렸다.
“고든을 기억하는가.”
“……고든? ‘빛을 등진 고든’ 말인가?”
“그래. 이전에 네가 고든에 관해 말해줬었지. 그럼 그자가 교단에서 파면당하기 전에 했던 말도 기억하는가.”
“…….”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살아서 성인으로까지 시성된 사제가 내뱉었다곤 믿기 힘든, 터무니없이 충격적인 말이었으니.
교단이 모시고 있는 신, 엘가는 ‘가짜’라고. 엘가를 위장하여 엘가인 척하고 있는 ‘거짓된 존재’라고.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래도 ‘저것’을 섬길 건가, 아크팔라딘?”
“…….”
헨다르크는 빛의 염상 아래 박제된 것처럼 굳어버렸다.
――― 쿠우우우우…….
먼 창공에 떠오른 눈동자에 광염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