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빛을 등진 별 (10)
‘천벌’이 게임일 적에 있었다면, 아마도 즉사기였을 것이다.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추락사나, 돌덩이에 깔리는 압사나, 혹은 최종 보스의 절멸 패턴과 같이…… 무조건 사망 판정이 뜨는 즉사기. 게임 내에서 그 시스템적으로 의도된 죽음을 대면하면, 종결급으로 육성한 캐릭터일지라도 무력하게 ‘Game Over’라는 화면을 볼 수밖에 없는 게 상식이다.
카딤은 그 상식을 거슬렀다.
――――――― 쩌 – 엉! 쩌 – 엉!! 쩌 – 엉!!
한 번, 받아치기 무섭게 또 한 번, 다시 한번, 광풍처럼 휘둘러지는 반격. 극렬하게 쏟아지는 빛줄기들이 그보다 더 극렬한 망치질에 거듭 상쇄됐다. 분절된 폭발이 흩뿌려져 무고한 벌판만이 초토화됐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영혼을 잃은 듯이 굳어버리는 헨다르크.
데카그램은 교단 내에서 놀라운 신비와 이적을 누구보다 많이 접한다. 축복을 주는 대성법과 초현실적인 성흔의 권능뿐 아니라, 악마들의 사특한 사술까지도 물리도록 보게 된다. 더구나 헨다르크는 기나긴 경력을 지닌 최고령의 별. 다른 자들의 몇 배는 넘는 이적을 보아왔다.
하지만 일생 동안 본 그 모든 이적들이 준 놀라움을 다 합쳐 봐도, 지금 보고 있는 장면 하나만 못 했다.
게임적인 개념은 아니다만, 그 또한 천벌이 ‘즉사기’라는 사실은 절절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야, 성흔의 제약에 의해 직접 맞아 봤으니까. 그 위력은 강철 같은 육신과 흑철로 빚은 판금마저 종잇장처럼 불사르며, 가장 약하게 맞아봐도 혼백이 아려오는 격통을 선사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천벌을 막아내다니?
그것도 조금도 약화되지 않은 천벌을, 심지어 한 번도 아니고 줄벼락처럼 내려치는 천벌을, 저렇게 전부 완벽히 막아내다니?
저자의 힘은 무슨…… 엘가를 뛰어넘기라도 했단 말인가?
당연히 그렇지는 않았다. 카딤이 천벌에 항거할 수 있었던 건, 오롯이 집요한 추측과 관찰, 드워프 신의 신병과 초월적인 반사 신경, 그리고……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다 못해 아예 적출되지 않았나 싶은 담력 덕분이었다.
발상의 시작은 드래곤이 남긴 귀띔에서부터였다.
과거, 루카오니아 왕국이 잊힌 신의 나라와 전쟁을 치르던 시기에 천벌이 약해졌단 이야기. 라퓨스트란은 단순히 전쟁이 길어져서 그렇게 된 것처럼 말했다만, 카딤은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춰 원인을 모색했다.
‘엘가를 믿는 추종자…… 그러니까 전쟁으로 ‘신도’의 머릿수가 줄어들어, 엘가 놈의 ‘신격’이 일시적으로 낮아졌던 게 아닌가?’
모든 존재에겐 제각기 ‘격’을 높이는 수단이 있다. 악마는 고통과 절망, 인간은 강자와의 투쟁. 같은 원리로, 신들 또한 따르는 ‘신도’들에 따라 ‘신격’이 변동한다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추론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악마와 인간은 ‘격’이 높은 존재를 대상으로 삼았을 때보다 많은 ‘격’을 얻기 마련. 마찬가지로, 신들 또한 ‘격’이 높은 존재가 신도가 되거나, 신도가 ‘격’이 높아졌을 때 더 많은 ‘신격’을 얻을지도 몰랐다.
말이 좋아 그럴지도 모른단 거지, 반쯤 확신에 가까웠다. 이 가설로 설명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신이 신도들에게 이적을 내리는 이유, 신도들이 전쟁에서 패배한 ‘잊힌 신’이 신격과 이름을 잃게 된 것,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린 엘가가 가장 높은 신격을 지닌 것…….
무엇보다 닥치는 대로 악마와 불신자를 멸하는 엘가의 대행자, ‘데카그램’의 존재와, 닥치는 대로 강적을 처죽여 ‘격’을 높이는 투신의 대행자, ‘아탈라의 대전사’의 존재.
다만 신도만이 ‘신격’을 결정짓는 요인은 아닐 터였다. 그랬다면 엘가쟁이뿐 아니라 신앙을 강권하는 갖가지 종교쟁이들이 판쳐 온 대륙이 진작 개판이 됐겠지. 하지만 중대한 요소 중 하나일 확률은 매우 높아 보였고, 그 깨달음은 이와 같은 결론으로 이어졌다.
엘가의 추종자들을 쓰러뜨릴 때마다, 특히나 강대한 엘가의 별들을 쓰러뜨릴 때마다, 가짜 엘가의 ‘신격’은 가시적으로 낮아질 테고…….
――――――― 쩌 – 엉!
……천벌의 위력 또한 그에 비례해 약화될 거다.
예상은 적중했다. 10좌, 9좌, 8좌, 7좌, 3좌, 절반에 이르는 별들이 추락한 현재, 천벌의 위력은 드래곤마저 압도하던 과거에 비해 확연히 약해져 있었다. ‘별 분쇄자’로 그 충격을 흡수하고 맞받아칠 수 있을 정도로.
의아한 건, ‘평화를 부르는 별’의 죽음이었다. 카딤은 그자가 죽는 걸 관찰함으로써 천벌이 약해졌다는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대체 왜 엘가가 신도에게 천벌을 내린 건지는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건 스스로 신격을 깎는 자해 행위나 다름없지 않던가?
해답은 의외로 금방 나왔다.
‘당장 신격을 잃는 것보다, 그놈을 죽이고 내 격이 성장하는 걸 더 큰 위협으로 여긴 거겠지……. 나는 다른 신을 대행하는 대전사인 동시에, 장차 별을 죄다 처죽일 지도 모를 위협이니까…….’
그렇지만 이는 꼬리를 물고, 진작 곱씹어봤던 또 다른 의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왜 엘가가 바로 전력을 다해 자신을 죽이지 않나, 하는.
카딤은 이에 대해서도 담백한 해답을 내린 뒤였다.
저 가짜 엘가는, 결코 자신을 ‘직접’ 죽이지 못한다…… 라고.
―――― 쩌 – 엉! 쩌 – 엉! 쩌 – 엉!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쏟아지는 엘가의 천벌에는 ‘살의’가 전혀 없었다. 당장 죽여버리겠다고 을러대는 협잡배의 칼질마냥 공허한 적의만이 느껴질 뿐. 엘가가 다소 신격을 잃었다 한들, 아직 자신 하나 못 죽일 정돈 아닐 텐데…….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불명이었다. 당장은 그저 또 다른 천상의 신, ‘아탈라’가 비호하는 게 아닐까 어렴풋이 추측할 따름이었다.
물론 딱 죽일 생각만 없다 뿐이지, 불구가 되는 것 정돈 아랑곳 않는 듯했다. 실제로 이미 대수림에서 한 차례 천벌에 맞은 전적이 있었으니. 그 혼백이 아리는 격통을 겪고도, 저 규격 외의 이적에 두려움 없이 맞서는 건 어지간한 담력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카딤은 겁먹긴커녕 외려 도발까지 일삼았다.
“미지근하구나. 차라리 아궁이에 달군 부지깽이가 더 뜨겁겠는데.”
――――― 쩌 – 엉, 쩌 – 엉!!
“예열은 언제 끝나는 거지. 설마 이 시시한 불질이 전력인 건 아닐 테고.”
――――― 쩡, 쩌정, 쩌 – 엉!!
누적한 충격을 방출하며 내려친 천벌의 충격을 축적, 한 번 더 충격을 방출하며 내려친 충격을 축적, 또다시 방출, 그리고 축적……. 초연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천벌로써 천벌을 격퇴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망치머리가 대기권에 마찰된 운석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 쩌 – 엉, 쩌정, 쩌저저저정 – !!
천벌의 기세가 사나워져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망치가 분출하는 충격이 집중된 포화를 흩어 낭비되는 오발탄만 늘어났다.
결국 세상을 굽어살피는 눈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 쿠화아아아악 – !
그냥 넘어가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경고하듯 세차게 불 자락을 퍼뜨리곤, 비로소 지평선 너머로 저무는 태양.
카딤도 지지 않고 태양을 노려봤다. 망막이 온통 잔상으로 점철되도록 눈을 부라리다가, 희미한 잔광마저 사라진 후에야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큰소리치긴 했으나 사실 이쪽도 아슬아슬하긴 했다. 몸뚱이야 멀쩡했다만 문제는 ‘별 분쇄자’ 쪽. 극심한 열과 충격을 견디며 혹사당한 은빛 쇳덩이는 달아오르다 못해 금방이라도 박살 날 것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허나 괜한 기우였다.
츠즈즈즈, 츠즈즈즈…….
잠시 가만히 내버려두자, 인챈트 각인이 광채를 발하더니 갈라진 표면이 저 혼자 수복됐다. 무기가 망가지면 스스로 손상을 고치는 특수효과, ‘자가 수리’였다.
“하.”
충격 축적에다, 성흔을 거두는 효과에다, 자가 수리까지 달려있다니…… 레전더리 등급으로도 한참 모자라겠군. 쇠망치 영감은 대체 뭔 괴물 딱지를 만들어낸 건지……. 카딤은 기가 차서 찬탄을 흘렸다.
기실 헨다르크가 놀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찬탄이었다만.
“손모가지가 그래서야 혼자서 바지도 못 갈아입겠군.”
“…….”
“대가로 받기로 한 건 ‘성흔’뿐이니, 손모가지 쪽은 돌려줘야겠지.”
아직 ‘히드라의 문신’의 효과가 조금 남았다. 철혈귀를 꺼내 한 손을 잃은 사내에게 쥐여 주고, 자해하여 회복시켜 주는 카딤. 헨다르크가 묘목처럼 다시 자라난 손을 바라보며 파르르 눈초리를 떨었다.
“대체 그대는, 그대는…… 누구시오? 지상으로 강림한 투신의 현신이오? 아니면 투신에게 간택받아 권능을 전적으로 위임받은 지상 대행자요? 어떻게, 어떻게 천벌에 맞서고…… 이런 터무니없는 이적들을 일으킬 수가…….”
“…….”
신은 무슨, 얼어 죽을. 카딤은 콧방귀를 뀌곤 말했다.
“말하지 않았나. 나는 미쳐버린 것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 어울려, 덩달아 미쳐버린 광전사요…….”
“…….”
“……투쟁과 황야의 신, 아탈라를 대행하여 투쟁하는 대전사다. 네놈이 본 이적들은 악착같은 투쟁이 낳은 소산이지, 신에게 간택받아 간편하게 얻어낸 권능 따위가 아니다.”
설명을 듣고도 먹먹하게 뇌리를 적시는 놀람을 떨치질 못했다. 헨다르크는 한참을 어물대다가, 그렇다면 왜 이교도인 자신을 살려주고 손까지 고쳐줬냐고 이어서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최후에 이르러, 신을 버리고 신념을 택한 헨다르크의 ‘투쟁’에 경의를 표했단 것.
“올바른 길로 투쟁하는 모든 자들은 투신의 대전사에게 축성 받을 자격이 있다. 설령 그게 엘가의 별일지라도.”
“…….”
“물론 이젠 엘가를 등졌으니, 네놈을 엘가의 별이라 불러선 안될 테지. ‘빛을 등진 고든’이란 선례가 있으니, 아마 네놈에겐…… ‘빛을 등진 별’이란 이름이 걸맞겠군.”
헨다르크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빛을 등진 별’. 그 이름을 곱씹는 순간, 홀가분히 족쇄를 벗어던지고 구원받은 기분이 드는 동시에, 모든 걸 송두리째 잃은 듯한 상실감도 들었다. 그 이름은, 평생을 바친 신앙이 무위로 돌아간 걸 입증하는 이명이었으니.
……그리고 무엇보다, 제자들을 구할 길이 없다는 걸 확정 짓는 낙인이었으니.
하지만 그건 섣부른 판단이었다.
“투쟁을 믿어라.”
“……음? 뭐, 뭐라 하셨소?”
“아탈라를 믿고, 진실을 좇아라. 척박한 황야의 계율 아래, 길 잃은 자들을 인도하는 네 ‘투쟁’을 계속 이어 나가라.”
“…….”
“아탈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네놈이 투쟁에 귀의한다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제자들을 구해주겠다. 설령 전부 대주교의 손에 죽는다 하더라도…… 지옥 불구덩이 밑까지 내려가 구해주도록 하지.”
“……!!”
“뭐, 어차피 이미 지옥에서 구할 놈들이 있기도 하고.”
경악으로 흔들리는 낯짝을 담담히 바라보는 카딤.
‘평화를 부르는 별’에게 조롱하듯 권했을 때와 달리, 이번엔 진심이었다. 저만큼 고결한 강자가 신도가 되면, 분명 아탈라의 ‘신격’에도 영향이 있을 터. 엘가가 자신을 못 죽이는 이유가 정말 아탈라의 비호 덕이라면, 투신에 대한 악감정과는 별개로 앞으론 꾸준히 신도를 늘려갈 필요가 있었다.
한편 헨다르크는 쉬이 동요를 추스르질 못했다.
성흔을 잃었어도 능히 직감했다. 카딤이 꺼낸 말이 명명백백한 진실이라는 걸. 저 고강한 전사라면, 진정 대주교와 ‘어둠을 삼키는 별’을 꺾거나, 진정 지옥 불구덩이 밑까지 내려가 제자들을 구할지도 몰랐다.
그렇다 해도, 선뜻 새로운 신앙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나는, 나는…… 벌써 한번 믿었던 신에게 배신당한 변절자요. 평생을 견지한 신앙을 버린 지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신을 모실 자신은 없군……. 그대에겐 실례되는 말이지만, 저 거짓된 엘가와 아탈라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카딤이 별것도 아닌 고민이라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
“엘가와 아탈라는 다르지. 둘 사이에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어떤?”
“아탈라를 섬기는 자들은 모두, 죽었을 때 한번 아탈라와 맞설 기회를 얻는다. 그래서 나는 그때 아예 놈의 골통을 반으로 쪼개버릴 작정이다.”
“…….”
“뭐, 네놈도 잘만 하면, 뱃가죽을 꿰뚫어 아탈라를 꼬치구이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고.”
광오하기 그지없는 선언에, 말문이 막혀 침묵하길 잠시.
노쇠한 눈동자가 하늘을 훑었다. 지독한 신성 모독에도 불구, 천상에는 아무런 조짐이 없었다. 투쟁과 황야의 신은 결코 집요하게 지상을 굽어살피거나, 악마보다도 악독한 악인을 사도로 간택하거나, 자신에게 항거하는 자에게 천벌을 내리지 않았다.
이윽고 헨다르크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별빛처럼 아스라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거…… 아주 끝내주는군.”
*
‘평화를 부르는 별’이 이끌었던 성전군, 그리고 ‘국경의 도살자’가 이끄는 동맹군의 잔당.
두 세력의 결전은 잠시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
““…….””
어쩔 수 없었다. 지축이 뒤흔들리고, 거대한 창이 천상으로 치솟고, 천벌이 지상을 폭격하는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와중에 어떻게 싸움에 집중하겠는가? 성전군 측, 동맹군 측, 양쪽 다 종말을 목도한 병아리 같은 표정으로 멍하니 아득한 원경을 바라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이 상황에 갈피를 잡은 자들은, 별들의 권능에 대해 조금이나마 아는 아크팔라딘들뿐이었다.
방금 사라진 거대한 창, ‘거짓을 멸하는 성창’은 ‘진실을 꿰뚫는 별’이 전력을 다해 싸우고 있단 증거. 3좌의 별이 전력을 다할 만한 상대는 한 명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결과, 이런 결론이 도출됐다.
‘진실을 꿰뚫는 별’과 ‘동맹의 악귀’, 두 존재가 생사 결단을 벌이고 있다는 것.
그동안 푸대접해온 것도 잊고, 아크팔라딘들은 진심으로 기원했다. 제발 그들의 대장, ‘진실을 꿰뚫는 별’이 저 전투에서 승리하기만을.
“영원한 광명의 주인, 엘가시여……. 당신의 별에게 무궁한 힘을 허락하소서…….”
“대장님께 악을 처단할 용기와 축복을 내려주소서……. 태양보다 찬란한 승리의 길로 인도하소서…….”
악귀는 무려 두 명의 데카그램을 꺾어버린 괴물. 심지어 행방이 묘연한 걸 보아, ‘평화를 부르는 별’마저 꺾었을지도 몰랐다. 그들로선 그 괴물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재간이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헨다르크가 이기도록 기도를 올리는 것 뿐이었다.
다행히, 하늘은 그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먼 어둠 속에서 어슴푸레한 윤곽이 나타났다. 희끗한 머리칼, 흉터가 가득한 면면, 손에 쥐어진 창대, 격전의 상흔으로 얼룩진 갑옷, 저 관록 넘치는 자태가 누구의 것인지는 명징했다.
“‘지, 진실을 꿰뚫는 별’께서 오셨다! 대장님께서 승리하셨다!”
“별께서 악귀를 꺾으셨다!! 엘가께서 악귀를 심판하셨다!!”
“그분께선 언제나 만세를 굽어살피시니, 모든 것은 빛을 위하여!!”
단숨에 성전군 진영은 축제 분위기가 됐다. 여기저기서 성흔을 긋고 기도를 올리는 손길이 분주했다. 심지어 성수가 든 수통을 들어 축배를 드는 치들도 있었다.
너무나도 이른 축배였다.
헨다르크는 혼자가 아니었다. 밤의 어둠에 파묻혀 잘 보이진 않았다만, 그 뒤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
악마조차 오줌을 지리게 만들 법한 야만인의 신영.
“……어?”
“무슨…….”
―――――― 후 – 웅!!
―――― 쐐 – 액!!
얼어붙은 성기사들을 향해, 천륜을 거슬렀던 망치질과 창질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