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30)
30화. 쌍둥이 협곡 (3)
반달이 슬그머니 기울어진 밤, 에클의 주민들은 촌장의 집에 옹기종기 모여 회합을 갖고 있었다. 용병과 맺은 약조에 대한 촌장의 설명이 이제 막 끝난 참이었다.
“……그래서 괴물들을 2만 루덴에 처치해 주시기로 했네. 미안하지만 보수를 충당하려면 돈을 더 걷어야겠어. 질문 있는 사람 있나?”
주민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한 사람이 입을 연 걸 시작으로 주민들은 앞다투어 의견을 피력했다.
“괴물이 또 있단 걸 그 용병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분명 그때 제가 가서 봤을 땐 한 마리뿐이었는데요?”
“2만 루덴은 너무 많습니다, 촌장님……. 1만 루덴도 다들 없는 형편에 겨우 긁어모은 돈인데 또 돈을 걷으면 추수철까지 어떻게 버티라고…….”
“용병과 다시 얘기를 나눠보는 건 안 됩니까? 그래도 그 용병도 사람인데, 인정머리라는 게 있을 거 아닙니까?”
“정말 너무하네요, 그 사람. 곤란한 사람들의 처지를 이용해 자기 주머니를 불리려 하다니…….”
촌장은 한동안 묵묵히 의견을 경청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마의 주름이 깊어졌다.
주민들의 토로가 끝난 후, 그는 착잡하게 마른세수를 했다. 아무리 한 평생 촌구석에서 산 무지렁이들이라지만 멍청해도 이렇게 멍청할 수가 없었다.
“자네들, 혹시 바보인가?”
“…….”
“그럼 자네들 중에 2만 루덴 줄 테니 목숨 걸고 그 괴물에게 가서 맞서 싸울 사람 있는가?”
침묵.
소란은 일시에 가라앉았다. 주민들은 멋쩍게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촌장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것이 아니라 해서 사람 목숨을 우습게 보지 말게. 그걸 담보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 해도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거야. 자네들은 누가 와서 자네의 목숨값을 흥정하면 기분 좋게 응할 수 있겠는가?”
흥정하길 제시했던 사내와 용병을 원망했던 아낙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협곡을 직접 가보았던 중년인은 여전히 의혹을 떨치지 못한 채였다.
“그래도 괴물이 두 마리나 있단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촌장님. 저와 같이 갔던 친구들도 한 마리뿐인 걸 똑똑히 보고 왔는데요. 저 용병이 직접 가서 본 저희도 모르는 걸 어찌 안답니까?”
“나도 그것까진 모르겠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더군.”
“…….”
“저 용병의 기분이 수틀리면, 우리들을 삽시간에 도륙 내고 돈만 챙겨서 떠날 수 있다는 것.”
싸늘하게 가라앉는 분위기.
사람들은 일제히 숨을 훅 들이켰다. 눈동자에 경악이 차오르고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히끅, 누군가 거하게 딸꾹질을 내뱉었다.
촌장의 말은 지극히 옳았다. 저자는 마을 사람들이 어찌할 엄두도 내지 못하던 용병들을 홀로 해치우지 않았던가. 하려고만 했다면 죽은 용병들보다도 얼마든지 더한 패악질을 부릴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럴 확률은 높지 않네. 내가 만난 아탈라인 용병들은 다 신의를 중요시했거든. 허나, 그렇다 해서 우리가 저 용병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건 절대 아니지.”
“…….”
“이보게들, 잘 생각하게나. 이건 놓칠 수 없는 기회야. 저만한 무력을 갖춘 데다 우리에게 악의가 없는 용병이 언제 또 우리 마을을 지나겠는가? 잃어버린 돈은 시간만 흐르면 얼마든지 되찾을 수 있어. 하지만 떠나간 기회는 영영 붙잡을 수 없는 법이라네.”
시선을 떨구고 깊이 생각에 잠겨 드는 사람들.
오래지 않을 고민이었다. 썩 내키진 않았으나 촌장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다들 2만 루덴을 주는 것에 동의했다.
자신들이 벼랑 끝까지 몰려났다 극적으로 살아났다는 걸 아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
간만에 봄비가 내렸다.
흐릿한 하늘은 회백의 색채. 대지는 촉촉하게 젖어 들고 흙바닥 위로 손길을 뻗는 신록들이 물방울을 싱그럽게 머금었다. 이따금씩 부는 살랑바람을 따라 빗줄기는 온순하게 기울어진 사선을 그렸다. 날이 훈훈하고 빗줄기도 거세지 않아 봄비에 목말랐던 사람들이 두 팔 벌려 반길 만한 날씨였다.
그러나 행렬에 선 자들은 봄비를 만끽할 여유가 없었다. 나아가는 엇박자의 발길에는 무지근한 긴장감이 깔려 있었다. 길 안내를 맡은 마을 청년들과 짐을 짊어진 행상인은 초조하게 야만인의 모습을 거듭 흘겼다.
전투를 앞둔 전사는 남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초연하게 무기의 상태를 점검했을 따름.
엄지를 세워 ‘모기’의 칼날에 슬쩍 가져다 댔다. 살갗이 종이 한 장 깊이만큼 베였다. 날이 무뎌진 것 같아 어젯밤에 숫돌로 갈고 남은 동백기름을 먹인 참이었다. 비가 오는 걸 보니 미리 기름 먹이길 잘했다 싶었다.
투척도끼는 딱히 관리할 필요가 없었다. 단단한 머리통을 숱하게 박살 내고 철갑 같은 비늘까지 뚫었는데도 도끼날은 여전히 갓 벼린 것처럼 날카로웠다. 이런 탁월한 무기를 만들 수 있는데 대체 왜 인간에게 드워프들이 패배한 건지 의아할 정도였다.
차림새는 가슴팍에 조임끈이 달린 천옷과 가죽을 덧댄 바지. 주민들이 카딤에게 치수를 맞춰 급히 수선한 것이었다. 원래 입던 옷은 버렸고 갑옷은 거추장스러워 걸치지 않았다. 어차피 목적지에 있는 괴물은 갑옷 따위가 도움이 되는 상대도 아니었다.
쌍둥이 협곡.
카딤은 그곳에 대해 아주 잘 알았다. 게임 내에서도 꽤나 명장소였고 1회차 때는 직접 지나가 보기도 했기에.
오래전부터 구전된 여러 전설이 얽힌 곳이었다. 어느 쌍둥이가 마법사와의 약속을 어겼다고 했던가, 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했던가, 다툼 끝에 서로를 죽였다고 했던가? 아무쪼록 저주받고 괴물이 된 쌍둥이가 영원토록 환생하며 협곡의 양 입구를 지키게 된다는 결말만은 똑같았다.
하지만 퀘스트를 진행하며 드러난 실상은 저주 따위가 아니었다. 그냥 이곳이 살기 딱 좋은 환경인지라 거듭 괴물이 꼬인 것일 뿐. 괴물이 반드시 두 마리씩 나타나는 이유도 쌍둥이가 환생해서가 아니라 암수 한 쌍이 번식을 위해 둥지를 틀어서 그런 것이었다.
‘진실은 때때로 예상보다 초라한 법이지. 뭐, 여기가 유명해진 이유는 전설 따위가 아니라 그 콩고물 때문이었지만…….’
‘쌍둥이 협곡’의 괴물들은 꽤나 짭짤한 경험치를 주었다. 거기다 전해지는 전설에 걸맞게 주기적으로 양 입구에 괴물들이 리스폰되었고. 기다렸다 잡기만 해도 돌아다니며 사냥하는 것보다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었다. 자연스레 레벨 업 명소로 이름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1회차 때나 지금이나 카딤은 게임처럼 경험치를 얻을 순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2만 루덴이라는 짭짤한 보상을 약속받았다. 급하게 쓸 곳은 없어도 돈은 다다익선. 훗날 던컨에게 줄 삯을 위해서라도 착실하게 벌어놔야 했다.
괴물 사냥은 악마 사냥만큼이나 익숙한 일. 육신의 성장을 시험하기 좋은 기회기도 했다. 혹시 몰라 수통을 챙겨오긴 했다만, 카딤은 되도록 악마의 피를 마시지 않고 괴물을 처치해 보기로 했다.
“이 안쪽 길로 가다 보면 협곡이 나옵니다.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용병님.”
협곡까진 거리가 꽤 남았는데도 마을 청년들이 안내를 끝마쳤다. 낯빛을 보아하니 겁먹은 게 분명했다. 짐꾼 역할인 던컨만이 계속 카딤을 따라나섰다.
질퍽한 오솔길로 나아가다 보니 금방 드높은 지형이 나타났다. 한쪽은 숲, 한쪽은 바위. 예복을 두른 거인의 어깨처럼 높이 솟은 두 단애절벽. 그 사이에 태산만 한 도끼를 내리찍은 것처럼 깊숙이 파인 비좁은 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어귀, 빗줄기도 아랑곳 않고 굳게 입구를 지키고 선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던컨. 전투가 끝난 것 같거든 눈치껏 내 쪽으로 오고.”
“조, 조심하십시오, 나으리!”
카딤은 던컨을 두고 홀로 괴물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괴물이 얼마나 거대한지 절감하게 되었다. 거목에 비견할 만한 신장과 뒤룩뒤룩한 몸집. 회청색으로 질린 살갗은 암석처럼 단단해 보였다. 매부리코 위의 조막만 한 눈깔은 우습기보단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쌍둥이 협곡의 수문장, 트롤.
– 쿠르륵, 쿠륵……?
접근하자 머리통을 갸웃거리는 것까지 이전에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온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음?’
그런데 달라진 게 아예 없진 않았다.
겉모습은 유사했으나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흐릿하긴 해도 음습하고 무지근하게 깃든 이 기운은…….
‘……마기?’
그럴 리는 없었다.
마기의 영향으로 트롤이 마물로 변했다면 겉모습에도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녀석의 외양은 전에 봤을 때와 큰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이 기운은 본래 악마의 기운보다 훨씬 농도가 옅었다. 마기가 자욱한 운무라면 이건 촛불 연기만도 못한 정도. 무언가, 잔뜩 희석하고 다른 걸 뒤섞은 듯한…….
‘…….’
어떤 변화가 생긴 건지 도통 짐작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 쿠르르륵, 쿠르르륵!!”
일단 트롤과 맞서는 게 먼저였다.
‘뭐가 달라졌는지는 썰어보면 알 수 있겠지…….’
쿵, 쿵, 쿵, 쿵!
트롤이 거센 땅울림을 딛고 내달렸다. 양손에는 뿌리째 뽑힌 메마른 나무 한 그루가 쥐여 있었다. 카딤은 녀석이 보다 가까이 오길 기다렸다.
트롤을 대표하는 특징은 두터운 가죽과 재생 능력. 그러나 히드라처럼 철갑을 두른 것도 아니고 급소도 수복할 만큼 대단한 재생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목을 자르거나 심장을 터뜨리기만 해도 트롤은 가볍게 목숨을 잃을 터.
하여 카딤은 머리 쪽을 노렸다. 어쭙잖은 반사 신경으론 피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지길 기다리고.
– 쿠워어어어어!!
열 발자국 남짓 떨어진 곳까지 다가왔다, 트롤은 손에 든 나무를 휘두를 준비를 갖췄다. 동시에 카딤의 손에서 빗살을 가르는 금속의 선풍이 뻗어 나왔다.
패래래래랙 – !
조준은 더할 나위 없이 깔끔했으나 트롤이 나무를 휘두르기 위해 팔을 치켜든 게 변수였다. 얼굴을 가린 팔뚝에 가로막혀 도끼날은 트롤의 한쪽 팔을 너덜너덜하게 찢는 데 그쳤다.
쩌 – 걱!
– 쿠웍, 쿼어어어어어!!
도끼날을 파묻으며 살점이 수복되기 시작했다. 카딤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전투는 언제나 변수로 가득한 것. 후회할 시간에 칼질이라도 한 번 더 하는 게 나았다.
고통으로 날뛰는 트롤 밑으로 낮게 달려들었다. 오른손에는 모기, 왼손에는 진흙을 한 움큼 움켜쥐고. 주의가 흐트러진 트롤은 거리를 좁혀 파고드는 적을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후방을 점하고는, 섬광처럼 횡축을 가르는 베어내기.
서 – 걱!
트롤의 뒤꿈치 가죽은 다른 쪽보다 훨씬 얄팍했다. 살갗과 발꿈치 인대가 끊어지고 검신이 벌컥벌컥 선혈을 집어삼켰다. 카딤은 재생되기 전에 잽싸게 절단 부위에 진흙을 흩뿌렸다.
– 쿠워어어어어어억!!
진흙 알갱이들이 힘줄과 살점이 도로 들러붙는 걸 막았다. 다릿심이 빠진 트롤이 기우뚱 무릎 꿇었다. 그 와중에도 카딤을 노려 나무를 휘둘렀으나 한 박자 늦었다. 그는 이미 반대편으로 몸을 틀어 또 다른 발꿈치를 끊는 중이었다.
서 – 걱!
이쪽도 자르자마자 진흙을 흩뿌려 재생을 막았다. 트롤의 몸뚱이는 완전히 균형을 잃었다. 카딤은 쓰러지는 반대 방향으로 내뺐다가 다시 쏜살같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 쿠웍, 쿠웍, 쿼어어어!!
발악으로 마지막 남은 팔을 휘두르는 트롤. 카딤은 그 힘을 역으로 이용했다. 검두를 곧게 세워 내려치는 손목을 꿰뚫고는 칼날을 옆으로 뺐다. 근육과 살점이 너덜너덜하게 끊어지고 육편과 선혈이 비산했다.
쩌 – 걱!
– 쿠워어어어어어어억!!
트롤은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이제 녀석에겐 멀쩡한 사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어디든 움직이려 해봐도 진흙 섞인 핏물만이 울컥울컥 솟구칠 따름이었다.
전사는 적이 무력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신속히 팔뚝에 파묻힌 도끼를 회수하고 결정타를 날렸다.
콰 – 직!
굵직한 단면에서 왈칵 핏물이 치솟았다. 다만 목이 원체 두꺼워 단번에 절단하진 못했다. 카딤은 통나무를 벌목하는 나무꾼이라도 된 것처럼 연달아 목에 도끼를 내려쳤다.
콰직, 콰직, 끄저적!
비로소 데구르르, 잘린 머리통이 진창 위를 굴렀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목구멍에서 탄식 같은 소리가 새어 나왔다.
– 꺼어…….
바르르, 떨리던 팔다리가 떨어졌다. 재생을 위해 움찔대던 환부의 경련도 멎었다. 차갑게 식어가는 괴물의 몸뚱이 위로 미지근한 빗방울이 쏟아졌다.
“…….”
악마의 피 없이도 가뿐히 승리를 거뒀다.
카딤은 얼굴의 혈흔을 빗물로 닦고 찬찬히 시체에 다가갔다.
여태껏 보아온 트롤과 별다를 것도 없는 놈이었다. 아니, 오히려 비가 온 덕에 처치하는 게 한층 더 수월했다. 재생을 막는 데 그냥 흙보다 진흙이 더 효과적이란 걸 알아낸 건 뜻밖의 소득이었다.
‘……그럼 그 기운은 대체 뭐였던 거지?’
트롤이 숨을 거두자 기운도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급히 가죽을 가르고 그 속을 헤집었다.
복막과 살점을 가로지르자 질퍽질퍽한 내장들이 만져졌다. 장기를 하나하나 움켜쥐어 보고 기다란 창자까지 전부 쥐어짰다. 꽁무니에서 핏물 섞인 배설물이 밀려 나오는 꼴까지 봤는데도 뚜렷한 특이점은 없었다. 악마의 피나 살점을 섭취한 징후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카딤은 놓치지 않았다. 눈을 떼려는 순간, 복강에 고인 핏물에서 거뭇하게 스러지는 잔영을.
“……!”
“저, 나으리? 지금 뭐 하시는…… 어? 우욱! 욱, 우웩, 끄웨엑!”
어느샌가 곁에 던컨이 다가와 있었다. 그는 내장이 다 파헤쳐진 트롤을 보고는 격하게 토악질을 했다. 카딤은 그쪽에 관심을 줄 여유가 없었다. 서둘러 발걸음을 뗐다.
다른 녀석, 어서 협곡의 반대편으로 가서 다른 녀석도 한번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
통통 튀는 빗발이 아름드리나무 잎사귀를 연신 두들겼다. 마을 청년들은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며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저 용병이 정말 혼자 그 괴물을 잡을 수 있을까?”
“글쎄…… 모르겠다. 못 잡으면 2만 루덴 굳는 거지, 뭐.”
“돈이 굳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러다 이 촌구석에 평생 갇혀 살게 생겼는데…….”
그들은 덤덤하게 나선 용병의 능력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홀몸으로 그 유랑 용병단을 처치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트롤을 상대하는 건 또 별개였다. 저만한 괴물을 잡으려거든 보통은 군대나 마법사를 이끌고 오는 게 상식 아니던가?
“야,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트롤을 잡는 건 힘들지…….”
“난 될 것 같은데? 너네, 그 용병이 도끼 던지는 거 못 봤지?”
“저런 도끼는 사람한테나 잘 들지, 괴물을 잡기에는 영…….”
괴물은커녕 멧돼지 한 마리 잡아본 적 없는 청년들 사이로 첨예한 갑론을박이 오갔다. 그러던 중 누군가 갑자기 위쪽을 가리켰다.
“어, 뭐야, 저거?”
“응?”
“어? 저거 연기 아냐?”
회백색 하늘에 시커먼 그을음이 번지고 있었다. 그들은 동시에 눈썹을 찌푸렸다.
“저긴…… ‘돌아올 수 없는 숲’ 쪽이잖아. 벼락 맞고 산불이라도 났나 본데?”
“가서 큰불인지 확인해 봐야 되는 거 아냐?”
“신경 꺼, 비가 이렇게 오는데 뭐가 걱정이야? 좀만 냅두면 지가 알아서 꺼지겠지…….”
그 말은 일견 타당하게 들렸다. 하늘은 창백했고 빗줄기는 가늘어질 기미가 없었다. 평범한 산불이라면 가만 내버려 둬도 알아서 꺼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저 불은 고작 평범한 산불이 아니었다.
연기는 점차 짙은 농도를 머금었다. 매캐한 손톱이 공중을 마구 할퀴었다. 울창한 삼림 위로 날카로운 화마의 송곳니가 솟구쳤다. 불길은 꺼지긴커녕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맹렬한 기세로 번지고 있었다.
“어, 뭐, 뭐야? 불이 더 커진 것 같은데…….”
“왜, 왜 저래, 저거? 왜 안 꺼지는 거야?”
“제기랄! 저러다간 마을까지 불길이…….”
마을 청년들의 눈동자 위로 주홍빛 반사광이 일렁였다.
지옥의 불꽃이 악마의 터전이었던 숲을 내달리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