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39)
39화. 마법사 사냥 (5)
유미르는 마탑에서도 인정받는 정신 계열 마법의 대가였다.
괴물의 대규모 정신 제어와 인간 정신 제어 마법에 관한 그의 연구는 큰 윤리적 논란을 일으켰음에도 불구, 그 이상으로 학술성과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는 걸로 많은 마법사에게 인정받았다. 그 업적을 토대로 유미르는 컨저러 등위에 오르고 계획을 실천할 전폭적인 지원까지 받게 되었다.
그런지라 정신 계열 마법에 있어 유미르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온 대륙을 통틀어 봐도 자신만 한 경지에 오른 마법사는 손에 꼽을 정도라 자신 있게 얘기할 정도로.
물론 아직 인간 정신 제어 마법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했다. 고작 벽에 부딪히는 사소한 충격에도 깨질 정도이니. 그렇지만 안정성이 떨어지는 거지, 효과가 약한 건 결코 아니었다. 그는 인간이 이 마법에 아예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론도네, 올티시아렌!]”
그 단언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박살 났다.
스르륵, 꿀럭, 후우우…….
정신 제어를 위한 잔영이 또다시 허무하게 사라졌다.
야만인은 마법 따윈 무시하고 곰올빼미를 척살하며 착실히 접근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유미르는 정신 제어 마법이 아닌 다른 정신 계열 마법까지 무차별적으로 사용했다. 기절 마법, 혼란 마법, 수면 마법, 공포 마법…….
그 어느 것도 효과가 없었다.
다른 자의 정신에 파고드는 게 고기를 칼로 꿰뚫는 느낌이었다면, 이자는 마치 돌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았다.
‘대체…… 정신에 무슨 짓을 한 거지……?’
멀찍이 바닥을 구르는 빈 병이 해답이었으나 유미르가 그걸 알아챌 순 없었다. 그는 함성을 지르며 피보라를 일으키는 야만인을 그저 망연하게 지켜봤다.
“흐어어어어어업!”
쩌 – 걱! 쩌거걱!
– 구웍!
– 구워어어억!
어느덧 야만인이 괴물을 죄다 찢어발기고 목전까지 이르렀다. 도망치지 않으면 죽음뿐이었다.
화르륵 – !
그런데 달아나려는 순간, 단검이 발치에 박히고 불길이 일어나 앞을 막아섰다. 쇠사슬을 내보내 공격하려 했으나 야만인이 더 빨랐다.
쐐액!
순식간에 얼굴에 드리운 칼날을 보고 유미르는 숨을 훅 들이켰다. 살아남기 위해선 급히 속내를 추슬러야 했다.
“……크흠, 경이롭군. 델루타나 참사회의 능력이 이 정도였을 줄이야. 이만한 전사를 양성할 수 있다면 온 대륙의 악마를 멸하고 제국까지 집어삼키는 것도 꿈은 아니겠어.”
“……?”
“그 괴물 같은 무력과 마법에 대한 저항부터, 거침없이 홀로 적진에 뛰어드는 용기와 충성심까지……. 그야말로 흠잡을 곳이 없어. 용병으로 일한다면 황금을 쓸어 담고, 투기장에서 싸운다면 챔피언의 영광을 거머쥘 만해. 한데…… 너는 이번 임무의 대가로 무엇을 약속받았더냐?”
“…….”
“크흐흐, 보아하니 별다른 것도 없나 보군. 칼을 그만 내리거라, 야만인. 우린 동지가 될 수 있다. 마탑은 지금 네가 받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대우를 해줄 수 있…… 끄헙!”
쩌걱!
선뜩한 칼날이 입가를 덮쳤다. 입이 찢어지고 이가 부러지고 혓바닥이 갈라졌다. 주문과 감언을 내뱉던 마법사의 입은 이제 뜨거운 핏물만을 토하게 되었다.
카딤은 덤덤하게 칼을 겨누고 말했다.
“무슨 헛소릴 하는지 모르겠군. 이제부턴 내가 묻는 말에만 답하거라. 손가락에 피를 묻혀 글자를 쓰면 된다.”
“에엑, 우웁, 헤헤엑…… 에엑, 에에에에엑!!!”
“먼저 이것부터 좀 묻도록 하지. 어째서 마법사가 ‘악마’의 방식으로 마법을 쓰고 있는 거냐? 인간을 산 제물로 바치는 것, 마나가 아닌 마기를 사용하는 것, 사념을 정신에 밀어 넣는 것, 전부 다 정령이 아니라 악마의 방식인데.”
유미르는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입을 가득 메운 찝찔한 피맛과 생살이 찢긴 격통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눈물과 콧물이 왈칵 쏟아지고 자꾸만 성대에서 짐승 같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에헤엑, 게엑, 에헥, 켁, 케엑…….”
질문에 전부 곧이곧대로 대답하면 살 수 있을까?
유미르는 처연하게 야만인을 올려다보았다. 사형수를 내려다보는 처형인과 같은 눈동자가 보였다. 저래선 가망이 없었다. 아마 딱 질문에 답하는 동안만 죽음을 유예할 수 있겠지.
그래서 유미르는 결정했다. 이 육신을 포기하고, 최후의 수단을 써 야만인에게 맞서기로.
쇠사슬을 굳게 움켜쥐었다. 찌그러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사력을 다해 심장을 쥐어짰다. 가슴팍에서 치솟아 오른 무지근한 기운이 온전히 쇠사슬로 흘러들었다.
치르르르르르 – !
“……!”
쇠사슬이 홀로 요동치며 유미르를 옭아맸다. 무언가 수작을 부린단 걸 눈치챈 카딤이 모기로 쇠사슬을 내려쳤다.
채 – 앵!
하지만 쇠사슬은 끊기지 않았다. 먹이를 사로잡은 뱀처럼 억척스럽게 끝끝내 유미르의 몸뚱이를 에워싸고 으스러뜨렸다.
절그럭, 콰각, 콰가가각 –
“끄아아아아아아악!!!”
팔다리가 접히고 모가지가 비틀리며 유미르는 축축한 고깃덩이로 변했다. 숨이 멎었는데도 쇠사슬의 옥죄는 힘은 약해질 줄 몰랐다. 밑으로 피와 체액이 줄줄 흘러내렸다.
스르르르 –
곧 판석에 고인 피 웅덩이가 까맣게 물들더니, 거뭇한 잔영으로 기화하여 어디론가 날아갔다.
‘빌어먹을, 이 새끼가 무슨 짓을…….’
카딤은 도끼와 단검을 회수하고 급히 잔영의 뒤를 쫓았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저 녀석이 이유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리는 없다. 필시 자신을 제물로 바쳐 성가신 술수를 부린 거겠지.
그리고 카딤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 콰 – 앙!
잔영을 좇아 모퉁이를 도는 순간, 느닷없이 벽을 부수며 나타나는 거대한 손.
움켜쥐려는 손아귀를 간신히 피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벽에 난 구멍 정도로는 전부 담기지 않는 장엄한 신영이 그 너머에 서 있었다.
황동처럼 누런 살갗 위로 일그러진 눈매와 뭉툭한 코, 뾰족한 엄니가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팔다리엔 기암괴석처럼 흉악한 근육이 불거져 있고, 불룩 튀어나온 뱃가죽 너머로도 무쇠처럼 단단한 복근의 윤곽이 드러났다. 태산을 뿌리째 뽑을 만한 힘을 가졌다는 괴물이 시꺼멓게 물든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압도적인 괴력을 지닌 폭거의 괴물, 오우거.
– 마음껏 발버둥 쳐보거라, 야만인. 지금부턴 전부 무의미할 터이니.
오우거의 성대를 거쳐 기괴하게 공명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콰르르르!
마법사의 정신이 깃든 오우거가 벽을 무너뜨리며 달려들었다.
*
카딤은 이를 악물었다.
잔영이 몸에 깃들었을 때 확실히 느꼈다. 사념을 머금은, 무언가 잔뜩 뒤섞여 희석된 마기. 쓰는 방식으로 보나 그 원료로 보나 유미르가 쓰는 건 마법이 아니라 악마의 사술, 그중에서도 빙의종 악마의 사술에 가까웠다
하지만 유미르가 악마와 계약한 건 결코 아니었다. 그랬다면 훨씬 더 정순한 마기를 사용했을 테고 괴물들은 진작 마물로 변했겠지.
결국, 300년 사이 ‘마법’의 원리가 저렇게 바뀌었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이 나왔다.
“…….”
파생되는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 희석된 마기를 쓰는 건지, 왜 마나가 아닌 마기로 마법을 사용하는 건지, 어째서 엘가 교단은 저런 행위를 묵인하는 건지…….
하지만 사색에 잠길 틈은 없었다. 해답은 저 오우거를 쓰러뜨린 후에야 알 수 있을 터였다.
– 죽어라아아아아아!!!
―――――――――― 콰과과과과과 – !
공성추만큼 커다란 주먹이 벽을 휩쓸었다. 벽돌이 산산이 부서지고 자욱하게 먼지와 파편이 튀어 오르며 벽면에 깊숙이 패인 자국이 남았다. 파멸적인 궤적을 그린 끝에 주먹이 닿은 곳은 카딤이 있던 자리였다. 판석이 박살 나며 바닥이 움푹 꺼지고 묵직한 진동이 온 통로를 뒤흔들었다.
―――――― 콰 – 앙! 쿠구구구…….
신속히 한 발짝 물러서 피떡이 되는 꼴을 면했다. 카딤은 모기를 휘둘러 반격했다. 하지만 주먹에 닿는 칼날은 무쇠라도 내려친 것처럼 거꾸로 튀어 올랐다. 오우거는 싱거운 손질로 검신을 떨쳐내고 조소를 흘렸다.
– 소용없다. 설마 그 주머니칼로 이 두꺼운 가죽을 뚫을 수 있을 거라 생각……
콰 – 직!
– ……크억!
카딤은 무기를 바꿔 투척도끼를 내리쳤다. 이번엔 가죽이 뚫렸다. 단숨에 속살로 파고든 스산한 도끼날이 오우거의 중지를 끊어냈다.
그런데 절단되기 무섭게 상처가 아물었다. 심지어 환부에서 손가락이 새로 자라나기까지 했다.
‘뭐야, 오우거에게 재생 능력 따윈 없을 텐데?’
미간을 한껏 찌푸린 카딤을 보며 오우거는 즐거워 죽겠다는 듯 음험한 웃음을 터뜨렸다.
– 쿠흐흐, 맹랑한 녀석! 자르면 끝인 줄 알았더냐? 이 몸뚱아리는 평범한 오우거가 아니다. 트롤의 인자를 받아들여 어지간한 상처 따윈 거뜬히 재생할 수 있지.
“…….”
카딤도 순간 덩달아 헛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저런 것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다니, 지능도 오우거 정도로 퇴화한 건가?
하지만 이내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오우거는 그 어마어마한 괴력과 단단한 가죽만으로도 쉽지 않은 상대. 거기에 트롤의 재생력까지 더한다면 어지간한 중급 악마 이상으로 위험한 괴물이 된다. 설상가상 ‘민첩 강화’ 버프는 효력이 거의 다 했고, 남은 건 이젠 쓸모없는 ‘정신 공격 면역’ 버프뿐이었다.
‘히드라의 피까지 마셔야 하나? 제기랄, 하지만 하루 사이 피를 세 종류나 마시면 분명 광증이 심각하게…….’
―――――― 콰다다다다닥!
고민하던 찰나, 둔탁한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기둥뿌리만 한 오우거의 발이 바닥을 으스러뜨리며 카딤을 노렸다. 우측으로 몸을 던졌지만 파편까지 다 피할 순 없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돌 세례에 살갗이 찢기고 피멍이 들었다.
화르륵, 화르륵 – !
카딤은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네 자루의 단검을 연달아 던졌다. 세 자루는 불나방처럼 허무하게 튕겨 나가떨어졌지만 한 자루는 오른쪽 팔뚝 깊숙이 박혔다.
꽈득.
허나 오우거는 단검이 박힌 부분을 살점째로 뜯어내 버렸다. 지옥불은 자그마한 살점 조각만을 바싹 태웠을 뿐, 더 이상 번져나가지 못했다. 살점이 뜯겨나간 부분마저도 금방 출혈이 멎고 다시 살이 차올랐다.
– 자, 그다음은? 그다음은 무엇이냐, 야만인?
“…….”
도끼를 쥐고 쏜살같이 내달렸다. 다리 사이를 파고들려 했으나 오우거가 미리 알아채고 자세를 낮췄다. 잇따른 충격으로 들뜬 판석을 들고 완전히 뒤엎어 버리는 오우거.
――――――― 쿠과과과과과광 – !
천장과 바닥이 뒤집혔다. 벽처럼 일어나 몰려오는 판석의 파도. 카딤은 그 흐름을 어깨로 세차게 밀치고 돌파하여 휩쓸리는 걸 면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오우거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이번엔 피하지 못했다.
뻐 – 억, 쾅!
“커헉!”
나가떨어져 등이 벽면에 부딪히는 순간, 숨이 턱 막히고 속에서 무언가 왈칵 치솟았다. 품에 넣어둔 병이 깨졌는지 윗옷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어떤 병이 깨진 건지 확인할 여유도 없었다. 오우거가 또다시 주먹을 빙빙 휘두르며 달려들고 있었다.
콰 – 앙!
그 후로도 전투는 쭉 카딤에게 불리하게 흘러갔다.
적이 지나치게 강했다. 상처를 입히는 것도 힘든데 입혀 봤자 금방 재생되었다. 버프가 고갈되어 거의 맨몸으로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어졌다. 서서히 반격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기에만 급급해졌다.
– 이다음은? 이다음은 어떻게 할 것이지, 야만인?
“후욱, 후욱…….”
– 벌써 끝은 아닐 것 아니냐?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면서 그리 오만하게 굴었을 리 없지. 어서 보여주거라, 네가 또 어떤 무기를 갖고 있는지.
이마로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근육이 너덜거렸다.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숨을 쉴 때마다 저릿하게 흉통이 일었다. 카딤은 이를 부러져라 악물고 오우거를 노려봤다. 거구의 괴물은 여전히 상처 하나 없이 건재했다.
그래도 아직 저 녀석을 쓰러뜨릴 한 수가 남아있긴 했다.
‘트롤의 인자를 받아들인 거라면…… 급소까지 재생하진 못하겠지. 어쨌든 심장이나 대가리를 터뜨리면 돼.’
손바닥 마디에 흡판이 달린 것처럼 견고하게 도낏자루를 휘어잡았다. 숨을 참고 도끼날을 신중하게 조준. 팔목에서 전완근, 이두근까지 이어지는 힘의 축적. 전력으로 밀어내는 손가락 끝에서부터 선뜩한 금속의 날개가 만개했다.
패래래래래랙 – !
쩌 – 걱!
– 쿠욱!
그러나 빗나갔다.
오우거가 급히 상체를 틀어 도끼날은 어깨를 찢어버리는 데 그쳤다.
유일하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무기가 완전히 손을 떠났다. 오우거도 그 사실을 알아챈 듯했다. 홧홧한 어깨를 슥 쓸고는 내달리는 녀석. 어쭙잖은 저항은 간단히 가로막혔다. 오우거는 카딤의 칼을 빼앗아 던져버리고 묵직하게 주먹을 먹였다.
――――― 쾅!
“커헉!”
카딤은 또다시 벽면에 처박혔다. 오우거의 낯짝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떠올랐다.
– 끝이냐? 이걸로 끝이더냐? 고작 이 정도로 끝날 거면서 아까는 그토록 무엄하게 뻗댄 것이더냐?
“…….”
– 시시하구나. 그러게 진작 내 제안을 받아들였어야지. 네 무덤을 네 스스로 판 꼴이다, 어리석은 야만인아. 혹여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더냐?
온몸이 바스러질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허나 카딤의 정신은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했다.
계획대로 되었다. 부상은 심하지만 죽지 않고 잘 버텼다. 악마의 피를 마시지 않고도 충분히 시간을 끌었다. 밤하늘이 보이지 않는 요새 안에 있었으나 북소리처럼 울리는 심장 박동이 적절한 때가 되었음을 일러바쳤다.
카딤은 유언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질문을 던졌다.
“혹시…… 그것 아나?”
– …….
“오늘은 달이 뜨지 않는 밤이라는 것.”
– ……?
“그리고 방금, 자정이 되었다는 것.”
오우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카딤의 말을.
그리고 이어지는 기도문을.
“[패배를 모르는 만병의 주인, 아탈라시여. 당신의 도끼를 내 손에 쥐여 주소서, 투쟁에 목마른 대전사를 축성하소서, 적의 붉은 피로 목을 축이게 하소서. 대지를 굽어살피는 눈동자가 모습을 감춘 밤, 꺾이지 않는 투지로 빛나는 당신의 이름을 빌어 이 무기를 벼리노니].”
우우우웅 –
눈을 시리게 하는 푸른 빛무리가 퍼져나갔다. 광휘의 물결이 홍수처럼 범람하여 어둠을 몰아내고 초토화된 난장을 서늘하게 식혔다. 미지의 섬광에 압도된 오우거는 모든 사념을 잊은 채 백치처럼 아둔한 눈빛으로 목전을 응시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신의 이적이란, 신비를 탐구하는 데 일생을 바친 마법사의 이지마저도 벗어나는 것이었으니.
카딤의 두 번째 고유 특성, ‘이름을 벼리는 자’가 발동됐다.
이번에도 목소리가 아닌 명징한 의지만으로 내면의 울림이 메아리쳤다.
카딤은 망설이지 않았다. 저 도끼에 어떤 이름을 주고, 어떤 효과를 얻을지는 이미 한참 전에 정해 놓았다.
“연어.”
[…….]“저 도끼의 이름은 이제부터 ‘연어’다.”
우우우우웅 – !
손에 들려 있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인 무기가 공명하고 있었다.
술렁이던 광휘가 급류를 탄 것처럼 흘러 오우거의 뒤로 날아간 도끼를 향해 빨려 들어갔다. 선으로 압축된 빛이 도끼날에 새겨지며 이곳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푸른 광채를 발했다.
카딤은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았으나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강물을 거슬러 태어났던 곳으로 회유하는 물고기처럼, 살아있는 듯이 꿈틀대고 맥동 치며 본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오고자 하는 인력을.
“……돌아와라, ‘연어’.”
카딤이 읊조리는 순간, 도끼가 허공으로 떠올라 또다시 금속의 날개를 펼쳤다.
패래래래래랙 – !
돌아오는 궤적의 중간에 오우거의 등짝이 있었다. 눈보라 치는 파형의 도끼날은 거침없이 두꺼운 가죽을 가르고 파고들어……
―――― 퍼거거거걱!!
……오우거의 심장 반쪽과 폐부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후, 육편의 폭발을 일으키며 밖으로 튀어나왔다.
– 쿠워어어어어어어어억!!
‘귀환.’
어디에 있든 소유자가 원하면 그 손으로 되돌아오는 특수효과.
돌아온 도끼는 그 주인의 손에 안착했다. 치명상을 입은 오우거는 격하게 토혈하며 털썩 무릎 꿇었다. 카딤은 섬찟한 미소를 지은 채 소맷단으로 피로 물든 도끼날을 느릿하게 쓸어내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