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45)
45화. 황야의 무녀 (1)
이튿날, 메센에는 예기치 못한 소란이 일었다.
렘타나의 깃발을 든 기마병들이 다리를 넘어 메센을 점거했다. 병사들을 이끄는 자는 멀끔한 코트를 차려입은 중년인. 그가 누구인지 알아본 메센의 촌장은 사색이 되어 굽실거렸다.
“아, 아니, 수석 보좌관님 아니십니까? 여기까진 대체 무슨 일로…….”
“불법 무장 세력이 메센에서 활개 친단 소식을 듣고 시찰을 나왔다. 네놈과도 유착 관계에 있다는 걸 다 알고 왔으니 놈들의 본거지가 어딘지 바른대로 고하거라, 촌장.”
“예? 그, 그게…….”
촌장은 쭈뼛대면서도 하릴없이 보좌관을 자경단 사무소로 안내했다. 참사군 병사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임전 태세를 갖췄다. 문이 막혀 있어 창문을 박살 내고 사무소 내부로 급습했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건 결사의 항전을 각오한 자경단원들이 아니었다.
“으음?”
‘읍, 읍!’
‘읍, 읍, 읍!’
팔이나 다리 중 한쪽, 혹은 둘 다 부러진 채 꽁꽁 포박되어 있는 사내들. 그리고 온몸에 구멍이 난 기이한 시체.
보좌관은 사내들의 포박을 풀어주고 심문했다. 그들은 순순히 자신들은 자경단이고 저 시체가 단장이었다고 고했다. 하지만 누가 어떻게 자신들을 이렇게 만들고 단장을 죽였는지는 알지 못했다. 야밤에 느닷없이 뒤통수를 맞고 의식을 잃었는데 눈을 떠보니 다들 이 꼴이 되어 있었다고.
누군가를 납치하려 가다가 그렇게 됐다고 순순이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보좌관은 무언가 이미 알고있다는 듯 쯧, 혀를 찼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보좌관님? 누가 자경단장과 이놈들을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조사할까요?”
“……아니, 우린 참사관님의 명만 이행한다. 이놈들을 쇠사슬로 다시 묶고 불법 무장 세력의 잔당을 찾아라. 다 찾는 대로 즉각 여길 떠날 테니 서두르도록.”
보좌관과 참사군은 촌장과 자칭 자경단원, 그리고 관련된 인사들을 모조리 쇠사슬로 엮어 마을 한 가운데로 조리돌림 행진을 벌였다. 그들에게 피해를 입었던 여행자들은 쌍욕과 돌팔매질을 서슴지 않았다. 죄인들은 부러진 다리로 절뚝대면서도 돌멩이를 피하기 위해 힘겹게 몸을 비틀어댔다.
하지만 마을 토박이들의 반응은 달랐다. 죄인들은 여행자들에겐 생판 남이지만, 그들에겐 누군가의 이웃이며 형제며 아들이며 아버지였다.
한창 행진이 이어지던 중 중년의 여인이 튀어나와 보좌관의 앞에 바짝 엎드렸다.
“아이고, 보좌관 나으리! 저희 아들놈이 나쁜 맘을 먹고 그런 게 아닙니다! 세금이 너무 높아져서 어떻게든 돈 좀 벌어 보겠다고, 마을 한번 살려 보겠다고 그런 겁니다! 부디 이번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쌍둥이 협곡이 개방되어 관할령 남부의 세수가 정상화된 후론 오히려 세금을 낮춰주지 않았더냐. 그런데 여태껏 무장 세력 활동을 그만두도록 네 아들을 설득하지 않은 이유는 뭐지?”
“그건, 그, 그건…….”
아들이 벌어다 주는 그릇된 수익이 너무 달콤했다고 솔직하게 답할 순 없었다. 여인은 중언부언 아귀에도 맞지 않는 헛소리를 주워섬겼다. 내려다보는 보좌관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 갔다.
“참사관님께서 내게 이곳의 상황을 충분히 감안하여 처분하라고 명하셨다. 네 아들은 합당한 처벌을 받은 후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그러니 길을 가로막지 말고 어서 비켜서거라. 계속 방해하면 네 아들의 죗값이 더욱 무거워질 것이다.”
여인은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그러곤 아들을 향해 애처롭게 손을 흔들었다. 아들은 걱정 말란 듯이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공교롭게도 그는 여관에서 소란을 피우다 말을 훔치고 찔러 죽인 자들 중 하나였다.
그 풍경을 몰려든 무리의 뒤편에서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거구의 야만인과 챙 모자를 눌러쓴 중년인. 보좌관은 그들과 눈이 마주쳤지만 아는 척 않고 급히 시선을 돌렸다.
카딤은 엔리코를 내려다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저 녀석들이 처벌을 받고 여기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게 정말인가?”
“물론이오. 비록 목 아래는 돌아올 수 없겠지만.”
“…….”
냉정한 대답. 엔리코의 얼굴에는 한 지역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다운 엄격함이 깃들어 있었다.
불법 무장 세력 조직, 공공시설 무단 점거, 관할령 공유 재산 절도 및 파손, 참사관 납치 모의에 합당한 처벌은 참수형 외엔 없었다
*
참사관의 정체를 드러내는 일 없이 그나마 조용히 자경단을 처리했다. 보좌관으로부터 은밀히 말을 전달받아 이동 수단까지 다시 확보됐다. 본래대로라면 참사관 일행은 바로 메센을 떠나 여정을 계속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흐으…… 미안하구려……. 하필이면 이럴 때 몸이…….”
“…….”
쪽잠도 못 자고 일하고, 마을에서조차 제대로 쉬질 못한 엔리코는 결국 앓아눕고 말았다. 열병과 몸살로 드러누운 병자를 데리고 이틀을 내리 달리는 건 불가능한 일. 결국 참사관 일행은 메센에서 수일을 더 머물러야 할 처지가 되었다.
카딤은 처음엔 그냥 보수를 돌려주고 먼저 여정을 떠날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금방 생각을 바꿨다. 누군가 참사관을 노린 전례가 있다 보니 내버려 두고 가긴 껄끄러웠다. 저 참사관에게선 아직 받아야 할 빚이 남았기에.
‘마탑의 기록을 열람하기도 전에 죽게 둘 순 없지.’
카딤은 시간을 때울 방법을 찾아 나섰다.
메센은 즐길 거리가 그리 많지 않은 마을이었다. 어딜 가도 음식이 변변찮고 술맛도 별로였다. 야만인에게 도박이나 오입질 따위의 취미는 없었다. 게다가 자경단 사건으로 마을 전체가 뒤숭숭해지는 바람에 문을 여는 가게 자체가 많질 않았다.
결국 꾸준히 할 만한 일이라곤 하나 정도밖에 없었다.
“아얏, 아아악!”
던컨을 두들겨 패고 싸움을 가르쳐주는 것.
“항상 거리를 잘 가늠해라. 적이 든 무기와 팔의 거리, 네가 든 무기와 팔의 거리,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 네 걸음의 거리. 그리고 적의 거리 안에 있으면 최대한 빨리 둘 중 하나를 선택해라. 놈을 찌르거나, 벗어나거나.”
“앗, 헛, 어허헉!”
“적이 모르는 무기를 하나쯤 만들어 놓으면 좋다. 적이 정직하게 칼을 휘두르면, 너는 그놈의 얼굴에 숨겨뒀던 돌멩이를 던져라. 적이 정정당당하다고 해서 너까지 그렇게 싸워야 한다는 법은 없다. 가장 더러운 승리가 가장 깨끗한 패배보다 훨씬 나은 법이지.”
“아흐악, 아학!”
수일이나 흠씬 두들겨 맞은 던컨은 살갗이 성한 부분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어디가 부러지거나 못 움직일 정도로 다치는 일은 없었다. 카딤이 타격 부위와 힘을 절묘하게 조절한 덕이었다.
교관이 좋아서인지, 단순히 맞는 게 싫어서인지, 던컨의 솜씨는 생각보다 빠르게 늘어가고 있었다. 이젠 백 번 공격당하면 두세 번 정도는 회피할 정도로 반사 신경이 좋아졌다. 이어지는 반격이 카딤의 터럭조차 스치지 못하는 건 변함없었지만.
던컨의 자질에 대한 카딤의 평가는 달라졌다.
‘덜 형편없군.’
재능은 일천하지만 나름대로 근성은 있었다. 이대로라면 지난번에 포착한 ‘가능성’을 키워보는 것도 한번 고려할 만했다.
“헤엑, 헤엑, 아악, 아흑, 끅…….”
“수고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한데 마을로 돌아가려는 찰나, 던컨의 어깨 너머로 누군가 보였다.
카딤은 시야를 집중했다. 노을을 받아 붉은 기가 도는 흑갈색 머리칼, 당당하게 치켜뜬 눈매와 노랗게 빛나는 눈동자, 헐렁한 튜닉에 달라붙는 가죽 바지 차림이 눈에 들어왔다.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구면이었다.
천천히 다가와 목전에 이른 여자가 말했다.
“반갑습니다, 일레니아예요. 갈렌타나 대학의 학사지만 동시에 고고학자이기도 하죠. 그쪽이 뛰어난 전사인 동시에 아탈라인인 것처럼 말이에요.”
“…….”
“역사적인 만남에는 항상 필연과 우연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있죠. 제 생각에는 저희들의 만남 역시 그런 것 같네요. 용맹한 아탈라의 전사와 유적을 찾는 고고학자! 이 얼마나 무궁한 가능성을 품은 조우인지…….”
카딤과 던컨은 할 말을 잃고 여자를 빤히 바라봤다.
여자가 너무 당당하게 말을 꺼냈기에 마치 이쪽에서 먼저 소개를 요청했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카딤은 기시감을 느꼈다. 그는 이런 식으로 다짜고짜 말꼬를 트는 자를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다.
‘……그 히드라가 있는 숲에서 만났던 문둥병자.’
정신이 온전치 못한 자였다.
굳이 귀납적인 추론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여자 역시 정신이 똑바로 박혀 있지 않다는 걸. 그리고 이런 인간을 상대하다간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십상이라는 걸.
카딤은 급히 떠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여자는 퍼뜩 당황했다. 나름대로 분위기를 잡고 접근했는데 저런 반응일 줄은 몰랐다는 눈치. 분위기 따윈 집어치우고 황급히 뒤꽁무니에 따라붙었다.
“자, 잠깐만요! 어디 가는 거예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어주셔야죠! 전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거란 말이에요!”
“…….”
“그 망할 자경단원들! 용병님께서 처치해 주셨잖아요! 그놈들이 음흉한 수작을 꾸미고 있는 건 진작 알고 있었어요! 뒷소문도 안 좋고,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고, 그래서 제가 조용한 데서 혼쭐내려고 일부러 꼬드긴 거였거든요! 그런데 용병님 덕분에 수고를 덜어 가지고…….”
“…….”
“저기요!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요! 5분, 아니, 3분도 좋아요! 아니, 무슨 사람 걸음이 이렇게 빨라…….”
아무리 소리쳐 봤자 카딤은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의 걸음은 어지간한 사람이 달리는 수준이었던지라 두 사람의 간격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결국 여자는 최후의 수단이랍시고 이렇게 바락 외쳤다.
“지금 바로 돌아오면 1000 루덴! 제 말 들어주면 1분에 100 루덴! 질문에 대답까지 해주면 하나당 500 루덴!”
멀끔한 여관의 하루 숙박비가 100 루덴 정도임을 감안하면 확실히 그 제안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여자는 카딤이 당장 뒤돌아 쪼르르 달려올 거라 생각했는지 자신 있게 멈춰서서 허리에 손을 짚었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야만인의 수중엔 50만 루덴이 넘는 돈이 있다는 것.
“어, 어어?”
카딤의 금전 감각은 이제 현시대에 완벽히 적응했다. 몇백, 몇천 남짓한 돈은 우습게만 보일 따름. 여자의 말을 들은 채도 않고 계속 걸어 나갔다.
오히려 여자가 원하던 반응은 다른 쪽에서 튀어나왔다.
“……저기, 아가씨. 나는 그 절반만 줘도 얘기 들어줄 수 있는데……. 헤헤…….”
“…….”
시퍼렇게 멍든 얼굴로 해맑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던컨. 여자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멀거니 염소수염을 단 행상인을 바라보았다.
*
테이블 위로 시키지도 않은 맥주와 가지를 곁들인 닭고기 조림이 튀어나왔다. 카딤은 여관주인을 빤히 바라봤다. 여관주인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홀의 구석을 턱짓했다.
“돈은 낼 필요 없습니다. 저쪽 숙녀 분이 산다는군요.”
슬쩍 눈을 돌려보니 예의 그 여자, 일레니아가 살랑살랑 손을 흔들고 있었다. 카딤은 대번에 미간을 팍 구겼다. 제기랄, 어쩐지 계속 주변을 얼쩡댄다 싶었더니.
카딤은 접시와 잔을 밀어놓고 몸을 일으켰다. 일레니아가 따라 일어나 허둥지둥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말을 하건 말건 무시하고 객실로 떠나려는 참이었다.
뜻밖에도 그녀가 꺼낸 말이 카딤의 발목을 옭아맸다.
“저기요! 혹시 ‘황야의 무녀들’에 대해 아세요?”
“…….”
“그래요, 명색이 아탈라인이신데 모르시진 않겠죠. 모래바람 속에서 운명을 엿보고, 피로 문신을 새긴 전사들을 축성하며, 영험한 주술로 이적을 부리던 아탈라의 사제들! 어느 순간 먼지처럼 홀연히 세상에서 자취를 감춰 버린…….”
카딤은 잠시 고민하다가 도로 자리에 앉았다. 일레니아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며 동석했다.
“……황야의 무녀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예, 아시잖아요? 용병님 같은 아탈라의 전사는 어렵잖게 볼 수 있어도 무녀는 코빼기도 안 보인다는 걸.”
“무슨 소리지. 이쪽은 몰라도 산맥 너머에는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아, 그럴 리는 없어요. 제가 직접 가봤거든요.”
“……뭐?”
“황야에 가봤다고요. 근 몇 년을 헤매고 다녔는데 무녀는 단 한 명도 못 봤어요. 뭐, 외지인의 눈에 띄지 않게 꽁꽁 숨었다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카딤의 미간 주름이 한층 더 깊어졌다.
물 한 방울 찾기 힘든 척박한 곳인 건 차치하고서라도, 황야는 마경과 인접해 있는 매우 위험한 땅. 괜히 아탈라인들이 타고난 전사가 된 것이 아니었다. 그런 곳을 여자의 몸으로 몇 년이나 무탈하게 떠돌았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일레니아는 묘한 미소를 짓고는 말을 돌렸다.
“뭐, 어쨌든 제가 고고학도로서 탐구하고 있는 주제가 바로 ‘황야의 무녀’에 관한 것이거든요. 그중에서도 수백 년 전에 사라진 마지막 황야의 무녀들, 그리고 그녀들이 대륙 곳곳에 남긴 미지의 유적들!”
“…….”
“그 유적의 입구 중 하나를 근처에서 찾아서 일부러 여기로 찾아온 거예요. 유적에 들어가는 방법은 아직 못 알아냈지만, 만일 들어갈 수만 있다면 무녀들이 사라진 이유를 밝힐 수 있을지도 모르죠. 어때요, 이제 좀 흥미가 동하시나요?”
일레니아는 싱그럽게 웃음기를 머금고 노랗게 빛나는 눈동자를 반짝였다. 반면 그녀를 대하는 카딤은 자리만 뜨지 않을 뿐 여전히 별 흥미가 없어 보였다.
허나 만일 카딤과 오랫동안 함께한 자가 여기 있었더라면 분명 알 수 있을 터였다. 그가 가깝지만 아득해진 세월을 가로질러, 변변찮은 작별인사조차 없이 헤어졌던 어느 눈먼 무녀를 회상하고 있다는 걸.
침묵이 길어졌다. 일레니아는 야만인의 텅 빈 눈동자를 힐끔대다가 슬며시 상체를 앞으로 내밀었다.
“용병님이 뛰어난 실력을 가진 전사인 건 이미 알고 있어요. 그 자경단, 용병님이 전부 혼자서 처치하신 거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모를지 몰라도 저는 이미 다 눈치챘어요.”
“……그래서, 내게 바라는 게 뭐지?”
“유적 입구까지의 호위. 그리고 만일 유적에 들어갈 수 있다면 유적 내부에서의 호위까지.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죠.”
“…….”
“아, 물론 보수는 섭섭지 않게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요! 이건 일단 착수금.”
일레니아는 절그렁대는 돈주머니를 턱 하니 올려놓았다. 도둑들의 표적이 되면 어쩌려는 건지, 아니, 그가 이 돈을 받고 그냥 달아나면 어쩌려는 건지, 처음 봤을 때부터 여러모로 부주의한 여자였다.
카딤은 돈주머니를 챙겼다. 어차피 참사관은 아직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돈이 모자란 건 아니지만 하루쯤 시간을 쏟을 만한 소일거리로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이 여자가 어떻게 황야에서 살아남았고, 자경단을 죽인 건 어떻게 눈치챘는지 알아볼 필요도 있어 보였고.
카딤은 일레니아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보석을 닮은 눈동자는 아무것도 켕길 게 없다는 듯 말갛게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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