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57)
57화. 혀와 이빨, 그리고 턱 (5)
삐그덕, 바람결이 오가는 창문을 넘어 아늑한 햇살이 쏟아지는 어느 민가.
새로 끓인 브로콜리 감자 스튜와 바삭한 귀리빵, 구운 소금을 곁들인 삶은 달걀에다 야생딸기술까지. 식탁 위에는 보기 드문 정찬이 차려져 있었다. 방금 식사를 마친 사람도 다시 입맛이 돌만큼 온 집안에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감돌았다.
하지만 던컨은 밤새 쫄쫄 굶주렸음에도 쉬이 음식을 들지 못했다. 그저 불안한 시선을 바닥에 떨구고 손을 달달 떨고만 있을 뿐.
카딤은 스튜에 적신 귀리빵을 물어뜯고 덤덤하게 눈을 흘겼다.
“먹어라, 던컨. 음식이 식는다.”
“…….”
“왜, 그 죽은 마법사 때문에 그러는가?”
던컨은 눈을 질끈 감았다.
불타 죽은 마법사의 얼굴이, 지울 수 없는 잔상처럼 아직도 눈앞에 선하게 남아 있었다.
야만인을 따라다니며 숱하게 본 참상이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그 죽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손으로 빚어낸 것이니. 손바닥은 아직도 단검이 뱃가죽을 뚫고 찔러 들어가는 순간의 촉감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애초에 날이 밝고 안개가 걷혔다고 숲으로 쫄래쫄래 들어간 게 실수였다. 차라리 쥐 죽은 듯이 숨어서 야만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릴 걸……. 굳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는데……. 어차피 저 야만인이 다 알아서 해결했을 텐데……. 그랬다면, 살인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무한한 자책에 빠진 던컨에게 카딤은 지나가듯 말했다.
“그 마법사는 네가 죽인 게 아니다.”
“……!”
던컨은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카딤은 껍질을 벗겨 삶은 달걀 하나를 통째로 씹어먹고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의 사인은 내 도끼에 머리가 쪼개진 것이다. 허리춤에 불타는 단검이 박힌 게 아니라. 그러니 지나치게 자책하진 말거라.”
“하, 하지만, 어차피 그 상태로 내버려 둬도 죽지 않았겠습니까? 치명상을 입힌 건 저니까, 사실상 제가 죽인 거나 다름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그 또한 틀렸다곤 할 수 없는 말이지.”
희미하게 밝아졌던 던컨의 얼굴이 도로 엉망진창 일그러졌다. 그렇지만 카딤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허나, 투쟁하지 않는 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법이다.”
“…….”
“날갯짓하지 않는 새는 땅에 고꾸라진다. 헤엄치지 않는 물고기는 물살에 떠밀려 사라진다. 해충을 잡지 않는 농부가 궁핍한 결실을 거두거나, 사냥감에게 자비를 베푼 사냥꾼이 굶주린 자식들의 아우성에 시달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어떤 빌어먹을 신은 자신과 싸워 상처를 내야만 그 추종자를 천국으로 들여보내 주기까지 하지.”
“…….”
“그러므로 척박한 황야의 계율 아래, 정당한 몫을 쟁취하기 위한 모든 살아 숨 쉬는 자들의 분투는 신성한 것이다. 그것이 불가피한 투쟁이었다면 네 행동에 가책을 느끼지 말거라. 설령 그 과정에 적의 피를 보았다 하더라도.”
“……그, 그렇지만, 나으리, 그 마법사를 죽임으로써 제가 얻은 건 무엇입니까? 부, 불필요한 투쟁으로, 쓸데없는 피만 흘린 건 아닙니까?”
“아니다. 그 덕에 네가 귀하게 여길 만한, 아주 큰 걸 얻었지.”
카딤은 여인이 남편을 돌보고 있는 구석의 방을 턱짓했다.
“너는 이 식탁을 차린 여인과 그 남편의 목숨을 살렸다.”
흐릿하게 바랬던 행상인의 눈동자에 말간 이채가 스쳤다.
“네가 나타나지 않았어도 나는 필시 마법사에게 도끼를 던졌을 거다. 그러면 마법사가 죽기 전에 마법을 휘두르고 여인이나 남편의 목숨을 앗아갔을 테지. 너는 버러지 같은 인간 하나를 죽임으로써 무고한 두 사람의 삶을 구해낸 것이다.”
“……제, 제가 그랬단 말입니까? 정말 제가 나서서 그리되었단 말입니까?”
“그래, 네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였으니 그 단검 한 자루는 앞으로도 계속 네게 맡기도록 하지. 오늘만큼은 순수하게 네가 해낸 일을 자랑스러워해도 좋다, 던컨.”
던컨의 눈빛은 이제 물비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치하에 인색한 야만인이 이만큼이나 자신을 인정하고 포상을 내리는 건 처음 있는 일. 끔찍한 고생으로 얼룩진 지난날이 총천연색으로 물드는 기분이었다. 그 기쁨은 가히 아내와 결혼하여 처음으로 아들을 얻었을 때와 비견할 만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양심을 옭아맨 멍에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모르겠습니다, 나으리. 엄청나게 기쁜데,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저, 저는, 아무래도 나으리처럼은 될 수 없는 모양입니다. 한 사람을 찌른 것만 해도 이리 마음의 짐이 무거운데…… 나으리는, 나으리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짐을 짊어지고도 괜찮으실 수 있는 겁니까?”
먹먹하게 내깔리는 정적.
카딤은 햇살 사이로 흩어지는 먼지들을 공연히 응시했다. 그러다 모기를 쥐고 슬쩍 칼날에 엄지를 얹어보았다. 한결 둔하게 살갗으로 파고드는 감각. 다음 사냥감을 잡기 전에 갈아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칼은 쓰다 보면 무뎌진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쓰다 보면, 무뎌진다. 숱한 생명들을 찌르고 베다 보면, 어느 순간 적을 어떻게 죽일지와 빵을 어떻게 자를지가 비슷한 무게를 지니는 때가 오기 마련이지.”
“…….”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이 무뎌질 때 되돌릴 수 없는 흠집이 남는다. 혹은 무뎌지기 전에 아예 무너져버리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탈라의 대전 ̶̛̛̖̣̟͙͕̠͖̌̌̃̃͐̓̽̄̓͌̕̕ͅ ̷̜̯̼̬̙̦̘̳̇̃̔̓̎ ̶̢̲̣̭̭̍̀̒̕͝ ̷̡̹͉͈̌̌̑̐̉̀̾̑̏̍̊̅̈ ̶̨̭̃̈́
̵̨͇͕̝̣̂̿̽̄͐̕̚ ̷̢̭͇̭͎̑͒͒̑͝ͅͅ ̷̡̮̗̠̖̰̫̱̣̜͑ͅ ̶̣̞̽̍͌̓̑͒̽͗̔̕͝͠͝……̴̧̹̠͍̟̃̓͊̆̾͑́̒͊̕ͅ……내가 한 일이 아니니까.
이 모든 살육은 잔혹한 야만전사, 카딤이 저지른 짓이니까.
“…….”
“……저, 나으리?”
카딤은 튀어나오려던 말을 겨우 목구멍으로 도로 집어삼켰다. 심장이 거세게 쿵쿵 뛰었다. 서늘한 기운이 등골을 따라 미끄러지고 흰자위에 붉은 핏발이 불거졌다.
잊고 있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방어기제.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도 여운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중지와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래, 빌어먹을, 어제 피를 좀 많이 마시긴 했지.
“나, 나으리? 왜 그러십니까?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거라.”
“…….”
“잠시 바람을 좀 쐬고 와야겠군. 슬슬 음식이라도 들면서 기다리고 있거라.”
야만인의 신영이 순식간에 문밖으로 튀어 나갔다. 끼익, 끼익, 흔들리는 나무문의 진폭이 점점 좁아지며 그 틈새로 보이던 커다란 등짝 또한 작아져 갔다. 문이 완전히 닫혀 야만인의 뒷모습이 사라지고도 던컨의 시선은 당분간 그쪽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는 그렇게 집 나간 주인을 기다리는 개처럼 오래도록 닫힌 문만을 바라보다가, 도통 야만인이 돌아오지 않자 주섬주섬 귀리빵과 삶은 달걀을 주워 먹기 시작했다.
*
마탑의 최상층, 흐드러진 광채와 내깔린 구름 사이.
오늘은 하얀 두건을 뒤집어쓴 이 탑의 주인만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마탑주는 조심스레 반투명한 수정구에 손을 얹었다. 앉은 자리에서 온 세상을 살필 수 있는 강력한 마도구, ‘칼리스토의 눈’이 영롱한 빛을 발했다.
우우우웅 –
이번에 그가 살펴보기로 정한 곳은 악마가 창궐한 황금 가도 일대.
단순히 파견 보낸 지원군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이전엔 악마의 창궐을 다른 도시가 알아서 해결할 거라 생각했다만, 무언가 예감이 좋지 않았다. 마탑까지 해를 끼칠 만한 강대한 위협이 없는지 한번 직접 둘러봐서 손해 볼 건 없을 터였다.
렘타나 인근의 지하 요새를 내다볼 때처럼 상이 흐릿하진 않았다. 황금 가도는 베스타나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바로 눈앞에서 내다보는 것처럼 선명한 표상이 재생되었다.
방어선을 구축하고 옹송그린 참사군, 악마의 시체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는 지원군, 그리고…… 마기를 퍼뜨리고 살육을 일삼는 하급 악마와 중급 악마들.
“…….”
대략적인 시찰을 마친 마탑주는 피식 실소를 흘렸다.
괜한 걱정이었다. 수는 제법 많다 하나 저 정도의 악마들은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아마 갈렌타나에서 참사군을 열심히 내보내다 보면 절로 진압되겠지. 오히려 마석 제조에 필요한 악마의 부속물을 대량 확보할 수 있으니 마탑의 입장에선 호재에 가까운 일이었다.
제15관문을 넘어 14관문, 13관문, 12관문…… 아무리 둘러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참사회 의장이 호들갑을 떤 게 맞았다. 아예 악마의 시체를 회수할 인원만 남기고 파견 보낸 지원군마저 복귀시킬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 생각은 6관문과 7관문 사이의 어느 숲에 이르러 뒤바뀌고 말았다.
“……!”
처참하게 난자당하고 불탄 마물과 병사들, 그리고 그 사이에 뒤섞인 마법사들의 시체.
파견 보낸 지원군 중 하나였다.
저들은 악마나 마물에게 당한 게 아니었다. 시체들이 대부분 훼손되어 알아보는 게 쉽진 않았지만, 그나마 온전한 시체에서는 어김없이 날붙이가 낸 치명상을 볼 수 있었다.
불현듯 유미르 데밀의 죽음이 떠올랐다.
괴물의 군대를 동원하고 오우거의 육신까지 차지한 그는, 그러고도 누군가에게 속수무책으로 찢겨 죽었다. 상이 흐릿하여 장면을 분명히 보진 못했지만 그 꺼림칙한 흔적만큼은 선명히 뇌리에 남았다. 악마의 짓이라기엔 지나치게 깔끔하지만, 인간의 짓이라기엔 지나치게 잔혹한.
저 시체들에서도 그와 비슷한 흔적이 보였다.
“…….”
만일 정말 범인이 같다면 가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만날 때마다 죽이는 것으로 보아, 이 정체불명의 괴한은 마법사에게 큰 적의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마탑주는 수정구를 다급히 쓸었다. 재빨리 괴한의 행방을 파악하고 그곳으로 추적대를 보내려는데……
그의 손길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곤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스멀스멀 섬찟하게 등골을 타고 오르는 기운. 갑자기 저 괴한보다 더욱 꺼림칙한 위협이 느껴졌다. 수정구를 천천히 쓸던 손길이 점차 빨라졌다. 7관문을 넘어 8관문, 9관문 근처에 이르러 기운의 진원지를 추적하던 중…….
표상에 난입하여 그를 노려보는 푸른 문양.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시곗바늘 소리.
찰칵, 찰칵…….
빠직 –
‘칼리스토의 눈’에 한 줄기 금이 갔다.
마탑주는 꿈에서 깨어나듯 내면의 표상으로부터 튕겨져 나왔다.
“……이런, 제기랄.”
두건 밑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었다. 마른 손가락이 갈라진 수정구를 초조하게 두들겼다. 긴 고뇌에 빠져있던 마탑주는 결국 직속 참모실에 연결된 수정구에 대고 읊조렸다.
“당장 장로회를 소집해라. 마탑을 벗어난 장로들에게도 따로 연락하고, 컨저러 등위 이상의 배틀메이지도 전부 등잔의 홀로 불러 모아라.”
마탑주는 잠시 뜸 들이다 단호하게 말을 끝맺었다.
“황금 가도에, ‘고위 악마’가 나타났다.”
*
카딤과 던컨은 키본을 벗어나 여정을 계속했다.
“감사합니다, 용병님들.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악마로부터 남편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건 약소하지만, 앞으로의 여비에 보태쓰시라고…….”
떠나기 전, 여인이 작은 돈 주머니를 건네며 감사를 표했다. 카딤은 사양했다. 남편을 되찾은 건 오롯이 여인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보수를 받을 순 없었다.
또한 여인의 싸움은 아직 끝난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은 한쪽 팔을 잃은 데다가 악마에게 미혹당한 후유증도 남았으니,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 터.
그럼에도 되찾은 것을 지키며 끝까지 삶에 맞서 투쟁할지, 아니면 모든 걸 포기하고 달아나거나 좌절에 잠길지.
여전히 선택은 남겨진 여인의 몫이었다.
다시 돌아온 황금 가도. 카딤은 7관문과 8관문을 넘어서는 동안 별다른 수확을 거두지 못했다. 이쪽은 참사군이 부지런히 악마를 토벌했는지 하급 악마는커녕 살아 있는 마물조차도 찾기 쉽지 않았다. 길바닥에 찍힌 핏자국이나 잔해는 많이 보였지만.
“아마도 9관문이 바로 갈렌타나로 향하는 길목이어서 그럴 겁니다요, 나으리. 이쪽이 점령당하면 앞마당을 내주는 격이니 참사회에서도 기를 쓰고 악마를 토벌했습겠죠.”
던컨이 어딘지 모르게 안도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카딤은 실망으로 안색을 딱딱히 굳혔다.
상급 악마의 피를 한 통 얻긴 했다만 이는 매료종의 피인지라 효과가 무척 제한적이었다. 새로운 유적을 찾기 전에 최대한 많이 피를 모으고 그중 가장 유용한 피를 골라놔야 했다.
그나마 중간에 원종 악마를 하나 찾아낼 수 있었다. 다리 근육이 기형적으로 부풀었고 관자놀이에 뿔이 하나 달린 녀석.
쩌거거거걱 – !
– 캬아아아악! 캬아아아아아악!! 내, 내 다리가…….
콰 – 직!
속도는 빨라도 동세가 단순해서 처치가 어렵진 않았다. 힘을 역으로 이용해 다리를 자르고 숨통을 끊었다. 동맥을 찌르고 피를 받으며 카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마법사들이 악마의 시체를 모으고 있던 걸까? 고작 피만 받는다고 했는데도 과민 반응한 걸로 보아선 절대 소각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즉, 어딘가에 쓸 곳이 있다는 건데…….
달그락.
카딤은 그 이유를 금방 알아차렸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 마법사들을 만났을 때도 잔뜩 뒤섞이고 희석된 마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카딤의 주머니에는 그 기운의 근원이라는, 마법사의 심장에서 꺼낸 돌의 부스러기가 들어있었다.
‘이 ‘마석’의 재료로 악마의 부속물이 들어가나 보군. 그렇다면 모든 게 설명되지. 엘가의 사냥개들이 알면 아주 경을 치겠군.’
추측이 사실이라면 썩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마법사들이 먼저 쓸 만한 악마를 토벌하고 시체를 치울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하다 하다 이젠 악마의 시체를 두고 경쟁까지 해야 한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푹, 화르르르륵 – !
피를 다 받자, 시키지 않았는데도 던컨이 알아서 악마의 시체를 소각했다. 카딤은 잘했다는 의미로 살짝 고개를 까딱여 주었다. 그래도 뒤처리를 게을리하고 갈 순 없었다. 아직 주변에 마물이 남아 있을 수 있고, 죽은 악마의 살점을 먹으면 멀쩡한 괴물도 흉포한 마물로 변할 테니까.
그 생각은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느닷없이 찌르르, 날카로운 송곳처럼 뒷덜미를 찌르는 감각.
“……!”
통각이 공감각으로 전이된 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에 시야가 깜깜하게 물드는 것 같았다.
카딤의 두 눈이 암전을 딛고 시퍼렇게 뜨였다. 근육이 반사적으로 치를 떨듯이 경련했다. 허나 입가에는 전율에 겨운 미소가 내걸렸다.
“그 시체는 그대로 내버려 두거라, 던컨. 지금 바로 떠난다.”
“예, 예?”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내달리는 카딤. 던컨은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걸음을 서둘렀다. 한참 걸려 뒤꽁무니를 따라잡고 나서야 겨우 물어볼 기회가 생겼다.
“허억, 허억, 무, 무슨 일입니까, 나으리? 갑자기 왜 이리 서두르시는 겁니까?”
카딤은 여전히 사납게 미소를 지은 채 다음 관문의 너머를 가리켰다.
“저쪽에, 굉장히 질 좋은 피 주머니가 나타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