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59)
59화. 황야의 아들들 (2)
토벌대는 15명의 보병과 10명의 석궁병, 그리고 12명의 아탈라인 전사들과 1명의 아탈라인 용병으로 구성되었다.
“너는 이 진지에 남아 있거라, 던컨.”
“옙.”
……얼마나 많은 악마가 도사릴지 모르는 곳이니만큼, 행상인은 일행에서 제외되었다.
보병들의 역할은 실질적인 전투보단 전투 보조에 가까웠다. 그들은 짐꾼처럼 여분의 병장기와 식료품 따위를 짊어지고 대열의 후미에 섰다. 중앙의 석궁병들 또한 거드는 역할일 뿐 핵심 전력은 아니었다. 챙겨 온 화살의 양은 오랜 교전을 벌이기엔 턱없이 부족한 정도였다.
어디까지나 토벌대의 핵심 전력은 선두에 선 12명, 갈렌타나 참사회에 직속된 아탈라인 전사들.
몇몇 병사들은 실물을 보기 전까진 의문을 품기도 했다. 강대한 악마들을 고작 어떻게 십여 명 남짓한 머릿수로 상대하냐고. 그러나 그 의문은 전사들을 가까이서 직접 목도하자 사그라들었다.
성난 근육들과 날카로운 인상, 살기에 가까운 기묘한 위압감. 거기다 전리품처럼 가져온 수많은 악마의 수급까지. 이들은 평범한 용병들과는 달라도 무언가 한참은 달랐다. 어쩌면 ‘악마 학살자’란, 한 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저 무리의 업적이 와전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하늘 위에도 또 다른 하늘이 있다고 하던가.
매서운 전사들의 위압감도, 뒤늦게 합류한 저 아탈라인 용병에 비하면 우스운 수준이었다.
출병한 이래 병사들의 눈길은 최선두에 선 거구의 용병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심지어 다른 아탈라인 전사들의 시선까지도.
“힘이 굉장하더군, 형제여! 툰달 님은 우리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사인데! 그분이 그렇게 휘청거리는 건 정말 처음 보았네!”
“게다가 칼 다루는 솜씨도 귀신 같더군! 저 머나먼 곳에서, 전쟁과 연회가 끊이지 않는 곳의 주인께서도 탄복하셨을 게 틀림없어!”
“형제여, 이곳에는 어떻게 이르게 되었는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악마를 죽였지? 토벌을 마친 다음엔 어디로 갈 생각인가?”
“…….”
천막에서의 일 이후, 전사들은 카딤에게 무한한 관심을 표하며 접근했다. 반면 카딤은 무시로 일관했다. 말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사색에 잠겼다.
유적에서 만난 흙으로 빚은 전사들을 제외한다면, 2회차에서 아탈라인을 만나는 건 처음 있는 일. 그러나 큰 감흥은 없었다. 그는 본디 현대인이었던 만큼 이 전투민족에 대한 동족 의식이 희박하였으니.
게다가 카딤은 이미 게임과 1회차에서 적지 않은 아탈라인들을 만나보았다. 그 경험에 따르면, 이들은 가까이해서 하등 좋을 게 없는 부류였다.
황야를 벗어난 아탈라인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혼자 다니는 자, 그리고 뭉쳐 다니는 자들.
‘혼자 다니는 자’는 카딤과 얼추 비슷한 자들이었다.
자신만의 법칙을 세우고 고독하게 떠돌며 투쟁하는 전사들. 대륙 전반에 야만인을 배척하는 풍토가 강해 이런 자들의 말로는 대개 좋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 우직하고 신의 있는 자들인지라 만나서 도움을 받으면 받았지 해를 입는 일은 거의 없었다.
‘뭉쳐 다니는 자들’은 전혀 달랐다.
황야의 계율 아래 똘똘 뭉쳐 피와 투쟁을 찾아다니는 무리들. 호전성과 전투력이 여타 용병들보다 월등하다 보니 분쟁을 앞둔 왕과 영주들로부턴 매우 선호받는 집단이었다. 다만 원체 멋대로 굴고 싸움에 미쳐 있어 가까이 엮이면 십중팔구 피곤하거나 귀찮은 일이 벌어졌다.
때문에 카딤은 절대 ‘뭉쳐 다니는 자들’의 앞에서 함부로 힘을 보이거나 ‘아탈라의 대전사’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분명 원치도 않는 충성을 바친다고 요란을 떨거나, 싸워 보고 싶다고 성가시게 굴 터이니.
하지만 지금은 이미 늦은 듯싶었다.
“형제여, 혹시 기회가 된다면 나와도 한번 겨뤄줄 수 있소?”
“아니, 내게 먼저 한 수 가르침을 주시오! 그대가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분투하겠소!”
“…….”
카딤은 흘끗 전사들의 눈을 바라봤다. 한 꺼풀 호의의 너머에서 호승심이 세차게 번들거렸다. 그사이 300년이 흘렀으니 뭔가 좀 달라졌길 바랐건만, 강자와 겨루고 싶어 하는 아탈라인들의 본질만큼은 변함이 없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귀찮게 힘을 뺄 필요는 없었다. 카딤에게 창을 휘둘렀던 사내가 나아와 다른 전사들에게 명했다.
“모두들 자리로 돌아가라! 이 형제는 이미 내 창을 받아내 전사로서의 증명을 마쳤다. 지금은 우리끼리 힘을 겨루는 게 아니라 악마의 토벌에 집중해야 할 때다. 앞으로 내분을 일으키는 자가 있으면 황야의 계율에 따라 엄하게 다스리겠다!”
기백이 실린 우렁우렁한 목소리. 전사들은 일체의 불만도 내비치지 않고 즉각 복종했다. 그나마 군기는 바짝 잡힌 무리라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카딤은 홀로 옆에 남은 사내를 흘겼다. 그는 슬며시 미소 지으며 얼굴에 난 긴 흉터를 일그러뜨렸다.
“소개가 늦었군. 나는 이 토벌대의 대장을 맡은 툰달이라 하네. 아까 보자마자 창을 휘두른 것에 대해선 사과하지. 그렇지만 자네도 아탈라인이니, 그 시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충분히 알 거라 믿네.”
“…….”
카딤은 도끼를 휘두르며 ‘모르는데, 새끼야’라고 답하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묻지 못했군. 자네는 이름이 어떻게 되지?”
“……카딤.”
“그래, 카딤! 토벌대에 합류한 걸 다시 한번 환영하네. 자네도 이제 우리와 한배를 탔으니 작전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필요가 있겠지.”
툰달은 그러고는 토벌 작전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첫 번째 공략 지점은 가장 가까운 마을인 ‘보르덴’이다. 작전이 소수 정예로 이루어지는 만큼 물량이 많은 마물과의 교전은 최대한 피한다. 대신 그 근원이 되는 악마의 처치에 집중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다른 악마를 결집한 걸로 추정되는 ‘중심 악마’를 찾아 토벌하는 것…….
대강 짐작하던 내용이었지만 카딤은 묵묵히 경청했다. 하지만 마지막 당부를 들을 때는 실소를 터뜨릴 뻔했다.
“자네가 범상치 않은 실력을 지녔단 건 잘 알겠네. 그렇지만 이번 토벌은 상상 이상으로 매우 위험할 걸세. 자네가 평생 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마물, 그리고 감히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악마를 상대하게 될지도 모르지.”
“…….”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멋대로 행동하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 지금만큼은 우리의 일원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협력해 주게나. 일신의 힘은 자네가 더 뛰어날지 몰라도, 전사들을 이끌거나 악마를 상대해 본 경험은 아마 내가 더 많을 걸세.”
“…….”
“부디 이번 토벌 동안은 내 명령을 따르겠다고, 아탈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겠나?”
엄숙하게 눈빛을 번뜩이며 대답을 기다리는 툰달.
지금까지 수천 마리가 넘는 악마를 쳐죽였고, 지평선을 새까맣게 뒤덮은 대악마의 군세와 밤낮없이 맞선 끝에, 결국 대악마의 목을 손수 도끼날로 내려쳤던 아탈라의 대전사는, 그에 비하면 어린아이 칼싸움만도 못한 경험을 자랑하는 전사를 능멸하지 않았다.
그저 간신히 실소를 억누르고 이렇게 말했을 뿐.
“올바른 명령이라면, 그리하도록 하지.”
*
토벌대는 출병한 지 한 시진도 되지 않아 악마와 마주했다.
– 키르르륵, 키르르르륵…….
– 크르르르, 컹컹, 컹컹컹!!
“아, 악마! 저기에 악마와 마물들이 있습니다!”
뿔이 없는 악마 두 마리, 그리고 붉은 안광을 빛내는 칼날늑대들. 참사군 병사들은 허둥거렸지만 아탈라인들은 달랐다. 대장의 지시하에 그들은 능숙하게 교전 태세를 갖췄다.
“황야의 아들들이여, 무기를 들어라! 투창수들이 전열에 서고 다른 전사들은 그 뒤에 대기하라! 먼저 창을 던진 후에 접근하여 남은 적들을 섬멸하도록 한다!”
쐐 – 액! 쐐 – 액!
날카로운 단창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창끝이 늑대의 뱃가죽과 창자를 꿰어 버리고, 두개골을 깨뜨리고 뇌막을 찢어발겼다. 피 흘리는 육신들이 허물어지고 그 시체들을 넘어 나머지 늑대와 악마가 달려들었다.
– 키르륵, 키르르륵!
– 컹컹컹컹!!!
동시에 카딤도 땅을 박찼다. 그는 악마의 냄새를 맡고 일찌감치 싸울 준비를 마쳐놓은 참이었다. 다른 전사들도 이에 질 새라 매섭게 뒤를 쫓아 달려들었다.
“아탈라를 위하여!!”
“아탈라아아아아!!”
콰직, 쩌 – 걱!
– 캐개갱, 캐갱!
– 크르르륵, 크르르륵!
빛나는 예리한 이빨과 쇠붙이, 피와 비명이 흩날리는 충돌.
전투는 길지 않았다. 칼날늑대들은 아탈라인 전사들의 선에서 모두 정리되었고, 두 마리 악마는 각기 연어와 모기에 목을 따여 숨을 거두었다.
전사들은 홀로 악마를 두 마리나 처치한 카딤에게 쿵쿵, 가슴을 두들겨 경의를 표했다. 그러곤 무기를 높이 쳐들고 아탈라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용맹하게 악마들의 숨통을 끊은 형제에게 영광을!
“우리에게 피땀 흘릴 전장을 마련해 주신 아탈라께 영광을!”
“…….”
카딤은 악마의 피를 받으며 그 꼬락서니를 구경했다.
하는 짓이야 미친 야만인들이 따로 없다만 실력은 제법 나쁘지 않은 무리였다. 각각 전투원들의 무위도 괜찮았고 연계나 호흡 또한 자연스러웠다. 악마 앞에서 맥을 못 추는 참사군 병사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
다만 무언가 이상하단 느낌이 있었다.
무기를 휘두르는 동세는 묘하게 큰 반면, 운신의 폭이나 진을 펼치는 범위는 묘하게 좁았다. 탁 트인 평야에서의 전투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방식. 카딤은 지그시 눈매를 좁히고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에 잠겼다.
툰달의 공치사가 생각을 끊었다.
“훌륭한 솜씨였네! 허, 설마 혼자서 두 악마를 다 처치할 줄이야……. 이거, 내 예상보다도 훨씬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게 아닌가 모르겠군. 저 악마들의 목 값은 온전히 자네의 몫으로 달아두겠네.”
“…….”
“그런데 그 칼과 도끼는 어디서 난 건가? 척 보니 예사 무기는 아닌 것 같다만…….”
카딤은 잡념을 털어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혼탁하게 뒤얽힌 다른 기운들 사이에서, 여전히 송곳처럼 날카롭게 살갗을 찌르는 한 줄기 마기. 필시 이 마기의 주인이 다른 악마를 끌어모은 ‘중심 악마’일 터. 마탑의 마법사들나 다른 무리가 이 악마의 시체를 차지하기 전에 서둘러야만 했다.
“한담은 나중에 하지. 그보다 다른 잡것들이 꼬이기 전에 서둘러 뒷정리를 마치고 가는 게 좋겠군.”
“음…… 지당한 말일세. 병사들, 악마의 목을 자르고 나머지 시체에 불을 질러라! 다 태우는 대로 지체 없이 떠나도록 한다!”
토벌대는 그 후로도 간간이 소규모의 악마나 마물들과 마주쳤다. 그것들은 카딤과 전사들의 협공 아래 한 마리도 빠짐없이 전부 무참히 살해당했다.
나머지 보병과 석궁병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일반적인 병사들은 한 번의 전투만 겪어도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기 마련이건만, 저들은 피로가 무엇인지를 아예 모르는 듯했다. 오히려 몸이 풀렸는지 싸우면 싸울수록 더욱 흉포한 기세로 날뛰었다.
– 크르르륵, 크르르르!!
“아탈라아아아아아!!”
“더러운 악마와 그 종복들에게 피와 죽음을!!”
“만병의 주인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
쩌 – 걱!
병사들은 손을 놓고 망연히 전사들의 활약을 구경하기만 했다. 봐도 봐도 믿기질 않는 체력과 전투력이었다. 더욱이 그중에서도 아탈라인 용병, 카딤의 무위는 거의 초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다른 전사들의 협공도 뛰어났지만 카딤과는 비교가 되질 않았다. 그 홀로 묵묵히 도륙 낸 악마와 마물의 수가 그를 제외한 모든 자들이 잡은 수와 비등할 정도. 병사들은 내색은 하지 않았다만, 소문의 ‘악마 학살자’란 이자를 일컫는 말이 분명하다고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부정한 피로 대지를 붉게 물들이다 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첫 번째 공략 지점인 ‘보르덴’까지 남은 거리는 고작 한 시진쯤. 경비대장의 예상보다 배는 빠른 속도의 진격이었다.
밤에는 가시거리 확보가 어렵고 악마와 마물도 더 흉포해진다. 그러므로 토벌대는 여기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이 되면 다시 보르덴을 향해 진격하기로 했다.
마물이 들끓는 곳에서 불을 피울 순 없으니 저녁은 건량으로 때워야 했다. 수풀 사이에 숨어 말린 빵과 육포를 침으로 불려 우물우물 씹어먹는 내내, 모든 병사와 전사들이 뚫어져라 카딤만을 바라봤다.
“…….”
“…….”
병사들의 시선은 두려움과 경외로 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전사들은 그 의미가 달랐다. 한결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 호승심. 그러잖아도 한 번쯤 겨뤄보고 싶었던 마음은, 악마를 짐승처럼 살처분하는 카딤의 활약을 보고 더더욱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말았다.
하지만 당장 나서는 자는 없었다. 내분을 일으키지 말란 툰달의 명을 잊지 않았기에. 전장에서 대장의 명은 투신의 계시만큼이나 절대적인 것. 그들은 별수 없이 토벌이 끝난 뒤를 기약하고 누가 먼저 대련을 청할지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페룬, 우리 중엔 자네가 가장 강하니 제일 마지막으로…….”
“무슨 소리인가? 그러니까 내가 가장 먼저 나서야…….”
“공평하게 우리끼리 먼저 겨뤄서 순서를 정하는 게…….”
……정작 티끌만치도 겨뤄 줄 맘이 없는 카딤으로선 어처구니가 없는 노릇이었지만.
식사를 마친 후엔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전사들은 개인정비 시간을 가졌다. 카딤은 기름 먹인 헝겊으로 도끼날을 닦고 숫돌로 무뎌진 칼날을 갈았다. 툰달이 슬그머니 그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형제여, 오늘 자네 혼자서만 다섯 마리의 악마를 무찔렀더군. 참사회에서 하급 악마는 두당 1만 루덴씩 쳐준다 했으니, 벌써 보수가 배가 넘게 늘었구만! 이 기세라면 토벌이 끝날 때쯤 동맹에서도 손에 꼽히는 부자가 되는 게 아닐까 모르겠군, 하하!”
“…….”
카딤은 가는눈을 뜨고 툰달의 눈길을 훑었다. 자신보단 손에 쥔 ‘모기’ 쪽으로 기울어진 방향. 어쩐지 마뜩잖은 저의가 느껴졌다.
“보수 얘기나 하러 온 건 아니지 않나. 할 말이 있다면 바로 했으면 하는데.”
카딤은 숫돌을 내려놓고 자연스레 칼자루를 쥐었다. 툰달은 미소를 지우고 어깨를 긴장시켰다.
“……자네가 쓰는 칼과 도끼, 범상한 것이 아니더군. 나는 다 보았네. 그 칼은 베어낸 적의 피를 취했고, 그 도끼는 주인의 손길을 따라 돌아왔지. 게다가 몸체에 새겨진 그 글자는…… 아무리 봐도 황야의 무녀들과 선조들이 쓰던 ‘고대 문자’인 듯하고.”
밑을 향하던 검두를 슬쩍 위로 치켜올렸다. 검신에 새겨진 붉은 글자가 은은한 빛을 발했다. 언뜻 봐선 칼을 좀 더 관찰하기 좋게 들어 올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 검세의 이면에는 날카로운 위협의 뜻이 담겨 있었다.
구리 가면을 덧댄 것처럼 툰달의 낯짝이 싸늘해졌다. 카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둑한 동공으로 상대를 응시했다.
“눈썰미가 좋다는 건 충분히 잘 알겠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툰달은 갈등을 곱씹다가 불현듯 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네. 그 무기를 대체 어디서, 어떻게 구한 건가.”
“…….”
“내가 보기에 그건 분명…… ‘아탈라의 대전사’께서 쓰시던 무기처럼 보이네만.”
저녁의 음영 속으로 스며드는 불시의 침묵.
카딤은 대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오래도록 할 말을 잃고 툰달을 바라보기만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