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78)
78화. 모든 순간, 모든 때 (7)
카딤과 던컨은 폐허의 곳곳을 쏘다니며 전리품을 모았다.
사실 전리품이라고 해봐야 다른 건 드물었다. 거진 악마들의 피와 수급이 전부.
“나으리, 여기도 악마가 있습니다요!”
“그래. 동맥을 찔러 피를 받고 목을 자르거라.”
“어, 어어…… 예…….”
그마저도 중급 악마 이상은 찾기 힘들었다. 중심 악마가 죽으며 그 권능이 사라져, 강제로 승격했던 악마들이 모조리 원래대로 돌아온 탓이었다.
카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다른 걸 기대하고 온 것도 아니었다. 전투 중 모아 놓은 피를 대부분 잃었으니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였고.
무엇보다 애초에 그가 목표로 삼았던 전리품은 확실히 얻어냈다.
깊숙한 웅덩이 바닥에 찰랑찰랑 고여 있는 피.
고위 악마, ‘페빌라투스의 피’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기억이 300년 전의 순간이었기에, 페빌라투스는 하급 악마의 육신으로 죽었다. 그러므로 그 시체를 찾아다니는 건 무의미했다.
그렇지만 완전히 죽기 전까지 카딤에게 수없이 머리와 몸뚱이가 박살 났기에, 고위 악마일 적에 튀겨 놓은 핏물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페빌라투스를 두더지처럼 처박아 놓고 두들겼던 이 웅덩이도 그중 하나였다.
카딤은 웅덩이 밑으로 조심스레 내려갔다.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지독한 혈향이 훅 피어 올랐다. 이 독기 어린 피의 효과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고위 악마의 피를 마시면 그 ‘권능’을 일시적으로나마 쓸 수 있게 된다.
즉, 이 피를 마시면 또다시 ‘1회차의 육신’을 끌어낼 수 있다는 뜻.
“…….”
그러므로 결단코 함부로 마셔서는 안 됐다.
그 압도적인 힘만큼이나, 1회차의 광증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은 수준이었다. 이미 폐허가 된 곳이라 망정이지, 만일 대도시에서 미쳐 날뛰었다면 막대한 희생자가 생겼을 게 분명했다. 또한 도중에 정신을 잃고 꾸었던 꿈도 매우 불길한 예감을 주었고…….
‘……그럼에도 이 피를 포기할 순 없다.’
이번엔 정말로 패배할 뻔했다.
페빌라투스는 지금까지 만난 악마 중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강력한 악마였다. 카딤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2회차의 육신이 1회차의 육신으로 이어지는 요행 덕분이었지, 결코 충분한 힘을 갖추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만일 그가 패배했더라면, 페빌라투스는 진정 대륙 동부를 ‘마경’처럼 초토화했을 터. 다음번에 이만큼 강력한 악마를 또 마주하지 않는단 보장이 없었다. 이번 같은 위기를 겪지 않으려면 반드시 구비해 둬야만 했다.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적을 압살할 수 있는 ‘파멸적인 힘’을.
……다만 도저히 다른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아니면 절대로 쓰지 말자고 굳게 다짐한 후에, 카딤은 천천히 가죽 수통에 악마의 피를 채워 넣었다.
나와서 돌아다니던 중 으스러진 골조 틈에서 목질화 가시를 되찾았다. 이미 세 토막이 나 있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카딤은 가시가 목질화 효과를 잃었단 걸 깨닫고 망설임 없이 내버렸다.
그래도 던컨이 뜻밖의 전리품을 하나 찾아냈다.
“나으리, 이거…… 마법사들이 쓰는 지팡이 아닙니까?”
늙어빠진 마탑의 마법사가 다루던 금속 지팡이.
내려치기만 하면 철벽이 치솟고, 철사가 튀어나오고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주문을 외울 필요 없이 ‘마나’만 주입하면 각인된 마법을 시전해 주는 마도구로 보였다. 정확히는 몰라도 등급을 매긴다면 대략 유니크 정돈 되겠지.
일행 중 마법사는 없으니 당장은 무용지물이었다. 들고 다니다 다른 마법쟁이의 눈에 띄면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두고 가기에는 상당히 아까웠다.
‘그 보좌관을 죽이고 얻은 쇠사슬을 참사관한테 20만 루덴 받고 팔았었지? 이것도 못 해도 그만큼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카딤은 땅에 떨어진 천쪼가리를 주워 지팡이를 둘둘 말았다. 이렇게 숨겨서 들고 다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처분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악마의 수급들은 중간에 주운 수레에 쌓아뒀는데, 거의 그 양이 커다란 봉분에 비견할 만했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괴악한 낯짝들이 겹겹이 쌓여 밑으로 피를 한 바가지나 뚝뚝 흘렸다.
“아이고, 레밀리온이시여……. 이게 무슨, 끔찍한 광경이랍니까…….”
심란해진 던컨에게 카딤은 지옥불 단검으로 목의 절단면을 일일이 지져 놓으라 명했다. 악마의 피냄새에 괴물이 꼬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 던컨은 대여섯 배쯤 더 심란한 얼굴이 되었으나 그래도 착실히 카딤의 명을 따랐다.
전리품 수집과 작업을 마치고 나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노을의 빛깔이 덧씌워진 솔타나는 재앙이 휩쓸고 간 현장이라기보단 꼭 고즈넉한 고대의 폐허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그나마 성한 공터에 주저앉아 비로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를 나눴다.
“……내가 ‘아곤의 성난 뿔’을 만났다고?”
“그렇습니다, 나으리! 나으리를 쓰러뜨리고 막, 막 죽이려고 들기에, 제가 딱 나서서 못 하게 막고! 일 대 일 결투를 걸고! 멋지게 승리하여 나으리의 복수까지 통쾌하게 해드렸습죠!”
“…….”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때는 이미 광증 때문에 의식이 끊긴 뒤였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서 인상을 쓰고 유심히 바라보자, 던컨은 세상 모든 억울함을 짊어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 외쳤다.
“지, 진짜입니다요, 나으리! 제 말이 맞다는 데 제 전 재산과 목숨을 걸겠습니다!”
“네 전 재산이라고 해 봐야 얼마 안 되지 않더냐. 네 목숨은 이미 내 손 안에 있고.”
“그, 그렇다면…… 고향에 있는 제 아내와 아들내미를 걸겠습니다!”
“…….”
……카딤은 그런 건 필요 없는데, 라고 답하려다가 그냥 던컨의 말을 믿어주기로 했다.
이야기를 종합하고 보니 흩어져 있던 추측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맞춰졌다.
아탈라인 전사들을 이끄는 자는 아곤의 성난 뿔이었다.
녀석은 ‘아탈라의 심판’을 통해 신기를 끌어냈다.
그리고 그걸로 전사들에게 신기를 나눠 줬다.
몸이 무너졌다는 걸로 보아, 녀석도 신기의 부작용을 완전히 버틸 만한 경지는 아니었다. 아마도 무기를 빼면 그렇게 위협적인 놈도 아니겠지. 다만 육신을 재생시켰다는 그 액체는 무엇인지 신경 쓸 필요가 있어 보였다.
녀석이 어떻게 ‘아탈라의 심판’을 얻었는지, 어째서 자신을 ‘아탈라의 대전사’라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목표만큼은 확실해졌다.
‘이 도끼의 진정한 주인이 누군지 가리고 싶거든, 반드시 아곤의 투기장으로 찾아오라고…….’
아곤으로 찾아가, 가짜 대전사의 멱을 따고 ‘아탈라의 심판’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
카딤의 눈빛을 본 던컨은 다음 행선지가 어디일지 직감했다. 푸우, 체념하는 한숨을 토하고는 조곤조곤 물었다.
“……바로 아곤으로 가실 겁니까요, 나으리? 여기서부턴 걸어서 나흘 정도면 도착할 겁니다.”
“아니, 그전에 들를 곳이 있지.”
카딤은 악마의 머리가 수북이 담긴 수레를 턱짓했다.
“일삯은 받아야지. 방어선 진지에 들려서 토벌 보수를 챙긴 후에 떠난다.”
“…….”
“하급 악마는 두당 1만 루덴, 중급 악마는 5만 루덴씩 주기로 했는데…… 저걸 다 정산해 줄 돈이 있을지는 모르겠군.”
던컨은 황금 망치에 얻어맞은 것처럼 두 눈을 번쩍 떴다.
갑자기 괴악하게만 보였던 악마의 낯짝들이 티끌만치나마 귀엽고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
델루타나의 어느 대저택,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집무실.
중앙의 접객용 테이블 앞에 마흔 줄에 걸친 멀끔한 인상의 중년인이 앉아 있었다. 현재 델루타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소요의 구심점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델루타나 참사회의 일원, 튜리스 가문의 두 날개 중 하나, 황금의 도시에 폭풍을 몰고 와 버린 렘타나의 참사관, 엔리코 튜리스.
안색은 초췌해졌지만 눈빛은 더 날카로워졌다. 그는 토도독, 토도독 테이블을 두들기며 숙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벌컥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성난 걸음으로 응접실에 들어섰다. 그는 엔리코를 보자마자 철썩, 턱이 돌아가도록 매섭게 뺨을 후려쳤다.
엔리코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채찍질이라는 듯 공손히 고개를 끄덕였을 뿐.
“오셨소이까, 형님. 다사다망한 와중에도 시간을 내주신 것, 깊이 감사드리오.”
“…….”
튜리스 가문의 가주이자 차기 참사회 의장 후보, 펠리코 튜리스는 잠시 거칠게 씩씩 숨을 내쉬며 동생을 노려봤다. 이내 호흡을 가다듬고는 냉정한 얼굴로 맞은편에 걸터앉았다.
“……며칠밤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네놈의 머리를 두 쪽으로 쪼개, 각각 교단과 마탑에 바치고 우리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입장을 표명할지 말이야.”
“…….”
“하지만 한쪽 날개를 꺾고 날 수 있는 새는 없는 법이지. 튜리스 가문에는 여전히 네가 필요하다. 사사로운 앙금은 방금 전의 손찌검으로 청산한 셈 치고, 이제부턴 현실적인 논의를 해 보자꾸나.”
엔리코는 결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혼자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뺨 맞는 정도로 형제와 가문의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면 설령 수천 대라 해도 기꺼이 맞았을 터였다.
표면적으로 알려진 것만 해도 굉장히 골치 아픈 일이었다.
동맹령에 교단의 아크팔라딘이 무단침입했는데, 그 지역의 보좌관으로 있던 마탑의 고위 마법사가 튀어나와 응전하다가, 격전 끝에 그만 둘 다 목숨을 잃고 말았다니…….
이 정도만 해도 동맹이 건립된 이래 터진 것 중 두 손 안에 꼽을 만한 외교적 사건이다. 참사회 의원들부터 뒷골목의 시정잡배들까지, 델루타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문제에 대해 사견을 주고받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진상으로 들어가 보면 수십 배는 더 골치 아픈 일이었다.
사실 아크팔라딘과 마법사는 만난 적도 없고, 제각기 다른 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 명은 쌍둥이 협곡, 한 명은 마탑이 구축한 비밀 요새에서. 하지만 그 두 사람을 죽인 것은 한 사람이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아탈라인 용병.
“……그리고 그자가, 네가 발급해 준 통행증을 갖고 황금 가도를 횡단한 ‘악마 학살자’와 동일인물이라는 거지?”
“그렇소. 아직 확실히 검증은 못 했지만, 정황상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소이다.”
“후우…….”
펠리코는 탄식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뒷골이 시큰했다. 이만한 규모면 단일 사건으론 동맹이 건립된 이래 유례가 없는 대사건이었다.
그나마 이 진상을 알고 있는 자가 거의 없다는 게 위안이었다. 펠리코는 마른세수를 하고 진중하게 입을 뗐다.
“너도 알다시피, 델루타나는 언제나 도시의 황금을 지켜줄 파수꾼들을 필요로 했지……. 그런 면에서 그만한 무력을 지닌 용병을 찾아낸 것만은 칭찬할 만하다. 당연히, 그런 자와는 적대하지 않고 최대한 우호적인 관계를 쌓는 게 맞아.”
“…….”
“하지만, 이건 너무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다. 왜 고작 그 용병 하나 포섭하겠다고 교단과 마탑을 동시에 적으로 돌릴 위험을 무릅쓴 거냐? 당장 가도에 창궐한 악마들만 해도 어찌 될지 모르는데, 그렇게 큰 세력들을 동시에 적대하면 델루타나는 분명 패망의 길을 걷게 될 게야.”
“……옳은 말씀이시오, 형님. 하지만 당시엔 선택의 여지가 없었소. 또한 그럴듯한 현장을 만드는 것으로 위험 역시 최소화할 수 있소이다. 현재 레나토 수석 보좌관이 렘타나에 남아 지시대로 현장을…….”
“아니. 내 얘기는, 가치의 문제를 말하는 거다. 그 용병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단신으로 마탑의 장로회나 ‘데카그램’을 상대할 만한 수준은 아닐 것 아니더냐?”
“…….”
엔리코는 숙연히 눈을 감았다.
용병의 활약, 그리고 용병과 나누었던 대화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눈을 치떴다.
“형님, 그자는 결코 범상한 용병이 아니오. 이전에 그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아곤의 성난 뿔’과 마찬가지로 투신의 대전사를 자칭하더군.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절대로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아니었소.”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관두어라. 지금은 현실적인 담론을 나누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그러면 현실적인 얘기를 해 보겠소이다. 만일 내가 보기에, 그자가 ‘데카그램’까지 상대해봄 직한 힘을 가졌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하시오, 형님?”
“…….”
펠리코의 눈이 맹금처럼 뜨였다. 날 선 시선으로 동생의 눈을 마주 보았다.
“과거 동맹은 제국과의 전쟁에서 고작 사흘 만에 항복을 선언했지. 그 악명 높은 ‘데카그램’이 하룻밤도 안 되어 도시 하나를 멸망시키는 바람에.”
“…….”
“아크팔라딘도 물론 대단한 전력이지만, ‘데카그램’은 그 격이 다른 존재다. 방금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겠더냐?”
엔리코는 말없이 단연한 눈빛을 보냈다. 펠리코는 개탄하듯 중얼거렸다.
“……확신이 없어도 책임져야 할 것이다. 엘가 교단의 대주교가 일방적으로 델루타나에 방문을 통보했거든.”
“……!”
“표면적으론 악마 창궐의 지원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고작 그까짓 일로 대주교가 그 무거운 엉덩이를 뗐을 리는 없지. 분명 너와 대면하기 위해 수작을 부릴 거다. 대주교가 이르기 전에 반드시 철저히 대비를 해 놓아야만 해.”
“…….”
“……그리고 최악의 경우, 모종의 수단으로 이미 진상을 파악하고 찾아온 걸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엔 양자택일을 해야겠지. ‘악마 학살자’의 구금에 최선을 다해 협조할 건지, ‘악마 학살자’의 손을 빌려 제국과 ‘데카그램’에 맞설 건지…….”
엔리코의 얼굴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펠리코는 동생이 생각을 가다듬길 기다리다 손가락을 튕겨 주의를 환기했다.
“정신 바짝 차려라, 엔리코. 일단 최악의 경우는 차치하고, 사정을 모를 경우에 어떻게 응대할지 논해 보자꾸나.”
그 후 두 형제는 한동안 주거니 받거니 의견을 교환했다. 그러나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만 드러났다. 상대방이 이쪽의 패를 얼마나 아는지, 또한 무슨 패를 손에 들고 온 건지 알 수가 없었으니…….
펠리코는 좀 더 정보를 모아볼 테니 내일 다시 얘기해 보자고 제안했다. 엔리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아무래도 때가 좋지 않으니, 마탑의 기록 조회에 관해선 추후에 얘기해 봐야겠다며 생각하며.
그런데 엔리코는 잠시 멈춰 서 있다 도로 자리에 앉았다.
“아, 형님. 혹시 이런 문양을 보신 적 있소?”
“……?”
엔리코는 종이 위로 무언가를 쓱쓱 그렸다. 눈가가 양손으로 가려진 사람의 얼굴, 그런데 그 가린 손의 손등에 눈이 그려져 있는 기이한 문양.
그걸 본 펠리코는 오만상을 썼다.
“뭐야. 이걸 대체 어디서 본 거냐, 엔리코?”
“그 용병이 들고 다니던 은화에 그려져 있던 것이오. 어떤 문양인지 내게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더군. 무언가 알고 계신 게 있소?”
펠리코는 관자놀이를 짚고 오래도록 뜸을 들였다.
인과 관계를 짜 맞춰 보려 어떻게든 노력하다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자 도리질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 그 용병, 분명 아탈라인이라고 했지?”
“그렇소.”
“영문을 모르겠군. 이건 ‘잊힌 신’을 추종하는 자들의 표식이다. 이미 오래 전에 엘가 교단에 의해 절멸된 자들인데, 왜 아탈라인이 이런 표식을…….”
튜리스 형제는 동시에 기이한 문양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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