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rserker’s Second Playthrough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잊힌 신의 추종자들 (8)
처음 만난 두목이 털어놓은 정보는 ‘밤까마귀 분파’에 은신처를 제공한 암흑가의 조직과 관할 점포 목록이었다.
그리고 그 정보를 따라 다섯 채의 술집, 두 채의 매음굴, 세 채의 밀수품 가게, 소규모의 암시장, 그리고 그를 운영하던 다섯 개의 조직을 궤멸시키는 동안, 카딤은 대략 스무 명에 이르는 ‘밤까마귀 분파’의 추종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악마 학살자’에게 심판을!”
“‘재앙의 근원’에게 파멸을!”
쩌 – 걱!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중 주교란 놈은 없었다. 본거지를 찾아내지도 못했고.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카딤은 보다 수고를 덜 들이고 정보를 캐는 방법을 알아냈다.
“나는 ‘악마 학살자’다. 혹시 이 중에 밤까마귀 분파나 수상한 사이비 추종자들에 관한 정보를 아는 녀석 있나.”
“…….”
점포의 입구에 서서 이렇게 말하면, 대개 안에서 이런 반응이 튀어나왔다.
“……뭐야, 진짜야? 진짜, 그 ‘악마 학살자’라고……?”
반신반의하며 불안에 떨다 아는 걸 털어놓거나.
“……뭐야, 씨팔? 무슨 개소릴 하는 거야, 이 새끼?”
욕설을 지껄이며 몽둥이나 날붙이를 치켜들거나.
쩌 – 걱!
“어, 어어어억…….”
후자의 경우에도, 맨 앞에 덤벼드는 놈의 머리만 쪼개 주면 전자와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싸그리 죽이는 것보다 편해졌다 뿐이지, 여전히 상당한 수고를 들여야 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소문이 퍼지며 눈앞에서 도주하거나 미리 도망가는 경우도 잦아졌다. 대부분 멀리 달아나지 못하고 붙잡혔지만.
그러다 보니 어느새 피땀으로 물든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암흑가의 거리에 잿빛 땅거미가 내깔렸다. 슬슬 홍등가와 술집마다 불을 밝히고 욕망에 눈이 달뜬 손님들을 호객해야 하는 시간이지만, 오늘은 어딜 가나 검소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카딤은 이대로 허탕 치고 돌아가는 게 아닌가 걱정하며 마지막 조직의 술집으로 들어섰다.
괜한 걱정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비로소 주교에 대한 단서를 찾아냈다.
“그, 그 기분 나쁜 사이비 주교놈? 그 새끼, 우리 조직이 만든 지하 통로에 숨어 있어! 어디로 가야 되는지 내가 안내해 줄 테니까, 일단 그 도끼는 내려놓고…….”
“지금 바로 말하지 않으면 내려찍겠다. 대답 말고 다른 말을 해도 내려찍겠다.”
“억, 어, 그, 그러니까…….”
쾅 – !
“이런, 빗나갔군. 미안하다. 다음번엔 꼭 정수리를 맞춰 주지.”
“여기 옆 건물 창고! 옆 건물 창고 바로 지하에!! 바로 지하에 쌓아놓은 상자를 치우면 입구가 있어!! 제발, 제발 내가 안내해 줄 테니까 살려…….”
개수작인지 아닌지 확인하러 갈 시간이었다. 두목의 목덜미를 붙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낯짝에 칼집이 잔뜩 난 험상궂은 사내가 새끼 고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얌전히 번쩍 들렸다.
카딤은 나가려다 말고 우뚝 멈춰 섰다.
문 앞으로 은밀히 접근하는 기척이 여럿 있었다.
끼익 –
바람결에 열리는 듯 빠끔히 열리는 문. 그 뒤에 분명히 적대적인 신영들이 있었다. 두목을 엄폐물 삼아 세우고, 열린 문틈으로 도끼를 집어던졌다.
패래래래래랙, 까 – 앙!
“……허업!”
파육음과 피 대신 금속음과 불티가 튀었다. 곡선을 그리도록 연어의 인력을 휘어잡았다. 까앙, 다시 한번 쇳소리가 울리고 문 앞에 섰던 신영이 나자빠졌다. 카딤의 눈초리가 꿈틀, 떨렸다. 설렁설렁 던지기는 했다만 설마 두 번이나 막아낼 줄이야.
카딤은 칼로 직접 토막쳐 버릴 요량으로 뛰쳐나갔다. 문을 어깨로 밀쳐 들러붙은 적들을 떨쳐 버리고, 쓰러진 상대를 향해 칼을 내뻗었다.
후 – 욱!
숨통을 끊기 직전, 칼날을 멈췄다.
아는 얼굴이었다.
“네놈은…….”
“아니, 그대는……?”
스스로 팔을 잘라 나무토막이 되는 꼴을 면했던 외팔이 전사. 그리고 함께 토벌대에 있었던 아탈라인 전사들.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느닷없는 조우에 당황한 그들은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고 애먼 시선만 교환했다. 갈피 잃은 전사들의 눈동자를 보아하니 맞붙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만은 명백했다.
카딤은 그래도 바로 칼날을 거두진 않았다. 외팔이 전사의 턱 밑을 겨눈 채 책문했다.
“네놈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전부 우두머리를 따라 아곤으로 간 것 아니었나.”
“그러는 그대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이오? 중심 악마를 토벌하러 떠난 후에 무슨 일이…… 아니, 설마 그 암흑가에서 난동을 부린단 자가 카딤 형제였소?”
“……?”
“우린, 우리를 이끄는 분과는 도중에 갈라졌소. 대신 우리와 손을 잡은 참사회 의원들의 호위를 위해 이곳으로 왔지. 그러다 여기서 난동을 부리는 용병이 있으니 제압하란 의원의 명을 받고 여기로 온 것이오. 그런데 설마 그게 카딤 형제였을 줄은…….”
“…….”
“……잠시만, 일단 그 칼을 내리시오. 우린 결코 그대와 적대하길 원치 않소. 그대가 이유도 없이 이런 일을 벌이진 않았을 듯한데, 혹여 무슨 사연인지 말해 줄 수 있소?”
외팔이 전사, 페룬은 도끼를 막고 부러진 갈고리를 내렸다. 아탈라인 전사들도 장창과 곡도를 바닥에 떨궜다.
방심시키려는 수작 따위가 아니었다. 카딤이 이전에 토벌대장을 쓰러뜨리고 상급 악마까지 토벌한 것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똑똑히 보았던바. 그들은 기본적으로 호승심에 미쳐 날뛰는 전사들이지만, 만용과 용기를 구별할 줄 아는 자들이기도 했다.
그제야 카딤도 칼날을 내리고 대강 사정을 말했다.
“갈렌타나에는 토벌 작전의 보수를 수령하기 위해 왔다. 그런데 이곳에서 어떤 놈들이 내 목숨을 노리고 일행들을 납치하더군.”
“……!”
“‘잊힌 신’을 추종하는 사이비 놈들인데, 여기 있는 시정잡배들이 숨겨 주고 있다길래 죄다 족친 거다. 알아들었으면 어서 비켜서라. 쓸데없는 피를 흘리고 싶진 않으니.”
구구절절 다 설명하며 낭비할 시간은 없었다. 카딤은 그 정도만 말하고 흉흉한 눈길과 함께 턱짓했다.
난처한 눈동자들이 황혼의 잔광 속을 굴러다녔다. 그냥 물러나자니 의원의 명을 어기게 되고, 맞서 싸우자니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상대가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전사들은 결정권자인 페룬의 판단만을 기다렸다.
페룬은 눈을 감고 깊이 고뇌했다. 먹먹한 어둠 속을 얼마나 헤매었을까, 결연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입술을 뗐다.
“형제여, 혹시 손을 거들 자들이 필요하진 않소?”
전사들은 흠칫 놀라 페룬을 응시했다.
카딤은 미간을 구겼다.
“네놈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지 않나? 그냥 방해하지 말고 비켜서는 걸로 족하다.”
“아니, ‘잊힌 신’의 추종자들에 대해선 우리도 들은 바가 있소. 엘가 교단에 절멸당한 작자들이랬지, 아마. 그런 자들이 살아남아 암흑가의 배후에 숨어 있다면, 갈렌타나의 안위를 위해 반드시 조사해야만 하지 않겠소?”
“…….”
“또한, 이전에 중심 악마의 토벌을 돕지 못하고 우리만 돌아간 것도 마음에 걸리던 참이었소. 게다가 우린 방어선을 도우란 그대의 명마저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지……. 이번만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다면, 이 마음을 짓누르는 짐의 무게가 조금이나마 덜해질 것 같군.”
“……어이가 없군. 어차피 나는 네놈들의 진짜 대장도 아니지 않았더냐. 그리고 나를 도우면, 제압하라 명한 작자들에겐 뭐라 보고할 셈이지.”
“상관없소. 그치들도 상대가 그대인 걸 알았다면 애초에 제압하란 명을 내리지도 않았을 거요. 그리고 그대가 설령 진짜 대장이 아니라 해도 우린 같은 전장에 서지 않았소? 척박한 황야의 계율 아래, 같은 전장에서 피땀 흘린 형제를 돕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지.”
“…….”
“부디, 우리에게…… 다시금 의미 있는 전장에서 창칼을 들 기회를 주시오.”
페룬의 홍채에서 강렬한 투지가 불타올랐다. 나머지 아탈라인 전사들은 잠깐 혼란한 기색을 비췄지만, 결국 페룬의 결단을 존중하여 투지를 불태웠다. 그 투지들이 선명한 빛을 발하는 만큼 카딤의 미간에 새겨진 주름도 더욱더 선명해졌다.
골치가 아팠다. 이번 일을 마치고 카딤은 이자들의 우두머리인 ‘아곤의 성난 뿔’을 죽이러 갈 계획이었다. 머지않아 대립하게 될 게 뻔한데, 괜히 불편하게 이런 일로 빚지고 싶진 않았다.
‘솔직히 ‘신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렇지만 이 쇠고집 전사들의 성미를 꺾으려거든 한참을 더 시간을 낭비해야 할 터였다. 카딤은 토막 난 한숨을 토하며 혈귀를 벽면으로 내던졌다.
쐐액, 쿠 – 웅!
“……허억!”
코앞에 칼날이 박혔다. 대화를 나누는 틈을 타 달아나려던 두목이 찔끔, 오줌을 지리며 멈춰 섰다. 카딤은 녀석에게 다가가 목덜미를 붙들어 들어 올리곤 전사들에게 말했다.
“따라오는 건 상관 않겠다. 그렇지만 나 혼자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놈들과 맞서느라 괜한 피를 흘리지는 말 거라.”
“…….”
페룬과 전사들은 숙연히 긍정하며 무기를 쥐었다.
그들은 안내를 따라 옆 건물의 창고로 왔다. 두목의 말은 개수작이 아니었다. 너저분하게 쌓여 있던 상자들을 치우자 과연 우물처럼 밑으로 뻥 뚫린 구멍이 드러났다.
“여기! 여기로 들어가면 돼! 들어가서 가다 보면 금방 그 주교놈이 있는 곳이 나올 테니, 그, 나, 나는 이만 가 보겠…….”
“먼저 들어가 보거라. 함정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억? 어어…….”
목덜미에 칼날을 들이밀자, 두목은 후다닥 사다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카딤과 페룬, 나머지 전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내부는 물이 마른 지하 수로와 같은 모습이었다. 중간중간 바깥으로 뚫린 환기구 덕에 내부가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카딤과 전사들은 금방 어둠에 적응할 수 있었다. 두목은 장님처럼 벽과 바닥을 더듬어댔지만.
초입에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다. 이변이 나타난 것은 어느 정도 나아갔을 즈음. 급격히 통로가 확장되어 여유로운 층고와 평수를 가진 공간이 나타났을 때였다.
“……!”
몇몇 예민한 전사들이 적의를 감지했다.
황급히 무기를 들었으나 적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전사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렸다.
카딤은 그들보다 감각이 뛰어났다. 적의의 존재는 물론, 그 근원까지도 단숨에 파악했다. 밤하늘에 드리운 그림자처럼 흐릿한 기척. 그 기척이 자리한 방향은 바로.
앞도 뒤도 옆도 아닌, 위쪽.
쐐래래랙! 퍽, 퍽, 퍼벅 – !
“께륵…….”
쏟아지는 암기의 세례, 정수리에 단검이 꽂힌 두목은 두꺼비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절명했다. 카딤은 칼과 도끼를 교차하여 단검들을 쳐냈다. 전사들도 팔 보호대나 무기를 쳐들어 치명상을 막았으나 자잘하게 칼날에 찍히고 베였다.
암기 세례에 이어 천장에 박쥐처럼 매달려 있던 그림자들이 쏟아져 내렸다. 어둠 속에서 노란 안광들이 빛나고 스산한 목소리가 하나로 합쳐져 메아리쳤다.
““크흐흐, 결국 여기까지 이르렀구나, 악마 학살자……. 그 녀석들은 저승길이 적적할까 봐 데려온 동료들이더냐?””
“…….”
““하루 종일 암흑가를 아주 화려하게 들쑤시고 다녔더군. 덕분에 충성스러운 신도들을 많이 잃었어……. 하지만 성유물을 되찾고 네놈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 정도 희생은 아무것도 아니지.””
쐐 – 액! 쐐 – 액! 후 – 욱!
일레니아의 분신들이 승냥이처럼 날랜 몸짓으로 단검을 휘둘렀다. 예상치 못한 방식의 기습, 그리고 판에 박은 듯 똑 닮은 적들을 마주한 전사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뻣뻣한 동세로 위태롭게 칼날을 맞받아치는 전사들.
그 순간, 페룬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당황하지 마라, 형제들이여! 저것들은 그저 사이비들이 사술로 빚은 괴물에 불과하다! 간특한 사술은 아탈라의 투지를 이겨낼 수 없을지어니, 두려워 말고 진영을 갖춰 응전해라!”
그 또한 진상을 모르고 막연히 외친 말.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모두의 정신을 일깨우기엔 충분했다. 전사들은 잇따라 전투의 함성을 외쳤다.
“페룬 형제의 말이 옳다! 아탈라를 위하여!”
“황야의 아버지를 위하여!!”
채 – 앵, 키기기기긱, 채 – 앵!
태세를 정비한 신영들이 날렵한 그림자들과 충돌했다.
긴 칼날과 짧은 칼날이 맞부딪혔다. 창 줄기와 단검의 잔영이 교차되었다. 치열한 금속음과 미진한 반사광이 암흑 속에서 흐드러졌다. 시뻘건 진짜 피와 새까만 가짜 피가 뒤섞이며 비릿한 유혈의 향연을 벌였다.
푹, 써 – 걱! 쩌 – 걱!
“크아아악!”
“그르르르릃…….”
분신들과 팽팽한 접전을 벌이는 전사들. 페룬도 분신 하나의 미간에 갈고리를 꽂고 곡도로 목을 끊어 버렸다. 그러곤 카딤을 바라보며 급박하게 외쳤다.
“카딤 형제! 이 괴물들은 우리들이 상대하도록 하겠소! 이곳은 걱정 말고 먼저 앞으로 가시오!”
“…….”
무덤덤한 눈길로 응하는 카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저런 말을 들었다면 참으로 눈물 쏙 빠지게 감동적이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저렇게 열심히 맞서는 건 그냥 쓸데없이 피땀 흘리는 짓거리에 불과했다.
카딤은 긴 한숨을 토하며 칼자루를 들어 올렸다. 그러곤 무거운 목소리로, 그렇지만 한 사람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도록 뚜렷이 공명하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모두, 몸을 숙여라.”
““……!””
그 말을 들은 전사들이 반사적으로 엎드리는 찰나.
쩌 – 걱.
어둠을 가르는 선혈의 궤적.
콰가가가가가가 – !
그리고 그를 따라 몰아치는 핏물의 파도.
칼날에서부터 붉은 격랑이 일어나 공간을 횡축으로 갈랐다. 미처 몸을 숙이지 못한 분신들은 대번에 반으로 쪼개졌다.
써 – 걱, 쩌 – 걱!
“흐어억!”
“가르르르릃!”
카딤은 신속히 전진하여 간신히 살아남은 분신들마저 정리했다. 붉은 직선이 번뜩이고 자욱한 피 안개가 내려앉았다. 분신의 잔해들은 부글부글 지옥의 시궁창처럼 들끓었고, 전사들의 머리칼엔 혈액의 이슬이 맺혔다.
이제 살아남은 분신은 없었다.
전투의 소음으로 가득 찼던 공간에 급작스런 적막이 내깔렸다.
카딤은 혈귀를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시정잡배들을 썰며 고이 모은 피를 전부 토한 탓에 붉은 검신은 상대적으로 창백한 빛깔을 띠고 있었다. 후련한 울림을 따라 칼날을 털고는 아직도 엎드려 있는 전사들에게 말했다.
“괜한 피를 흘리진 말라니까.”
““…….””
페룬과 전사들은 어안이 벙벙하다는 얼굴을 했다.
카딤이 발을 떼어 떠나는 걸 보면서도, 가자미의 영혼이 씐 듯 계속 바닥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
갈렌타나 대학, 박달나무관의 2층을 쥐 잡듯이 들쑤시길 한세월.
폐쇄된 학술실에 딸린 창고 구석에서, 일레니아는 마침내 염소처럼 수염을 기른 조그만 사내를 찾아냈다.
“후우, 드디어 찾았다…….”
“히익! 헉, 허억…….”
던컨은 발작적으로 몸을 떨며 지옥불 단검을 뽑았다.
화르르르륵 – !
“무, 물럿거라, 이 가짜 인간아! 지난번엔 많이 방심했지만, 이번에는 호락호락 납치당하지 않을 거다!”
“……?”
“내, 내가 이래 봬도, ‘아곤의 성난 뿔’과 싸워서 이겼던 몸이다! 방심하지만 않으면, 네까짓 놈들은 상대도 안 된단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아, 알아들었으면 어서 썩 물러나거라!”
“…….”
일레니아는 어이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 지끈, 아파 오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고 말했다.
“저기요, 그…… 아저씨가 무슨 꿈을 꿨는지는 관심 없고요. 용병님이 일 보러 가시기 전에, 제게 아저씨를 찾아 말 좀 전해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그래서 한참을 찾아다니다가 지금 겨우 찾은 건데, 후우, 뭐 이리 인기척도 없이 꽁꽁 잘도 숨은 건지…….”
“그,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속을 줄 알았나! 암, 어림도 없다! ‘아곤의 성난 뿔’과 싸워 이긴 나, 던컨은 더 이상 그런 하찮은 수작질에 넘어가지 않는다!”
“……잔말 말고 그 위험한 거 내리고, 거기서 바로 나오면 1천 루덴 줄게요.”
“어…… 정말로?”
던컨이 헤벌레 입을 벌린 찰나, 일레니아는 빛살처럼 손을 뻗었다. 팔뚝을 뒤로 꺾어 제압하고 단검을 뺏어 도로 허리춤의 검집에 집어넣었다.
순식간에 묶인 통닭 같은 꼴이 된 던컨은 팔뚝을 퍼덕이며 발악했다.
“으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악!!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이 가짜 인간아! 그, 그렇지만 나으리의 도끼에 썰리고 싶지 않거든, 지금이라도 나를 놓아주고 멀리멀리 달아나는 게 좋을 게다!”
“……후우.”
일레니아는 짙은 한숨을 토했다. 이 방정맞은 행상인을 그냥 이 먼지 구덩이에 처박아 놓고 갈까 고민하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