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lood Knight's Villains RAW novel - Chapter (656)
나의 악당들 656화
74. 난투(4)
주교와 수녀원장 등의 히스테리는 한 달여 만에 잦아들었다.
어차피 달리 손쓸 방법도 없었을 것이다. ‘봉쇄수녀’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유릴에 대한 감시와 통제는 지난 9년간 수시로 강화되어 왔다. 여기서 더 제약을 가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다만 유릴은 일상이 깨지는 건 아닐까, 그게 걱정스러웠다. 간호 업무에서 배제되어 다시는 구호소에 발을 못 들일지도 몰랐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수녀원장 혹은 그 윗선은 유릴을 최소한으로, 하지만 지속해서 외부에 드러내고자 했다. 마치 그녀가 여기 갇혀 있노라 과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실상이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유릴 자신은 그렇게 느꼈다.
불만은 없었다. 유릴의 관심사는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아니라 그녀에게 들려오는 목소리들이었으니까.
계절이 몇 차례나 바뀌었다.
금방 잦아들 거라고 생각했던 괴질의 유행은 햇수로 3년 차에 접어들며 더욱 기승을 부렸고, 익당(翼堂)에 마련된 구호소는 환자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어졌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미동도 신음도 없이 줄지어 누워 있는 광경은 조금 오싹한 인상을 주었다.
비교적 완만하게 늘어나던 환자의 수는 4월에 접어들며 그야말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종전까지 여든 명 안팎의 환자를 수용 중이던 수녀원은 일주일 만에 그 3배가 넘는 환자를 새로 맞았다. 예배당과 기도실, 심지어 식당까지 환자들에게 내주어야 했다.
유릴은 문득 궁금해졌다.
비교적 지체 높은 환자들만 받는 성 토마시아 수녀원이 수용 한계를 넘어섰다. 그렇다면 저 밖에서는 얼마나 많은 하층민들이 변을 당했을 것인가?
가뜩이나 위태롭던 일상에 또다시 파문이 일었다.
젊은 궁정마법사와 순찰대 간부의 쑥덕거림이 그 전조였다. 문병을 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그들은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이런 저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청년기사단’, ‘토벌’, ‘왕녀님의 계획’, ‘그린스킨’ 등. 별로 일상적이지 않은 단어들이 오갔다.
본격적인 사건은 그로부터 열흘쯤 뒤에 벌어졌다. 드물게도 수녀원장이 직접 나서서 최근에 일어난 참사에 대해 알렸다.
“왕족이신 라이오넬 님과 왕의 기수들, 기타 귀족 자제 백수십 명이 속한 토벌대가 실종되었습니다. 그들은 브리스트 일원에 나타난 소규모 그린스킨 무리를 쫓는 중이었으며…….”
심상치 않은 상황인 게 분명했지만, 유릴에게는 그 심각성을 실감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폭증하는 환자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탓이다.
마침내 수녀원이 수용한 환자가 사백 명을 넘어갈 즈음, 교단의 심문관이 열댓 명의 무장 병력을 거느리고 수녀원에 들이닥쳤다.
앞을 막아서는 주임사제를 단호하게 밀쳐낸 심문관이 노기등등한 얼굴로 호령하자, 집행자와 성당기사들은 망설임 없이 쇠몽둥이를 휘둘렀다.
거기 당한 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수녀원을 오가며 환자를 연구하던 마법사들이었다. 놀란 마법사들은 미처 반응도 하지 못한 채 흠씬 얻어맞고, 죄인처럼 포박당했다. 교단의 정예들은 겁먹은 수녀들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고 떠나 버렸다.
사건의 내막은 며칠 뒤에야 알려졌다. 이번에도 수녀원장의 공표가 있었다.
“얼마 전 실종된 토벌대 대부분이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생환자들이 주장하길, 이번에 토벌대가 겪은 실종 사건과 하인병 창궐의 배후가…… 다름 아닌 여명의회였다는군요.”
다른 수녀들이 그런 것처럼, 유릴은 저도 모르게 성호를 그었다.
맙소사, 주여. 밖에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요?
행운과 불운은 늘 교차하는 법이라, 비보와 환자들이 연달아 밀려드는 와중에도 즐거운 일은 생겼다. 수녀원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틈을 타 몇몇 일반수녀들이 유릴에게 말을 걸어온 것이다.
“안 힘들어요? 쉬엄쉬엄 해요.”
“담당 환자 새로 배분했는데, 모르셨죠? 이제 식당 쪽은 안 가셔도 돼요.”
“물 길으러 갈 때는 신호 줘요. 혼자 낑낑대다 또 넘어지지 말고.”
기대한 적 없는 관심에 유릴은 내심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처음에는 몸이 굳어서 발걸음마저 어색해질 지경이었다.
또래 수녀들은 다른 동료와 대화하는 척을 하고, 스쳐 지나가며 속삭이고, 기도하는 자세로 중얼거리는 등의 방법으로 말을 걸어왔다. 유치한 눈속임이지만 접촉 시간이 워낙 짧아 주임수녀도 기사들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다만 유릴은 감시를 피할 자신이 없고, 혹여 들키기라도 했다간 자신도 동료들도 심히 곤란해질 것이 뻔해서 감히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그저 스치는 눈길로 감사한 마음을 전할 뿐이었다.
사실 수녀들 대부분은 유폐된 공주에 대해 동정심을 품고 있었다.
하긴, 길을 잃고 낑낑대는 강아지만 봐도 애를 태울 만큼 마음씨가 고운 여인들 아닌가. 유릴의 고달픈 인생도, 비극적인 가족사도, 죄수나 다름없는 신세도 아는 판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수도생활을 접는 편이 나을 것이다.
어쨌든 유릴은 가슴이 벅찼다.
다들 내가 미워서 없는 사람 취급한 게 아니구나, 실은 속으로 응원을 해주고 있었구나.
너무나 오랜만에 느낀 사람의 온정에 전신에서 기운이 샘솟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행운과 불운은 교차하는 법이었다.
“저기, 뒤뜰에 꽃나무요.”
한 수녀가 막 물통을 옮긴 유릴 옆에 쪼그려 앉아 수건을 적셨다. 그리고 복화술 하듯 속삭였다.
“부러졌다는데, 어쩜 좋아요.”
“…….”
유릴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녀의 길고 외로운 수도생활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취미가 바로 수녀원 뒷마당의 꽃밭을 가꾸는 일이었다. 일몰 기도와 석식 사이, 15분 남짓한 짧은 자유 시간을 이용한 취미였다.
그리고 꽃나무는, 유릴이 수녀원에 유폐되고 얼마 뒤에 그녀가 직접 심은 양벚나무를 가리켰다. 담장 아래 응달에서 어렵게 자라 지난 봄에야 첫 꽃을 피워낸, 작지만 강인한 나무…….
애써 마음을 다스리는 유릴 근처에서 수녀 몇 명이 물수건을 짜는 척 하며 쑥덕거렸다.
“교단 구호품 가져온 남자 있죠? 그 사람 짓이래요. 구경을 하다 넘어졌다나.”
“참나, 뭐 그런 얼간이가 다 있어. 화단엔 뭐 하러 들어갔대?”
“이래서 외부인을 함부로 들이면 안 된다니까. 그리고, 아무리 성직자라도 그렇지, 수녀원에 사내가 웬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이안 추기경님 계실 때만 해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추기경님 얘긴 꺼내지도 마세요. 우리가 이렇게 바빠진 게 그분 때문이라면서요? 우리 쪽이나 아데이온이나 널널할 거라고, 환자 더 받으라고 하셨다며.”
“……자매님. 아무리 일이 고되어도 그렇지, 빛의 종이라는 사람이 그런 걸로 불만을 품으면 어떡해요. 병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게 그렇게 싫으면 두건 벗고 나가세요.”
“저, 음, 그런 뜻은 아니고요……. 아, 맞다. 그 얼간이, 지난달에 부제서품 받은 자식 맞죠? 리피로 거리를 들락거린다는 소문이 있던데, 다들 들으셨어요?”
“정말? 그런 자가 어떻게 벌써 부제가 됐지?”
“신성력도 별 볼 일 없는 것 같던데. 귀족인가?”
“그건 아니고, 집안이 꽤 부유한가 봐요. 평소에도 열 금짜리 환어음을 턱턱 내고 다닌다는데…….”
얼마간 수다를 떨던 수녀들이 별안간 놀란 양 떼처럼 흩어졌다. 성큼성큼 걸어오는 중년의 수녀를 발견한 탓이다.
매서운 눈빛의 주임수녀는 농땡이를 치던 수녀들을 쭉 훑어본 다음 유릴 앞에 섰다.
“자매님, 잠시.”
“네? 아, 네.”
유릴은 당황스러운 기색을 숨기며 주임수녀를 따라나섰다. 다른 수녀들이 말을 걸어온 걸 눈치챘나 싶어 가슴이 콩닥거렸다.
체벌의 방을 지나치며 조금 진정되었던 심장은, 정당 2층 중심부에 자리한 수녀원장실을 앞두고 다시금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
주임수녀는 문 옆에 비켜선 채 눈짓을 보냈다. 유릴은 떨리는 턱을 꾹 앙다물며 방에 발을 들였다.
“어서 오세요, 자매님.”
손님용으로 둔 벨벳 카우치에 앉아 있던 수녀원장이 나긋한 말투로 그녀를 맞이했다. 유릴은 조심스레 예를 취하면서도 살짝 방 안을 훑어보았다.
“오랜만이에요.”
태연히 인사를 건네온 건 마치 제 자리인양 상석을 차지한 소녀였다. 소녀 뒤에는 거구의 기사 둘이 동상처럼 서 있었고, 한편에는 수녀원장과 비슷한 느낌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릴의 놀란 눈은 오렌지빛 머리칼을 가진 아름다운 소녀에게 못 박혀 있었다.
“음,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까……. 고모님? 아니면, 공주 전하?”
유릴의 그것과 같은 남색의 눈동자가 장난스럽게 반짝였다. 유릴은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왕녀님. 저는 일개 수녀일 뿐인 걸요.”
“으음, 역시 그렇죠. 아쉽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말과는 달리 에아디나 왕녀는 썩 만족스러운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우아한 손짓으로 빈자리를 가리켰다.
유릴은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카우치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에아디나 쪽을 곁눈질했다.
그 옛날 왕궁을 놀이터 삼아 함께 뛰놀던 아이는 간데없이, 아름답지만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왕녀가 거기에 앉아 있었다. 잔뜩 헤지고 더러워진 수녀복과 주황색 수실로 장식한 금빛 커틀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유릴의 어깨가 괜히 더 움츠러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고모님-아니, 수녀님과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에아디나는 턱을 괸 자세로 유릴을 빤히 바라보았다.
“소문 들어서 알고 계시죠? 제가 워낙 바빠요.”
유릴 역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바가 있었다.
며칠 전 왕도 백성들의 뻑적지근한 환영 속에서 당당히 개선한 청년기사들에 대해서도 들었고, 바로 그 청년기사들을 토벌대에 합류시킨 게 실은 눈앞의 에아디나 왕녀였다는 것도 들었다.
유릴이 아는 건 그 정도가 전부였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둘은 꽤 비슷한 처지였다.
유릴이 수녀원에 유폐된 것처럼, 에아디나 역시 국왕의 엄명에 의해 제 침실에 갇혀 한 발짝도 나오지 못 했기 때문이다.
물론 에아디나로선 당장 목이 잘리지 않은 것으로도 아버지께 감사히 여겨야 할 지경이었다. 그녀의 계획 때문에 왕국이 내전의 구렁텅이에 빠질 뻔했으니까. 일주일가량 이어진 외출 금지는 사실상 그녀를 위한 보호조치나 다름없었다.
당연하게도, 릿스터 산에 파견된 토벌대-엄밀히 말하면 학생토벌대가 통째로 실종된 직후 졸지에 귀한 자식을 잃어버린 가문들은 그야말로 미쳐 날뛰었다.
특히 북부의 서리공과 서부의 늙은 여우는 당장 몸져눕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눈이 뒤집혔다. 후계자를 잃은 노인네들은 길길이 날뛰며 즉각 군대를 소집했다. 특히 웨벨터 공작은 어찌나 분노했는지 휘하 영주 중 소환에 가장 늦게 응한 자를 참수해 버렸을 정도였다.
물론 두 노괴가 당장 반역의 기치를 치켜든 건 아니었다.
에아본 후작은 제 목숨과 가문이 복수보다 소중하다는 걸 알았다. 그는 원래 영리한 노인이었으니까.
웨벨터 공작은 그렇지 않았지만, 8년 전 천일전쟁에서 큰 낭패를 본 덕에 분노를 조절하는 능력을 깨우쳤다. 60년 넘게 고치지 못한 정신병을 단 네 번의 전투로 치료해 주었으니, 북부의 모든 생명들은 울카르 왕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품어야 할 터였다.
어쨌든 그들은 실제로 군대를 일으켰지만, 그게 반역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 공후(公侯)의 거병은 충의에 부합하는 바였다. 이백 명에 가까운 귀족 자제가 왕도에서 무예와 학문을 닦던 중 실종된 대사건 아닌가. 그 정도로 왕령(王領)의 치안이 개판이라면, 신하로서 지켜만 볼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남부와 동부는 비교적 난리가 덜했다.
물론 자식을 잃은 영주들이야 당장 반란을 일으킬 기세였다. 그러나 각 맹주에 해당하는 아일란트의 공작과 초승달 군도의 후작이 바다 건너 불구경 중이라 집단적인 행동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들 다음으로 입김이 강한 대가문, 남부의 뮬린과 동부의 얼쇼어가 불만의 목소리를 모으는 모양새였으나 당장 군대를 모으는 북부·동부보다야 사정이 훨씬 나았다.
다행히 본격적인 충돌이 시작되기 전에 토벌대의 생환 소식이 전해졌다. 그들이 겪은 일 역시 대강이나마 알려졌다.
이를 전해 들은 영주들이 저마다 상황을 파악하는 가운데 왕실은 재빨리 입장을 굳혔다.
왕의 사절들이 이를 전했다.
“청년기사들은 근래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공을 세웠다. 이는 필시 밝으신 주께서 왕국과 왕실과 그 신민을 굽어살피신 덕이다.”
“젊은 영웅들은 왕의 용맹한 기수들을 도와 여명의회의 간악한 음모를 발각하였으며, 이계의 괴물들을 무수히 소탕한 끝에 대부분 무사히 귀환하였다. 위대한 정복왕이자 신화적인 전사 제오트의 후예로서 경의를 표하며, 마땅히 후한 포상을 내릴 것이다.”
“한편 미처 돌아오지 못한 영웅들이 많다. 지극한 슬픔을 견디며 언명하노니, 왕국과 중간계의 수호를 위해 바쳐진 숭고한 희생이 영원토록 잊히지 않도록 하리라.”
생환한 토벌대는 오백 명이 조금 넘었다. 처음 파견될 당시 정규토벌대가 약 일천, 학생 토벌대가 이백이 조금 안 되었으니 칠백에 이르는 인명이 죽거나 실종된 것이었다.
다만 칠백의 희생자 중에서 청년기사, 즉 왕립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학생은 고작 서른네 명이었다. 또 그중에서 귀족 자제는 절반도 안 되었고.
이렇게 되자 영주들로서는 상황이 꽤 애매해졌다.
그들은 위로 왕을 섬기고 아래로 백성을 지키는 귀족이다. 간악한 반역자를 처치하고 사나운 괴물을 토벌하는 건 명예로운 의무였다.
바로 그 의무를 수행하다 평민 수백 명이 죽어 나갔는데, 귀족 자제 열댓 명이 희생되었다고 영주들이 날뛴다? 솔직히 꼴불견이었다.
심지어 그 귀족 자제들이 전장에 떠밀려 나간 것도 아니다. 국왕과 왕녀가 헛바람을 넣긴 했지만, 그들은 엄연히 자원하여 토벌대를 꾸렸다. 귀한 신분의 젊은이들이 의기를 떨치도록 독려한 것을 두고 손가락질 한다면, 영주 휘하의 향사들은? 영지의 환난이 닥쳤을 때 의용병(끌려옴)을 모으는 게 향사들의 가장 주된 임무 아니던가.
이 같은 맥락으로 현재 왕국의 정세는 애매하게 고착된 상태였다.
서부와 북부에서는 지금도 만 단위의 병력이 집결 중이었지만, 그 갈래를 이끄는 여러 군소 귀족들은 그 대군이 어떤 일에 동원될지 감히 예측하지 못했다.
유릴은 자세한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지만, 에아디나 왕녀는 간신히 생명을 건진 신세였다.
물론 그녀가 목숨만 부지하는 정도에 만족할 리는 없었다. 이제 에아디나는 뒷간에 처박힌 자신의 입지를 건져내어 굳건히 세울 생각이었다.
그러자면, 당연히 공을 세워야 한다.
“오랜만에 뵙는 고모님과 나누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지만, 왕족으로서의 공무가 우선이겠죠.”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변죽을 울리나, 어안이 벙벙하던 수녀에게 왕녀가 기습적으로 질문했다.
“포이닉스와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있나요?”
“……네?”
“적기사 말이에요.”
에아디나는 태연한 표정이었지만, 날카로운 눈빛은 상대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생환한 토벌대원 중에 그자를 봤다는 사람이 있어서.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짐작이 가는 거 없어요?”
뜬금없는 질문에 유릴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또 그다. 적기사.
대체 왜?
쿵, 쿵, 쿵.
그리고, 그 이유는 도저히 알 수 없지만, 또다시 심장이 뛰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