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1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1화
001 환생/쓰빠 C바(감사해요)다
“강진호 기자님입니까? 코리아에서 오신.”
카메라를 멘 채 모스크바 호텔로 향하던 강진호.
인적이 드문 길로 들어서던 그는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의아해하며 몸을 돌렸다.
“네. 그런데… 누구시죠?”
“잠깐 경찰서에 가주셔야겠습니다.”
“…이 밤에 무슨 일로요?”
“가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타시죠.”
UFC 헤비급 선수 같은 몸을 한 경찰관 둘이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러시아에서 자신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걸 떠나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오는데 누가 선뜻 따라나서겠나?
또, 누구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러시아 경찰을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강진호는 일단 이곳을 벗어나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뒷걸음질을 치다가 냅다 달렸다.
하지만 그 방향엔 이미 다른 경찰이 막고 있었다.
“윽.”
순식간에 입을 틀어막은 수건에 숨이 막히며 정신을 잃었다.
경찰들은 쓰러진 그를 차에 태운 후, 하얗게 쌓인 눈을 헤치며 어디론가로 향했다.
* * *
촤아아-
“으윽…!”
강진호는 난데없는 차가운 물세례에 정신을 차렸다.
습기 많은 지하실 특유의 냄새가 콧속을 파고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백열등 하나만 달랑 매달려 있는 어두침침한 방이다.
TV에서 많이 봤던 신문실 같은 분위기의.
정면에는 아까 봤던 경찰관이 히죽 웃으며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
“나한테 왜 이래요? 외국인을 이렇게 막 잡아와도 되는 겁니까?”
“강진호 씨. 지금 분위기 모르겠어? 설마 우리가 아무 이유도 없이 잡아 왔다고 생각하나?”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거 실망이군. 기자란 족속들은 눈치가 빠를 줄 알았는데.”
‘내 이름을 알고 있어. 내가 기자인 것도. 날 강제로 잡아 온 걸 보면 경찰은 아닌 것 같은데….’
“당신, 경찰 아니지?”
“내가 경찰이길 빌어야 할 거야. 아니면… 흐흐흐.”
경찰이 아니란 걸 둘러서 한 말이다.
경찰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러시아 마피아? 갱단? 스킨헤드? 아니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침착하자. 여기서 지랄발광을 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어.’
자신이 왜 여기에 끌려오게 됐는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딱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아, 혹시 그것 때문에? 그럼 그게 사실이었어?’
그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생각이 난 모양이지?”
“혹시, 러시아 군수업체 비밀 거래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푸틴 대통령이 연관된….”
“이제 말귀를 알아먹는군.”
“그건 군수업체들 취재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겁니다. 제가 작정하고 파헤친 게 아니라고요.”
“그 말을 믿으라고?”
“코리아 사회부 기자 능력을 너무 높게 평가하는 거 아닙니까?”
“…?”
“정말 우연히 알게 된 겁니다. 그것도 이틀 전에요. 시간이 없어서 아직 확인도 못 해 봤습니다.”
정말 그랬다.
워낙 큰 사건이라 확실한 증거를 찾기 전까진 자신만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동료 기자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또 누가 알고 있지?”
백열등에 비친 사내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죄가 명백하게 드러난 범인을 바라보는 검사의 눈빛처럼.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
거짓말을 할까? 이미 동료들도 안다고.
아니면 사실대로 말할까? 자신만 안다고.
어떤 말을 해야 이곳을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까?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빠르게 정리하며 생존을 위한 가장 적합한 답변을 내놓았다.
“저만 알고 있습니다. 아직 동료 기자들은 모릅니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동료들도 안다고 하면 벗어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이럴 땐 비밀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다는 믿음을 주는 게 우선이다.
저들에겐 사람의 목숨보다는 높으신 분의 비밀을 지키는 게 먼저일 테니까.
강진호는 자신의 선택이 맞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그의 입을 바라보았다.
“운이 좋군. 하늘이 도운 줄 알아.”
역시나 그의 선택이 맞았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료들 말이야. 네 머릿속에만 넣어두진 않았을 테고. 어디에 뒀나? 카메라와 핸드폰엔 없던데.”
“제 이메일에 넣어 뒀습니다.”
“이메일에? 그러면 핸드폰으로도 확인이 되겠네. 지금 열어봐.”
지금은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이메일을 열어 숨겨뒀던 자료를 보여줬다.
“이겁니다.”
“맞군. 그럼 여기에 이름, 이메일 아이디와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까지 모두 적어.”
그가 내민 종이와 볼펜을 집어 든 강진호는 내용을 적고 앞으로 내밀었다.
종이를 잠깐 보던 사내가 인터폰을 누르자 같은 경찰 복장을 한 사내가 들어왔다.
“이것들 완전히 지우고 마실 것 좀 갖다줘.”
백업조차 하지 못하게 인터넷상 자신의 모든 계정을 완전히 없애버리겠다는 거였다.
핸드폰과 종이를 집어 든 이가 나갔다가 차 두 잔을 가져왔다. 그러고는 사내에게 귓속말을 하고 나갔다.
손가락에 담배를 끼운 사내가 물었다.
“피우나?”
“안 피웁니다.”
“부럽군. 아무튼, 돌아가면 짐은 모두 그대로 두고 몸만 다른 호텔로 옮겨. 이상 없다고 판단되면 알아서 그쪽으로 보내 줄 거야.”
“….”
과연 저 사내가 짐을 제대로 돌려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담배를 쭉 빨아들이곤 다시 입을 뗐다.
“러시아 들어올 때 동해에서 배 타고 왔나?”
“네.”
“그러면 전쟁 중이라도 러시아인은 비자 없이 배 탈 수 있다는 건 알 테고.”
“….”
“우리 쉽게 쉽게 가자고. 다른 곳에 숨겼다거나 허튼짓하면… 일이 좀 복잡해져. 가족 생각도 해야지?”
사내의 눈이 다시 번뜩였다.
이건, 허튼짓하면 누군가를 보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해치우겠다는 협박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겁낼 것까진 없어.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우리가 그렇게 막 나가진 않으니까.”
그 말이 더 안 믿어졌다.
일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한 것인지 사내가 사적인 질문을 했다.
“러시아어는 어디서 배웠어?”
“어머니가 러시아인이었습니다.”
“고려인이었다가 결혼하면서 코리아 국적을 받았다는 말이군.”
강진호의 얼굴이 완전한 동양인이었기에 추론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를 통해 러시아 역사를 깊이 있게 공부했었다.
여기 오기 전엔 푸틴의 일대기도 심도 있게 공부했었고.
그 덕분에 러시아인들조차 알지 못하는 세세한 부분들까지 많이 알고 있었다.
“눈감고 들으면 러시아사람인 줄 알겠어. 러시아 특파원으로 온 이유가 있었군.”
강진호는 생사의 순간이라 판단했기에 긴장한 상태로 그의 표정만 유심히 살폈다.
“헤어지기 전에 차나 한잔해. 언제 또 볼지도 모르는데.”
커피와 비슷한 향에 연초록빛을 띤 차.
허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으로 손을 뻗으려던 그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에 흠칫했다.
“왜? 뭐라도 탔을까 봐? 뉴스 때문에?”
“뭐 꼭 그렇다기보다….”
강진호는 부정도 긍정도 아니게 말끝을 흐렸으나 사내는 뭐를 탔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 참. 그거 코리아 사회부 기자 나부랭이에게 막 먹일 만큼 싼 거 아니야. 독 안 탔어.”
사내가 피식 웃으며 먼저 차를 마셨다.
그 모습에 긴장이 풀려서인지 갈증만 가실 정도로 몇 모금 마셨다.
“표는 이쪽에서 준비해 줄 테니까, 다음 주 화요일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 타고 코리아로 들어가.”
처음보다는 어느 정도 마음이 안정된 상태라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하나만 물읍시다.”
“말해봐.”
“경찰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에서 온 겁니까? 이것 역시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네가 잡혀 온 이유를 생각해야지.”
알지 말아야 할 정보를 알았기 때문이었다.
“순순히 가라고 하니까 이제 겁이 안 나는가 보지? 가족들 생각하라고 했을 텐데.”
“….”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마. 여기 러시아에선 더욱. 그만 가 봐.”
어차피 말해 주지 않을 걸 알았다.
미련을 버리고 막 문을 열려는데 사내가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건 조만간 알게 될 거야.”
사내의 의미심장한 말을 끝으로, 눈이 가려진 채 호텔로 돌아올 수 있었다.
며칠 후.
뿌우웅-
강진호는 배를 탄 채 멀어지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바라보았다.
“내가 러시아에 다시 오나 봐라.”
* * *
그렇게 다짐하고, 한 달 뒤.
“방사선 피폭에 의한 괴사로 판명됐습니다.”
“크으윽! 으아악-.”
그는 방사선 피폭으로 온몸이 문드러지고 있었다.
함께 마셨던 그 차에. 아니 자신이 마신 차에만 방사능이 들어가 있었던 거였다.
순간 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독 안 탔다고.
독은 안 탔고, 방사능을 탔다는 게 다를 뿐.
“날 죽이라고 지시한 그 개X끼. 저승에 가서라도 이 원한은 꼭 갚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던 12월의 어느 날, 강진호는 ‘신문을 꽉 쥔 채로’ 눈을 감았다.
그의 눈가엔 마지막 이슬 같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 * *
창밖에서 스며든 정오의 햇살이 눈을 간지럽힌다.
창문이라도 열렸을까, 어디선가 수천 명이 내지르는 듯한 고함과 자동차들의 경적이 귓전을 때렸다.
강진호는 몸을 일으켰다.
“이게… 뭐야?”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밀치며 일어나던 그는 머리를 돌리다 기겁했다.
“으으응. 왜 그래? 더 자자. 나 어제 자기 때문에 한숨도 못 잤잖아.”
자신은 분명 그 유명한 방사능 차를 마신 후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죽었다.
저승에 가서라도 원한을 꼭 갚겠다’라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런데 옆을 보니 금발을 한 알몸의 여자가 등을 보인 채 세상 편하게 누워 있었다.
조심스레 침대에서 내려온 그는 화장실로 향했다.
‘내 모습이….’
유리에 비친 얼굴은 건장한 30대 한국인의 얼굴이 아니었다.
‘금발에… 파란 눈?’
피곤해서 그런지 아니면 아파서 그런 건지, 눈이 퀭한 백인 남성의 얼굴이었다.
큰 키에 마른 체형이었고.
꿈인지 생신지 분간이 되지 않아 연거푸 세수를 하고 다시 봐도, 거울에 비친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
뺨을 서너 번 때리고 혀를 꽉 깨물어보았다.
면도기로 손가락 끝을 살짝 베어보기까지 했지만 따끔하면서 통증만 느껴질 뿐 바뀌는 건 없었다.
‘분명 꿈은 아니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활짝 열었다.
저 멀리 붉은 광장이 보인다.
그곳엔 수많은 사람들이 뭔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오가는 차들이 경적을 울려 대는 게, 꼭 저들을 응원하는 듯하다.
강진호는 잠시 그 모습을 넋 놓고 보다가 TV 앞에 앉았다.
금색의 ‘골드 스타(Gold Star)’ 마크가 아래쪽에 찍혀 있는.
검은 화면에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급히 TV를 틀어 보니….
『1991년 12월 26일부로 70년간 이어져 온 소비에트 연방을 해체하고 러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바입니다. 저는 오늘 이후로….』
홀라당 벗겨진 앞머리에 요상하게 생긴 지도 모양이 찍혀 있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화면 속에 있었다.
‘1991년? 소련? 러시아?’
사람이 하도 어이없는 일을 당하면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지금 그의 마음이 딱 그랬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
그때, 갑자기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정보가 쓰나미처럼 밀고 들어왔다.
“윽! 으으윽.”
머리를 거머쥐며 두통에 힘겨워하던 그는 잠시 후, 현재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소련이 붕괴하고 국명이 러시아로 바뀐 1991년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로 환생했다.
그것도 명망 높은 집안, 둘째 아들(21살)의 몸으로.
“니콜라이, 갑자기 왜 그래?”
고통에 몸부림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뜬 미녀가 다가와 뒤에서 안았다.
“머리 아파?”
“저기, 조금만 뒤로… 물 좀.”
“잠깐만 기다려!”
그녀가 미니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건네주었다.
강진호는 3일간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같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컥! 케엑 켁켁.”
“천천히 마셔. 오늘 왜 그래?”
냉수를 마신 덕인지 널뛰던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옷부터 챙겨 입었다.
“나, 이만 나가 봐야 할 것 같아.”
“벌써? 저녁까지 있자고 했잖아?”
조금 전에 받아들인 정보를 통해 이 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며칠 전부터 만나 왔는데, 미모는 뛰어났지만 남자 관계가 꽤 복잡하다고 소문난 여자였다.
그리고 이 몸의 주인이 이 여자를 만난 이유는…
‘등신. 바람피는 여친한테 복수한답시고 이딴 식으로 맞바람을 펴?’
강진호는 신발을 신으며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좀 더 쉬다가 나와. 나는 갑자기 일이 생겨서 먼저 나갈 테니까.”
그 말을 남기곤 그냥 나가 버렸다.
어차피 저 여자를 만날 일은 오늘 이후로는 없을 것이다.
호텔 밖으로 나가려다 안내대에 있는 신문을 펼쳤다.
‘확실히 맞아, 1991년 12월 26일이.’
계속 신문을 넘겨 봤으나 분명히 이 시대에 나올 법한 내용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정말 새 삶을 얻었다는 건데….’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여러 증거가 사실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TV에서 나온 뉴스.
지금 보고 있는 신문.
이 세 가지는 확실한 증거였다.
혼란스러웠던 감정이 전율과 희열로 바뀌면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했던 맹세는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쓰빠 C바(감사해요)’다 푸틴 새X야. 조금만 기다려라. 일단 너부터 끝장내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