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10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10화
010 조기교육/충격받은 셋째 숙부
니콜라이는 새 삶을 얻은 후, 처음으로 직접적인 두 가지의 천기누설 아닌 천기누설을 했다.
그 첫 번째.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 곰 엄마 곰 애기고옴. 아빠 곰은 뚱뚱해~ 엄마 곰은 날씬해~ 애기 곰은 너무 귀여워어~ 으쓱으쓱 잘한다~.”
이 동요는 틀렸다.
아기 곰에게 위협이 되는 것 중에는 아빠 곰도 포함된다.
아빠 곰은 흥분해서 가끔 새끼를 죽이기 때문에 엄마 곰은 새끼를 낳으면 아빠 곰을 내쫓는다.
즉,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도 아빠 곰은 함께 살 수 없다.
쌔빠지게 먹을 거 구해 주고 돈 벌어 줘도 푸대접받는 건, 동물의 세계건 인간의 삶에서건 같은가 보다.
작사, 작곡 미상이긴 해도 누군가는 만들었을 테니, 그가 가사에 수컷의 애환을 숨겨 둔 듯하다.
곰 세 마리, 동요가 한국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알려 줬으니 나중에 문제 생길 건 없을 거다.
“쏘냐, 여기서 중요한 점이 ‘으쓱으쓱’ 할 때 어깨를 쭉쭉 올리면서 앙증맞게 방긋방긋 웃는 거야. 사탕을 녹이듯이 애간장을 녹여야 하는 거지.”
“요럿게요~?”
알려 준 것보다 더 잘한다.
“오오! 그래, 바로 그거지. 쏘냐는 천잰가 봐.”
“아빠 닮아서 그래요.”
“뭐어 그건 그렇다 치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는데.”
“…?”
“아빠 곰은 모두 뚱뚱하고 엄마 곰은 모두 날씬하다는 나쁜 편견을 가지면 안 돼. 저기 봐.”
오늘도 작업실에서 ‘종신 정규직 2’는 업무에 충실해 나가던 중 니콜라이의 말에 흠칫했다.
정원 뒤편에 따로 작업실을 하나 지어서 ‘얀덱스’를 업그레이드해 나간 지도 어언 45일이 지났다.
나중에 돈을 벌면 러시아에 있는 IT 전문가들을 모두 불러들일 생각이다.
“쏘냐 아빠는 날씬하지?”
“아빠는 엄청 날씬해요.”
“그렇지. 근데 저기 TV에 나오는 엄마는 엄청 뚱뚱하지?”
“맞아요.”
“그래. 그러니까 편견을 가지면 안 되는 거야. 가끔 어른들도 실수하니까 예쁜 쏘냐가 이해해 줘.”
“쏘냐는 착하니까 이해해 줄 거예요.”
“우리 쏘냐는 착하고 예쁘면서 마음도 넓어요. 자, 그럼 이반 할아버지한테 가서 이 노래랑 율동 보여 드려야지?”
“다녀올게요.”
가르쳐 준 대로 배꼽 인사를 하곤 몸을 돌리려고 할 때, 니콜리아의 말이 이어졌다.
“잠깐만 쏘냐.”
“…?”
“삼촌이 노래 끝나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요렇게에~~요?”
쏘냐가 양손을 붙여 손바닥이 위로 향한 채 앞으로 쑤우욱 내민다.
“오올치! 잘한다. 오늘은 셋째 할아버지한테 꼭 받아야 해. 알았지?”
끄덕끄덕.
“어서 가 봐.”
쏘냐가 쪼르르 달려 나가자, 샤샤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와, 넌 어찌 된 게 애 한테 앵벌이를 다 시키냐.”
“어허, 앵벌이라니.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어서 쓰게 하기 위함이지. 그리고 경제교육은 어릴 때부터 시켜야 한다는 거. 자아넨 그걸 왜 모르나?”
“염병.”
“일리야, 내가 쏘냐한테 잘못하고 있는 건가요?”
“아, 아닙니다. 쏘냐가 여기에 온 후부터 얼마나 많이 밝아졌다고요. 사장님한테 무조건 배우라고 했으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샤샤, 들었지?”
“아이구 내가 말을 말아야지.”
역시 ‘종신 정규직 2’ 교육은 확실히 시켜 뒀다.
얼마 후, 쏘냐가 해바라기처럼 환하게 미소지으며 들어왔다.
“삼촌! 저 오늘 엄청 많이 벌었어요.”
받은 게 아니구, 벌었어?
“어디 보자. 이게 웬일이래. 우와아~ 오늘은 500루블이나 벌었네?”
몇 달 전에 먹은 돼지국밥 한 그릇이 3루블이었으니, 500루블이면 그때 시세로는 무려 166그릇을 살 수 있는 큰 금액이었다.
러시아 최고의 고액권 지폐 가치는 세계에서도 아주 높은 축에 해당한다.
“이거 셋째 할아버지가 주신 거야?”
”네에. 쏘냐 잘했죠?”
“그러엄. 너무 잘했지. 오늘은 수익이 너무 좋았어.”
안턴 숙부님이 이렇게나 통이 크실 줄이야. 말하는 꼴을 봐서는 통이 크게 보이지 않는데.
“자, 돈은 벌었으니까 이제는 공부해야지. 돈을 벌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두 번째 천기누설 아닌 천기누설이 시작되었다.
“하나! 무조건 달러나 금을 사야 한다!”
“옳치 잘한다. 그리고 돈을 더 많이 모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지?”
“하나!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해야지?”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와 델 컴퓨터 같은 IT 기업 위주로 투자해야 한다아!”
“잘한다! 또?”
“하나! 장기 투자를 원칙으로 한다아! 단타로는 절대로 돈 못 번다!”
“예외가 있다고 했는데?”
“삼촌의 지시가 있을 땐 재빨리 손절한다!”
애한테 손절은 좀 이상하네.
“자 하나 바꾸자. 매도… 아니 판다.로 하자. 판다! 다시 쭉 해 봐.”
“삼촌의 지시가 있을 땐 재빨리 판다!”
“그렇지.”
“세상의 모든 남자는 뭐?”
“도둑놈!”
쏘냐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일리야와 샤샤의 표정은 복잡해져 갔다.
“예외로 치는 남자는?”
“아빠! 할아버지! 데니스 삼촌! 니콜라이 삼촌!”
샤샤가 발끈했다.
“니콜라이! 나는 거기서 왜 빼?”
“으음. 샤샤 삼촌도 넣어 줄까?”
끄덕끄덕.
“그럼 샤샤 삼촌도 도둑놈에서 제외! 자 이젠 마무리 짓자. 쏘냐의 꿈은?”
“니콜라이 삼촌의 비서실장!”
“역시, 쏘냐는 천재야. 삼촌한테 배운 것들은 모두 어떻게 해야 한다?”
“비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됨!”
“어떤 비밀?”
“무생물한테도 말하면 안 됨!”
“그래, 여기 이 책상하고 저기 십자 드라이버한테도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알겠지?”
“네에!”
“오늘은 투자 대비 수익이 너무 좋았고, 공부도 잘했으니까 많이 놀아도 돼.”
“그럼 저 빨리 곰 저금통에 밥 주고 정원에서 놀게요.”
“오늘 날이 쌀쌀하니까 목도리랑 장갑 꼭 하고 놀아.”
영하 15도를 쌀쌀하다고 하는 니콜라이는 몇 달 만에 러시아에 적응해 버렸다.
아빠한테 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려가 사랑이 듬뿍 담긴 뽀뽀를 한 쏘냐가 밖으로 나가다 고개를 빼꼼 돌린다.
“참, 할아버지가 니콜라이 삼촌 좀 오래요. 셋째 할아버지가 찾으신다고요.”
“알았어.”
쏘냐의 모습이 사라지자 샤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자알 한다, 잘해. 참 잘 가르쳤다.”
“아이 뇌는 7~8살 때까지가 제일 물렁물렁해서 잘 빨아들여. 그러니까 기초를 잘 닦아 놔야 하는 거라고.”
“기초?”
“내 교육방식이 이상하게 보이면 아빠한테 따져. 나는 허락받고 하는 거니까.”
“저는 좋습니다. 괜찮아요.”
아빠인 일리야가 좋다는데 ‘도둑놈’에서 갓 승격한 신입이 뭐라겠나.
“세르게이한테 메일 안 왔나요?”
“네, 안 왔습니다.”
“이상하네요. 보낸 지 한 달 반이 넘었는데 왜 연락이 없지? 메일 제목을 다르게 해서 보낼 걸 그랬나….”
“제목을 뭐라고 했는데?”
“행운을 주는 편지.”
이 편지는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뭐 이런 내용은 아니고.
우연히 알게 됐는데 친하게 지내자. 언제 미국에 갈 일이 생기면 밥이라도 한번 먹자.
이런 내용으로 보냈는데.
이거 혹시 신종 사기 수법으로 오해하는 거 아니야?
아직 시간은 많으니 차차 친해져 가면 되겠지. 지금은 12월에 할아버지한테 사업자금 톡톡히 받아 내서 대형마트 건설할 것에 집중해야지.
아, 5월 1일에 옐친이 탄핵 심판대에 오르는 것도 신경 써야겠구나.
“자 그럼 나는 안턴 숙부 좀 만나러 가 봐야겠네. 샤샤 너는 일리야 옆에 붙어 있다가 필요한 거 있다고 하면 다 구해다 줘.”
“아까 들어올 때 보니까 숙부님 표정이 영 아니던데. 뭐에 쫓기는 사람같이 불안해하는 얼굴이더라고.”
“으음. 짚이는 게 있어.”
* * *
“형님은 달러와 금을 모두 샀어요?”
“아버지가 말씀하신 건데 당연히 샀지. 은행마다 대출까지 받았다. 독립한 국가들에서.”
“하아, 이거야 원….”
거실 소파에 앉아 긴 한숨을 내쉰 셋째 안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그러냐? 무슨 일 있어?”
“지금 시장에 달러가 씨가 말랐습니다. 금도 안 팔아요. 은행에서도 갑자기 대출을 안 해 줍니다. 이게 너무 갑작스럽단 말이죠.”
이뿐만이 아니다.
물가는 끝도 없이 오르고 있는데 화폐가치는 반대로 끝도 없이 폭락하는 중이다.
안턴의 속이 타들어 가는 이유는 또 있었다.
자신은 아버지의 지시를 반만 따랐다.
보유자금의 반을 투자해서 달러와 금을 샀지만, 나머지 반으로는 비밀리에 괜찮은 철강 기업을 인수했다.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은 은행 대출을 이용하려 했으나 모든 은행이 대출 중단을 선언했다.
멀쩡했던 일들이 두 달도 안 된 기간 동안 모두 틀어져 버렸다.
다른 사업가들도 자신이 겪은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턴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가는 이유였다.
“아버지가 이미 예견하셨던 일이잖아. 러시아 전체를 놓고 보면 안 된 일이지만 우리 가문으로서는 잘된 일이지.”
“아버지가 아니라 니콜라이가 예견한 거죠. 지금 니콜라이는 어딨습니까?”
“집 뒤 작업실에 있을 거다.”
“작업실? 여기에 작업실이 있었어요?”
“얼마 전에 새로 만들었어.”
“거기서 무슨 작업을 하는데요?”
“음 거 뭐더라… 아 맞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든다더라. 그런데 니콜라이는 왜 찾아?”
“왜긴 왭니까, 불러서 물어봐야죠.”
그때 쏘냐가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와서는 율동을 겸해 곰 세 마리를 애간장을 녹여 가며 불렀다.
안턴은 속이 타들어 가다 못해 문드러질 판인데 형인 이반은 세상 다 가진 얼굴로 아이의 재롱을 즐겼다.
노래가 끝났을 때 쏘냐가 양손을 모은 채 안턴 앞으로 쓱 내밀었다.
안턴은 얼떨결에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줬는데, 그게 하필이면 가장 고액권인 500루블짜리일 줄이야.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애한테 다시 달라고 할 수 있나. 또 지갑엔 모두 500루블짜리밖에 없었다.
안톤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500루블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거금을 벌어들인 쏘냐는 니콜라이에게 말을 전하라는 할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작업실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얼마 후, 니콜라이가 거실로 들어서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 그래, 니콜라이 여기 좀 앉거라.”
음료수를 가져온 마리아도 소파에 앉았다.
“얼굴이 안 좋으신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으세요?”
“일? 하아. 네가 전에 했던 말 말이다.”
“무슨 말이요?”
“그 왜, 할아버지 생신 때 했던 말.”
니콜라이는 어머니가 안턴을 위해 가져온 음료수를 시원하게 마셔 버렸다.
“….”
“아, 네. 그런데요?”
“크흠. 그때 네가 했던 말대로 국내 경기가 엉망이 되어 가고 있어. 달러와 금이 시장에서 씨가 말랐지 뭐냐.”
니콜라이는 대답은 하지 않고 듣고 있다는 뉘앙스로 느긋하게 머리만 끄덕였다.
안턴은 속이 타들어 갔지만, 이 집 사람들은 자신과는 달리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다.
안턴은 자세를 고쳐 잡고 말을 이었다.
“너, 그 정보를 어떻게 알게 된 거냐? 그림만 그리던 네가 어떻게 이리될 줄 알았어?”
사촌들은 나이가 많건 적건 뻑하면 그림 타령이다.
미래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덴 일가견이 있지만, 손으로 그리는 건 이젠 못한다고.
“말씀이 좀 그렇습니다. 제가 무슨 정보를 알아요? 그게 알고 싶다고 알아지는 겁니까?”
“그, 그렇긴 한데….”
“숙부님이 왜 이렇게 불안해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무슨 말이냐?”
“할아버지 말씀대로 하셨다면 이렇게 불안해할 이유가 없잖아요? 오히려 기뻐하셔야죠. 안 그렇습니까?”
“….”
“혹시, 할아버지 말씀대로 안 하신 거 아닙니까?”
순간, 자신도 모르게 숨이 턱 막혀 버린 안턴은 두 눈만 빠르게 껌벅거렸다.
보통내기가 아니다.
니콜라이가 그림만 그렸다고 운운하면서 조카의 의견을 깎아내렸지만, 막상 그 의견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반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너 정말 아버지 말씀대로 안 했던 거냐?”
“…아닙니다. 아버지 말씀을 누가 거역할 수 있어요. 시장 상황이 하도 이상하게 흘러가서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나 해서 와 본 겁니다. …둘째 형님과 약속이 잡혀 있어서 그만 가 볼게요.”
“어, 그래.”
안턴이 창백해진 얼굴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이반이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안턴의 행동거지가 미심쩍은걸.”
남편의 말에 마리아도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렇네요. 몇 달 만에 갑자기 온 것도 그렇고요. 정말 아버님 말씀대로 안 한 건 아니겠죠?”
“설마 그렇기야 하겠어? 그랬다간… 으음. 그런 일은 생각도 하기 싫군.”
“아버님은 은행들에서 다 대출을 받으셨다죠?”
“그러셨다는군.”
“그 돈이 얼마나 될까요?”
“내로라하는 은행들에선 다 받으셨니… 으음, 수백억 루블은 되겠지.”
수백억 루블?
엄청나다.
일반인이… 아니, 일반인은 답이 안 나오니까 전문직 종사자가 연봉으로 수백억 루블을 벌려면?
러일전쟁을 하던 때부터 벌어도 모을 수 없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그런데 그 대출받은 수백억 루블로 모두 달러와 금을 샀다.
‘어휴….’
또, 대출은 루블로 받았으니 12월에 똥값이 된 루블로 갚으면?
이건 양쪽에서 어마 무시한 수익이 발생한다.
니콜라이가 그 엄청난 금액에 정신이 빠져 있을 때, 이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그렇고. 너는 요즘 샤샤와 함께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는 거냐?”
이반의 물음에 마리아도 궁금했는지 아들을 빤히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