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124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124화
124 배 째라고 하면 진짜 배 짼다?/본격적인 물귀신 작전
자리를 피하던 ‘조르즈 삼파이우’ 포르투갈 대통령은 결국 니콜라이의 포위망에 갇혀 버렸다.
“왜 자꾸 피하시는 겁니까?”
“인사를 하러 다닌 겁니다. 각국 정상들을 만날 기회가 자주 없다 보니.”
“잘됐군요. 앙골라 대통령께서도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뒤를 따라온 ‘조제 에두아르두 두스 산투스’ 앙골라 대통령이 무심히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96년 취임식 때 뵈었으니 올해로 5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그간 건강히 잘 계셨습니까?”
“크흠. 한번 찾아갔어야 하는데 내전 때문에 쉽지 않더군요.”
“내전 중이었어도 통신은 멀쩡했는데 5년간 전화 한 통 못 받았습니다만?”
“….”
연회장에 모인 정상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한국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던 부시도 이곳을 힐끔거렸고.
“내전으로 인해 앙골라 상황이 말이 아니게 어렵게 됐습니다. 다시 일으켜 세우자면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할 지경이지요.”
“그래서 배상을 요구한 겁니까?”
“배상금을 받으면 가능할 것 같더군요. 480년간 약탈해 갔으면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약탈이라니요! 각국 정상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건 부끄럽고 약탈했던 짓은 부끄럽지 않은가 봅니다?”
앙골라 대통령의 일침에 그의 눈 아래가 경련을 일으켰다.
포르투갈이 비록 EU에서는 크게 힘을 쓰지 못하고 있으나 수백 년간 식민지로 삼은 앙골라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까진 아니다.
따지듯이 하는 말을 계속 들어 줄 필요도 없다.
앙골라 대통령 주제에 어디서 이따위 말을 한단 말인가.
포르투갈 대통령은 경직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닭이 아무리 교활해도 언젠가는 냄비에 들어가는 법이지요.”
‘보잘것없는 자가 잘난 체하고 우쭐거려도 결국은 제 분수를 벗어날 수 없다.’라는 속담을 빗대어 한 말이다.
포르투갈이 앙골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 주는 한 단면이었다.
앙골라 대통령은 21년간 집권한 인물이다.
원 역사에서는 2017년까지 집권하니 무려 38년간 앙골라를 다스렸기에 그도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한 나라의 정상으로서는 너무도 무례한 말을 들었지만, 그는 묘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쭉 듣고 있던 니콜라이가 넌지시 끼어들었다.
“포르투갈에게 앙골라는 닭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가 보네요?”
“…정상 간의 대화요. 아무 관계도 없는 당신이 끼어들 자리는 아닌 것 같소만?”
“저도 관련이 있습니다.”
“양국의 과거 문제에 당신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니콜라이는 본론으로 넘어가야 할 시점이 됐음을 알고 이 문제가 나오게 된 근본적인 얘기를 꺼냈다.
“‘제로니모 마틴스’사에서 정부에 부탁했을 테니까요. 블랙홀을 밀어내고 앙골라의 유통권을 거머쥘 수 있게 해 달라고. 안 그렇습니까?”
“…!”
“저는 참으로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내전으로 황폐해진 앙골라를 일으켜 보고자 배상을 좀 해달라는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던가요? 480년간 피를 빨았으면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습니까?”
러시아식으로, 때리는 남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포르투갈 대통령은 눈에 힘을 주며 니콜라이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따지면 러시아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할 텐데요? 러시아 제국 시절 때를 생각해 보면 말이지요.”
그는 러시아도 포르투갈과 같은 입장이라 말을 얼버무릴 줄 알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니콜라이는 마치 준비했다는 듯이 맞받아쳤다.
“유럽 국가들이 그랬듯 주변국들과 마찰이 있었을 뿐입니다. 포르투갈처럼 480년간 식민 지배를 한 나라는 없죠.”
“….”
“그리고 저희는 소비에트 독립국들에게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어찌 됐든 소비에트가 힘이 없어서 독립하게 됐으니까요. 우린 오히려 몽골 제국에게 240여 년간 지배를 받았기에 앙골라가 깊이 이해됩니다.”
“그래서 앙골라 대통령을 부추겨 우릴 그딴 식으로 압박한 거요?”
러시아와 블랙홀이 개입했다는 건 비밀도 아니었기에 니콜라이는 개의치 않고 역공을 날렸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이 있는데. 포르투갈이 딱 그 짝인가 보군요? 대통령님과 저는 이걸 압박으로는 생각지 않고 단순히 배상으로만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사업 수완이 뛰어난 줄은 알았지만 언변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말 칭찬을 듣고 감사하다는 듯이 니콜라이가 허리를 살짝 숙였다.
조르즈 삼파이우 포르투갈 대통령은 기가 찼다.
그는 혹시나 몰라 이런 때를 대비했다.
취임식 참석자 명단에 자하르 대통령과 니콜라이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어떤 사업을 하고 가정사는 어떤지, 취미가 무엇인지까지 세세히 숙지했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겉으로 드러난 내용일 뿐, 니콜라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지를 보여 줄 수 있는 것들은 아니었다.
‘비서실장과 외교부 장관이 혹시나 니콜라이를 만나더라도 될 수 있으면 피하라고 했던 이유가 있었군.’
그 조언대로 각국 정상들의 시선이 따랐음에도 창피함을 무릅쓰고 극구 피했건만,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사람 속을 빡빡 긁어 댄다.
이제는 대부분의 시선이 이쪽을 향하고 있었기에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참에 담판을 짓기로 했다.
“좋아요. 말이 나온 김에 우리 확실히 해 둡시다.”
“말씀하시죠.”
“우리도 러시아와 함께 앙골라 정부군을 후방 지원했었지요. 그런데 왜 앙골라는 러시아 편만 드냔 말이오. 우리도 대가를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피를 더 빨려면 정부군이 승리해야만 했을 테니 그랬겠죠. 그런 이유로 지원해 놓고서 유통권을 내놓으라 요구하는 건 너무한 것 같습니다만?”
“이유야 어찌 됐든 지원을 한 건 사실이잖소? 그 덕에 내전이 끝날 수 있었던 거고요.”
낯짝이 두껍기로서니. 일본과 다른 침략국들이 한 수 배워야 할 정도로 두껍다.
“대통령께서는 앙골라 내전에 대해 공부를 더 하셔야겠습니다.”
“…!”
“내전은 1975년부터 시작됐다가 작년에 종결되었습니다. 무려 25년간 이어졌죠.”
“내가 그것도 모르겠어요!”
“그걸 잘 아는 포르투갈은 거의 한 세대가 흘러가는 동안 대체 뭘 했습니까?”
“….”
“소비에트는 미국과의 냉전이 이어지면서 무너진 바람에 더 돕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개입해 내전을 끝내 버렸죠. 즉, 앙골라 내전을 완벽히 끝낸 나라는 포르투갈이 아니라 우리 러시아란 말입니다. 그것도 사망자가 단 한 명도 없이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 그건….”
명백한 사실로 반박하자 포르투갈 대통령은 버벅거렸다.
“그런 러시아의 기업인 블랙홀이 유통권을 받겠다는 게 그리 큰 요구던가요?”
“….”
“러시아가 한 일이 그렇게 값어치가 없는 겁니까? 내전에 별 도움도 안 됐고 수백 년간 피를 빨아 댄 포르투갈과 경쟁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앙골라 대통령은 속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자기가 나섰어도 포르투갈 대통령을 이 정도까지 몰아붙일 순 없었을 터.
역시 딸 이사벨의 판단이 정확했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사람은 동물과는 달리 부끄러움을 안다고 했습니다. 제대로 배상하고 용서를 빌어도 모자랄 판국인데 480년도 모자라 다시 피를 빨겠다는 포르투갈을 세계인들이 어떻게 여길지 빤히 보입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포르투갈 대통령은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마지막 말을 꺼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배상할 생각이 없어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연회장 밖으로 홱 나가 버렸다.
뒷모습을 보던 니콜라이가 각국 정상들을 바라보자 모두 재빨리 시선을 피했다.
앙골라 대통령은 니콜라이에게 샴페인을 건넸다.
“내 평생 이렇게 속이 시원한 적은 처음입니다. 그리도 당당하던 자가 니콜라이 대표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 꼴이 되는군요. 허허.”
“진실이 늘 승리하진 않아도 승리하는 경우가 많죠. 포르투갈은 반드시 배상하게 될 겁니다.”
“우리는 니콜라이 대표와 러시아만 믿겠어요.”
한편, 밖으로 나간 포르투갈 대통령은 속이 부글부글 끓는 중이었다.
“제깟 게 감히 날 몰아세워?”
아무리 자하르의 외손자고 블랙홀의 대표라지만 자신은 엄연히 일국의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그 많은 정상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그따위 건방진 말을 하다니.
“진정하십시오. 이런 일이 생길 것 같아 되도록 피하라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피하려고 했지만 계속 거머리처럼 달라붙는데 어떡해!”
대통령이 분에 못이겨 버력 고함을 질렀다.
“오늘은 우리 입장을 분명히 전한 것으로 만족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전하면 뭐 해. 니콜라이 그자와 러시아는 더욱 압박할 텐데.”
여기서 멈출 것들이 아니다.
적당히 할 생각이었으면 애초에 그런 짓거리를 하지도 않았을 거다.
대통령이 차에서 숨을 몰아쉬며 분을 삭이고 있자 비서실장이 넌지시 말했다.
“…전에 말씀드렸던 거 말입니다.”
“전에?”
“우리만 당할 게 아니라 러시아와 EU 국가들을 끌어들이자고 했었던 거 말입니다.”
“러시아는 먹히질 않았잖아?”
“어차피 러시아는 처음부터 먹히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
“우리의 목표는 EU 국가들이라야 합니다. 그들을 끌어들여서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이번 사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비서실장이 다시 ‘물귀신 작전’을 꺼내 들자, 대통령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그래, 우린 처음부터 단독으로 러시아를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지.”
“그렇습니다.”
“그러면 EU 국가 중에서 이번 사태에 가장 알맞은 나라가 어딜까?”
“여러 나라가 있지만 러시아와 겨룰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최소한 영국부터 끌어들여야지 않겠습니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을 정도로 세계에 식민지를 많이 만들었던 영국.
영국이라면 지금 사태에 최적의 나라다.
“자네가 판을 짜 보도록 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촘촘히.”
조르즈 삼파이우 포르투갈 대통령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연회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온 니콜라이는 앙골라 대통령과 배상금을 얼마나 받을지 논의하고 있었다.
“식민지 배상금에 관해서는 과거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 간의 사례가 일부 있었습니다. 완벽히 해결된 건 아니지만 참고할 만한 수준은 됩니다.”
니콜라이는 기억나는 대로 대략적인 금액을 말해 주었다.
“하면 우리는 얼마나 불러야겠어요?”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의 물음에 옆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자하르 대통령이 니콜라이를 대신해 대답했다.
“대통령께서 먼저 금액을 말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
“대통령께서 생각하는 금액과 포르투갈이 생각하는 금액은 큰 차이가 있을 겁니다. 또, 일본의 사례는 30여 년 전의 일이라 지금 실정과는 맞지 않지요. 그러니 배상금의 기준선을 일단은 포르투갈이 정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
자하르 대통령의 말처럼 앙골라 대통령은 자국의 경제 수준을 참고해서 금액을 말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앙골라 기준으로는 큰 금액일지 모르지만 포르투갈 입장에서는 적은 금액일 수가 있었다.
이런 이유로 일단은 그들 입에서 먼저 금액을 말하게 해야 했다.
“그들이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하면 별 의미가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자하르 대통령이 니콜라이를 보며 이젠 네가 말하라는 눈짓을 보냈다.
“우리는 포르투갈 정부가 얼마를 제시하든 두 번까지는 받아들이지 않아야 합니다. 어차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그들이니까요.”
“…세 번째로 제시한 금액에서 받아들이잔 말인가요?”
“그것도 아닙니다.”
“…!?”
“배상금을 정하는 것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번 일을 끌면 끌수록 불안해질 나라들이 있을 테니 말입니다.”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이고, 뒤를 이어 과거 식민지를 만들고 약탈했던 선진국들은 줄줄이 낚이게 될 터.
숨기고 싶은 과거를 덮으려고 포르투갈을 설득해 협상하게끔 하려 들 것이다.
여기까지 내다본 니콜라이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들기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