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13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13화
013 둘째 숙부면 답니까?/4개월 후, 탄핵 결과
역사적으로 왕권에 도전하고 반역을 꾀했던 자는 어떻게 됐나?
목이 날아가거나 귀양을 갔다.
운이 좋으면 가택연금을 당했고.
여기 유리 유수포프의 집에서도 그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려 했다.
둘째 예고르를 통해 그간 있었던 얘기를 들은 유리 유수포프의 입에서 냉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단 말이냐?”
“아버지… 죄송합니다.”
“그렇게 강조하고 강조했건만. 네 눈엔 내가 늙어서 힘이 없어진 것처럼 보였나 보지?”
“그런 게 아닙니다. 철강회사를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만 욕심을 내는 바람에….”
“회삿돈을 네 개인 돈으로 생각한 모양이군. 허허,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야.”
“저도… 잘해 보려다가 일이 틀어진 겁니다.”
쾅!
안턴을 바라보며 냉기를 풀풀 내뿜던 유리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잘됐으면 회삿돈을 빼돌렸어도 내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았더냐!”
“….”
“이런 한심한 놈을 봤나. 자식이랍시고 아비를 돕지는 못할망정 앞길을 막고 있으니 원. 그래, 네 생각대로 일이 잘 풀렸으면 어떻게 됐겠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나는 러시아가 엄청난 경제 위기를 겪게 될 것에 가문의 모든 자금을 투자했다. 그런데 너는 아무런 일없이 잘 넘어가는데 건 꼴이 아니더냐?”
“그, 그건….”
“반을 들여 달러와 금을 샀던 건 혹시나 지금처럼 네 판단이 틀릴 경우를 대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둔 것이고. 내 말이 틀렸어?”
아버지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안턴은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일이 틀어진 마당에 뭘 더 말한다고 해도 아버지는 용서할 사람이 아니다.
수십 년을 봐 왔는데 왜 모를까.
그렇더라도 안턴은 끝까지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미워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바짝 엎드려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면 최악의 경우는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안턴은 형 예고르가 말했던 대로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었다.
“잘못했습니다, 아버지.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이건 내가 용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너는 회사를 이끌어 갈 재목이 못 돼.”
“….”
“이반!”
이반과 예고르도 서재에 함께 있었기에 아버지의 부름에 이반은 대답했다.
“네, 아버지.”
“오늘부터 안턴이 맡고 있던 모든 사업체를 네가 맡도록 해.”
“….”
이반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을 때, 둘째 예고르가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꽉 쥐었다.
“왜 대답이 없어?”
“저기, 아버지….”
“너도 예고르처럼 동생을 위한답시고 한 번만 용서해 달라느니, 그딴 말을 하려거든 아예 꺼내지도 마라.”
“….”
“회의 끝나면 곧바로 인계받도록 해. 알겠어?”
“…알겠습니다.”
유리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안턴의 처분은 이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안턴을 쳐다보던 유리가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려 찻잔을 들려는데, 갑자기 안턴이 머리를 치켜들며 고함을 질렀다.
“아버지, 제가 손자보다 못합니까? 제가 니콜라이보다 못한 존잽니까? 그런 겁니까?”
“안턴, 그만해.”
예고르가 급히 나섰지만 안턴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눈이 풀려 있었다.
“뭘 그만해? 형도 배알이 꼴렸었잖아.”
“너, 너…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해!”
예고르가 화들짝 놀라며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아버지. 니콜라이는 이제 20살을 갓 넘겼습니다. 그런 애가 뭘 안다고 우리 가문의 운명을 맡깁니까? 네?”
“허 참. 그래, 내가 니콜라이 의견에 따랐다. 그런데 그 판단이 틀렸더냐?”
“틀렸다는 게 아니라 왜 애 의견을 들어주셨냐는 겁니다. 시간을 좀 더 주시고 자세히 알아보라고 하셨다면 우리도 그 정도 의견은 충분히 낼 수 있었습니다.”
“나이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다니. 내가 니콜라이의 나이를 봤을 것 같아? 내가 그렇게 아둔해 보였어? 한심한 놈. 넌 아직도 멀었다.”
말은 이렇게 했으나 유리는 한편으론 가슴이 아팠다.
못난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가슴이 왜 아프지 않겠나.
그러나 어쩌랴.
자신은 부모이기에 앞서 가문을 책임져야 할 사람인데.
지금처럼 나라가 복잡한 때 인정에 이끌려 일을 그르쳤다간 가문이 송두리째 사라진다.
자신이 냉정을 잃으면 가문에 더는 미래가 없다.
그랬기에 병든 손가락을 잘라 낼 수밖에 없었다.
“내 지시가 있을 때까지 회사 일에는 관심 끊고, 어디 조용한 곳에 여행이나 다녀와.”
“아버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
명백한 축객령이 떨어졌다.
이젠 안턴도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난 안턴은 아버지를 바라보며 어금니를 꽉 깨문 후, 밖으로 나갔다.
“모두 들어오라고 하거라.”
유리의 말에 예고르가 사람들을 부르러 밖으로 나갔을 때, 안턴이 니콜라이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근처엔 유리의 생일 때 모였던 가족들이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안턴과 유리의 목소리가 워낙 컸었기에 그들도 무슨 내용인지 다 듣게 되었다.
“너 때문이야!”
“아 왜 이러세요? 옷 늘어지게.”
“지금 옷이 문제야!”
“술도 안 드신 것 같은데 이것 좀 놓으시죠.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하세요.”
“너 이 자식!”
“입 앞까지 숟가락을 갖다줬는데도 못 받아먹습니까? 애도 아니고.”
“뭐? 애?”
아버지에게 니콜라이를 ‘애’라고 했었던 기억이 났다.
“저 같았으면 돈 벌게 해 줘서 너무 고맙다고 비싼 선물이라도 했을 겁니다. 지금 달러와 금 가격이 어떻게 됐는지 아실 텐데요? 그나마 회사를 인수하고 남은 반으로 달러와 금을 샀기에 이 정도로 끝났지, 만일 모든 자금을 써 버렸다면 어떻게 됐을 것 같습니까?”
“….”
“할아버지 말씀대로 어디 조용한데 여행이나 다녀오세요. 숙부님이 저질러 놓은 일은 우리가 알아서 잘 해결할 테니까요. 야, 너 뭐해? 너희 아버지 모시고 가.”
니콜라이의 말에 호되게 당한 적이 있던 남매가 안턴을 데리고 계단을 내려갔다.
숙모가 표독스럽게 노려봤으나 니콜라이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같이 노려봤다.
그의 사실에 부합한 합리적인 말과 당당한 모습에 가족들은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친척들은 입을 떡 벌린 채 눈을 껌벅거렸다.
* * *
“….”
유리 유수포프의 서재에 다시 모인 사람들은 숨 쉬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웠다.
그만큼 유리는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모두 앉거라.”
모두 자리에 앉자 유리 유수포프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눈에 담은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리가 커서 다 들었겠구나. 오늘 이렇게 다시 모이라고 한 건, 옐친 대통령이 탄핵 심판대에 오른 일과 몇 가지 해결할 문제가 있어서다. 이반, 뒷얘기는 네가 마저 하거라.”
“네. 크흠. 옐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결의되면서 옐친이 심판대에 오른 만큼, 우리는 옐친 대통령과 최고회의+인민회의 중 한쪽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은행에서 대출금을 상환해 달라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어서 이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또, 안턴이 사들인 철강회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해결 지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달러와 금을 언제 파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네 가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꼭 해결을 봐야 하니까 모두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반의 말이 끝났지만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서재 분위기가 워낙 무겁기도 했지만, 이 문제들도 가문의 운명과 직결되기에 쉽게 의견을 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유리 유수포프는 그들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해 줄 생각으로 다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해서 미안하구나. 나도 웬만하면 부르지 않으려고 했다만, 이 문제들만큼은 나 혼자 결정할 게 아니라 판단해서 모두 모이라고 했다.”
그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으나 모두 눈치만 보고 있을 뿐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둘째 예고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옐친 대통령이 힘이 있었다면 탄핵 심판을 받는 데까진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전에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봤겠죠.”
예고르는 아버지가 머리를 끄덕이자 자신감을 얻고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정부 분위기를 살펴봤는데 최고회의+인민대표 회의 쪽으로 권력이 기운 거 같아 보였습니다. 붉은 광장과 전국의 도시마다 시위하는 사람들을 봐도 옐친은 이번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될 것 같습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만 봐도 그렇게 물러날 줄 누가 알았겠어. 세상일이란 참으로 모르겠단 말이야.”
“네. 그리고 국민들이 옐친에게 반감을 갖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실패한 경제 정책 때문입니다. 지금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면 이 사태는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커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옐친의 반대편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 예고르는 옐친의 반대와 손을 잡자고 결론을 지었다.
이 문제는 정치를 어느 정도 알아야지만 의견을 낼 수 있기에 그 분야에 가장 많은 식견을 갖춘 이반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와 손을 잡았으면 하느냐?”
“예고르 말도 일리가 있지만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이다?”
“네, 가능성은 반반이지 않습니까? 옐친 대통령의 반대쪽과 손을 잡았다가 만에 하나라도 옐친이 재집권을 하게 되면 우리 가문은 치명타를 입을 겁니다. 그러니 일반적으로 하듯이 양쪽 모두에게 지원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 외국의 사례를 보면 양쪽에서 인물이 있을 때 네 말처럼 양쪽 모두에 지원을 해. 다음에는 2등을 한 그 인물도 대통령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지금 러시아는 옐친 개인과 반대 세력과의 대립이지 않느냐? 반대 세력엔 아직 인물이 없어. 누가 되든 한쪽이 권력을 잡으면 반대쪽은 사라지게 될 것 같구나.”
유리는 정치판을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옐친이 재집권을 한 후 최고회의와 인민대표 회의를 해체시켜 버렸으니까.
반대로 최고회의 쪽이 권력을 잡아도 옐친의 정치 인생은 끝날 것이다.
그러니 유리의 판단대로 지금은 한쪽을 선택해야 할 때였다.
“그렇다고 내 말이 정답은 아니야. 모든 경우를 다 생각해야 하니 다른 사람들도 의견을 말해 보거라.”
유리가 이렇게 말했음에도 다른 사람들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니콜라이도 만일 친척들의 입장이었다면 쉽게 입을 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래를 정확히 알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과는 입장이 달랐다.
무엇보다 자신이 나서지 않았다간 옐친의 반대쪽과 손을 잡게 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었다.
누구나 의견을 낼 수 있는 자리였기에 유리의 말이 끝났을 때 니콜라이도 자연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부분에선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옐친의 반대편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예고르 숙부님의 의견엔 반대합니다. 제가 얼마 전에 신문사의 지분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신문사 이야기가 나오자 친척들의 표정이 다양하게 변했다.
어른들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또래 친척들의 얼굴에서는 질투심이 묻어났다.
“오, 그래. 네가 아주 독특한 방법을 생각해 냈더구나. 나도 네 덕에 편하게 신문을 받아 보고 있어. 허허.”
니콜라이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보며 화가 조금 풀렸음을 알았다.
“신문사 사장의 말을 들어 보니 정부에서 언론을 강력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 시위대가 꽤 있긴 하지만 전체 인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곧 정부에서도 공권력을 사용해 진압할 거라고 봅니다.”
“그러면 너는 옐친이 재집권을 할 거로 생각하느냐?”
“네. 아시다시피 옐친은 탱크와 총을 앞세운 쿠데타 세력과 맞서 싸우고 대통령이 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비록 탄핵 심판대에까진 갔으나 그렇게 쉽게 물러나진 않을 겁니다. 옐친과 손을 잡으십시오. 과거엔 옐친의 눈 밖에 났었지만, 지금은 그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기회니까요.”
마지막 말은 저번 회의 때 보여 준 모습처럼 확신에 찬 어조로 옐친이 재집권을 할 거라 단정 지어 말했다.
니콜라이의 말이 끝나자 서재에 있던 가족과 친척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났으나 대부분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한다는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기왕 손을 잡을 거면 최대한 빨리 옐친 쪽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빨리요. 사람은 어려울 때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기억하지만 가장 먼저, 가장 큰 힘을 보태준 사람을 더 기억하는 법이니까요.”
“가장 먼저 가장 많은 돈을 주자는 말이지?”
“네. 2등은 눈에 차지도 않을 만큼의 금액을 줘야 우리 가문을 확실히 기억할 겁니다.”
“흐음….”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리 유수포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말을 들어 보니 옐친과 손을 잡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데. 만일 그와 손을 잡게 된다면 우리도 원하는 것을 말해야 하지 않겠냐?”
“옐친에게 돈을 건네더라도 뭔가를 요구하시면 안 됩니다. 순서를 바꿔야 합니다.”
“순서를 바꾸라니?”
“우리가 말할 게 아니라 저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게 해야 합니다.”
“무슨 뜻이냐?”
“돈을 건넬 때, 우리 가문은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고 하세요. 순수하게 옐친 대통령의 재집권을 바라는 마음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
“흐음.”
니콜라이의 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인간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는 분석이었다.
정치판을 구르고 구른 노련한 정치인들도 이와 같은 식견을 갖추진 못했을 것이다.
유리는 니콜라이가 보통 아이가 아닌 줄은 알았지만, 이런 뛰어난 모습을 다시 보게 되니 더욱 믿음이 갔다.
“니콜라이가 손자긴 해도 명석한 판단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옐친과 손을 잡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에 반대 의견이 있으면 지금 말을 하거라.”
마지막으로 물었지만 사람들은 이미 니콜라이의 말에 넘어가 버린 상태였기에 누구도 반대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자 그러면 이 문제는 니콜라이의 의견대로 하마. 그리고 은행에서 대출금을 상환해 달라고 계속 연락이 오고 사람도 찾아오는데, 너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으면 하느냐?”
이번엔 아예 대놓고 니콜라이에게 물었다.
하지만 누구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은행에서 대출금 상환을 요청하고 재촉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죠. 돈이 마른 겁니다. 정확히는 달러도 없고 금도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증거들도 많지만, 중앙은행 앞에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줄이 가장 확실한 증거일 겁니다. 그러니 달러와 금을 지금 팔아서는 안 됩니다. 더 기다려야 합니다.”
은행이 파산해 버리면 대출금을 안 갚아도 되는데 지금 왜 상환해. 어림도 없지.
그리고 지금은 9월이니 정점에 오르는 12월까진 아직 3개월이나 남았다.
“언제까지 기다리잔 말이냐?”
“아직은 팔 때가 아니라는 말씀밖엔 못 드리겠습니다. 계속 주시하다 보면 팔아야 할 때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다 끌어안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일부를 시장에 내놔야 나중에 둘러댈 수 있습니다.”
“일리가 있어. 일이 다 끝나고 난 뒤를 생각해야 한단 말이지?”
“네. 그리고 안턴 숙부님이 인수하신 철강회사는 어차피 인수한 것이니 가져가는 것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면 운영비를 확보해야 하고 기존 회사들도 돈이 필요한 시점이니 안턴 숙부님이 사들이신 달러와 금 일부를 시장에 내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일부라곤 해도 지금처럼 루블화가 폭락해 가고 있는 시점에서는 엄청나게 큰 금액이었다.
니콜라이가 오늘 처리해야 할 문제들을 이 자리에서 다 해결한 꼴이 되어 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함께 자리하고 있었지만 유리, 이반, 예고르, 니콜라이 이렇게 네 명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무거웠던 서재의 분위기가 다소 부드러워졌다.
막혔던 목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유리 유수포프의 가슴도 시원해져 있었다.
안턴 때문에 쌓였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 버렸다.
“그러면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기로 하자꾸나. 이반 너는 니콜라이가 말한 대로 처리하고 안턴이 사들인 달러와 금을 일부 처분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돈이 준비되는 대로 옐친 쪽 사람들과 약속을 잡도록 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의는 끝났다.
오늘 회의에서 유수포프 가문과 유리는 니콜라이로 인해 참으로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유수포프 가문의 비상을 위해 쏘아졌던 신호탄이 오늘은 그 빛을 더욱 발했다.
* * *
한편, 제냐와 알렉세이의 로마노프 가문에서도 가족들이 모여 회의를 했지만, 유수포프 가문과는 반대의 결론에 도달했다.
“최고회의+인민대표 회의 쪽 사람들과 약속을 잡도록 해.”
이로써 양쪽 가문의 운명이 갈리게 되었다.
* * *
시간은 흘러 4개월 후, 9월 20일.
오늘은 옐친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나오는 날이었다.
오후 1시 드디어 판결이 나왔다.
몇 달 전, 니콜라이가 신문에서 봤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는 판결문이 나왔다.
【옐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 기각.】
옐친 대통령은 기각 판결이 남과 동시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을 탄핵으로 몰고 간 최고회의와 인민대표 회의를 해산해 버렸다.
이로 인해 옐친 대통령의 8년 집권을 위한 걸림돌이 모두 사라졌다.
며칠 후, 옐친 대통령의 비서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유리 유수포프를 만나고 싶다고.
니콜라이는 이제 때가 됐음을 알고 할아버지에게 뭘 요구해야 하는지 말했다.
“네 말대로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고 돈만 전했더니 정말 저쪽에서 먼저 연락을 하는구나. 하하.”
대통령이라고 해 봤자 옐친도 사람인데. 사람 심리가 거기서 거기지.
“그래, 그러면 우린 뭘 요구했으면 하느냐? 깜짝 놀랄만한 금액이어야 한다고 해서 꽤 많은 돈을 전했다. 그러니 우리도 그에 맞는 걸 요구해야 하지 않겠어?”
“그렇겠지요.”
할아버지의 물음에 대답한 니콜라이는 요구사항을 적은 A4 용지를 쓱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