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160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160화
160 2003년 새해/할아버지들의 조언
많은 일이 있었던 2002년이 저물고 2003년 새해가 밝았다.
원 역사에서는 3월 19일,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시작했고 12월 13일에는 사담 후세인이 체포되었다.
니콜라이는 새해를 맞아 늘 그랬듯이 가족과 함께 유리 유수포프의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둘이 차에 앉았기에 이반은 아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네가 미술 공부를 하겠다고 하던 때가 떠올라서. 내 핏줄이지만 가끔 내 자식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네 어머니도 그러더구나.”
“아버지도 참. 두 분의 우월한 유전자만 물려받은 거겠죠.”
이반은 미소로 답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재계에서 네 말이 많이 나돌고 있어.”
“…?”
“러시아의 경제가 너무 블랙홀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다며 불만이 많아.”
“다른 기업들에도 기회를 많이 주고 지원도 많이 해 주고 있잖아요?”
“사람의 만족도라는 게 항상 상대적이라서 그렇겠지. 러시아 기업들이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기준이 블랙홀이 되다 보니 상대적인 무력감을 받았을 수 있을 게다.”
“국내 기업들에 신경을 더 써야겠군요.”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을 더 갖출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거야 가능하다만 네가 다 해결하긴 힘들지 않겠어. 분위기가 그렇다는 걸 말했을 뿐이니 너무 신경 쓰진 말거라.”
여태 별다른 말이 없었던 이반이 직접 이런 말을 했을 정도면 꽤 심각한 수준이란 뜻이다.
니콜라이는 안 그래도 러시아 경제가 너무 블랙홀과 유니콘 그룹에 치중됐다는 걸 염려하고 있었기에 관심을 두기로 했다.
“문화재 반환과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가 됐는데 이걸 모두 해결하자면 시간이 꽤 많이 들 텐데 괜찮겠느냐?”
“저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떤 식으로든 빨리 해결을 보려고요.”
“자하르 대통령 임기가 내년에 끝나고 우리와 전혀 다른 생각을 하는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네 행동에도 많은 제약이 따를 수 있다. 미리 준비해 둬야 하지 않겠느냐?”
자하르 대통령은 2004년에 임기가 끝나기에 이반의 말처럼 지금부터 미리 준비해 둘 필요가 있었다.
니콜라이는 그러나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자하르 대통령이 지금까지 해 놓은 성과가 있었고 그의 뒤를 이어 줄 인물도 이미 생각해 뒀기에.
“네 할아버지도 흘러가는 분위기를 알 테니 아마 나와 비슷한 걸 물을 게다.”
니콜라이가 아무리 세계를 움직이는 인물이라고 해도 이반에게는 아직도 어릴 적 애교를 부르던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아내 마리아처럼 이반도 아들이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운 것 같아 걱정되었다.
얼마 후, 차는 유리의 저택에 도착했다.
정원을 거쳐 막 현관을 들어서려던 니콜라이는 정부 고위급 인사와 마주쳤다.
이반도 그 인물을 바로 알아보았다.
“외무장관께서 새해부터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아, 안녕하십니까. 회장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셔서 새해 인사 겸 들렀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외무장관은 니콜라이를 잠깐 보더니 정원을 가로질러 밖으로 나갔다.
니콜라이는 외무장관의 방문에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지만 모른 척하고 거실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항상 보던 친척들 외에 새 얼굴들도 꽤 보였다.
유수포프 가문이 번창하다 보니 날이 갈수록 소식이 드물던 친척들까지 얼굴을 내비쳤다.
유리는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도움을 주진 않는다.
그렇더라도 가문에서 그와 같은 배분의 사람들이 부탁하면 적당히 도움을 주기도 했기에 니콜라이가 처음 보는 얼굴들이 꽤 되었다.
“어서들 오거라.”
유리의 말에 친척들의 시선이 일시에 몰렸다.
그들이 보고자 했던 인물이 온 터라 모두 눈이 빛났다.
자리에 앉자 유리의 시선이 알로나에게 향했다.
“몸조리는 잘하고 있는 게냐?”
“네.”
“소식이 없길래 나는 니콜라이가 씨가 없는 줄 알았어.”
“할아버지, 저는 이제 시작입니다.”
“허허, 몇 명이나 낳으려고?”
“데니스와 빅토리아보단 많이 낳을 겁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날 이기긴 힘들 텐데?”
데니스의 너스레에 아내가 얼굴이 발개지며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우리 남편도 만만치 않아.”
빅토리아는 벌써 두 번째 아이를 가져서 배가 불룩해져 있었다.
“자녀를 많이 낳아서 새해에 이렇게 다들 모이면 얼마나 보기 좋으냐. 나는 가족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더구나.”
가족들의 대화는 훈훈하게 흘러갔다.
몇 년 전만 해도 가문의 존망을 걱정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친척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서재로 올라가던 유리가 이반과 니콜라이를 불렀다.
“너희들은 잠깐 나 좀 보자꾸나.”
외무장관이 왔던 걸 보고 감을 잡은 니콜라이였기에 담담한 표정으로 이반과 함께 서재로 들어갔다.
“외무장관을 봤겠구나.”
“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이반의 물음에 유리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러시아가 먹고살 만해지니 이제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는구나.”
“…?”
“그 문화재 반환 문제 말이다.”
“네, 할아버지.”
“우리 문화재는 독일로부터 반환받는 중이고 다른 나라에도 반환하고 있으니 러시아의 이 문제는 해결된 것이지 않으냐?”
“그런 셈입니다.”
“그런데 네가 유럽의 다른 나라들 문화재 문제까지 관여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싶더구나.”
“그 부분이 마음에 걸리신 건가요?”
“네가 여태 잘 알아서 해 왔는데 내가 나서긴 뭐 하다만 이 문제는 네가 너무 깊이 관여한 것 같아서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더구나.”
니콜라이는 유리의 마음이 어떤지 이해가 되었다.
러시아인들이 보기엔 충분히 걱정될 수 있었고 가족과 친척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문화재 반환 문제는 각 나라에 맡겨 두는 게 어떨까 싶은데. 우리가 굳이 그들의 문제까지 해결해 줄 필요는 없지 않겠느냐? 몇몇 나라들이 반환받은 것만으로 네 역할은 충분했다 싶구나.”
“외무장관이 다녀갔던 일도 이와 관련이 있는 겁니까?”
“대통령이 내 뜻을 알고 싶었던 모양이야.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을 확인하고 네게 말하려고 했는데 이미 확인했으니 내가 말하게 된 게다.”
“대통령께서도 부담이 가는 모양이군요.”
“나라를 운영하는 입장으로선 유럽 선진국들과 괜히 마찰을 일으켜서 좋을 게 없질 않겠느냐? 비록 네가 나선 일이긴 해도 외부에서 보기엔 자하르 대통령이 깊이 개입했다 생각하겠지.”
사실 니콜라이 입장에서도 굳이 외국의 문화재까지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푸시킨 박물관 관장으로부터 얘길 듣고 진행한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 커지게 되었다.
유리의 말에 충분히 공감이 되었기에 니콜라이는 머리를 끄덕였다.
“너도 알다시피 러시아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나라가 몇 년 괜찮아졌다고 안심하다간 과거의 실수가 되풀이될 수도 있어.”
“제가 러시아 국내 상황에 더 집중해 줬으면 하는군요?”
“물론 블랙홀의 사업적인 일을 하자면 당연히 세계로 나갈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러시아를 더 탄탄히 만드는 데 집중해 줬으면 하는구나. 대통령께서 네게 말하려다가 일단 내 의견부터 물은 거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내년에 대통령 임기가 끝나니 미리 준비해야 할 테고 무엇보다 국내는 아직 새롭게 바꿔 나가야 할 것들이 많잖아. 이것들을 빠르게 해결해 줄 사람은 너밖에 없어.”
자하르 대통령과 유리 유수포프가 비록 니콜라이의 할아버지라도 이런 걸 말할 땐 조심스러웠다.
누가 뭐래도 지금의 러시아는 니콜라이의 힘으로 재건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미래의 러시아를 이끌 사람도 니콜라이가 주축이 될 거란 건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 손자가 혹시나 잘못된 길로 가지나 않을까 싶어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레 꺼낸 말이었다.
니콜라이도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다른 나라의 문화재 반환 문제는 재단 같은 걸 세워서 거기에 맡기고 너는 다른 일에 집중했으면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할아버지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도 너무 깊이 관여했다는 생각이 들긴 했거든요.”
“그래. 우리는 네 판단을 전적으로 믿지만 네가 판단을 더 잘 내릴 수 있게 이런 말도 해 줄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가끔은 일을 진행하는 당사자보다 옆에서 지켜보면 더 잘 보이는 경우가 있어서 말한 게야.”
“좋은 말씀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우리 모두를 위해서 한 말이다. 유수포프 가문과 사돈 가문은 네가 잘못되면 아주 힘든 일을 겪게 될 테니까.”
심하게 말하면 두 가문은 지구상에서 영영 사라지게 될지도 몰랐다.
러시아 최고의 정치 가문과 경제를 틀어쥐고 있는 가문이라 빈틈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순간 모두 물고 뜯으려 들 거니까.
과거, 고르바초프 서기장을 밀었다가 그가 물러나고 유수포프 가문은 큰 위기를 겪은 경험이 있었다.
자신의 대에서 가문이 사라질 뻔한 일을 겪었던 터라 유리는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마음이었다.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재단을 세우는 게 좋겠습니다.”
“내 말을 잘 들어줘서 고맙구나.”
“아닙니다. 가족들이 이런 말을 해 주면 제게 큰 힘이 됩니다. 제가 항상 바른 판단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네 판단은 늘 옳았다. 문화재 반환 문제도 옳은 판단이었고. 그 부분엔 나도 사돈도 같은 생각이었어. 그랬으니 지켜본 게지.”
“미국과 유럽 상황이 우리에게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 이때 다른 일 보단 러시아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말씀하신 거잖아요. 이해합니다.”
“그래. 나는 네가 새로운 일을 잘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마치 내가 한 것처럼 힘이 솟더구나. 사막과 열차처럼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행복할 수 있는 일들을 해 줬으면 한다.”
유리의 말을 통해 니콜라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러시아는 아직 안정된 게 아니다.
많은 불안 요소가 있고 그걸 해결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인 면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내년에 엉뚱한 인물이 대통령이 되면 러시아는 다시 소비에트 시절로 돌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니콜라이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2003년 1월 21일.
새해가 끝나자마자 니콜라이는 데니스에게 상황을 전하고 문화재 피해국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또,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일으킨 영국 기업을 본격적으로 압박하라고도 지시했다.
이에 블랙홀은 여러 방법을 사용했는데.
1. 해당 기업에 관한 기사를 언론과 인터넷에 계속 도배하다시피 할 것.
2. 해당 기업을 러시아, 영국, 한국 법원에 고발할 것.
3. 해당 기업의 주가가 떨어지면 조용히 사들일 것 등.
법으로 해결하자면 10년이 넘게 걸릴 테니 니콜라이는 그만의 방식으로 처벌하기로 했다.
니콜라이가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시장에서는 반응이 바로 나타났다.
언론과 인터넷에 이어 증권가에서도 온갖 지라시가 돌면서 안 그래도 떨어졌던 주가는 끝을 모르고 바닥으로 치달았다.
이건 영국 정부가 나서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블레어 총리는 해당 기업이 도움을 손길을 내밀었지만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그 많은 사람에게 피해 보상을 해 주게 되면 우리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합니다. 지금은 주가가 바닥을 향하고 있어서 자금을 운용하기도 힘들어지게 생겼습니다.”
“내가 주가를 끌어올려 줄 순 없지 않습니까?”
“블랙홀의 니콜라이 대표에게 협상하자고 총리께서 말씀 좀 해 주십시오.”
“그건 대표께서 말해도 될 텐데요?”
“벌써 몇 번이나 연락했는데 협상은 절대로 없다고 했습니다. 제발 이번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자기들은 수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는 살려 달란다.
아무리 영국 기업이라곤 해도, 총리는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자의 모습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시다시피 영국엔 ARM을 비롯해 블랙홀의 계열사도 꽤 됩니다. 상황이 이런지라 정부에서도 어느 한쪽 편을 들긴 어렵습니다.”
“너무 하십니다. 괜히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이러다간 정말 회사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회사의 대표는 여러 방법을 이용해 총리를 설득해 보려 했으나 총리의 답변은 변하지 않았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영국 정부마저 등을 돌렸기에 이제는 합당한 처벌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이러는 중에도 해당 기업의 주가는 1층도 모자라 지하 몇 층까지 뚫고 내려갈 기세로 떨어지고 있었다.
영국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데니스.
그는 주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이 기업의 주식을 야금야금 사들였다.
물론, 당분간은 정체를 밝히지 않으려 기존에 만들어뒀던 여러 회사를 통해서.
데니스는 확보한 지분의 숫자를 바라보며 수많은 목숨을 앗아 간 그들에게 제대로 복수할 날을 상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