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23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23화
023 서면과 남포동 부동산/초코파이 회사의 위기
서면은 부산의 젊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려드는 곳이다.
과거에는 남포동이 그 역할을 했으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서면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런 만큼 서면의 부동산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가격이 고만고만할 때.
서면 상권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태화 쇼핑 앞에서 내린 니콜라이와 샤샤는 안경점 2층에 있는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간판에서부터 연륜이 느껴지더니 안에서는 흰머리가 가득한 노인 둘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건물 좀 보러 왔습니다.”
니콜라이의 말에 등을 보이고 있던 노인이 눈은 그대로 바둑판에 둔 채 말을 받았다.
“어서 들어와요.”
“손님 왔는데 이제 그만하지?”
“그러면 한 수 물러주던가.”
오래된 소파에 앉자 바둑판에서 고개를 든 노인이 니콜라이를 지긋이 쳐다봤다.
“어허, 외국인이었구먼. 목소리만 듣고 난 젊은 사람이 왔나 했지. 그래, 건물 보러 왔다고?”
“네. 건물 통으로 나온 게 있습니까? 매매로요.”
“허어, 젊은 사람이 말 한번 시원하게 하시네. 배포가 너무 커.”
여기 부동산 가격을 생각해 보면 노인이 이런 말을 할 만도 했다.
니콜라이가 외국인이라고 해도 젊은 사람이 월세도 아니고 통 매입을 물었으니.
“여긴 통으로 나와도 웬만해선 부동산에 안 내놔. 아는 사람들끼리 주고받고 하면서 계약해버리지.”
“그러면 태화 뒤편에 있는 5층짜리 건물 정도면 가격이 얼마나 할까요?”
“어디 외국회사에서 시장조사 나온 건가?”
“그건 아니고요.”
“이봐, 김 사장. 거기가 얼마쯤 하지?”
노인의 물음에 맞은 편에 있던 다른 노인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으음. 작년 9월쯤인가 16억으로 들었던 거 같은데….”
“정확히 말해줘야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래도 대충 그 정도면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거여.”
“그렇다는구먼.”
“그러면 이 아래 안경점은 어느 정도 해요?”
“안경점은 정확히 알고 있지. 딱 1억 7천이야. 거기 사장이랑 내가 아주 친하거든.”
1억 7천이면 앞으로 IMF 사태가 터질 때까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설령 여기서 더 오른다고 해도 곧 곤두박질칠 테니 상관없었다.
“저기, 사장님.”
니콜라이가 눈살을 찌푸리며 정색했으나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안경을 끌어 올리며 물었다.
“왜? 더 묻고 싶은 거 있나?”
“근데 왜 반말하세요?”
“…!”
“제가 젊어도 손님이잖아요. 근데 왜 자꾸 반말하는 겁니까? 기분 나쁘게. 외국인은 존댓말과 반말도 모를 줄 알았어요?”
“….”
“여기선 나이 많으면 무조건 반말해도 되는가 보죠?”
“그, 그렇지? 손님한테 반말하면 안 되지? 그래, 내가 실수했구먼. 미안해.”
“미안해요. 해야죠.”
“…미안해요, 젊은이.”
노인이 겸연쩍어하며 어색하게 씩 웃었다.
니콜라이는 여기서는 별로 건질 것이 없을 것 같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려고…요?”
“수고하세요.”
가볍게 인사를 하고 나가자 뒤에서 노인의 소심한 복수 인사가 들렸다.
“그려, 조심해서 가… 요. 멀리 안 나가.”
밖으로 나온 니콜라이는 수첩을 꺼내 메모를 했다.
『할배 부동산은 X』
니콜라이는 다른 부동산에도 들렀다.
그곳은 중년의 여자가 사장이었는데, 젊은 외국인임에도 친절하고 가격도 정확하게 알려 주었다.
노인이 알려 준 가격과는 차이가 좀 있었다.
“서울에서도 그렇게 돌아다니더니 여기서도 쉴 틈이 없네. 넌 러시아 사람인데 왜 그렇게 여기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
“러시아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돈만 왕창 벌 수 있으면 되지.”
“너 대형마트에서 번 돈으로 여태껏 네가 보고 다녔던 거 다 살 수 있겠어?”
“당연히 어림도 없지.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사.”
마트 수를 계속 늘려 가야 하니까 번 돈을 재투자하면 어림도 없다.
하지만 한국에 투자하기까진 몇 년의 시간이 있으니 그 시간 동안 다른 방법으로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다 살 것처럼 물어보고 다녀? 너무 열성적이잖아. 옛날의 너답지 않게.”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냐?”
“뭘?”
“일이 성사되어서 움직이면 안 된다니까. 이미 된 것처럼 생각하면서 믿고 움직여야 하는 거야.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 같지 않냐?”
어디서 듣긴 들었는지 미간을 좁혔지만, 확 떠오르진 않는 모양이다.
“너 전에, 내가 할아버지한테 돈 받아 내서 사업할 거라고 말했던 거 기억하지?”
“…으응.”
“그때 할아버지한테 돈 못 받아 낼 거라고 하면서 사업계획만 잔뜩 세운다고 네가 말했던 거 기억나?”
“…기억나.”
“그런데 지금 어때?”
“….”
“1년도 안 지났는데 내가 말한 대로 다 되고 있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하네.”
“그러니까 여태 내가 보고 다녔던 서울과 부산의 부동산들은 이미 내 거란 말이야. 나는 미래의 내 부동산들에게 미리 인사를 다녔던 거라고.”
“말이 안 되는데 이상하게 설득되네.”
“어어, 택시! 빨리 타.”
“어디 가게?”
“남포동 가야지.”
* * *
자갈치 입구 건너편 극장가에서 내린 니콜라이는 부산극장 쪽으로 쭉 올라갔다.
여기 부산극장을 기준으로 좌우 50m쯤이 남포동에서 가장 노른자위 상권이다.
부산 상권에서 수십 년간 왕좌를 지킨 곳.
서울에 강남 불패가 있다면 부산에는 남포동 불패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비싼 땅이다.
“사람들 많다. 저긴 왜 줄을 서 있지?”
“영화 보려고 서 있나 보네. 무슨 영화 하는지 상영 표나 한번 볼까.”
1. 드라큘라.
2. 동방불패2.
3. 시티헌터(성룡).
4. 황비홍3.
이러니 줄을 길게 서 있지.
재밌는 영화는 죄다 모아놨네.
이때의 영화들은 낭만이 있고 뭔가 감성을 자극하는 맛과 오락성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CG 기술이 발달하더니 거의 화려한 영상미에 초점이 맞춰진 영화들이 주류를 이뤘다.
‘기억에 남는 좋은 영화들이 참 많았는데….’
니콜라이는 잠시 추억에 빠졌다가 샤샤의 말에 현실로 돌아왔다.
“여기서도 부동산에 갈 거야?”
“당연한 걸 왜 물어. 최소한 두 군데는 들러 봐야 시세를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인터넷 홈페이지가 활성화되어 있던 미래엔 그냥 컴퓨터만 켜면 다 알 수 있었으나, 지금은 그런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발품을 팔 수밖에 없었다.
부산극장을 지나 미화당 백화점 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백화점 맞은편 3층에 있는 부동산과 광복동 입구 쪽에 있는 부동산에서도 따끈따끈한 정보를 얻었다.
“다음에 꼭 다시 들러주세요. 아카데미 극장 쪽 상가도 제가 하니까 둘러보시고 연락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샤샤가 부산 지하철은 모스크바 지하철과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단다. 그래서 막 지하도를 내려가는데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울렸다.
이 부장이 국내에서만 쓸 수 있다고 준 핸드폰이었다.
“여보세요.”
-니콜라이 씨, 이 부장입니다.
응? 이 부장이 왜 전화를 했지?
“무슨 일인가요? 서울 올라가면 전화하려고 했는데.”
-혹시 다른 곳에서 전화 온 거 없었습니까?
“없었는데요. 왜 그러시죠?”
-이리온에서 제게 연락이 왔었습니다.
“이리온이라면 초코파이 만드는 회사 말하는 겁니까?”
-맞습니다. 급한 목소리로 니콜라이 씨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한국으로 들어와서 ‘8도’에 들렀다는 걸 거기서 어떻게 아는 겁니까?”
-저도 그 부분이 이상했습니다.
한국으로 왔다는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할아버지와 가족들과 일리야 정도만 알 뿐, 다른 사람들에겐 말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더욱 모른다.
이 회장에게 명함을 줬고 ‘8도’와 오또기 직원들만 알 뿐이다.
그런데 러시아 회사도 아니고 한국 회사가 내 정보를 알고 있어?
이건 뭔가 이상한데?
“뭐 때문에 연락처를 묻는진 모르고요?”
-그것까진 말하지 않길래 일단 제가 연락한 후에 니콜라이 씨가 허락하면 연락처를 알려 준다고 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그렇게 급히 찾는 걸 보면 회사와 관련된 중요한 일이 생긴 것일 터.
당연히….
“주지 마세요. 연락처.”
-네?
“연락처 주지 말라고요. 알리고 싶지 않은 내 정보를 나도 모르게 누군가 알고 있어서 기분 나쁘네요. 서울 올라가면 알아서 찾아오든가 하라고 하세요. 전화로는 통화하기 싫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언제쯤 올라오실 건가요?
“한 삼사일 정도 있다가요.”
-우리는 상관없지만 이리온 쪽에선 정말 무슨 큰일이 난 거 같았습니다. 목소리가 매우 긴박하게 들렸거든요.
“그건 그쪽 사정이고요. 하여튼 그 이후에 올라갈 테니까 그때 다시 봐요.”
-네, 볼 일 잘 보시고 올라오십시오.
전화를 끊자 옆에서 듣고 있던 샤샤가 물었다.
“무슨 일인데 이 부장이 전화 한 거야?”
“우리가 한국에 온 걸 아는 사람들이 있어.”
“그거야 알려고만 하면 비밀이랄 것도 없잖아.”
“비밀이랄 것도 없는데 누군가는 굳이 그걸 알아내려고 했다는 게 이상하다고.”
오성 전자 이 회장에게 다른 기업 대표들에도 연락을 좀 해달라고 말했었지만, 니콜라이가 알기로는 이 회장이 아직 연락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네. 우리 동선을 왜 알려고 했을까?”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닌 거 같아. 뭐 서울로 올라 가 보면 알 수 있겠지. 복잡한 건 다 털어내고 이젠 좀 쉬자.”
니콜라이는 삼사일쯤 후에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지만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다니면서 일주일 후에 올라갔다.
* * *
“이 부장님. 잘 계셨죠?”
“부산에서는 일 잘 보셨습니까?”
“아주 잘 봤습니다. 너무 좋더라고요. 부장님도 기회가 되시면 한번 가 보세요.”
“일 때문에 몇 번 가 보긴 했습니다.”
“일로 가면 무슨 재미가 있었겠어요.”
“하하, 맞습니다. 일에 치여서 다른 덴 신경도 못 썼습니다. 짐은 저한테 주시고 저기 주차장 쪽으로 가시죠.”
서울역에 마중 나와 있던 이 부장 일행과 함께 신라호텔에 도착하니 어둠이 조금씩 깔리기 시작했다.
방으로 들어온 이 부장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전화로 통화했던 내용이었다.
“이리온에서 아까 또 전화 왔었습니다. 한 번 만나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금 여기로 오라고 하면 바로 올까요?”
“두말 안 하고 올 겁니다.”
“그럼, 지금 오라고 하세요.”
“네.”
니콜라이는 옆에서 이 부장이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몇 번 대화를 주고받더니 전화는 끊어졌다.
“바로 온다고 합니다.”
“온다니까 기다려 보죠. 저는 일단 샤워 좀 할게요.”
국내에서 가장 좋은 호텔 방은 확실히 다르다.
방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고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30분에 걸쳐 샤워를 끝내고 나가자 두 사람이 들어와 있었다.
한 명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고 다른 한 명은 3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그런데 꼭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이다.
니콜라이는 옷을 갈아입고 그들과 마주 앉았다.
그러자 나이가 지긋한 사내가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명함을 내밀었다.
“이리온에서 해외 영업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박철 이삽니다.”
니콜라이는 예의상 명함을 잠깐 본 후 물었다.
“무슨 일로 절 그리 애타게 찾으신 겁니까?”
“회사에 큰 문제가 생겼는데 그게 니콜라이 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계속 연락을 드렸던 겁니다.”
“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 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