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일단 가입은 시켜주마/통수도 있다
총리실로 돌아온 아베 총리.
받은 자료를 다시금 한참이나 본 그는 결단을 내리고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모두 호출해.”
“네?”
“각 부처 장관들과 참모진들 모두 다 지금 당장 호출하라고.”
“알겠습니다.”
자신은 결단을 내렸지만 이걸 혼자서는 도저히 결정할 수 없었다.
3시간 후.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잔뜩 긴장해 있었다.
아베가 눈짓을 보내자 비서실장이 서류를 들어 보였다.
“먼저 앞에 있는 서류부터 읽어 보십시오. 보신 후에 모이게 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관계자들은 말없이 서류를 집어 들고 읽어 내려갔다.
“이건…?”
“흐음.”
“허어….”
아베 총리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표정도 복잡하게 변해갔다.
일본의 패악질들과 만행들
1. 731부대 마루타 실험.
대상은 한국, 러시아, 몽골인 등의 전쟁포로.
어린아이, 노인, 여성, 심지어 임산부를 대상으로 한 잔인한 실험이다.
희생된 사람은 최소 3천 명, 감염된 사람은 수만 명에 이른다.
2. 우키시마호 사건.
1945년 8월 15일, 일본으로 강제 징용되었던 약 9천 명의 한국인은 우키시마호에 실려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예정 항로를 벗어난 배에서 일본군 200여 명이 하선했고, 일본군은 한국인들을 배 밑 선창으로 내려가도록 지시.
그 후 세 번의 폭발음과 함께 우키시마호는 침몰 되었다.
이 사건으로 약 7,500명의 한국인이 고국 땅을 밟지 못했고, 이후 유가족들의 진상 규명요구도 무시되었다.
3. 관동 대학살.
1923년 일본 간토 지방에서 규모 7.9의 대지진이 발생해 약 10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
이로 인한 민란의 조짐을 차단하기 위해 일본은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폭동을 일으킨다.’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후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 결과 일본 군인과 경찰, 자경단이 무고한 조선인 6천 명을 학살했다.
4. 콘크리트로 범벅된 국보.
한국을 포함해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륵사지 석탑.
1910년에 벼락을 맞아 무너진 후 6층밖에 남지 않았는데, 1915년 일본이 석탑을 수리한다며 콘크리트로 덧씌워버렸다.
결국, 석탑은 안정성의 문제로 해체하게 된다.
일본이 덧씌운 아스팔트는 무려 185t에 달했다.
5. 뱃속 벌레를 없애는 것이 한일회담 목적.
일본 총리 요시다 시게루는 한일회담 직전에 열린 일본 국회(중의원)에서 ‘회담의 목적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망언을 내뱉었다.
‘이번 한일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본에 있는 한국인에게 일본 국적을 주지 않는 것이다. 이민족인 소수민족은 뱃속의 벌레다. 일본이 이것(벌레)을 갖지 않게 하는 것이 한일회담의 목적이다.’
6. 조선 동물.
일본은 일본인 이외의 아시아인은 미개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오사카 박람회에 조선인 2명을 전시했다.
타이완, 류큐 등에서 데려온 다른 아시아인들까지도.
7. 길목에 버려진 시신.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잔치에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
현장에서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총살형으로 사망했다.
일본군은 추운 겨울 윤봉길 의사의 시신을 공동묘지 관리소로 가는 길목에 매장했는데, 이 지점은 쓰레기 하차장이었다.
윤봉길 의사의 시신은 광복 후에야 박열이 수습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8. 창경궁 훼손.
경사가 가득한 집이라는 의미의 창경궁.
일제는 조선왕조를 말살하기 위해서 창경궁을 훼손했다.
1909년 3월 25일 궁 안에 동물원을 만들고, 식물원과 박물관도 잇따라 만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궁궐에 일본식 정자를 짓고 당시 일본 국화인 벚나무를 심었다.
1911년에는 창경궁의 이름도 ‘원(苑)’으로 격하시켜 ‘창경원’이라고 불렀다.
9. 강제징용 미국엔 사과했다.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들은 교묘한 말장난을 통해 조선인 강제징용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회피했다.
하지만, 일본 전범 기업 미쓰비시 그룹은, 전쟁포로 신분으로 노역에 동원된 미국인들에게는 직접 90도로 머리 숙여 사과했다.
10. 코 무덤(귀 무덤).
일본 교토시에 있는 코 무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전과 보고용으로 조선인의 코를 잘라 소금에 절여 보내라고 명령했다.
병사들은 1인당 3개의 코를 보냈고, 현재 교토 코 무덤에는 조선인 12만 6천 명의 귀와 코가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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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은 사람들이 서류를 내려놓자 비서실장이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그 자료는 한국 정부가 작성한 겁니다. 보신 것처럼 한국이 우리의 속국이 된 시점부터 우리가 한 일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적혀 있습니다. 근대 이전의 내용도 있고요.”
“이걸 왜 보여 주신 겁니까?”
“AAU에 받아 주는 조건으로 한국이 두 가지 요구를 했습니다.”
“…?”
“첫 번째가 쓰시마를 한국영토로 인정하라.”
“뭐, 뭐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미쳤군.”
사람들이 붉어진 얼굴로 항의하며 목소리를 높이자 비서실장이 손을 들었다.
“두 번째가 보신 내용입니다. 한국은 이 모든 내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세계에 용서를 구하라 했습니다. 그리고 국정교과서에 싣기를 요구했습니다.”
“흐음….”
“이건 너무 과한 요구요.”
“큰일 났군. AAU에 가입하지 못하면 우리는 영영 헬륨-3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게 되는데….”
웅성거림이 잦아들 때쯤 비서실장이 말을 이었다.
“이런 상황이라 여기 계신 분들의 의견을 들고자 모두 모이라고 했던 겁니다.”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한 일인데 우리가 어떻게 결정합니까?”
“두 가지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하면 국민이 뭐라고 하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안 될 말입니다.”
“맞습니다. 우리 정치 생명도 끝이에요.”
“불가능한 일이라고만 하시면 우리 일본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 못한 나라가 될 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크흠….”
그건 아니다.
아무리 자신들의 자리를 챙기려고 해도 일본이 패망하는 걸 지켜볼 순 없었다.
원폭 두 방으로 패전국이 되어 나라가 거지꼴이 됐을 때, 한국 전쟁이 없었다면 지금의 일본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다시 그 전철을 밟을 순 없었다.
그때, 얼마나 기뻤으면 요시다 시게루 총리는 한국 전쟁이 터졌다는 첫 보고를 받고 가미다나(집안에 조상신을 모신 제단) 앞으로 가서, ‘이것이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축복입니다. 부디 굽어 살펴주시기를…’이라 읊조리며 깊이 머리를 숙였다.
요시다에게 한국전쟁은 ‘축복’이었다.
그를 포함한 당시 일본인들은 한국 전쟁을 가리켜 ‘구원의 신’ 또는 ‘가미가제’라고 반겼다.
전쟁 특수는 패전 뒤 불황에 허덕이던 일본경제를 되살렸다.
한국 전쟁이 터지기 전까진 해마다 3억 달러의 적자를 보이며 불황에 허덕였으나, 1950년 말 4,000만 달러의 흑자로 돌아섰으니까.
외화보유액도 크게 늘어났다.
일본의 패망을 두고 볼 순 없었지만, 참모들과 장관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게 5분여가 흐르자 아베 총리가 나섰다.
“오늘 결정해야 합니다. 결정이 나지 않으면 아무도 회의실을 나갈 수 없어요.”
“총리 각하. 이런 걸 우리가 어떻게 결정을 합니까?”
“흐음… 먼저, 첫 번째 요구인 쓰시마 말이오. 그건 한국에 증거들이 많으니 저번에 문화재를 반환했던 것처럼 처리하면 어떻겠어요?”
“우리가 그렇게 하겠다고 해도 국민이 이를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니 받아들이게끔 만들어야지요. 러시아가 고비와 동북 3성을 특별 자치구로 했던 걸 모방해 보면 어떻겠어요?”
괜찮은 방법이다.
명백한 증거 때문에 반환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정 기간을 두고 서서히 반환하는 거로 하면 국민의 반발도 잦아들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으로선 이게 최상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반발심이 심하겠으나 처음부터 한국영토로 완전히 넘겨주는 것보다는 나을 듯 싶습니다.”
“맞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국민도 서서히 받아들이게 될 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머리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기에 아베 총리는 만족한 미소를 보였다.
“좋아요. 그러면 첫 번째 요구안은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합시다. 이제 두 번째가 남았는데….”
“두 번째 요구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국정 교과서에 이런 내용을 넣어야 한다는 거잖습니까?”
“맞아요.”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게 아니라 이번 기회를 우리 일본의 이미지 쇄신 기회로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이미지 쇄신?”
“네. 독일도 나치가 일으킨 만행들을 일부 인정하고 사과했으니 우리라고 못 할 건 없을 듯합니다.”
“나치가 한 일들에 비하면 우리는 신사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내무대신은 호응을 바랐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낯이 뜨거워서 차마 대답하지 못한 것.
“알겠어요. 그러면 두 번째 요구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정됐군요. 모두 인정하지요?”
“네.”
“이 자리에서 확실히 말하지만 우리는 일본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이오. 이 점을 꼭 기억하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생존을 위한 일본의 몸부림.
그들은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번 결정이 과거 한국 전쟁의 특수를 뛰어넘는 이익을 가져오길 기대하면서.
하지만 국제사회의 일은 모르는 법이다.
특히, 러시아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면 더욱.
일본으로부터 두 가지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들었기에 한국 대통령은 러시아로 향했다.
모스크바 크렘린궁.
한국 대통령이 일본과 있었던 얘기를 쭉 풀어놓자 니콜라이는 예상했던 것과는 반대의 표정을 지었다.
러시아에 미리 통보하지 않고 일본과 담판을 지었던 터라 어느 정도는 기분 나빠할 줄로 알았는데.
“하하, 잘하셨습니다. AAU 가입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일본이 하던 대로 해줘야죠.”
“…?”
“약속은 지킬만한 사람과 나라에 지켜야 하는 겁니다.”
“그 말씀은 혹시…?”
“한국이 요구한 것을 실행하겠다고 했으니 AAU에 가입은 시켜 줄 겁니다. 하지만 AAU에는 탈퇴도 있습니다.”
“아!”
“뒷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일본에 통보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우린 한국과 오랜 혈맹국이 되길 희망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회의를 마친 두 정상은 기쁜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한국 대통령은 정말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물었다.
“대통령께서는 몇몇 국가들은 상당히 좋아하시면서 왜 유독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과 미국은 싫어하시는 겁니까? EU도 그렇고요.”
“그렇게 보였나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정상들도 그렇게 봤을 겁니다.”
“이유 없이 싫은 사람이 있듯이 이유 없이 싫은 나라도 있겠죠.”
명백한 이유가 있지만 그걸 다 말하긴 그렇다.
“그렇다고 이유가 없는 건 아닙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그 나라들은 모두 침략질을 일삼았고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약소국들을 짓밟았던 전력이 있어요.”
“그렇긴 합니다.”
“러시아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세계평화에 이바지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 나라들은 전혀 그러지 않았지요. 법이 있지만 아무도 그런 나라들을 심판할 수 없으니 우리 러시아가 한 겁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도 마찬가지고요.”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한국은 이제 세계 3위의 강대국으로 올라섰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약소국들을 잘 챙겨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한국은 러시아를 따르고 모방하면서 지금의 위치까지 올랐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니콜라이 대통령의 말이라면 두말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대통령께서 물러나시더라도 잘 운영되는 한국이 되어야 할 겁니다.”
“….”
“러시아도 내가 물러나게 되면 어찌 될지 모르지요. 그래서 저는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일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
“이번 3번째 선거가 끝나면 진행할 테니 지켜보셨다가 대통령께서도 진행했으면 하는군요. 힘든 싸움이 되겠지만 반드시 해내셔야만 합니다.”
“알겠습니다.”
니콜라이는 자신이 떠난 후가 걱정되었다.
그 강하던 몽골 제국과 로마제국을 뛰어넘어 1000년을 이어가는 러시아가 되길 희망했다.
그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을 추진키로 한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간 대통령은 일본과의 협상을 원만히 끝냈다.
동시에 아베 총리는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한국의 두 가지 요구 내용을 세계에 발표했다.
“우리 일본은 한국이 제시한 수백 가지의 증거 자료에 근거해 쓰시마를 한국의 특별 자치구로 지정키로 했습니다. 쓰시마는 3년간 자치구로 운영되다가 3년 후부터는 한국의 영토로 편입될 것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생방송 속보로 나가는 기자 회견이라 온 세계가 이를 지켜보며 경악했다.
일본 국민은 당연히 강력히 반발했다.
“쓰시마를 누구 마음대로 한국에 준다는 거요? 그럼 우리 쓰시마 주민들도 한국 국민이 되어야 한다는 거야 뭐야?”
“이렇게 큰일을 정치인들 마음대로 정해도 되냐?”
하지만 일본은 국민이 아무리 항의해도 정치인들이 결정해 버리면 그만인 나라였다.
“그리고 기자분들께 나눠드린 서류에 있는 내용을 모두 인정하며, 과거 우리로 인해 크나큰 피해를 입은 나라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피해 보상을 다시 시작할 것이며 이런 사실들을 모두 초, 중, 고와 대학교 국정교과서에도 싣도록 할 것입니다.”
정말 파격적이고도 충격적인 발표였다.
일본이 이런 발표를 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일본으로 인해 과거의 아픔을 가지고 있던 나라들은 역사의 아픔을 치료할 수 있게 되자 감동에 휩싸였다.
“이번 결정은 이웃 나라 한국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면서 AAU 회원국이 되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내렸으니, 국민께서도 일본의 미래를 위해 겸허히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베 총리의 발표는 과거 일본과 깊이 관련된 많은 국가의 여론을 뒤흔들어 놓았다.
늘 그렇듯 이슈는 이슈에 묻히는 법.
이번 일도 세계에서 여러 일들이 터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조용해져 갔다.
그러던 중 러시아에서는 니콜라이의 세 번째 대선이 진행되었는데….
-재임에 성공하면서 니콜라이 대통령께서는 총 14년 6개월간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소비에트와 러시아 연방을 통틀어 최장수 대통령이 되시는 건데요. 일각에서는 니콜라이 대통령이 독재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지 우려의 눈빛을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못을 박았습니다. 재임 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요.
대통령의 임기는 절대로 바꿀 수 없게 법으로 만들어 두었다.
그러니 니콜라이처럼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10년이 끝이었다.
취임식을 간단하게 마친 니콜라이는 참모진들을 모두 불러 모은 후 중대 발표를 했다.
“지금 발표할 내용은 여러분들과도 깊은 관계가 있고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
“제가 수많은 고민을 하고 내린 결단이니 많은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니콜라이가 뒤의 화면으로 향하자 자료들이 떴다.
내용을 쭉 읽어 본 측근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