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33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33화
033 여기에 다 쏟아부으리/유적지
설계사는 소비에트 연방 때 이름을 날렸던 ‘막심 바이링킨’과 ‘알렉산드르 로체코프’였다.
그런데 이 둘은 3,000세대도 적단다.
“그러면 몇 세대가 적당할 것 같아요?”
니콜라이의 물음에 경력이 더 많은 막심이 대답했다.
“회장님께서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유니콘 건설의 얼굴이 될 수 있는 첫 아파트니 제대로 지으라고요. 제 생각엔 5,000세대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5,000세대?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리던 한국에서도 흔치 않은 세대수였다.
한국에서 최대규모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헬리오시티(9,150세대).
2위. 송파구 신천동 파크리오(6,864세대).
3위. 송파구 잠실동 엘스(5,678세대).
4위.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5,563세대).
5위.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선수기자촌(5,540).
이런 대단지 아파트를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가 인접한 곳에 짓자?
우수리스크 인구가 17만 명.
블라디보스토크는 93만 명.
합치면 110만이니 적은 인구는 아니었다.
두 도시에서 빨아들이고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과 공장 근로자까지 생각하면 5,000세대도 많다고는 할 수 없다.
니콜라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5,000세대로 갑시다.”
세대수가 정해졌으니 이번엔 층수를 결정해야 했다.
러시아 아파트는 소비에트 연방이 주택 문제를 해결코자 대량으로 보급한 ‘규격형 아파트’다.
이를 ‘흐루숍카’ 또는 ‘브레즈넵카’라 하는데 대부분 5층짜리였다.
국토가 워낙 넓다 보니 그리 지은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단지가 쾌적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의 아파트보다 더 붙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만큼 쾌적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주차장이 죄다 지상에 있다 보니 더욱 그랬다.
“층수는 35층으로 했으면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지금까지 지은 것 중 가장 높은 아파트는 1981년부터 잠깐 공급하다가 중단된 22층짜리였다.
그랬기에 35층은 아직 이들이 경험해 본 적 없는 층수였다.
“우리가 소비에트 연방 때 거의 5층짜리만 설계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
“그때 당시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빨리 지어라.’라고 해서 그렇게 지을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두 설계사가 과거를 회상하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가능하단 얘기죠?”
“35층까지 올리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닙니다. 단, 자금만 충분히 뒷받침되면요.”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 아파트에 모든 걸 다 쏟아부을 생각이니까요.”
세대수, 층수가 정해졌으니 이번엔 어떤 난방 시스템을 쓸지를 결정해야 한다.
“난방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셨어요?”
“기존에 하던 대로 중앙난방이 좋을 듯합니다.”
“그건 저도 같은 생각인데 조금 다르게 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을 말입니까?”
“이 아파트엔 라디에이터를 안 넣을 겁니다.”
“안 넣는다면…?”
“바닥 난방으로 할 생각입니다.”
“아! 바닥 난방이라면 혹시… 코리아의 온돌을 말하는 겁니까?”
막심의 얼굴에 감탄이 떠올랐다.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국가들의 난방 시스템은 효율성이 너무도 떨어졌다.
한국은 ‘온수관’을 데워서 바닥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러나 러시아와 유럽국가들은 벽에 붙은 ‘라디에이터’를 사용해 실내 공기를 따뜻하게 만든다.
이 라디에이터를 쓰면 바닥이 차가울 수밖에 없기에 찾은 대안이 카펫과 슬리퍼였다.
라디에이터는 보온성을 떠나 청결함을 유지할 수 없다는 큰 단점도 있었다.
카펫을 거의 안 쓰는 한국도 먼지가 매일 한 움큼씩 나오는데, 카펫을 쓰면서도 카펫 청소를 매일 하지 않는 나라들은 어떻겠나?
거기다 신발을 신고 안으로 들어가는 나라도 있으니.
이건 사람들의 건강과도 직결되는 문제였기에 니콜라이는 바닥 난방을 도입하고자 했다.
그런데, 러시아 기술자인 막심이 온돌을 알고 있을 줄이야.
“온돌을 압니까?”
“사할린에서 사용해 본 적이 있는데 바닥이 정말 따뜻하더군요.”
“건강에도 최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앙난방을 쓰지만 각 집에서 개별적으로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방들도요.”
러시아 중앙난방 시스템은 난방이 되는 시간엔 따뜻하다가도 열을 보내지 않을 땐 금방 추워진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인들은 영하의 날씨 때문에 감기에 드는 것이 아니라 자다가 감기에 걸리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코리아에 ‘경도 보일러’라는 전문 회사가 있으니까 거기에 연락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미리 연락해 두죠.”
“알겠습니다. 러시아에 이런 식의 난방을 도입하는 건 처음인데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아마 기절초풍하겠지.
온돌 시스템을 맛본 러시아인들은 다시는 라디에이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층 높이를 가능한 최대로 높이세요. 내/외벽 두께도 기존보다 두껍게 하면서 단열과 소음을 최대한 잡아야 하고요. 옛날 아파트들이 소음 때문에 얼마나 문제가 많았는지는 두 분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크흠… 부끄럽습니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아파트들의 상당 부분을 두 사람이 설계했기에 이러는 거다.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건 없었다.
공사비를 턱없이 적게 줬으니 그렇게 지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니콜라이는 한국에서 봤던 최신식 아파트들의 장점을 하나하나 나열해 나갔다.
1. 단지 내에 어린이집 건물을 별도로 크게 여러 개 만들 것.
2. 단지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 건립.
3. 노인들을 위한 복지관을 만들 것.
4. 운동시설(헬스장).
5. 실외 수영장(겨울, 스케이트 장으로 사용).
6. 동마다 경비실(러시아 대부분 없음).
7. 아파트 관리사무소(러시아 없음).
8. 지상은 모두 공원으로.
9. 외벽에 단열재 최대로 사용.
10. 바닥에 방음재 시공.
11. 동간 거리 최대 80~120m.
12. 베란다 광폭 2m.
13. 지하 주차장.
14. 3중 페어글라스 PVC 시스템 창호.
15. 빌트인: 냉장고, 식기세척기, 오븐, 전기레인지(인덕션).
16. 코리아 내부 평면도 스타일….
내부 평면도는 니콜라이가 기억하고 있는 미래의 최신식 아파트 평면도를 손으로 대략 그려주었다.
창호는 독일제를 쓰기로 했고, 러시아에 없는 기술자들은 외국에서 데려오는 것으로 했다.
“넓이는 두 가지 유형으로 하세요. 115㎡(35평)와 148㎡(45평)로요.”
러시아 옛날 아파트들은 15~20평 내외여서 최대한 키우기로 했다.
이때의 러시아 가족 수는 보통 5명이었다.
35평형: 방 3개에 화장실 2개.
45평형: 방 4개에 화장실 2개.
화장실은 러시아 스타일인 건식으로 정했다.
습기와 곰팡이 문제 때문에.
“내부 장식은 모두 우리가 하는 것으로 하죠.”
“뼈대만 지어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일괄적으로 말입니까?”
“네.”
여기는 뼈대만 지어 주고 내부 장식은 개인이 해야 했다.
러시아에는 인테리어 가게들이 참 많았다.
이건, 집을 직접 꾸미는 걸 좋아하는 러시아인들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부분을 그대로 수용할 순 없었다.
“개별적으로 하게끔 놔뒀다간 몇 년 동안 공사 소음이 멈추질 않을 겁니다.”
“맞습니다.”
“입주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질 수 있게 각 평형당 실내 장식 유형을 30개씩 만드세요. 그러면 큰 불만은 없을 겁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니콜라이는 아파트를 짓겠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큰 고민거리가 있었는데,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을 최근에야 알아낼 수 있었다.
“단지 내에 쌓이게 될 눈 말입니다. 이걸 처리해야 하는데 말이죠.”
“저도 그 부분을 깊이 생각해 봤는데 제설차로 치우는 방법밖엔 없었습니다.”
“아니죠. 중앙난방을 사용하게 되면 열이 지하를 통해 아파트 내부로 들어오게 되니까, 그 열을 이용해서 아파트 단지 안에 쌓인 눈을 녹이는 건 어떻겠어요?”
“아, 그런 방법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전문가들과 일단 검토해 봐야겠지만 제 생각엔 가능할 거 같습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여태껏 듣고만 있던 알렉산드르도 기발한 생각이라는 듯이 긍정을 표했다.
“정말 기발한 생각입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아파트에 대해서 어떻게 그리 잘 아는 겁니까? 지금까지 말씀한 것들은, 수십 년간 이 업종에서 일한 우리도 처음 듣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주거 공간에 관심이 무척 많아서 여러 나라의 아파트를 깊이 공부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런 수준은….”
알렉산드르가 더 말을 하려고 하자 막심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게 뭐 어쨌다고 그리 따지듯이 물어? 사장님이 이렇게 좋은 아파트를 지으면 모두에게 좋은 일인데.”
“….”
막심의 구박에 그는 무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아파트 근처에 ‘다차’도 만들어야 합니다.”
“아, 그래서 아파트 주변 땅이 그렇게 넓었던 거군요?”
“네. 다차가 없으면 아파트를 답답해할 수 있거든요. 시간 날 때마다 다차에서 채소도 가꾸고 머리도 식히고 해야죠.”
니콜라이는 이렇게 설계사와 의견을 나누면서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지워 나갔다.
* * *
우수리스크 공업단지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일대는 사람들로 북적대기 시작했다.
여기에 들어온 한국 식품 육가공 회사가 55개나 되어서 직원이 만 명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가장 큰 불편으로 꼽힌 게 바로 집이었다.
직원 대부분이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 중인지라 아직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이 더 들어오면서 직원 수가 늘면 문제가 커질 소지가 있었다.
그랬기에 아파트는 반드시 지어져야 했다.
한편, 니콜라이는 아버지 이반과 모스크바에 새로 짓고 있는 U마트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두 개를 더 지으면 모스크바엔 총 다섯 개가 되니까 당분간은 딱 좋습니다.”
“당분간은?”
“사람들의 소득 수준이 올라가면 더 지어야죠.”
“그렇겠구나.”
“상트페테르부르크 현장은 어떻나요?”
“지금 나한테 보고를 하란 것이냐?”
이반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묻자 니콜라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버지가 책임잔데 누구한테 물어요.”
“잘 되고 있다. 거기 시장이 많이 도와줘서 큰 문제는 없어. 우수리스크 공업단지와 아파트는 어떠냐?”
“코리아 기업들이 소문을 듣고 연락을 많이 해 오고 있습니다.”
“아마 관세 때문일 거야. 옐친 대통령이 개별특구 지역으로 지정해서 세금 감면 혜택이 크니 말이다. 조만간 FTA까지 체결되면 더 많이 오려 하겠어.”
“그런 면도 있지만 여기서 만든 것들을 육로를 통해 중국으로도 팔 수 있으니 그 부분까지 생각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중국 경제가 우리 러시아만 못하더라도 인구가 10억이 넘으니 그 시장을 무시할 순 없었겠지.”
니콜라이는 이반을 오랜만에 만났기에 궁금한 것들은 모두 물어보았다.
“인터넷망 사업은 얼마나 진행됐습니까?”
“네가 말해던 대로 모스크바부터 깔기 시작했는데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가고 있어.”
“이 사업은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하는 거라, 어쩔 수 없습니다. 조금만 더 투자하면 결실을 보게 될 겁니다.”
블랙홀이 힘을 쓰려면 인터넷망 설치는 필수다.
그랬기에 니콜라이는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다.
“어차피 장기적으로 생각한 것이니… 그런데 데니스는 왜 영국에 보낸 것이냐?”
“투자 회사를 하나 만들려고요.
“투자 회사?”
“네, 그러자면 외국에서 제 일을 책임져 줄 사람이 있어야잖아요.”
이반이 니콜라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네 나이에 지금까지 이룬 것들만 해도 놀라운 일인데 또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다니. 네 머릿속엔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별말씀을 다 하세요.”
“참, 며칠 전에 네 외숙부를 만났다.”
세르게이 외숙부를?
세르게이는 옐친의 최측근이 되어서 지금은 상당한 힘을 가진 상태였다.
거기다 유리 유수포프가 자금력을 동원해 더 밀어주고 있다 보니 최측근 중에서도 핵심 인물로 분류될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세르게이가 그러더구나. 아버지와 자신을 왜 옐친 옆에 붙였는지 처음엔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다고. 나중에 시간이 되면 외숙부를 따로 한번 만나봐라. 네게 할 말이 많은 것 같으니.”
“그럴게요.”
“그리고….”
이반이 잠시 머뭇거렸으나 곧 말을 이었다.
“네가 방황하고 있을 때 큰 힘이 되어 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오늘은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아버지….”
“우리가 일 때문에 만나긴 했어도 관계가 서먹했던 터라 내심 많이 불편했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서로가 마음을 좀 더 열었으면 한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그래. 그거면 됐다. 오늘은 집에 꼭 들렀다 가거라. 네 어머니가 너 온다고 아침부터 음식을 잔뜩 만들었어.”
“그럴게요.”
* * *
1994년은 러시아인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한 해였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옐친 대통령은 체첸과의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해 갔다.
그러다 결국은 전쟁이 터져 버렸다.
제1차 체첸 전쟁의 시작이었다.
니콜라이는 이때, ‘다차’가 들어서게 될 외곽 지역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는 현장 소장의 연락을 받았다.
곧바로 현장으로 간 그는, 일단 굴착기를 뒤로 물리고 땅에서 나온 것들을 보다가 흠칫했다.
‘흐음. 이곳에 발해의 유적들이 대거 묻혀 있을 줄이야….’
아파트 현장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이라 문제가 될 건 없었지만 한국엔 알려야 했다.
1994년 12월 초에, 한국과 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을 일이 우수리스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