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42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42화
042 행보관 니콜라이/베트남에 가려다 러시아로
국가 기준, 세계 8위의 면적인 사하 공화국.
이 엄청난 면적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100만이 되지 않았다.
영하 55도까지 내려가는 극한의 추위 때문이다.
때문에 러시아인들이 이곳을 부르는 다른 이름이 있었으니.
버려진 땅.
오랜 세월 동안 사하 공화국은 그렇게 불렸다.
그런데 그 버려진 땅에서, ‘금’에 견줄 수 있는 지하자원이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두 종류나.
가스만 터져도 한 국가의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거늘, 동시에 원유까지 나왔다.
러시아인들은 이제 사하 공화국을 다르게 불렀다.
축복받은 땅이라고.
이로 인해, 돈을 벌고자 러시아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가스와 원유가 함께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러시아를 뒤흔듦과 동시에, 가스프롬에서 직원 모집 광고를 냈기 때문이었다.
* * *
사하 공화국 도심 식당가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가스프롬에 가는 겁니까?”
“저뿐만 아니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겁니다.”
“엄청나게 몰려들 오는군요. 직원을 얼마나 뽑는답니까?”
“먼저 1차로 2,000명 정도 뽑는다네요.”
“한 번에 그만큼이나 뽑다니 대단하군요.”
“나중엔 더 많이 뽑을 수도 있답니다. 그래서 미리 접수해 놓으려는 사람들도 많더라고요.”
둘의 대화에 뒤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사내가 물었다.
“오다가 들으니까 숙소가 마땅치 않다고 하던데… 미혼들은 그렇다지만 결혼한 사람들은 어디서 살아야 하는 거요?”
“아파트를 몇천 세대나 짓는다고 들었습니다.”
“허어, 몇천 세대나요?”
“그렇게 들었습니다. 1년 반 정도만 있으면 입주가 가능하답니다.”
“그럼 지어지기 전까지는 알아서 머물 곳을 찾아야 하겠군요.”
이들에게도 가장 큰 문제는 집이었다.
니콜라이도 이 부분을 꼭 해결해야 함을 알았기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사하 공화국에 불려 온 유니콘 건설 부사장은 니콜라이의 지시에 혀를 내둘렀다.
“기술자들은 물론 일반직 인부들도 모두 받아들이세요. 기술자들이 모자라면 독립 국가 사람들을 받아도 됩니다. 사하 공화국 현장을 최단기간에 완공할 계획이니까요.”
독립 국가들은 러시아와 다시 합쳐져야 할 곳들이다.
니콜라이는 언젠가 꼭 그렇게 만들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그 나라 국민이라고 차별할 이유가 없었다.
“얼마나 당기실 생각입니까?”
“반년은 더 앞당겨서 1년 안에 끝내야겠습니다.”
부사장도 1년 안에 끝내는 게 가능하다는 건 알았지만 문제는 인원이었다.
급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뽑아 댈 순 없는 노릇이기에.
“그렇게 많은 인원을 뽑아놔도 되겠습니까? 여기 공사가 끝나면 다른 현장으로 보낸다고 해도 인원이 남아돌게 될 텐데 말입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론, 러시아 전역에 지을 건데 왜 남아돌아요?”
“아, 선발대회 때 하신 말씀 말입니까?”
“맞습니다. 아파트를 시작으로 다리, 도로, 공공건물 등 다양한 건설 사업을 벌일 겁니다. 그러니 기술자들을 우대하되 일반직도 다 받아들이세요.”
이런 이유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리고 조만간 가스관을 만들 생각이니 이 분야 전문가들도 많이 영입해야 합니다.”
“가스관이라시면…?”
“가스를 국내에서만 소비하기엔 한계가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배를 이용하면 운송비가 만만치 않으니 아예 유럽으로 가스관을 이으려는 겁니다.”
원 역사에서는 이를 ‘노르트스트림’이라 불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도시인 비보르크와 독일의 그라이프스발트로 이어진 가스관을 두고 한 말이다.
이 말은 독일어 발음이며 러시아어로는 ‘세베르니 포토크’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위치가 달랐다.
“아, 벌써 거기까지…?”
“팔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팔아야죠. 최대한 빨리 준비하세요.”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부사장은 돈에 대한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그도 당연히 가스프롬의 주인이 니콜라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리고 우수리스크 아파트 내 단지처럼 도로에 내린 눈이 쌓이거나 얼지 않게 해야 합니다. 1년 내내 차량 운송이 막혀선 안 된다는 겁니다. 이점 특별히 신경 쓰세요.”
“알겠습니다.”
부사장과 함께 밖으로 나온 니콜라이는 현장을 돌며 부족한 점들을 일일이 챙겼다.
“직원 개개인이 숙소를 찾는 게 쉽진 않을 겁니다. 회사 차원에서도 알아봐 주세요. 1년간이라면 월세를 일부 지원하는 것도 괜찮고요.”
“논의해 보겠습니다.”
그러는 한편, 벽돌을 나르는 직원들의 복장을 본 니콜라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방한복을 안 입고 일하는 사람들은 뭐죠?”
“일반 인부들인데 나눠 줄 방한복이 없습니다. 직원들도 소비에트 연방 때 보급받았던 걸 지금까지 입고 있는 실정이라….”
“그런 일이 있으면 보고를 했어야죠. 저런 옷을 입고 일하다가 몸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요? 이런 걸 부사장이 안 챙기면 누가 챙깁니까?”
“…죄송합니다.”
우수리스크 현장은 니콜라이가 상주했었기에 바로 시정조치를 했지만, 이 현장은 그렇지 않았기에 손볼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방한복, 안전화, 안전모를 당장 새것으로 교체하세요. 모자라는 일 없게 넉넉히요. 장갑도 모두 지급하고요. 앞으로 이런 기본적인 건 먼저 처리하고 뒤에 보고해도 됩니다.”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학교 용지 지반공사를 하는 곳으로 간 니콜라이는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중장비들이 왜 이렇게 모자라는 거죠? 최대한 많이 확보하라고 지시했을 텐데요?”
“전국에서 들어오곤 있는데 도로 사정이 워낙 안 좋아서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런 사정까지 헤아려서 미리 지시했던 거 아닙니까?”
“현장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서 세세히 신경을 못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니콜라이가 발길이 닿는 곳마다 지적하다 보니 부사장은 영하의 날씨에도 진땀을 뺐다.
저번 우수리스크 현장에서도 정신없이 휘몰아쳤었는데 여기서는 더하는 것 같았다.
부사장은 니콜라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나이가 젊어서 뭘 알겠나 싶었지만 웬걸.
건설 밥을 수십 년 먹은 자신보다 더 세세히 아는 모습에 기가 질렸다.
생전 처음 보는 기발한 것들을 설치하는 데에서는 신비롭게 보이기까지 했다.
“다른 현장에서 같은 실수가 반복되면 그땐 각오해야 할 겁니다.”
“….”
“그리고 함량이 높은 종합비타민을 대량으로 구매할 방법이 있는지 한번 알아보세요.”
“그건 어디에 쓰시려고요?”
“음식만으로는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 못할 수도 있잖아요. 힘쓰는 일인데 칼로리가 얼마나 많이 소모되겠습니까, 안 그래요?”
“맞는 말씀입니다.”
“식당에는 항상 소금을 놔두세요. 땀을 많이 흘리는 직원들에게 필요할 겁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니콜라이는 그 후로도 다섯 시간을 더 돈 후에야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샤샤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떨 때 보면 너도 참 독한 면이 있다니까. 나이 50인 부사장을 초짜 다루듯이 하는 걸 보면.”
“나이가 많고 적고가 무슨 상관이야? 날 대신해서 현장을 책임지려면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일이 벅차다고 생각되면 옷을 벗든가.
“건설 밥 오래 먹은 사람들은 보통 겉으론 듣는 척해도 뒤돌아서면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널 보면 그런 건 없는 것 같단 말이야.”
“내가 바른말만 하고 우기는 게 없으니까 그렇지. 또 대부분 직원들을 위한 거잖아.”
“그렇더라도 아까 부사장님이 아들뻘밖에 안 되는 너한테 혼나면서 땀 닦는 거 보니까 조금 안되어 보이긴 하더라.”
사장이 솔선수범하는데 부사장이 개긴다?
회사 그만 다니고 싶다는 말이다.
부사장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세세히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수리스크 현장에서 부사장의 성향을 파악했었기에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말했던 거였다.
오늘 지적한 사항들은 완벽히 처리되어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그렇게 현장을 꼼꼼히 돌며 개선점들을 일일이 지적한 니콜라이는 샤샤와 함께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 * *
서재에서 반가운 손님을 맞은 유리 유수포프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그때가 후계자 수업을 받던 시기였군요. 선친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어요. 허허.”
“그때보다 더 정정해지신 것 같습니다.”
“이제 기력이 딸려서 오래 앉아 있기도 버거울 정도예요.”
유리와 마주 앉은 사람은 한국의 오성전자 이 회장이었다.
안부를 묻고 십여 분간 환담하다 유리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칼루가에 공장을 지으려 한다고요?”
“네, 원래는 베트남 호찌민에 TV 공장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93년에 입국한 니콜라이를 통해 뜻밖의 말을 듣게 되면서.
“러시아가 WTO에 가입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베트남에 들어가려던 그 시점에 FTA까지 체결되는 걸 보고 칼루가에 공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유리는 WTO와 FTA를 니콜라이가 시작한 거라는 걸 알려줄까 하다가 그러지 않았다.
쉽게 믿을 것 같지도 않았지만, 국가적인 일에 괜히 손자를 끼워 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루가면 공장을 짓기에 괜찮은 곳이지요.”
칼루가는 모스크바와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도시였다.
유럽으로 이동하기 좋은 위치라 원 역사에서도 오성전자가 이곳에 공장을 세웠다.
지금은 그때보다 무려 10년이나 앞서 들어왔다.
“저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무척 반기시지 않던가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랬겠지요. 외국 기업들을 유치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시거든요. 하면, 칼루가엔 TV 공장을 짓는 건가요?”
“반도체 공장도 함께 지을 계획입니다.”
“허어, 규모가 엄청나겠습니다.”
“공장이 들어서면 직원 수만도 3만 명이 넘게 될 겁니다. 당연히 모두 현지에서 채용할 거고요.”
러시아인들의 일자리가 3만 개나 생긴다는 말에 유리는 더욱 환하게 미소 지었다.
“만일 그날, 손자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 오성전자는 베트남으로 갔을 겁니다.”
“이것도 다 하늘의 뜻이 아닌가 싶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 니콜라이를 통해 보내 준 선물 잘 받았습니다. 너무 좋은 걸 보내셨더군요. 고맙습니다.”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분위기가 더욱 훈훈해지자 이 회장은 궁금한 게 있었기에 그 부분을 넌지시 꺼냈다.
“러시아에 도착하고 유니콘 그룹에 관한 얘기를 참 많이 들었습니다.”
“어떤 얘기들이 들리던가요?”
“U마트와 우수리스크 아파트에다가 최근엔 가스프롬 때문에 떠들썩했다더군요.”
“아, 그런 일들이 있긴 했었지요”
“100년 사업을 이루시게 된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00년간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사업이라는 말이었다.
유리도 이 말에는 수긍했기에 머리를 끄덕였다.
“유니콘 그룹의 계열사들이 맞긴 한데 내가 한 일들이 아닙니다.”
U마트와 아파트 사업도 놀랍긴 했지만, 가스프롬을 인수한 일은 다시 생각해도 아찔했다.
며칠만 늦었어도….
‘외국에 팔렸을 테지.’
만일 그때 잡아채지 못했다면 샴페인을 터트린 쪽은 독일 기업이었을 것이다. 니콜라이가 아니라.
유리 유수포프는 손자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할아버지, 가스프롬이 가스와 원유를 발견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던가.
엔간해선 놀라지 않는 그였지만 이때만큼은 마치 젊은 시절 100m를 전력 질주한 것처럼 심장이 널을 뛰었다.
단점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손자 생각에 젖어 있던 유리는, 이 회장의 물음에 현실로 돌아왔다.
“회장님께서 하신 일들이 아니라면 대체 누가…?”
“2년 전에 만나 본 적이 있잖습니까. 코리아에서요.”
2년 전 한국이라면?
“…손자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요. 그것들은 모두 니콜라이가 성공시킨 사업입니다. 나는 특별히 한 게 없어요.”
“….”
이 회장은 이 말의 진위를 파악하려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니콜라이는 이제 고작 20대 중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 나이에 사업을 알면 얼마나 알 것이며, 설혹 안다고 해도 러시아를 떠들썩하게 한 사업들의 주인공이라고 하기엔….
‘그런데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 회장의 표정만 보고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 유리가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 다들 못 믿겠다는 얼굴을 하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나도 안 믿길 때가 많지요.”
“다른 회사들은 그렇다 쳐도 가스프롬은 앞으로 러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이름을 떨치게 될 회산데. 그런 회사의 주인이 니콜라이 군이라니….”
“니콜라이 말을 빌리자면 앞으로 돈을 긁어 담을 일만 남은 거지요. 허허.”
“정말 그렇습니다. 가스와 원유를 뽑아내는 회사의 주인이 된 것이니까요.”
이 회장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들겨 보았다.
가스프롬의 순이익은 낮게 잡아도 오성전자를 넘어설 것 같았다.
이제 막 가스와 원유를 뽑아 올리고 있어서 낮게 잡은 것이지만 본격적으로 뽑아내면 차이는 극명하게 벌어질 것이다.
이 회장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해짐을 느꼈다.
‘무서운 일이군.’
이런 사람이 있었는가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그때, 바깥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그래, 들어오거라.”
집안일을 하는 사람도 함께 들어와서 밀키스 세 캔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려놓고 나갔다.
“…?”
이 회장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마침 잘됐다.
‘본인이 왔으니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보면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