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45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45화
045 대통령 후보/옐친의 딸
‘옐친과 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회주의 국가의 대통령과 적이 된다는 건 그 나라 전체와 맞서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유리 유수포프는 가문을 살리기 위해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 * *
주말 오후.
현관을 들어서는 사람들을 보며 자하르 법무부 장관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아버지!”
“그래, 어서들 와.”
“잘 지내셨죠?”
“우리 딸 마리아가 자주 와 주면 더 잘 있겠지.”
“지난주에도 왔었잖아요.”
“이반만 괜찮다면 나는 아예 네가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다. 허허.”
“안녕하십니까.”
“잘 왔네. 자넨 요즘 많이 바쁘지?”
“늘 그렇죠 뭐.”
“니콜라이와 빅토리아도 어서 들어와. 데니스는 아직도 영국에 있어?”
“니콜라이 일 도와준다고 바쁜가 봐요.”
마리아가 니콜라이의 손을 잡고 옆에 앉히며 말했다.
그 모습에 빅토리아가 삐져서 볼을 부풀리더니 아빠 이반의 옆에 앉았다.
“점심은 어떻게 했어?”
“저희는 먹고 왔어요, 아버지는요?”
“공무원은 1시만 되면 배꼽시계가 요동쳐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소파 중앙에 자하르가 앉고 양쪽으로 부부가 마주 보고 앉았다.
“오빠는 요즘 자주 오나요?”
“집엔 가끔 들르고 출근하면 안부 전화를 해.”
“저보다 아버지를 더 생각하네요. 근데 무슨 일인데 오라고 하신 거예요?”
“그 얘기는 조금 있다가 하고, 너희들 사는 이야기나 좀 해 보거라.”
“이반은 U마트랑 굼 백화점 공사한다고 매일 바빠서 저는 빅토리아랑 쏘냐와 자주 시간을 보내요.”
“아 쏘냐. 그 애가 노래와 춤을 그렇게 잘한다고?”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다음에 올 땐 쏘냐도 데리고 올게요.”
“꼭 데리고 와. 아이들 재롱 본 지가 너무 오래됐어.”
마리아는 자녀가 셋이나 됐지만 자하르에게는 아직도 무릎 위에서 재롱을 피우던 그때의 딸처럼 느껴졌다.
그는 여느 할아버지들처럼 이것저것 일상적인 것들을 물어보더니 빅토리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빅토리아는 잠깐 위층에 가 있거라. 할애비가 재미없는 일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구나.”
“네, 그럴게요.”
빅토리아가 2층으로 올라가자 자하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이틀 전에 사돈한테 전화가 왔었다.”
유리는 만나서 얘기하는 것보다 전화가 더 안전하다 여겼다.
“…?”
“너희들한테는 아직 말하지 않았나 보구나. 조만간 얘길할 게다.”
“혹시, 옐친 대통령에 관한 얘기입니까?”
이반의 물음에 자하르가 머리를 끄덕였다.
“말하자면 좀 기네만,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이번 선거에 내가 후보로 출마했으면 한다더군.”
“아버지가 대통령 후보로요?”
“그래, 나도 많이 놀랐다. 사돈이 후보로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데 놀랐고, 옐친 대통령과 적이 되겠다고 한 데에 놀랐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더구나.”
이반과 니콜라이는 이미 예상했던 바였기에 덤덤했으나 마리아는 충격이 컸던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자네는 이미 알고 있은 것 같구만.”
“새해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얘길 들었습니다.”
“니콜라이도 그 자리에 있었고?”
“네, 저도 들었어요.”
“그렇다면 얘기하기가 좀 편하겠구나. 사돈이 그렇게 말했을 땐, 이미 결단을 내렸다는 뜻일 테고, 동시에 유수포프 가문의 모든 걸 걸었다는 말인데….”
“걱정 많이 되신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걱정하는 건 내 일신의 안전 때문이 아니네.”
“어떤 부분이 걱정되시는 겁니까?”
이반의 물음에 자하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돈이 나를 너무 대단하게 본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일세. 옐친은 고사하고 다른 후보들을 누르기도 벅찰 거라는 생각이 든다네. 후보자 등록을 하려면 추천인 100만 명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그건 또 어떻게 채우냔 말이야.”
“아버지가 아무런 대비도 없이 연락하셨겠습니까? 그런 것들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결단만 내려 주시면 뒷일은 우리가 모두 처리할 겁니다.”
“100만이나 되는 서명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이번 선거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치러지는 최초의 선거였다.
실제 역사에서도 100만 명의 서명을 못 받아 후보 등록이 거부된 단체가 7개나 되었다.
니콜라이도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알고 있었으나 방법이 있었기에 자하르의 물음에 답변했다.
“그건 제가 해결해 드릴 수 있습니다.”
“…?”
“사실, 제가 할아버지와 외숙부를 옐친에게 천거해서 정계에 다시 들어가시게끔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말씀은 안 하셨지만 유리 할아버지도 저와 생각이 같았을 겁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자하르는 아들 세르게이와 이것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었기에 크게 놀라진 않았다.
유리 유수포프는 단지 옐친의 최측근이 되어서 권력을 이용하려는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 정도는 유리의 힘으로도 충분하니까.
아들과 낸 결론은 ‘옐친이 퇴임한 후를 준비하기 위해서다.’였다.
그런데 일이 틀어져 옐친과 적이 되려 한다.
그 대안으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고.
지금이 그때라면 얘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사돈의 생각이 곧 니콜라이, 네 의견이겠지?”
“비슷합니다. 옐친이 우릴 죽이려 드는데 목을 내밀고 기다릴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흐음….”
“먼저 칼을 빼든 사람은 옐친입니다. 우린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것이고요. 그러니 할아버지는 꼭 후보로 나가셔서 반드시 옐친을 꺾어야 합니다.”
“내가 굳이 후보로 나가지 않고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다른 후보를 밀어도 되지 않겠느냐?”
자하르는 니콜라이의 생각을 조금 더 깊이 알고 싶어서 물은 거였다.
“옐친과 손을 잡았던 우리가 새 후보에게 갔습니다. 그래서 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과연 우릴 신임할까요? 아니면 다시 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까요? 우린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없는 상탭니다.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당선이 되어야 합니다.”
니콜라이의 답변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그렇긴 하구나. 그래,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러면 100만 서명은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냐?”
“무슨 일이 있어도 후보 등록이 마감되는 3월 25일 전까진 해결할 테니, 일단 할아버지는 대통령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세요.”
복잡한 표정으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자하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렇게 하마. 네, 어깨에 우리 두 가문의 생사가 달렸구나.”
* * *
옐친 대통령의 관저에 은밀하게 모인 세 사람이 있었다.
마카르 행정실장과 경호실장 그리고 옐친의 딸 타티야나 다야첸코였다.
현 정부의 굵직굵직한 일 대부분은 그녀가 결정했었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녀는 국정에 깊이 관여해 러시아 정부의 이인자로 불렸을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다.
“자하르 장관이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했단 말이죠?”
“네, 그 사람이 총기 규제 정책으로 인기를 좀 얻더니 제정신이 아닌가 봅니다.”
경호실장의 말에 타냐(러시아식 줄인 이름)가 냉소를 지었다.
“자하르 장관이 인물이긴 해도 대통령에 출마할 정도로 배포가 큰 인물은 아니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자하르의 뒤엔 틀림없이 유리 유수포프가 있을 거예요. 유리 회장이 결국 반기를 든 거라고요. 선거 자금과 체첸 전쟁 자금을 후원하라고 했더니. 행정실장님, 제 말이 틀렸나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유리 회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인물이지요.”
“자기들이 여태껏 누구 덕에 잘나갔는지 잊은 모양인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키운 개가 주인을 물면 방법은 두 가지였다.
두들겨 패든가, 아니면 죽이든가.
타냐의 일 처리가 평소 이렇다는 걸 두 사람 모두 알았으나 행정실장은 쉽게 일을 열지 못했다.
반면에 경호실장은 단호하게 답변했다.
“이참에 유니콘 그룹을 단단히 손봐 줘야 할 것 같습니다. 누가 주인인지 확실히 알아먹을 수 있게 말입니다.”
“어떻게요?”
“우선 유니콘 그룹의 계열사를 하나 없애 버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알아서 꼬리를 내릴 겁니다.”
경호실장의 앞뒤 없는 말에 행정실장이 속으로 혀를 찼다.
타냐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단순하게 해결될 것 같으면 내가 왜 물었겠어요?”
“….”
“행정실장님은 좋은 생각이 있겠죠?”
“아시다시피 유니콘 그룹은 우리 러시아 경제의 상당히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업의 계열사 하나를 손본다면 단순히 계열사 하나를 손보는 게 아닙니다. 자칫하다간….”
국민의 반감을 사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굳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었으니.
“제대로 보셨어요. 그렇게 단순히 해결할 일이 아니죠. 그들도 이런 방법은 이미 생각하고 있었을 테니까요.”
“맞습니다.”
“그러면 행정실장님이 한번 만나 보는 건 어떨까요?”
이건 질문이 아니라 명령이라는 걸 알기에 마카르 행정실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두 사람을 만나서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내 말 그대로 전하세요.”
우리가 최대한 밀어줄 테니 일단 후보로 출마는 해라.
그런 후에 선거일 2주 정도를 앞두고 자신들을 지지한다고 선언해라.
그러면 과거처럼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요.”
타냐는 옐친 혼자서는 압도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2위와의 격차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하르 장관을 이용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만일 끝까지 고집을 피우면 어떻게…?”
“기회를 줬는데도 끝까지 버티겠다고 하면 그땐 단순하게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어요.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끝장날 수 있다고 확실히 보여 주는 게 효과가 클 거예요.”
정부 인사 중에서 유니콘 그룹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행정실장이었다.
‘유리 회장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군.’
유리 회장의 판단력은 무서울 정도로 날카롭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그 판단력으로 옐친을 다시 대통령 자리에 앉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인물이 옐친과 적이 되려 한다?
자하르 장관을 후보로 내세우는 순간, 위기가 닥칠 것임을 알 텐데도?
이건….
‘승리를 100% 자신한다는 뜻이군.’
유리 회장은 확신이 없으면 절대로 일을 추진하지 않는 인물이니까.
행정실장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 * *
러시아 최고의 신문사 사장에다가 러시아 국영 방송국 다음으로 가는 방송국의 사장이 된 인물.
그는 니콜라이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걸 만들어서 방영했다간 정부에서 가만있질 않을 겁니다.”
“사장님, 제가 신문사와 방송국을 고집했던 이유는 이런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우리 러시아 국민이 언제까지 고통받고 살아야 합니까? 한 개인의 권력에 러시아 전체가 놀아나서야 하겠냐고요. 권력은 대통령에게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국민에게 있어야 하는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사장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우. 맞는 말씀이긴 한데….”
“사장님과 저는 여론을 움직일 힘이 있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들이 국민의 편에 서지 않고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언론의 본분을 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지게 됩니다.”
“….”
“없는 사실을 내보내는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만 내보내자는 건데 이것도 못하면 신문사와 방송국을 왜 운영하는 겁니까? 돈이 벌고 싶어서였다면 장사를 했어야죠.”
니콜라이는 사장이 자발적으로 동참하기를 원했다.
지분의 힘으로 누르는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일단 제 가족부터 외국으로 피신을 좀 시켜 놔도 되겠습니까? 독립 국가들에 보내는 거로요.”
“그렇게 하시죠. 가족들이 러시아 땅에 없어야 마음이 편하시면요.”
“그게 편할 것 같습니다.”
니콜라이는 30여 가지의 준비 중에 이제 하나를 시작한 것뿐이었다.
* * *
굼 백화점 블랙홀 사무실에 들른 니콜라이는 일리야와 마주 앉았다.
“인터넷상에 할아버지와 관련된 내용이 자주 검색되게 할 수 있나요?”
“가능은 합니다만…?”
니콜라이는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해줬다.
어차피 인터넷은 일리야의 힘을 빌려야 하므로.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러면 이건 남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일 장관님이 낙선이라도 하게 되면… 우리도 끝장나는 거 아닙니까?”
“뭐 그렇다고 봐야겠죠.”
“당선자가 발표되는 날까지 밤을 새워서라도 가동하겠습니다.”
일리야는 다시는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쏘냐도 있고, 전국에 인터넷망이 깔리기만을 꿈꾸고 있었다.
‘절대로 안 돼. 반드시 자하르 장관님이 당선되어야 해.’
니콜라이가 부탁하지 않아도 이건 무조건 해내야 할 일이었다.
“인터넷과 관련된 건 모두 블랙홀 팀이 처리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부탁합니다.”
“당분간은 밖으로 못 나갈 것 같으니까 U마트에서 필요한 걸 배달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죠.”
* * *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니콜라이는 샤샤에게 경호 문제를 지시했다.
“요원들 중에 20명 정도 뽑아서 할아버지 옆에 붙여 둬.”
“그것 가지고 되겠어? 3교대로 하려면 더 붙여야 할 것 같은데? 너도 앞으로는 조심해야 할 것 같고.”
“그럼 네가 알아서 넉넉히 붙여 봐. 내 주변에도.”
“저번에 단체를 새로 개편해서 인원은 남아도니까 맘껏 써도 돼. 늘 그랬던 것처럼 운용비만 잘 주면.”
니콜라이는 샤샤를 통해 PMC(민간 군사 기업)를 조직했었다.
아직 정확한 규모는 모르고 있었는데 샤샤가 일을 제대로 해 왔는지 자신만만했다.
* * *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래나, 선거는 여론을 어떻게 자기 편으로 만드느냐였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래나, 선거는 여론을 어떻게 자기편으로 만드느냐가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여론 즉, 언론은….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