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47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47화
047 아파트 주변도/속옷 차림으로 피자를?
영끌, 하우스 푸어, 렌트 푸어, 전세 난민….
미래 세대는 집의 이미지를 이렇게 떠올렸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 중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집’이 아닐까?
인간이 이 땅에 등장한 후부터 인간 유전자 세포들의 최우선 목표는 생존이었다.
인간 진화의 모든 것은 생존을 위한 거였다.
집도 그중 하나다.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고 내 유전자를 이어받은 자식들을 보호할 수 있는 공간.
집은 생존과 더불어 종족 번식을 위한 공간이었다.
사람들은 집에 집착했다.
진화의 힘이 세포 곳곳에 박아놓은 생존 본능 때문에.
사회가 장기적으로 안정되려면 최소한 주택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니콜라이는 이런 생각으로 아파트 사업을 시작했었다.
우수리스크 유니콘 아파트.
러시아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 버린 건물이었다.
곳곳에서는 이사하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저층은 한국에서 들여온 사다리차로 짐을 날랐고 고층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다.
“자기야, 정말 여기가 우리 집 맞지?”
“벌써 몇 번을 물어봐.”
“나 어떡해. 너무 떨려서 오늘 잠 못 잘 것 같아.”
운 좋게 공업단지 한국 회사에 입사하게 된 남편을 따라온 아내. 그녀의 눈은 기쁨에 넘쳐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다섯 가족의 가장은 놀이터에서 해맑게 노는 아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고, 아내도 같은 표정으로 남편의 손을 꼬옥 잡았다.
“아빠! 엄마! 여기 너무 좋아. 학교도 가까이 있잖아.”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인근에 있었기에 부모들도 마음이 놓였다.
한편, 방송국에서 온 사람들은 이런 모습들을 영상에 담고 있었다.
-여기는 우수리스크 유니콘 아파트입니다. 오늘은 입주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처음 이 아파트를 지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부정적이었다고 합니다. 너무 앞선 기술들을 넣겠다고 했기 때문인데요. 여러분들은 이 아파트가 어떻게 보이시나요?
이 방송국은 니콜라이가 지분 51%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뿐만 아니라 다른 방송국에서도 나와 취재를 하고 있었다.
그만큼 러시아 사람들의 깊은 관심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35층에 5,000세대 아파트는 우리 러시아는 물론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더구나 이렇게 앞선 기술을 사용한 아파트는 여기뿐이라고 합니다.
기자는 니콜라이와 자하르 법무부 장관과의 인터뷰도 진행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동료들과 입주할 아파트에 들어갔다가 나온 김 박사가 니콜라이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 잘 지어 놨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아파트는 없어요.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만족하신다니 다행입니다. 유적지 발굴은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죠?”
“덕분에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숙소도 생겼으니까 더 편하게 작업할 수 있을 겁니다.”
45평이 다섯 채나 되니까 아주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그 다차 말입니다. 그걸 정말 우리가 써도 되는 겁니까?”
옆에 있는 동료들도 궁금하다는 표정이다.
“그럼요. 한 가구당 하나씩 분배한 거니까 박사님 팀은 다섯 곳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다차마다 호수가 붙어 있을 텐데요?”
“봤습니다. 좀 전에 가 봤는데 넓어서 너무 좋더라고요. 다차 집은 말할 것도 없고요.”
다차는 원래 넓이보다 더 넓어졌다.
유적지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으나 그래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조금 뒤로 물리면서 면적을 더 넓혔다.
“다차에 비닐하우스랑 비슷한 걸 만들어 놨던데, 그건 뭔가요?”
“채소를 키우는 곳입니다. 중앙난방 시스템을 사용한 거라 겨울에도 키울 수가 있죠. 5개월 후에 U마트가 들어오더라도 채소는 거기서 재배한 게 더 좋을 겁니다.”
“허어. 제가 참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봤지만 니콜라이 씨는 정말….”
김 박사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다른 동료들도 미소를 지으며 니콜라이를 인정한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참. 이분은 제 외할아버지십니다. 이번에 대통령 후보로 나가실 거예요.”
“아 뉴스에서 봤습니다. 꼭 당선되시길 바랍니다.”
“허허, 고맙습니다. 꼭 당선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00만 서명을 받고 있는 중이라 아직 후보 등록을 하진 않았지만 자하르는 마치 당연히 될 거라는 듯이 인사를 했다.
김 박사와 헤어진 니콜라이는 자하르에게 45평을 보여 주었다.
“할아버지가 보시기엔 어떤가요?”
“집이란 이런 것이지. 이 얼마나 살기 좋게 되어 있어. 내가 신혼이었다면 당장 여기로 이사했을 게다. 허허.”
“아파트 공급도 할아버지의 선거 공약으로 쓸 겁니다. 전국에 이런 아파트를 저렴하게 공급하는 거로요.”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냐? 자금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겠어?”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저렴하게 공급한다고 해도 남는 장사니까요.”
“네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앞으로 러시아 사람들이 집 때문에 고통받는 일은 없게 할 거예요. 전국적으로 동시에 지을 테니까 선거 때 이 부분을 확실히 보여 주세요.”
한국에도 이런 선거 공약이 있었다.
반값 아파트라고.
그런데 국민은 그걸 믿지 않았다.
아파트를 짓는 회장이 틀림없이 할 수 있다고 했는데도.
직접 아파트를 지어 보니 알 것 같았다.
반값 아파트, 가능하다. 단, 건설주가 욕심을 내려놓으면.
니콜라이는 욕심을 어느 정도 내려놓았기에 이런 아파트를 지을 수 있었다.
물론, 내려놓았다고 해도 세대 수가 워낙 많았기에 많이 남기는 했지만.
입주하는 사람들을 통해 긍정 에너지를 듬뿍 받은 니콜라이와 자하르는 U마트와 주변 상권 공사 현장을 들러 직원들을 격려한 후,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 * *
러시아 남자들의 수명은 세계에서도 짧기로 유명하다.
남성의 수가 40대 후반만 넘어가면 급격히 줄어 버린다.
그 때문에 러시아에서 유명한 말이 있는데.
-남자는 원숭이보다 잘생기면 된다.
여러 이유로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적고 수명도 짧다 보니, 괜찮은 남자를 쟁취하려는 여자들의 노고가 만만치 않은 나라다.
그렇다 보니 남자들의 바람기가 만만치 않다.
수명이 짧은 원인은 음주, 담배, 비만, 교통사고, 무분별한 남부심(위험한 짓을 많이 함)등이 있지만, 특히 음주가 컸다.
보드카.
보드카와 옐친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94년 8월.
옐친이 통일 독일을 공식 방문했을 때, 술에 취해 예정에도 없는 연설을 하는가 하면.
급기야 베를린시 야외 광장에서 열린 환영 음악회에서 갑자기 단상에 올라 연주 중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지휘봉을 빼앗았다.
연주 음악과 관계없이 술과 흥에 취해 신나게 지휘하는 돌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 장면은 당시 독일 TV를 통해 생방송 되었고, 이후 전세계 안방에 전달되면서 주정뱅이 옐친의 인간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1995년에는 더 황당한 일도 있었다.
미국을 방문한 옐친의 숙소는 미국 정부의 국빈 전용 숙소인 백악관 바로 앞 블레어 하우스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숙소 앞 펜실베이니아 거리를 경비하던 한 비밀경호원 눈에 ‘속옷 차림’으로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이 보였다.
언뜻 보기에도 취기가 완연한 그는 옐친 대통령이었다.
그는 취한 목소리로 ‘피자를 사러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그다음 날 밤 또 다른 경호원은 숙소 지하실 근처에서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자칫 불법 침입자로 오인할 뻔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벌어진 이 황당한 사건들이다.
사실 관계를 부인한 딸 타냐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술에 얽힌 옐친의 행적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대표적인 에피소드였다.
오늘도 옐친은 보드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거하게 몇 병 때리고 뻗어 버렸다.
그런 아버지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타냐가 한숨을 길게 내쉬고 거실로 나왔다.
“잠드셨습니까?”
마카르 행정실장의 물음에 그녀는 짧게 머리를 끄덕이곤 소파에 털썩 앉았다.
“3월 26일부터 전국을 돌며 선거 활동을 하셔야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이대로 가다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습관인데 우리가 몇 마디 한다고 바뀌겠어요?”
“아시다시피 술을 드시면 가끔 몽유병 환자처럼 행동하실 때가 있습니다. 무슨 방법을 취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나도 많은 방법을 써 봤지만 안 되더라고요.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우리가 단속을 잘하는 수밖엔 없어요.”
마음 같아서는 보드카 판매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싶었다.
그게 안 되면 술의 도수를 좀 더 낮추던가.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옐친의 반대로 묵살되었다.
오죽했으면 타냐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보드카겠나.
“상대 진영은 어때요?”
“공산권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고 있습니다. 지지율도 계속 오르고 있고요. 특히, 중소 도시에서 지지율이 빠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후보 등록은 아직 안 했죠?”
“네, 3월 23일이나 24일쯤에 할 것 같습니다.”
“우리와 어느 정도 차이 날 것 같나요?”
“전국적으로 여러 번 조사를 해 봤지만 아주 근소한 차로….”
“우리가 근소한 차이로 앞선다?”
“네….”
이렇게 되면 재선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도 있다.
그녀의 희고 매끈한 이마에 가는 주름이 잡혔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자하르 장관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지게 될 텐데….”
“맞습니다. 지금 자하르 장관의 지지율이 급등하고 있습니다. 후보 등록을 마치면 더 가파르게 오를 것 같습니다.”
“자하르가 어디로 붙느냐에 따라 다음 대통령이 결정될 수도 있단 말이군요?”
“물론 다른 후보들 상황도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상황을 놓고 판단하자면 그렇습니다.”
타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자하르만큼 인지도를 키우고 있는 후보가 몇 명이나 있죠?”
“아직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아서 애매한 상황이긴 하지만 두 명 정도가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들도 자하르 만큼의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진 못합니다.”
그렇다면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은 자하르가 키를 쥐고 있단 뜻이었다.
“자하르를 지원할 방법을 더 찾아 보세요. 그리고 저번에 유리 회장은 안 만났다고 했죠?”
“네.”
“유리 회장을 만나서 믿음을 더 주도록 해 봐요.”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저번에 체첸 전쟁과 선거 자금 이야기는 우리의 실수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 말해달라. 뭐 이런 것들 있잖아요. 모두 들어줄 테니까 다 말해 보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뒤쪽의 문을 한번 보더니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 아침 회의는 어떻게…?”
“저렇게 자고 있는데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럼 오후 늦게 할 수 있도록 미루겠습니다.”
“오후 늦게도 안 돼요. 모레로 미루세요.”
“모레는 중요한 일정들이 잡혀 있습니다.”
“그럼 저번에 독일과 미국에서처럼 취한 채로 어디 한번 진행해 볼까요?”
“아, 아닙니다. 미뤄놓겠습니다.”
* * *
전국에서 몰려드는 서명지를 분류하는 곳으로 간 니콜라이와 자하르 법무부 장관은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장님, 자하르 장관님을 지지한다는 서명이 80만 장을 돌파했습니다.”
“오, 벌써 80만 장이나요?”
“네. 아직 한 달 반 정도 남았으니까 그전엔 100만 장을 넘기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조금 더 고생해 주세요. 그리고 이건 오늘 직원들과 회식할 때 쓰십시오. 넉넉히 넣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직원에게 격려금을 듬뿍 전달한 니콜라이는 자하르를 바라보았다.
그는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잠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할아버지. 들으셨다시피 100만 서명은 문제없을 것 같아요.”
“그래, 네가 이런 방법을 쓴다고 했을 때 한편으론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빠른 결과를 보이다니….”
“이제 시작입니다. 크렘린궁에 입성하기 전까진 안심하시면 안 됩니다.”
“내 남은 인생을 여기에 모두 걸었으니 걱정 말거라.”
러시아의 2대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
그 결과는 오래지 않아 나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