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51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51화
051 각자의 생각/1차 투표일인데 옐친이 안 보이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예고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해 화병을 집어 던졌다.
쨍그랑-!
깨진 파편들이 거실 곳곳에 널브러졌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파에 걸터앉았다.
아버지의 기분을 풀어 주라는 어머니의 눈짓에 키릴과 디마도 조용히 앉았다.
“할아버지께서 사업 자금을 지원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이젠 아버지에게도 기회가 생긴 겁니다.”
예고르의 눈치를 살피며 키릴이 말을 이었다.
“자금만 충분하면 기회는 언제든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고르가 냉소를 지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후후, 기회? 너는 그게 기회라고 생각하느냐?”
예고르는 이건 기회가 아니라 최후의 통첩이라 생각했다.
안턴도 없는 마당에 사업이 실패하게 되면 그는 다신 유산에 관한 얘기를 꺼낼 수 없게 된다.
즉, 모든 게 니콜라이에게 간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러나 예고르의 불안감과는 달리 키릴은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네,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어찌 됐든 할아버지 눈치 보지 않고 큰 자금을 움직일 수 있게 됐으니까요. 비록 유산으로 대체한다고 말씀하셨지만 성공해 보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예고르는 화를 삭이고자 한숨을 크게 내쉰 후, 키릴과 디마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니콜라이를 따라다니면서 약점을 찾아내고 배울 것은 배우라고 했더니 현실감을 잃고 간이 너무 커져 버렸다.
“자본금만 넉넉하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누가 그러더냐?”
“네?”
“네 말대로라면 다른 기업의 회장들도 니콜라이만큼 성공했어야 하지 않느냐?”
“그건….”
“사업이 쉽게 보였던 모양이구나. 니콜라이가 하는 사업마다 성공하니 말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예고르는 벌써 다른 사업을 시작했을 것이다.
돈만으로 되지 않는 게 사업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지금까지 기다렸다.
“힘들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시도는 해 보고 싶습니다. 저한테도 기회를 주십시오.”
“기회라….”
예고르는 턱을 주억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키릴의 능력도 무시할 수준은 아니다.
니콜라이가 워낙 뛰어나서 주변 사람들이 못나 보이는 것이지.
아버지가 기회를 준 것처럼 자신도 키릴을 믿어 보기로 했다.
기회마저 주지 않으면 더욱 비참해질 것 같았기에.
“할아버지께 말씀드려 보도록 하마.”
예고르는 이번엔 디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도 기회를 잡고 싶으냐?”
“아니요.”
“…?”
“저는 니콜라이 옆에 더 붙어 있겠습니다.”
“그래?”
“제가 보기엔 형이 니콜라이를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
장남인 키릴을 더욱 눈여겨 봐왔던 터라 디마의 이 말은 다소 의외였다.
“몇 개월 동안 니콜라이를 지켜봐 오면서 많은 걸 느꼈습니다.”
“어떤 부분을 말이냐?”
“니콜라이는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진 않았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직원들을 자신처럼 챙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게 어떻단 말이냐?”
“니콜라이가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있어서 회사가 있는 거다.’ 저는 처음에 이게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다.
수익이 생기면 직원들에게도 충분한 보상을 해줬다.
다른 기업의 대표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수준으로.
숙소, 식당, 보너스와 특별한 날마다 나가는 선물 세트 등.
모두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었으나 니콜라이는 과감히 실행했다.
“저는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 중에 니콜라이만큼 직원들에게 보상해 주는 인물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직원들에게 니콜라이만큼 보상해 주고 있습니까?”
“크흠….”
“아시다시피 U마트, 유니콘 건설, 가스프롬은 역대 최고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매달 실적이 올라가고 있죠.”
이런 놀라운 실적이 계속 나온다는 건 그만큼 직원들도 니콜라이와 한 몸이 됐다는 것이다.
디마는 이 부분을 유심히 살폈었다.
초반에 사업을 성공시킬 순 있지만 그걸 계속 이끌어갈 수 있게 하는 건 직원들이다.
니콜라이는 직원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게끔 만들어 주었다.
그 원동력을 바탕으로 회사를 계속 키워 나갔다.
“우린 니콜라이의 숨겨진 능력을 보지 못하고 겉만 봤었던 겁니다.”
“흐음….”
“처음엔 형님한테 이끌려서 억지로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더 많은 걸 배우기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니콜라이를 경쟁 상대로는 보되 더는 미워하지 않기로요.”
예고르는 둘째의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성장한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이번 대선에서 자하르 후보님이 당선되지 않더라도 저는 반드시 기회가 다시 있을 거라 믿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에게 줄을 댔었던 우리 가문이 무너질 줄 알았지만, 다시 기회를 잡은 것처럼요.”
예고르도 디마의 말을 듣고 느낀 바가 있었다.
기회는 스스로 잡아야 한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말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니콜라이는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도 뛰어난 것 같구나. 내가 어떻게 하라고 말하진 않겠다. 너희들 각자의 생각대로 해 보거라.”
예고르는 유리와는 다른 기회를 주고자 했다.
최후의 통첩이 아니라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기회를.
그게 두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라 믿었다.
* * *
자하르는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아들 세르게이와 차를 마셨다.
“사돈댁에서 있었던 일 말이다.”
“예고르 말입니까?”
“그래. 니콜라이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줄은 알았다만 피해 의식이 너무 깊은 것 같더구나.”
그 많은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악에 받쳐 말하던 모습이 뇌리에 깊이 남아 있었다.
“사실 예고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재벌가의 둘째인데 이반도 아니고 손자한테 다 내주는 것 같다고 느꼈을 테니 말입니다.”
안턴이 쫓겨나면서 위기감을 느껴 그랬을 수도 있지만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세르게이도 재벌가에 태어나 예고르와 같은 입장이 되었다면 니콜라이에게 다 뺏겼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입장 차가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러고 보면 이반이 참 대단해. 사돈이 준다고 했으면 받았다가 나중에 니콜라이에게 물려줘도 되는데 말이다. 너 같으면 그럴 수 있겠어?”
“저는 못 하죠.”
세르게이가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나이가 들어서 회사를 운영하기 힘들겠다 싶을 때 물려줘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너뿐만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이 못할 게다. 나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이반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니콜라이 앞으로 해 줬으니 대단하달 수 있지.”
사위라는 관계를 떠나 정말 믿음직스러웠다.
“그런데 아버지. 외람된 말일 수 있는데…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정말 당선될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후보로 나선 겁니까? 옐친과 주가노프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허허, 너는 어떻게 생각했느냐?”
“사돈어른과 니콜라이가 방법이 있다고 했겠지만…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말은 쉽게 했지만 세르게이는 그동안 많이 고민했었다.
옐친이 재선에 성공하면 두 가문이 사라질 수 있다.
이 말은 민정수석으로 있는 자신의 인생에도 먹구름이 낀다는 것과 같았기에 매일 밤잠을 설쳤었다.
“나라고 힘들 거란 걸 왜 몰랐겠어.”
“…?”
“많이 망설였지만 니콜라이 말을 듣고 확신을 하게 되었다.”
“무슨 말을 들으셨는데요?”
“지금은 말해 줄 수가 없구나. 선거가 끝나기 전까진 사돈어른과 나만 알고 있어야 한다고 니콜라이가 당부한 터라. 이해해 다오.”
수십 년간 법조계에 있으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자하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만큼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것이라는 말이기에 세르게이는 이쯤에서 멈추고 선거가 끝난 후에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참 신기하면서도 믿기 힘든 일이지 않습니까?”
“뭐가 말이냐?”
“두 분은 니콜라이를 전적으로 믿으시고 우리 두 가문의 운명을 맡겼잖아요. 이걸 생각할 때마다 믿기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면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사돈어른과 내가 설마하니 가문을 끝장내려고 그랬겠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으니 시작한 것이지.”
자하르는 과거 니콜라이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가 화제를 돌렸다.
“한데, 그 야후! 라는 회사가 미국에서 그렇게 유명한 게냐?”
“네. 저도 TV를 본 후에 좀 알아봤는데 미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랍니다. 지금도 주가가 계속 오르고 있고요.”
“그런 회사를 니콜라이는 어떻게 알았을까? 상장도 하기 전이었다면서 말이야.”
“니콜라이가 한 일들은 늘 사람을 놀라게 했잖아요.”
지나서 생각해 보면 니콜라이가 한 일들은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인정하는 쪽이 마음이 편했다.
그만큼 니콜라이는 가족에게조차 머리를 절레절레 젓게 하는 존재였다.
* * *
지지율 그래프를 본 타냐의 얼굴이 급격히 구겨졌다.
“이거 오차 범위가 어디까지죠?”
“플러스, 마이너스 5% 정도입니다.”
저번에 조사했을 때보다 더 많이 올랐다.
“…이대로 진행되면 얼마 후엔 자하르 후보가 주가노프를 앞지른다는 말이잖아요?”
“아마도….”
“만일에 말이죠. 만일에 1차 투표에서 자하르 후보가 주가노프를 누르면….”
행정실장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뒷말을 이었다.
“딴마음을 품을 소지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렇죠. 충분히 있어요. 두 늙은이가 아무 생각도 없이 우리한테 등을 돌리진 않았을 테니까요.”
“맞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유리 회장은 확신이 없으면 나서지 않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미리 준비해야겠군요.”
어차피 자하르 후보가 내세운 공약들은 모두 옐친 대통령이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들을 옐친의 업적으로 내세우기만 하면 자하르에게 몰렸던 민심은 급격히 옐친으로 옮겨질 것이다.
타냐는 그렇게 믿었다.
“만일 자하르 후보가 1차 투표에서 주가노프를 누르고 2차 투표에 오르면 말이에요.”
“….?”
“그가 내세웠던 공약을 모두 우리가 한 것으로 홍보할 준비를 해 놓으세요. 모든 언론매체를 이용해서 대대적으로 할 수 있게요.”
“알겠습니다. 방송국도 미리 준비해 두겠습니다.”
“자하르 후보를 지지하는 그 방송국이 니콜라이가 실질적인 주인이라고 했죠?”
“네. 지분 51%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거 중에 상대 캠프의 선대 위원장을 잡아들일 순 없으니 방법은 하나뿐이다.
“방송국 사장을 잡아들이세요.”
“잡아들여서 어떻게 처리합니까?”
“다신 자하르 편에 서지 못하게 적당히 겁을 줘요. 가족 중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더 좋겠죠.”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슬로건 현수막은 모두 처리했나요?”
“아직 못했습니다. 전국 곳곳에 워낙 많이 붙여 놓은 터라.”
“니콜리이 그 사람 정말 지독하네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모두 떼세요.”
니콜라이가 옐친의 캠프에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고 생각하는 타냐였다.
* * *
후보들이 전국을 돌며 선거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가운데, 니콜라이는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여기 한 장 받으세요. 자하르 후보 지지 부탁드립니다.”
샤샤가 준 전단지를 여자는 보지도 않고 휙 던져 버렸다.
“아씨. 진짜….”
“샤샤야, 너 이런 일 처음 하지?”
“내가 이런 걸 언제 해봤겠어.”
“아무리 처음이라도 사람을 좀 보고 줘라.”
“뭐가?”
“말 조심해. 저 여자 머리에 꽃 있잖아.”
“아 꽃? 내가 실수했네.”
러시아의 맹추위도 점점 작별을 고하면서 사람들의 옷도 얇아졌다.
한 달이 훌쩍 지나면서 드디어 1차 투표일인 6월 15일이 되었다.
니콜라이는 가족들과 함께 투표소에 들러 투표를 마쳤다.
그날 저녁, 자하르 후보와 다른 후보들이 투표하는 모습이 나왔다.
그런데….
‘옐친의 모습은 안 보이는군.’
신문에 나왔었지.
옐친이 심근경색으로 17일간 의식불명이었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했다고.
날짜를 계산해 보면 오늘이 맞았다.
‘타냐라고 했지? 옐친의 딸이. 우리 조만간 얼굴 좀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