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53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53화
053 완벽히 끝내기/새로운 대통령
굼 백화점 블랙홀 사무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각 캠프의 대표자 5명씩이었다.
두 캠프 사람들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옐친 쪽 인사들은 다 죽어 가는 표정이지만, 자하르 쪽은 승리자의 얼굴이었다.
의자에 앉은 타냐가 니콜라이를 한참이나 노려보더니 한쪽을 가리켰다.
“방송국에서는 왜 온 거죠?”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자립니다. 일 처리는 확실히 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럼 오늘 회의 내용을 방송으로 내보내겠다는 건가요?”
“오늘 회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쪽에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해야 할 겁니다.”
회의 내용과 대국민 담화. 이게 방송으로 나가야 확실해진다.
2차 투표 하루 전, 옐친이 정신을 차리게 되면 어떤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
“타냐 씨는 사람을 믿습니까?”
“….”
“저는 믿지 않습니다. 단, 강제적으로라도 서로를 믿게끔 되어 있으면 믿죠. 그래서 두 가지 장치를 해 두려는 겁니다.”
“본 대로 철저하군요.”
간단한 신경전이 오간 후,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었다.
“특별 담화문은 내일 오후 3시에 발표해야 할 겁니다.”
“후보님, 그건 너무 빠르지 않나요?”
“허허, 지금 상황에 더 끌어서 좋을 게 있을까요? 내 말대로 하세요.”
자하르는 과거의 법무부 장관이 아니었다.
엄연히 국민이 뽑은 대통령 후보였고, 지금은 현 대통령을 물리치고 당선된 거나 마찬가지인 당선자 신분이었다.
그랬기에 그에게선 당선자에 걸맞은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알겠어요.”
“오늘 회의 내용은 담화문 발표가 끝나면 바로 내보낼 생각입니다.”
“마치 계획한 것처럼 진행하시는군요.”
“타냐 씨.”
자하르는 정색하며 말했다.
“우린 목숨을 걸고 이번 선거에 임했어요. 그런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왔다고 대충하겠어요? 타냐 씨는 모르겠지만 병상에 계신 옐친 대통령께선 제 마음을 잘 알 겁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기 직전 탱크에 맞섰던 옐친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렇게 양 측은 하나하나 서로의 입장을 말하면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아닌 것은 밀어냈다.
물론 결정의 대부분은 자하르 측이 했다.
회의가 진행될수록 옐친 쪽 인사들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모든 협의가 끝났을 때, 니콜라이는 마지막으로 못을 박았다.
“대통령께서 꼭 깨어나시기를 바라는 마음은 저도 같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습니까?”
“….”
“혹여나 대통령께서 건강을 되찾게 되시더라도 오늘 있었던 모든 내용은 법적인 효력이 발생되는 겁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앞으로 10일 후인, 7월 2일. 옐친은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온다.
그때 가서 옐친이 말을 바꾸려고 할 수도 있었다.
자신이 쓰러져 있을 때 참모들이 일을 처리했으니 이건 모두 무효라면서.
러시아 스타일로 극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군대를 동원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니콜라이는 몇 개 조항을 마지막으로 말했다.
“…맞아요.”
“두 번째는 내일 담화문이 끝나기 전에 크렘린궁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날부터 자하르 당선자님께서 직무를 보셔야 하니까요. 알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마지막으로 이번 일에 관해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경우엔 옐친 전 대통령님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 꼭 기억하셔야 할 겁니다. 그 큰 피해는 감당하기 힘든 내용이 될 테고요.”
그러니까 앞으로 입 닥치고 조용히 지내라.
요약하자면 이런 말이었다.
그녀도 알아듣고는 대답했다.
“조용히 지내겠어요.”
그걸 끝으로 장장 5시간에 걸친 회의는 끝이났다.
* * *
그날, 크렘린궁으로 돌아온 타냐.
그녀는 아버지를 우선 바깥에 있는 집으로 내보내고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앞으로 어떻게 지내실 겁니까?”
행정실장의 물음에 타냐는 대통령 책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는 4년마다 열려요.”
“혹시 다음 선거에…?”
“아버지는 못 나오시겠지만 다른 후보를 밀어야죠.”
“역시 이렇게 끝낼 생각이 없었던 거군요.”
“누구 좋으라고 이렇게 끝내요.”
지금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거지만 결코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옐친이 대통령을 하면서 모아 놓은 돈은 충분하고도 넘쳐났기에 그 자금을 이용하면 훗날 가능성이 있다.
어차피 선거판에서는 돈 많은 후보가 승리할 확률이 높으니까.
그녀는 그런 생각으로 후일을 도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있었으니….
* * *
그날 저녁, 자하르 당선자 집.
자하르 당선자와 유리가 함께한 가운데 니콜라이는 옐친 쪽의 마지막 희망을 끊어 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옐친이 숨겨둔 자금이 국영은행에 있지 않습니까?”
“있다. 넌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유리가 물었지만 자하르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대통령한테 갖다 바친 돈이 얼만데요. 그런 사람이 우리뿐이겠어요?”
“허허.”
“국내 은행은 물론, 외국 은행들에 있는 옐친과 친인척들의 계좌를 모두 동결시켜야 합니다. 특히, 스위스 은행들에 비밀 계좌가 있을 수 있으니 그쪽을 철저히 조사해서 모두 국고로 회수해야 할 겁니다.”
“알겠다. 내가 직접 지시를 내리마.”
유리가 나선다면 철저히 확인할 것이다.
“그리고 체첸 전쟁부터 당장 멈춰야 합니다. 내일 담화문 발표가 끝나는 대로 할아버지께서는 체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거십시오. 그렇게 하시면 러시아의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본격적으로 수행했다는 걸 세계가 인정하게 될 테니까요.”
“너도 알다시피 체첸은 꼭 러시아와 합쳐야 할 땅이다.”
자하르도 전쟁은 반대하지만 체첸의 지리적인 특성과 거기에 묻혀 있는 수많은 지하자원을 아까워하고 있었다.
하나 니콜라이는 머리를 흔들었다.
“왜 꼭 힘으로 굴복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경제적으로 체첸을 압박하면 스스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체첸으로 들어가는 물자들을 한 달만 막아 보십시오. 버텨 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체첸 국민이 배고파서 정말 죽을 것 같다고 느낄 때, 러시아에서 손을 내민다.
이 방법과 함께 진행할 것들은 더 많았다.
“좋은 생각이다.”
“또, 내일 크렘린궁에 들어가시면 인사 개편부터 하셔야 합니다. 가장 먼저 국방부 장관, 체첸 전쟁 총지휘관, 경찰청장을 교체하십시오. 이 세 사람은 인사권을 너무 빨리 휘두른다는 말이 나오더라도 일단 바꿔야 합니다.”
이들의 정식 발령은 대통령 취임식 후에 나겠지만 그 전에 사람부터 바꿔 놔야 한다.
만일 이들을 먼저 처리해 놓지 않으면 옐친이 깨어났을 때 니콜라이가 원치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들 측근들도 싹 갈아야 합니다.”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니냐? 옐친은 이미 생사를 오가는 사람인데 말이야.”
이 사람이, 아니 할아버지가 참 한가한 생각을 하시네요.
옐친은 얼마 안 있으면 깨어난단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르기에 서두른다고 생각하겠지만 니콜라이는 그 어떤 욕을 먹더라도 지금은 최대한 빨리 자하르가 대통령으로서의 인정을 받게 해야 했다.
“벌써 잊으셨습니까?”
“…?”
“옐친은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을 밀어내고 대통령이 된 인물입니다. 그의 숨이 붙어 있는 한은 마음을 놓으면 안 됩니다. 우리 두 가문의 수백 명 목숨뿐만 아니라 우리를 따랐던 수많은 사람의 목숨까지 걸렸습니다.”
“크흠….”
“러시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게 되면 다신 이런 기회가 없을 겁니다. 조금 부끄럽고 지나친 느낌이 드시더라도 이번 한 번만 참고 진행하시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갑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 네 말대로 진행하마.
* * *
다음 날, 오후 3시.
러시아의 모든 TV 채널에서 속보가 터져 나왔다.
【옐친 대통령께서 심근경색으로 더 이상 대통령의 책무를 이행할 수 없게 됐기에 2차 투표를 포기하겠습니다. 동시에 대통령 후보 자격을 내놓겠습니다. 법적으로 마지막 후보인 자하르 전 법무부 장관이 취임식이 있는 날까지 부통령과 함께 대통령 직무 대행을 수행할 것이며….】
타냐와 측근들의 특별 담화문이 끝나자마자 어제 있었던 회의가 바로 방송으로 나갔다.
그런데 니콜라이가 편집을 얼마나 잘했는지, 나중에 방송을 본 타냐가 그 가냘픈 손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쾅!
“이 개자식! 무슨 내용을 드라마 같이 만들어 놨어.”
정의가 승리하고 악은 쓸쓸히 퇴장하는 것처럼 만들어 버린 회의였다.
특별 담화문에 회의 내용까지 나오자, 러시아 국민은 이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스러워했다.
이어, 전국에서 옐친의 건강이 회복되길 기원하는 집회가 일어났다.
그러나 분위기는 자하르가 대통령이 된 걸 인정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방송국과 신문사로 복귀한 사장이 대대적으로 자하르에 대한 내용을 내보내면서 여론은 빠르게 옐친에게서 자하르 쪽으로 돌아섰다.
어차피 둘 다 주가노프의 공산당을 몰아내려는 후보였고, 추진한 일들도 비슷했기에 국민은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자하르는 측근 인사들과 함께 드디어 크렘린궁으로 입성했다.
들어가자마자 니콜라이가 말했었던 것들을 진행해 나갔다.
“…예, 그럼 전쟁은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걸로 하시지요.”
체첸 공화국 대통령과 통화를 마친 자하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니콜라이의 말을 너무 잘 받아들인 것인지, 얼굴에 철판을 깔아 버리는 행동을 하기까지 했다.
“8월 9일 취임식 때 꼭 참석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엔 사무총장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미국 빌 클린턴.
독일 총리 헬무트 콜.
영국 총리 존 메이저.
프랑스 대통령 자크 시라크.
체코 대통령 바츨라프 하벨.
우크라이나 대통령 레오니트 쿠치마.
카자흐스탄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그루지야 대통령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모스크바 총대주교 알렉세이 2세.
유럽 부흥 개발 은행 총재 자크 드 라로지에르 등.
러시아와 관련이 있다 싶은 곳들엔 죄다 전화를 돌려 버린 것이다.
“좀 쉬고 하시죠.”
니콜라이의 말에 자하르는 냉수를 한 잔 마시고 다시 수화기를 들었다.
“네 말이 맞아. 지금 내가 한가하게 보낼 때가 아니지. 자 다음은 아프리카 쪽 나라들이구나.”
이틀간 이어진 갑작스러운 전화에 화들짝 놀란 각국의 정상들이 많았다.
* * *
10년 같은 10일이 지났을 때, 곧 죽을 것 같았던 옐친이 극적으로 눈을 떴다.
“아… 아버지!”
“으음… 타냐. 내가 얼마나 쓰러져 있었더냐?”
“꽤 오랫동안요.”
“그동안 국정은 누가 운영했고?”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어요.”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옐친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죽을 줄 알았나 보구나. 앞으로는 술을 줄이도록 하마.”
“아버지….”
“마카르. 타냐가 오늘 따라 왜 이러지?”
옐친의 물음에 마카르 행정실장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버지가 쓰러져 계신 동안 자하르 후보가 대통령 자리에 올랐어요.”
“응?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냐?”
타냐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쭉 얘기했다.
그녀의 말이 이어질수록 옐친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끝내는 고함을 질렀다.
“뭣이! 누구 맘대로 포기를 해.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발표를 했단 말이냐!”
“우리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어요. 만일 정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자동으로 자하르가 대통령이 되는데 그렇게 해서는 우리의 훗날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고요.”
“그렇다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 취급했단 말이냐! 이건 무효야! 당장 기자들 불러!”
다 죽어 가던 사람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침대에서 내려온 옐친은 계속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댔다.
“뭐 하고 섰어! 당장 기자들 부르지 않고.”
“…기자들은 오지 않을 거예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자하르가 이미 언론사를 장악했어요.”
씩씩거리던 옐친은 갑자기 빈혈이 온 것처럼 휘청이더니 옆으로 쓰러졌다.
다시 정신을 차린 지 채 20분이 안 되어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아버지! 주치의 불러요. 어서요!”
“네.”
잠시 후, 주치의가 도착해 옐친의 눈과 몸 곳곳을 살피더니 머리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다시 심근경색이 도지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리고요?”
“충격을 받으셔서 뇌출혈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죠?”
“…오늘 밤을 넘기시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타냐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원래 역사에서는 2007년까지 살았지만 타냐가 한 말과 바뀐 상황에 충격을 받아 옐친의 운명도 바뀐 것이다.
그렇게 옐친은 러시아 역사에 작은 이름을 남기고 쓸쓸히 떠났다.
다음 날, 옐친의 사망 소식이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어찌 되었든 러시아의 대통령을 했던 인물이기에 자하르와 니콜라이는 그의 빈소에 방문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체첸 전쟁이 종식되면서 러시아는 본격적으로 자하르 대통령 당선자의 체제로 바뀌었다.
“할아버지, 아니 대통령님. 옐친이 숨겨 놓은 돈이 상당하죠?”
“엄청나더구나. 그 돈이면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데 큰 힘이 될 게다. 네가 맡아서 잘 좀 굴려 보거라.”
“걱정하지 마시고 맡겨주세요. 수십, 수백 배로 불려 드릴 테니까요.”
니콜라이는 이제 대통령을 외할아버지로 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부터 시원하게 일할 수 있겠네.’
니콜라이의 거칠 것 없는 행보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