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79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79화
079 불체포 특권. 그런 거 안 통해/그거 하지 마세요
1997년 12월 11일.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러시아 국적의 전용기가 김포 공항에 도착하자 한국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은 바짝 긴장했다.
러시아 대통령을 대신해 두 사람이 오기 때문이었다.
세르게이 민정수석과 니콜라이 경제 고문.
세르게이는 러시아 자하르 대통령을 대신해 청와대 인사들과 만나기 위해서였고, 니콜라이는 한국 기업들을 인수하기 위함이었다.
니콜라이는 세르게이와 함께 레드 카펫을 밟으며 이동하다 화동이 건네준 꽃다발을 받았다.
그걸 뒤따라오던 샤샤에게 건네주고 청와대 인사들과 악수를 나눴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세르게이 민정수석이 정부 인사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니콜라이는 반가운 인물을 만났다.
“이 회장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신라호텔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벌써 4년 가까이 흘렀군요.”
“저도 기억납니다.”
“그때보다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오성 그룹 이 회장은 니콜라이를 보며 잠시 그때를 떠올렸다.
신라 호텔에서 처음 봤을 때는 유리 유수포프 회장의 손자라는 것 때문에 관심을 뒀었다.
러시아와 한국의 FTA 협상이 곧 진행된다는 정보를 들으면서 관심을 조금 더 뒀을 뿐 별다른 건 없었다.
칼루가에 TV 공장을 짓는 일로 러시아에 갔을 때는 가스프롬의 사장이 되어 있긴 했어도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4년도 안 된 기간 동안 이렇게나 많이 바뀌었다니.’
러시아 대통령의 외손자.
가스프롬의 사장.
러시아 제1의 건설사인 블랙홀 건설의 사장.
러시아 유통업을 장악하고 있는 U마트의 사장.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생산 기업인 알로사의 사장.
다 열거하면 입이 아플 정도다.
‘한참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런 성공 신화를 이룬 것인지.’
더 대단한 건….
‘우리 한국 기업들의 우선 인수권을 블랙홀 인베스트먼트에서 가진다고 했었지.’
그는 블랙홀 인베스트먼트가 어떤 기업인지 자세히 알아봤었다.
미국과 다른 나라의 IT 기업들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회사.
본사는 모스크바에 있지만, 영국과 미국에 따로 지사를 뒀다.
그런 회사의 사장이 직접 와서 한국 기업들을 인수하려고 한다.
이 회장은 본인의 자식들과 니콜라이를 잠깐 비교해 보다가 머리를 흔들었다.
수준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비교할 수 없었기에.
니콜라이는 이 회장의 환대에 감사를 표하며 말했다.
“못다 한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하시죠.”
“그렇게 하시지요. 청와대에서 볼일 보고 나오면 그때 다시 얘길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이 회장과는 안면이 있어서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옆에 있던 인물은 니콜라이와 어떻게 물꼬를 터야 할지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니콜라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정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지금은 명예 회장으로 물러나 계시죠?”
“저를 아십니까?”
“미래 자동차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을 세웠지 않습니까? 정 회장님에 대해서도 잘 압니다.”
“오,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정 회장은 금발의 완전한 백인이 한국말을 너무 유창하게 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니 신기했다.
고려인이 통역하는 것에 비하면 니콜라이는 그냥 한국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발음이 자연스러웠다.
“미래 자동차가 먼저 공장을 세워 준 덕분에, 세계의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을 세웠습니다.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감사는 우리가 해야지요. 그때 유리 회장님이 도움을 많이 주셔서 빠르게 공장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자동차 특화 도시로 변모한 상태였다.
자동차는 보통 2만 5천~3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데, 그걸 만들어 내는 기업들까지 자리를 잡다 보니 완전히 자동차에 특화된 도시가 되었다.
세르게이 민정수석이 인사를 거의 마친 상태라 니콜라이도 그에 맞춰 청와대에서 마련한 차에 오를 준비를 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청와대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임기가 3개월밖에 남지 않은 대통령이지만, 이번 사태의 협상을 진행한 인물이기에 두 사람은 그를 만나러 청와대로 향했다.
* * *
대통령이 참석한 청와대 회의실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협상은 이미 서류상으로 끝낸 상태였지만 러시아에서 그걸 집행하러 왔기에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간단한 인사말이 오간 후, 대통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러시아 정부의 도움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계약서에 적힌 내용이 잘 집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겁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도움을 주고자 여러 번 시도했지만 성사되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다행히 잘 해결되어서 마음이 놓입니다.”
세르게이가 말한 걸 니콜라이가 통역하자 대통령이 헛기침하면서 시선을 피했다.
러시아의 도움을 외면했던 당사자가 본인이었으니까.
“저는 러시아 대통령을 대신해 오늘부터 계약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집행할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뭐든 따라 주셔야 일이 빨리 끝날 겁니다. 그리고….”
세르게이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나머지는 네가 말하라는 눈빛이었다.
니콜라이는 기선을 제압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강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는 회사가 부도났음에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들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습니다.”
“…!”
“먼저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들은 그들의 모든 재산을 압류할 겁니다. 해외로 빼돌린 재산도 포함이니, 정부에서도 저희 방침을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크흠. 따르도록 하지요. 계약서에 나와 있는 사항이니.”
대통령은 어차피 3개월 후면 청와대를 떠나기에 경제인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이 없었다.
기업주가 돈을 뒤로 빼돌렸으면 잡아내야 한다는 니콜라이의 말도 맞았기에 돕기로 했다.
‘정치인들도 곡소리 나겠군.’
정치인들도 연루되어 있으면 재판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날은 호텔에서 쉰 후에 다음날부터 세르게이는 정부 인사들과 일을 진행했고, 니콜라이는 해당하는 경제인들을 모두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청와대로 불려온 사람들은 수십 명이나 되었는데, 그들은 청와대의 조치로 외국으로 도피할 수도 없었던 터라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
이 자리엔 검찰총장과 경찰청장. 그리고 그 아래 사건을 집행하는 사람들까지도 참석해 있었다.
음료수로 잠시 목을 축인 니콜라이는 제일 끝에 숨어 있다시피 한 인물을 향해 말했다.
“오늘부터 한보 그룹 정 회장의 모든 재산을 압류 조치합니다. 본인은 물론, 일가친척들의 재산까지도요.”
정 회장의 비리가 너무 많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정 회장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사람(공무원 등)이 징역을 살게 된다.
압류했음에도 추징금이 모자라면 올해를 기준으로 시급 1,485원. 일급(8시간 기준) 11,880원으로 차감해 나가야 한다.
황제 노역 같은 건 여기에 없었다.
오래고 오랜 세월 동안 감옥에서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니콜라이가 기자였던 때에도 기업의 오너는 수백, 수천억 원의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감옥에 가지 않았다.
설령, 감옥에 가더라도 1~3년 내외고 그것도 각종 특사로 뽑혀 1년도 안 되어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일반인들은 1,000만 원만 횡령해도 수년을 감옥에서 보내는데 말이다.
그때도 그랬는데 지금 97년은 더했다.
니콜라이가 손을 쓰지 않으면 책임지는 기업인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한보 그룹의 정 회장 정도로 끝날 터.
국민의 화를 식혀 줄 시범 케이스는 필요할 테니까.
원래 역사에서도 이와 비슷했었다.
처벌 내용을 쭉 말해 주자 모두의 얼굴이 순식간에 허옇게 변해 버렸다.
“이의 있으시면 지금 말씀하세요.”
한보 그룹 정 회장은 설마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는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모자라는 금액만큼은 감옥에서 노역을 살아야 한다니. 이럴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는 회사가 망하더라도 기업주는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었다.
정부에서도 국민의 울분을 잠재우고자 집행하는 시늉만 보였었다.
여태까지의 한국은 그렇게 흘러갔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한국과는 완전히 달랐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 회장은 니콜라이를 강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어디 회사를 부도내고 싶어서 그랬습니까?”
“계속 말해 보시죠.”
“머슴들 먹여 살리느라 내가 얼마나 고생한 줄 알고 그러십니까? 내가 잘못한 게 있다면 사업을 더 키우려는 욕심이 과했다는 것뿐입니다. 이런 결정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니콜라이는 정 회장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머리를 끄덕였다.
…는 개뿔.
그는 기자 시절 기업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중엔 제대로 된 기업주들도 분명 있긴 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기에 정 회장의 말은 씨알도 안 먹혔다.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니콜라이도 자리에서 일어나 정 회장을 보며 말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고 러시아가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시행한 일이 부정부패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윗물이 썩었는데 아랫물이 맑겠습니까? 저는 한국 기업들의 썩은 부분을 모두 도려내고 깨끗한 상태로 인수할 겁니다.”
그 첫 번째가 정 회장 당신이고.
다른 사람들의 운명도 곧 결정될 것이다.
“제 독단적으로 한다는 게 아닙니다. 법적으로 조사해서 잘못이 없으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반대로 비리가 적발되면 여태 고생했으니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면 되는 거고요.”
“우리 집안을 아예 박살 낼 생각인 거요?”
“당신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들은 괜찮고, 당신이 고통받으면 억울한 겁니까? 당신의 잘잘못은 법이 판단할 겁니다.”
니콜라이는 조금의 인정도 베풀지 않았다.
이번 기회에 깨끗이 정리해야지만 한국 경제인들도 정신을 차릴 것이다.
이런 선례를 남겨 두면 그래도 수십 년간은 효과가 날 것이라 강하게 밀어붙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해야지 기업들을 깨끗하게 인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들도 말씀 좀 해 보세요. 나 다음은 당신들인데 왜 아무 말도 안 하는 겁니까?”
“한국 정부와 이미 얘기가 끝난 겁니다.”
니콜라이는 이렇게 기업들을 싹 정리해 나갔다.
한 명씩 면담이 끝날 때마다 검찰과 경찰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은 탈탈 털어서 모든 걸 압류 조치했다.
기아 자동차, A-오일(정유), 삼립 식품, 해태, 삼성 제약, 진로, 국제 섬유, 쌍방울, 온누리 여행사, 극동 건설, 단국 대학교….
조사하면 할수록 썩은 부분이 계속 나왔다.
썩은 부분이 많이 나올수록 오히려 니콜라이가 판단을 내리기엔 편했다.
“노조를 없애진 않을 겁니다. 단, 노조원 개개인 실명으로 홈페이지에 의견을 받을 겁니다.”
실명은 러시아 본사에서만 확인할 수 있도록 해서. 그러니 특정인이 노조원을 선동해 여론을 만들 순 없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생기면 그 직원에겐 책임을 묻고 바로 퇴사 조치시킬 것이고.
“또한, 의견이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빠르게 적용할 겁니다.”
이렇게 니콜라이의 고강도 정리 작업은 계속 이어졌다.
* * *
며칠이 흘렀다.
부도를 앞둔 기업들의 회장들과도 면담을 시작했다.
“김 회장님. 대운 그룹은 벌여 놓은 일이 참으로 많군요. 세계 곳곳에 지점을 안 차린 곳이 없을 정도로 말입니다.”
김 회장은 본인이 어떻게 사업을 벌였고, 어떤 생각으로 일을 벌였는지 구구절절 설명했다.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부분들이 더 많았다.
“김 회장님도 일단 조사를 받아야겠습니다. 판단은 그 후에 하죠.”
조사를 시작하자 정경유착에 불법 대출 알선 등 수많은 비리가 나왔다.
김 회장과 관련된 고위급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은 연금 압류에, 그들이 해 먹은 금액만큼 징역을 살게 될 것이다.
‘아쉽네. 러시아였으면 바로 시베리아 벌목공으로 보냈을 텐데.’
대운 그룹은 덩치가 워낙 커서 한꺼번에 인수하자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알짜배기 부분만 쪼개서 인수하기로 했다.
* * *
일이 한창 진행되던 중 제15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결과는 원래 역사대로 김대준 후보의 당선이었고, 가장 놀란 사람은 김대준 후보나 그의 측근들이 아니라 현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은 경제 부총리를 불렀다.
“부총리. 전에 그 흰 봉투를 준 사람이 자하르 대통령이었나?”
“아닙니다. 니콜라이 고문이 줬습니다.”
“확실한가?”
“…확실합니다.”
무서운 판단력이다.
김 후보의 당선을 확신하고 다른 나라 대통령에게 조건으로 제시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절반의 확률이라도 그걸 맞추다니….’
대통령은 니콜라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그런 능력이 있으니까 자하르 대통령이 믿고 여기로 보냈겠지. 지금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한보 그룹 정 회장을 시작으로 재판을 앞둔 기업주들이 벌써 30명을 넘겼습니다.”
“국회의원들은 40명을 넘겼다던데?”
“오늘 다섯 명이 더 늘었습니다.”
“쯧쯧.”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문제가 있는 의원은 국회 ‘회기’가 없을 때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당연히 국회에서는 강하게 반대했었다.
“불체포 특권은 국회의원 고유의 권한입니다. 우린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뭐요? 회기가 없을 때라지 않소.”
“회기가 없을 때라도 안 됩니다.”
“그러면 나라가 망해도 좋다는 겁니까? 반대하는 사람은 내가 당장 언론에 밝히도록 하지요. 당신들이 반대해서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대통령도 이런 건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으나, 그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러시아의 요구 사항에 이런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던지라.
그 결과로 여당과 야당 정치인들이 45명이나 감옥행을 앞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이 아닌 정치인들도 수십 명이나 감옥행을 앞두고 있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 있지?”
“김대준 당선자를 만난 후에 미래 그룹 정 회장을 만나고 있습니다.”
“정 회장을 왜?”
“그건 저도 잘….”
경제 부총리의 말대로 니콜라이는 정 회장을 만나고 있었다.
* * *
니콜라이는 정 회장이 지병으로 별세한다는 건 알고 있었으나 그때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의 자금이, 북한이 핵무기를 만드는 데 상당 부분 사용됐었지.’
니콜라이는 TV로 봤었던 걸 떠올리며 물었다.
“정 회장님.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을 계획을 갖고 계신다죠?”
“그렇긴 합니다.”
원래 역사에서 그는 1998년 6월 16일에 판문점을 넘었다.
아산농장에서 사육한 소 떼 500마리를 몰고.
그러니 이미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내용인지라 니콜라이가 알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그러지 마십시오.”
“…무슨 말씀입니까?”
원 역사에서는 이때를 시작으로 미래 그룹의 고난이 시작된다.
소 떼 방북을 시작으로 금강산 사업까지 진행하면서 막대한 자금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다.
북한은 그 막대한 자금을 핵무기 개발에 쓴다.
정 회장이 사망하고 결국 미래 그룹은 ‘형제의 난’이라 불리게 될 사건이 벌어지며, 그룹은 갈가리 찢어진다.
니콜라이는 이런 부분은 알고 있었기에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강하게 막았다.
“우리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소 떼나 북한과의 사업으로 생기는 돈은 단 천원도 북한 주민에게 가지 않습니다.”
“…?”
“소 떼뿐만 아니라 북한과 손잡고 사업을 진행해도 안 됩니다. 거기에서 나오는 돈은 모두 북한이 핵무기를 만드는 데 사용할 테니 말입니다.”
“핵무기를요?”
“네. 회장님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가질 수 있게 되는데도 소 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고, 북한과 사업을 진행할 겁니까?”
“….”
“북한과는 그 어떤 사업도 해선 안 됩니다. 이건 우리 러시아 정보국에서 알아낸 겁니다.”
정 회장은 깊은 고민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살아생전 고향 땅을 밟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행사를 생각해 냈겠지만 그건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니콜라이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한국 정부에는 제가 말해 놓을 테니 러시아를 통해 북으로 들어가시죠. 회장님을 러시아 국빈으로 초청해서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아!”
정 회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러시아 국빈을 북한이 감히 해코질할 순 없다는 걸 그도 알았기에.
“준비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그러면 북한에 연락해 놓을 테니 말입니다.”
“사실 죽기 전에 꼭 한 번 통천 땅을 밟고 싶었지요. 경제 고문께서 날 이렇게 생각해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금강산도 구경할 수 있게 해 드리죠.”
정 회장의 얼굴이 더욱 밝아졌다.
“이렇게 큰 도움을 주셨는데 내가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요?”
“보답 같은 걸 바라고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그래도…?”
“정 마음에 걸리신다면….”
“…?”
“그동안 대통령이 압박해서 회사 사정이 말이 아니게 힘들지 않습니까?”
“….”
정 회장은 14대 대통령 선거에 나가면서 정치인들과 경제인들 양쪽에서 공격을 받았고, 이번에 경제난까지 터지면서 회사 꼴이 말이 아니었다.
이대로 두면 미래 그룹은 자식들의 다툼까지 더해져 원 역사처럼 갈가리 찢어지게 될 것이다.
니콜라이는 이런 알짜 기업이 찢어져 버리게 내버려 둘 순 없었기에 해결책을 내놓았다.
“자금을 지원해 드릴 테니, 회장님이 가지고 계신 주식을 제게 넘겨주시죠.”
“네에?”
“회장님께서는 제가 어떤 사업을 하고 어떻게 사업을 일궈 왔는지 아실 거 아닙니까?”
정 회장은 니콜라이에 관해 알아봤기에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제가 미래 그룹을 견제할 수 있을 만큼만 주시면 됩니다. 경영권은 회장님 쪽이 가지십시오. 어떻습니까?”
아들 중 누군가가 엉뚱한 짓을 못 하게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보통 사람이 이렇게 말했으면 황당하게 들렸겠으나 말한 사람이 니콜라이기에 정 회장은 고민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일단 방북 후에 말씀드리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어요?”
“그렇게 하시죠.”
북한으로 같이 들어가서 살살 구슬리면 될 것이다.
* * *
피바람이 부는 한국의 길거리에도 영국의 팝 그룹 왬의 ‘라스트 크리스마스’와 캐럴이 울려 퍼졌다.
니콜라이도 연말까지는 칼춤을 멈추기로 했다.
그러나 며칠 후, 98년 1월이 되면….
한국은 다시 니콜라이의 손아귀에서 곡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