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rown bear country is mine now RAW novel - Chapter 82
불곰국은 이제 제겁니다 82화
082 북한에 빌려준 차관도 반띵/러시아 정부 인사 개편의 칼춤
“그런데 루카셴코한테는 언제 연락하실 생각입니까?”
“장쩌민 주석 때문에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구나. 10억 달러 때문에 고민했더니 웬 100억 달러를 빌려달라고 하니 원.”
“할아버지. 중국에서 원한 차관 말인데요.”
니콜라이는 생각하고 있던 걸 자세히 설명했다.
100억 달러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한참을 들은 자하르 대통령의 얼굴에도 니콜라이와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중국을 견제하기엔 가장 좋은 방법 같구나.”
“이렇게 하면 앞으로 중국은 우리 러시아 눈치를 보며 지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겠어. 우리와 같은 노선을 걸었지만, 중국은 믿을 수 없는 곳이니 이렇게라도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자하르는 대통령이 되면서 중국을 견제할 방법을 고민해 봤었다.
인구 10억이 훌쩍 넘는 중국이 아래에 떡 버티고 있으니 언제나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주변국 중에 기회만 있으면 러시아 땅을 노릴 곳은 중국 말고는 없었다.
그런 중국을 견제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차에 장쩌민 주석에게서 연락이 왔고, 니콜라이가 이런 기막힌 해결책을 내놓았다.
“역시 네 생각을 빌리는 게 맞았어. 네 말대로 차관을 빌려주고 중국을 묶어 두도록 하자꾸나. 그러면 이것도 네가 맡아 보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렇게 얼마 후, 두 사람은 장쩌민 주석과 만났다.
자하르 대통령은 무척이나 고민하다가 어렵게 결단을 내렸다.
장쩌민 주석에겐 그렇게 보였다.
“빌려드리죠. 100억 달러.”
“아, 감사합니다. 제가 헛걸음을 하진 않았군요.”
줄곧 어두운 표정이었던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해졌다.
돈은 중국의 주석까지도 쥐락펴락할 정도로 큰 힘을 발휘했다.
그 무서운 돈을 장 주석은 덥석 받아 버렸다.
두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빌려주는 건지도 모른 채.
자하르 대통령이 입꼬리를 슥 올리며 니콜라이와 의논했던 조건을 얘기했다.
“차관으로 빌려드리는 100억 달러는 모두 중국의 기반시설을 만드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물론입니다. 그렇게 쓰려고 빌리는 돈인데요.”
“돈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가 확인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어디에 썼고 얼마나 썼는지를요.”
“…!”
“그리고 건설에 필요한 인적 자원은 우리 러시아 인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으음. 인력까지….”
잠시 고민하는 장쩌민 주석.
중국은 소의 숫자보다 사람이 더 많은데 그걸 굳이 러시아 인력으로 대체해야 한다니.
중국의 가장 큰 장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 버렸기에 그는 난감했다.
‘이걸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하면 틀림없이 차관을 빌려주지 않을 텐데….’
장고를 거듭하던 그가 어렵게 입을 뗐다.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시면 차관을 빌려드릴 수 없습니다.”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나오자 장 주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다른 요구가 이어지면서 그는 완전히 뭐 씹은 얼굴이 되어 갔다.
“중국에서 가스프롬이 지하자원을 개발할 수 있게 해 주셔야 합니다.”
또,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돕지 말 것.
중국의 사막을 100년간 러시아에 넘길 것. 등.
몇 가지 요구를 더 말하고 난 후에야 자하르 대통령의 말이 끝이 났다.
“이것들을 모두 받아들이시면 차관을 빌려드리겠습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요.”
장쩌민 주석은 처음엔 자하르 대통령이 차관을 빌려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이런 조건을 내세운 줄 알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요구 조건이 까다롭긴 했으나 ‘죽어도 못 받아들이겠다.’ 정도는 아니지 않나.
한참을 고민하던 장쩌민 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말씀하셨던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금액이 워낙 크다 보니 우리 입장에서도 안전장치를 해 둬야 해서 그랬을 뿐입니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합니다.”
그렇게 장쩌민 주석과의 만남은 끝이 났다.
밖으로 나가 차에 오른 장 주석은 온갖 욕을 다 쏟아 냈다.
“이런 날강도 같은 놈들을 봤나. 내가 다시 러시아에 오나 봐라. 에이 더러운 놈들. 출발해!”
한편, 자하르 대통령과 니콜라이는 그와 반대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허허, 장 주석 얼굴이 말도 아니게 구겨진 걸 보니 단단히 화가 났군.”
“돈 빌리는 게 어디 쉽나요. 그만한 대가를 지급해야죠.”
“네 말이 맞아. 100억 달러나 되는 돈이면 대가를 지급해야지.”
얘기가 다 끝났기에 막 일어나려던 니콜라이에게 자하르가 물었다.
“코리아 대통령 취임식에 너도 참석하겠느냐?”
“아니요. 좀 껄끄러울 것 같습니다.”
“그렇겠구나.”
“할아버지는 참석하실 거죠?”
“초대를 받았는데 안 갈 수도 없고….”
클린턴 대통령도 참석하기에 그도 껄끄러웠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NATO 협정식 때 클린턴 대통령과 얼굴을 붉혔던지라.
그러나 초대를 받았기에 참석하기로 했다.
“저기 그런데, 북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어떤 식으로든 북한을 돕지 말 것.
이런 요구 사항을 추가한 건 니콜라이가 계획하고 있는 일에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북한이 왜?”
“소비에트 시절 때 북한에 제공해 준 차관이 있지 않습니까?”
“있으면 뭐 하냐. 받지 못할 돈인데. 북한 경제 사정을 봐선 받기 힘들 게다.”
실제 역사에서는 갚을 가망도 없는 북한의 국채가 액면가의 무려 15%대로 거래되었다.
보통 갚을 가망이 거의 없는 부도 채권들은 아무리 잘 쳐줘도 4~5% 수준으로 거래가 되는데, 북한 채권은 왜 15%였을까?
그건 남북통일이 되면 통일 한국, 즉 북한을 흡수한 남한이 갚아 줄 수밖에 없을 거라는 기대심리 때문이었다.
실제로 소비에트 연방을 계승한 러시아도 갚았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있었기에.
“110억 달러나 되는데 그걸 잊잔 말입니까?”
“자신 있으면 네가 한번 받아 내 보던가.”
“받아 내면 제가 다 가져도 되나요?”
니콜라이가 강하게 나오자 자하르 대통령은 잠시 생각을 했다.
다 쓰러져 가던 ‘알로사(다이아몬드)’를 맡아서 순식간에 일으켜 세운 것뿐만 아니라, 니콜라이가 나서면 꼭 결실을 만들어 냈었다.
그동안에 한 일을 보면 북한이라고 못 받아 낼 것 같지도 않았다.
자하르는 알로사 때처럼 절충안을 내놨다.
“흐음. 반으로 하는 건 어떠냐?”
“좋습니다. 110억 달러를 꼭 돈으로만 받지 않아도 되는 거죠?”
“그만한 값을 하는 것이면 상관없다. 뭐든 받아 내기만 하면 돼.”
55억 달러를 냉큼 먹어 치울 생각에 니콜라이의 입가가 쓱 올라갔다.
* * *
니콜라이는 모스크바에서 새해를 보내고 2월 10일에 한국으로 들어갔다.
이 회장이 전경련에 가입된 기업들의 회장들에게 말을 잘해 놓았는지, 그쪽에서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다.
2월 25일에 대통령 취임식이 있어서 그전에는 모두 끝낼 생각이었다.
한국 기업들을 인수하는 일은 최대한 빨리 끝내는 게 좋았기에 속도를 냈다.
“가스프롬에 A-오일(정유) 회사가 합쳐지면 시너지 효과가 크겠군요. 섬유 회사도 러시아에 꼭 필요하고.”
정부가 부채 탕감을 하는 조건이었기에 니콜라이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원하는 모든 기업의 인수를 얼추 마쳤을 때는 2월 23일, 한국 대통령의 취임식을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나머지는 러시아 블랙홀 본사 직원들과 이민국 한국 지사장에게 맡겼다.
“저는 볼일이 있으니까 나머진 지사장님이 처리하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니콜라이에게서 얘기를 들은 미래 그룹 명예 회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봐! 여기 냉수 좀 가져와.”
“네, 어르신.”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급히 냉수를 가져오자 정 회장은 단숨에 마셔 버렸다.
“정말, 6월이면 가능하단 말이지요?”
“네, 북한에도 연락을 해 둬야 해서 시간이 조금 필요하긴 한데, 6월 중이면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6월 중 어느 때고 연락을 주십시오. 그러면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회장님은 러시아 국빈 자격으로 가시게 될 겁니다.”
“러시아를 통해서 가야 한단 말이지요?”
“판문점으로 갈 순 없습니다. 괜찮겠습니까?”
“나는 고향 땅을 밟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살아생전 고향 땅을 밟고 싶어 하는 정 회장의 심정을 모두 이해하진 못하겠으나,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도 새 삶을 얻고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때 온몸에 흐른 전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얘기가 잘 끝났기에 니콜라이는 마무리를 짓고자 했다.
“회장님, 그러면 이걸 좀 작성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게 뭔가요?”
“전에 말씀하셨던 겁니다. 회장님 지분 말입니다.”
“아.”
“북한으로 가기 전에 계약서를 작성해 둬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겠지요.”
사람은 믿지 못해도 계약서는 믿을 수 있는 법.
가끔은 계약서를 써도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과는 상관없기에 니콜라이는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기로 했다.
몇 번에 걸쳐서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 본 정 회장이 서랍에서 도장을 꺼냈다.
“아드님께 말하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욘 없지요. 내 선에서 끝내도 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럼 저는 이 계약서를 공증을 받아 놓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계약서에 빨간 도장이 찍히고 니콜라이가 그 아래에다가 사인했다.
그런데 니콜라이는 다른 것을 하나 더 요구했다.
“사인까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장을 찍었는데도요?”
“회장님과 저는 국적이 다르지 않습니까? 동양은 도장을 많이 사용하지만, 서양에서는 사인을 주로 사용하거든요. 그래서 도장과 사인을 함께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이렇게 계약이 모두 끝이 났다.
도장에 사인까지 된 계약서를 니콜라이는 공증을 마쳤다.
이제 미래 그룹은, 오성 그룹과 더불어 지금보다 더욱 성장하게 될 것이다.
다음 날이 한국 대통령 취임식이었기에 니콜라이는 한국에 와 있는 자하르 대통령을 만났다.
“세르게이에게 가 보면, 전에 말한 정부 인사 명단을 줄 게다.”
“제가 철저히 조사해서 걸러내겠습니다.”
* * *
모스크바 니콜라이의 집.
한국에서 모든 일을 마치고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온 니콜라이는 샤샤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 사람들 뒷조사 철저히 해 봐.”
서류를 펼쳐 쭉 읽어 내려가던 샤샤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정부 인사 개편할 모양이네?”
“루카셴코가 그 짓을 했는데도 보고한 사람이 한 명도 없으면 문제가 있는 거잖아. 대통령께서 이번 기회에 싹 바꾼다고 하셨어.”
“그럼 우리 조직은 대통령이 인정한 거잖아?”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정부 요원들보다 우리 요원들 능력이 더 뛰어난 것 같더라. 그러니까 샤샤 너는 자부심을 가져도 돼.”
사조직이 정부 조직보다 능력이 더 좋다?
샤샤에게는 큰 힘이 되는 말이었다.
그런 조직의 이인자가 자신이었기에, 그는 더욱 힘이 났다.
“우리가 하는 일이 나라에도 도움이 된다니까 기분이 좋긴 하다.”
“앞으로 중요한 건 우리한테 맡긴다고 하셨어.”
“요원들한테도 말하면 힘 많이 날 거야. 여태껏 음지에서 일했는데 이젠 양지로 나온 거나 마찬가지니까.”
니콜라이는 이쯤 해서 조직에 제대로 된 이름을 만들까 싶었다.
“우리 조직 이름 좀 생각해 봐. 너무 촌스러운 거 말고 그럴듯한 걸로.”
“이름 짓는 건 내가 또 잘하지.”
“너 혼자 생각한 거 말고, 요원들한테도 물어보고 말해.”
“알겠어. 잘 의논해 본 후에 보고할게.”
“아 참. 6월쯤 북한에 들어갈 건데 너도 같이 가자.”
“허어, 북한?”
“너도 경험을 해 봐야 할 거 같아서 데리고 가려는 거야.”
“나야 좋지.”
니콜라이도 북한은 처음 가는 것이라 조금 들뜬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니콜라이는 기자 시절 때 영상과 사진으로 그때의 참상을 많이 봤지만 샤샤는 처음이다.
‘샤샤가 충격을 좀 받겠어.’
UN에서는 이때 죽은 북한 주민이 수백만에 이를 거라고 했었다.
죽은 사람까지 삶아 먹었다는 내용도 있었으니 얼마나 심하게 굶주렸는지 알 만했다.
* * *
12일 후, 샤샤는 자하르 대통령이 건네준 명단을 철저히 조사하고 니콜라이에게 보고했다.
“최단기간에 끝내려고 모든 요원을 투입했어.”
“수고했다.”
“아, 그런데 정부 고위급 인사들 문제가 많아. 뒤로 해 처먹은 돈이 장난이 아니더라고.”
“그 정도야?”
“말도 마. 이거 정리하자면 당분간은 좀 시끄러워질 것 같아.”
다음날부터 한국과는 또 다른 칼춤이 러시아에서 시작되었다.
누가 남게 되고, 누가 시베리아 벌목공으로 끌려가게 될지 결정되는 칼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