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ebol's Youngest son RAW - Chapter (173)
174화. 중공업의 마지막 퍼즐.
카드사태는 많이 진정되었다.
은행간판을 달고 영업했던 카드사는 그 은행으로 모두 합병되었고, 미래카드는 미래생명과 미래전자의 투자를 받아 기사회생했다.
TL그룹은 카드사 매각을 공개적으로 추진했고, 몸집을 불리려는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압도적 1위 토마토뱅크가 불참한 가운데, 2위에 올라서려는 또는 지키려는 은행들의 사투가 벌어지면서 TL그룹은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TL카드를 인수하면 카드업계 1위로 올라설 수 있기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가격이 올라갔다.
결국 신한은행이 무려 8.1조를 질러 TL카드를 인수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승자의 저주’, ‘상처뿐인 영광’ 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가장 유력했던 백산그룹과 토마토뱅크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2001년 6월 3일.
한도영은 포항제철 서울 본사를 방문했다.
‘마지막 퍼즐이다.’
그간 백산그룹은 백산전자를 제외하면 중공업계열사 위주로 사세를 확장해왔는데, 딱 하나 빠진 것이 제철소였다.
이번에 그것을 마무리 짓기 위해 미리 약속하고 포항제철을 방문한 한도영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포항제철 대표 박광혁은 커다란 손을 내밀어 한도영과 악수하고는 대표실로 안내했다.
“당진제철소에 관심이 있으시다고요?”
박광혁은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을 꺼내들었다.
보한그룹이 부도난 후, 포항제철은 울며 겨자 먹기로 보한철강 즉 당진제철소를 관리하게 되었다.
그동안 박광혁은 어떡하든 당진제철소를 처분하려고 애를 썼지만, 거래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대기업에서 관심이 적었던 이유에는 아직 당진제철소가 완공되지 못한 측면도 컸다.
대현그룹에서 잠시 관심을 드러냈지만, 카드사태가 터지면서 대현카드에 많은 자금을 지원하여 당진제철소를 인수할 여력이 사라졌다.
그 와중에 백산그룹에서 인수의사를 드러내자, 박광혁은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급히 실무진을 보내 협상을 시작했다.
이제 그 협상이 어느 정도 타결되었기에 한도영과 박광혁이 이렇게 만난 것이다.
“이미 실무진 협상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셨을 테니, 긴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한 회장님. 이왕 시작한 거 속도를 좀 높이면 어떻습니까?”
괄괄한 성품의 박광혁은 훅하고 치고 들어왔다.
한도영 역시 일을 질질 끄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곧바로 진지한 이야기가 오고가기 시작했다.
“우리 백산에서는 포항제철이 제시한 9,152억이 조금 부풀려졌다고 판단합니다.”
“계속하시죠.”
가격을 내리려는 의도란 걸 알고 있었지만, 박광혁은 원래 협상이 이런 걸 잘 알기에 한도영에게 집중했다.
“주관사인 일해회계법인을 통해 정밀하게 자산가치를 실사 후 보고 받았습니다. 이른 근거로 판단했을 때 9,152억보다는 8,918억이 적당한 금액이라 생각하는데, 박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매각가격이 234억이나 내려가자, 박광혁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97년 부도나기 전에 당진제철소의 자산가치는 이보다 훨씬 높았었다.
하지만 부도난 이후 포항제철이 관리했고, 수동적인 관리가 이뤄지면서 가치가 폭락해버렸다.
부도나지 않았다면 벌써 완공되었을 제철소가 아직도 공사 중이란 게 그것을 증명했다.
“한 회장님. 당진제철소가 원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최소 2조는 되었을 겁니다.”
“협상에 if를 언급하십니까? 좀 실망스럽습니다. 박 대표님.”
박광혁은 한도영에 대해 그동안 소문으로 접하다가 실제로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절대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표정이나 지금처럼 단번에 기세를 꺾어버리는 언행은 예상치 못했었다.
“박 대표님. 백산그룹에서는 현재의 당진제철소를 인수할 의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금액을 지급하길 원합니다. 일해회계법인을 통해 실사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제안했으니, 박 대표님도 제 주장이 무리가 아니란 걸 알 겁니다.”
“그래도 234억이나 한 번에 내려달라는 건 심합니다.”
“일단 생각해보시고 다시 전화를 주십시오.”
한도영은 협상이 틀어지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광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한도영과 악수하고는 그를 보냈다.
“대현카드 문제만 아니었어도.”
홀로 남은 박광혁은 아쉬움에 고개를 흔들었다.
적어도 백산과 대현의 경쟁구도만 생겼어도 협상할 여지가 생기는데, 백산 단독입찰이 확정되자 속절없이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당진제철소는 아직 공사 중이라, 몇 년째 수익을 내지 못했기에 더더욱 박광혁은 한도영에게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
만약 한도영이 말도 안 되게 후려치면 협상테이블을 접으면 그만인데, 이렇게 치고 들어오니 그럴 수도 없었다.
백산그룹.
“협상은 잘 진행되었습니까?”
한도영이 본사로 들어오자, 홍건희가 회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곧바로 질문했다.
요즘 들어 홍건희의 말투는 그전보다 확실히 극존대로 바뀌었다.
한도영과 홍건희의 관계를 생각하면 좀 더 편하게 대화해도 되지만, 회사 내의 위치가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투가 그리 변한 것이다.
한도영도 그에 맞춰 말투를 바꿨다.
‘아저씨와 함께 일하면서 편하게 지냈으면 했는데, 내 욕심이었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34억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는데, 바로 들어줄 리가 없으니까요.”
한도영은 냉장고를 열어 시원한 물을 마시고는 넥타이를 풀어 헐겁게 하며 자리에 앉았다.
“결국에는 포항제철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겁니다. 포항제철 입장에서 당진제철소는 계륵이니까요.”
“그렇죠. 억지로 떠맡았으니 계륵이 맞습니다. 하지만 더는 가격인하를 요구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포항제철이 협상테이블을 접을 게 분명합니다. 지금 제시한 금액이 포항제철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입니다.”
“더는 그를 압박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도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의 협상태도는 기업가치 등 상황에 따라 크게 변했다.
미래가치가 높은 구글, 아마존 등을 인수할 때는 상대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자세를 취했지만, 이번처럼 미래가치가 그리 크지 않은 경우는 냉정했다.
물론 중공업 부분이 많은 백산그룹에 당진제철소는 큰 도움이 될 테지만, 미래가치보다는 현재가치가 크게 작용했다.
‘한 10년 지나면 중국, 인도 철강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를 것이다.’
제철소 하나뿐이라면 그들과의 경쟁에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 하지만, 백산중공업과 BF Motor, 태평양상선, 백산건설 등 그룹 내에 철강수요가 풍부했기에 한도영은 그들과의 경쟁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한도영은 앞으로 중공업 부분을 인수할 계획이었다.
때가 되면 한국해운마저 인수하여 태평양상선을 세계적인 해운사로 출범시킬 생각이었다.
거기까지면 중공업 확장은 얼추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제 그룹의 역량을 전자, 생명, 플랫폼 등 미래고부가치 산업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백산그룹의 미래를 생각해봤습니다. 지금 백산그룹은 중공업 위주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계속 중공업을 밀어붙이기 어렵습니다.”
“중국의 성장을 걱정하시는군요.”
“네. 중국은 인도, 러시아, 브라질과는 다릅니다. 분명 한국과 일본, 미국의 기초산업을 야금야금 침범해 들어올 테니, 중공업 성장도 한계에 도달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여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백산전자의 핸드폰이나 반도체가 좋은 대안이 되겠지요.”
한도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마트폰이 출시되면 산업계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
백산그룹과 포항제철의 줄다리기는 팽팽하게 이어졌다.
백산그룹도 8,918억을 최종가격으로 제시하면서 더는 인하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장고 끝에 포항제철은 백산그룹의 요구를 받아들여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6월 17일.
한도영은 한득병을 모시고 당진으로 내려갔다.
“길이 좁은데, 4차선으로 확장공사를 하고 있어요. 한 1년만 지나면 교통편이 훨씬 좋아질 거예요. 할아버지.”
“설레는구나. 백산이 제철소를 품다니. 이젠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다.”
한득병의 꿈을 한도영이 모두 실현하자, 한득병은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그는 이런 미래가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었기에 더더욱 감격스러웠다.
“2년은 더 걸려야 제철소를 완공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룹 내에서 자체적으로 철강제품 수요가 있어서 판매도 큰 걱정이 없고요.”
“그룹 내에서 팔아주지 않아도 고품질 철강 수요는 어디든 있다. 그러니 품질혁신에 공을 들여. 그러면 제철소가 적자날 일은 없을 테니까.”
“예. 할아버지.”
한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
한득병 앞에서 굳이 중국, 인도 철강의 추격을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당진제철소.
“웅장하구나.”
한득병은 제철소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당진제철소를 한눈에 내려다보고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직 고로는 공사 중이지만, 봉강, 열연공장, 냉연공장은 올해 안으로 정상가동시킬 생각입니다. 포항제철이 억지로 떠맡았기에 다소 소홀하게 운영했던 측면이 있어요.”
“그래. 이제 주인이 바뀌었으니 달라져야지.”
한득병은 한도영의 손을 꼭 잡으며 시선은 여전히 당진제철소로 향했다.
**
8월 25일.
“휴우.”
한도영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15분이었다.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기에 불을 켜고 침대에 벌렁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뻔히 대형참사가 벌어지리란 걸 아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비참하군. 아니 이를 통해 막대한 돈을 벌 텐데, 과연 잘하는 것일까?’
이제까지 미래지식을 이용해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다.
그 과정에서 가격대비 엄청난 가치를 얻어냈는데, 이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9월에 있을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고민 중이었다.
‘내가 나선다면 막을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무슨 재주로 막는단 말인가?
이를 신고하더라도 미국정부가 주도적으로 움직여줄지도 미지수였고, 문제가 터진다면 미국정부는 한도영을 의심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곤욕을 치를 게 분명했기에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비극을 지켜봐야 했다.
이런 생각이 많아서일까?
요즘 한도영은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도 투자해야지. 이런 기회를 놓친다면 한도영이 아니니까.’
한도영은 결국 이번 사태를 이용하기로 결심했다.
그의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지만, 전생의 강지훈 기억이 그대로 남아있는 한도영으로서는 감정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다음날.
한도영은 권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숏을 치라니?
하락에 배팅하라는 한도영의 요구에 권지훈의 곤혹스러움이 수화기를 통해 그대로 전달되었다.
“제 생각에는 9월에 시장이 안 좋을 거 같아요. 그러니 과감하게 미국, 일본, 유럽 증시에서 파생상품을 동원해 숏을 치세요. 9월 내내요.”
-도영아. 미국정부에서 기준금리를 내리는 등 경제를 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어.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데. 이유를 알 수 있을까? 그냥 시장이 안 좋을 거 같다는 그런 추상적인 이유 말고.
“이번만 그렇게 해주세요.”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래야지.
“일단 주식은 그대로 놓아둔 상태에서 남은 자금을 모두 쏟아 부으세요.”
-그래. 알았다. 하락하면 큰돈을 벌겠지만, 상승하면 다 날아가는 거야. 알고 있지?
“네.”
-뭐, 지각변동이라도 일어나 주가가 폭락한다면 이제까지 번 돈보다 더 많이 벌겠지만. 뭐, 그럴 일이 있겠냐? 아무튼 조금이라도 주가가 내려가서 이득을 봤으면 좋겠다.
“네. 그럼 수고하세요.”
-무슨 일 있어? 그러고 보니 목소리에 힘이 없네.
“아닙니다.”
한도영은 무겁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는 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돈을 벌면서 찜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은 정말···.”
한도영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