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aebol's Youngest son RAW - Chapter (86)
87화. 대형폭풍으로 성장한, 타이거스 이전.
백산중공업.
의외의 인물이 방문했다.
광주시장 오정환이었다.
그는 서울에 볼일이 있어 잠시 들렀다가 타이거스 서울이전 소식을 듣고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한도영은 가볍게 목례하고는 악수하고자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오정환은 악수를 거부하고는 냉담한 눈빛으로 한도영을 노려보았다.
“한 사장. 지금 뭐하자는 거요?”
신경질적인 오정환의 반응에 한도영은 헛웃음이 나왔다.
조상구처럼 나이 차가 많이 나도 상대를 존중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오정환처럼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목적어를 말씀하셔야죠. 제가 오 시장님의 생각을 읽는 것도 아닌데요.”
“타이거스 서울이전.”
“왜요? 잘못 되었습니까? 서울에 있는 타이거스 팬은 팬이 아닙니까?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그게 문제가 아니잖소. 왜 광주시를 걸고넘어지느냐 이거지. 대아그룹처럼 광주시에서 야구단운영하면 되지, 왜 분란을 일으키느냐? 이 말이오?”
“흐음. 재밌군요.”
“재밌어?”
“이제까지 대아그룹에서 불만이 있어도 참아가면서 야구단을 운영했고,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으며,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광주시에서 뭘 해줬습니까? 우리 백산중공업도 불만 있어도 입 꾹 다물고 운영해라 이 말입니까?”
“말 다했소?”
“다 못했습니다!”
“이, 이 사람이. 어디서 소리를 질러···.”
“오 시장님은 시민들이 선출한 공무원입니다. 무슨 대단한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으스대지 마세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더니, 오 시장님을 두고 한 말이었군요. 참 부끄럽습니다.”
한도영에게 정곡을 찔린 오정환은 푸들푸들 몸을 떨었다.
이제까지 정치인생에서 굴곡이 있었지만, 기업인에게 그것도 한참 어린 한도영 같은 기업인에게 수모를 당한 건 처음이었다.
80년대의 서슬 퍼렇던 정치권력이 지금은 좀 흐릿해졌지만, 여전히 실세 정치인은 기업인 정도는 자신의 아래로 보고 있었다.
오정환 역시 이런 정치인들의 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신 이러고도 괜찮을 거 같아?”
“오 시장님. 돈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시죠?”
“흥, 87년에 조삼영도 청와대 비서관에게 폭언을 듣고 대꾸 한 마디 못했어. 지금 정치인의 힘이 약해졌다지만, 한 사장 정도는 고생시킬 수 있다 이 말이야.”
“그런가요? 그럼 돈을 풀어서 오 시장님 다음에 시장에 당선되지 못하게 만들어야겠군요.”
“푸하하하. 뭘 모르는 친구군. 나 광주시장이야. 광주시장.”
“아, 그렇죠. 그럼 공천 받지 못하게 하면 되겠네요.”
“무슨 수로?”
“장금산 후보에게 한 100억 정도 후원금을 내면서 오 시장님을 공천에서 배제해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장금산 후보께서 거부할까요? 수락할까요?”
“100억? 미쳤어? 그게 얼마나 큰돈인데···.”
“큰돈이죠. 하지만 기업인은 필요하면 그 정도 돈은 쓸 수 있습니다.”
한도영이 담담하게 대답하자, 오정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공수가 바뀌자, 한도영은 그를 노려보며 무자비하게 폭격을 시작했다.
“이제까지 기업인이 정치인에게 머리를 숙인 건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킬 게 많았기 때문입니다. 진짜 작정하고 정치인 한 명 매장하려고 들면 살아남을 자신 있습니까? 제가 선거에서 오 시장님 반대편에 100억, 200억 쏟아 부으면 당선될 자신 있으세요? 저는요. 한번 마음먹으면 끝을 봅니다. 왜 18살밖에 안된 제가 백산중공업 대표가 되었는지 생각해보세요. 보통이 아니니까, 아주 독종이니까 된 겁니다.”
한도영은 모욕감에 푸들푸들 떠는 오정환의 어깨를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서로 예의는 지킵시다. 오 시장님.”
“그래. 그렇게 설쳐봐. 백산그룹도 제국그룹 꼴이 날 테니까.”
80년대 한창 잘 가나던 제국그룹은 해체되었는데, 정치권에 밉보였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오정환이 몸을 홱 돌려 걸어 나가 문고리를 신경질적으로 잡고 돌리려고 할 때, 한도영의 말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어제 대선후보 지지율을 보니까 안의혁 후보 47.8%, 장금산 후보 48.1%로 아주 박빙이더군요.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아, 물론 당사자들은 피가 마르겠지만.”
“무슨 뜻이야?”
오정환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 타이거스 서울이전 문제를 계속 공론화시키겠습니다. 그럼 광주시, 전라도 민심이 흔들릴 텐데요. 분노의 화살이 어디로 움직일까요? 오 시장님.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자신 있으세요? 만약에 이것 때문에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비난의 화살의 상당수가 오 시장님께 돌아갈 겁니다. 그 정도도 수습하지 못해 대선을 망쳤다고. 자신 있으면 문 열고 가세요.”
한도영은 할 말 다했다는 듯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오정환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오정환은 문고리를 잡은 채 안절부절못했다.
‘오정환. 까불지 마라. 지금 내가 네 머리 위에 올라앉아 있으니까. 정치인들의 가장 큰 약점이 여론 아냐? 내가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한, 넌 내게 안 돼. 시민들이 권력을 주니까, 이것들이 지가 잘해서 왕이라도 된 줄 알아.’
“지, 지금 협박하는 거요?”
오정환의 반토막짜리 말이 조금 길어졌다.
“협박이라뇨? 제 입장을 말씀드렸고, 어쭙잖게 대선분석을 했을 뿐입니다. 요즘은 택시를 타도 대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도 한마디 했을 뿐입니다. 광주시와 전라도 시민들이 실망해서 1%만 투표소에 가지 않아도 꽤 타격이 클 텐데요. 어쩌면 그것 때문에 대선결과가 바뀔지도 모르고요.”
한도영은 빙글빙글 웃었다.
그는 오정환의 속내를 알아차리고는 사람대접해줄 생각을 버렸다.
오정환은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며 살길을 찾았지만, 완벽한 외통수였기에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한 사장. 내가 말실수를 했어요. 허허, 다 잊어주시오.”
“잊어드리죠. 대신 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가져오십시오. 뉴욕시와 양키스구단의 상생방안도 괜찮고. 여러 경우를 조사해서 작성하시면 충분할 겁니다. 그때까지 계속 타이거스 서울이전을 공론화할 테니 서두르시고요. 늦어지면 윗분들이 오 시장님께 호통을 치지 않겠습니까? 표 떨어진다고.”
“하, 한 사장.”
“어서 움직이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한도영은 조금의 틈도 보여주지 않았다.
오정환은 절대 끝까지 거부하지 못하리라 확신했다.
광주시와 전라도의 민심이 요동치는 걸 확인한 윗선에서 난리를 칠 테니까.
누가 됐던 간에 원하는 답안을 가져오리라 확신했다.
어린놈을 훈계할 가벼운 마음으로 왔던 오정환은 외통수를 맞고 커다란 숙제를 안은 채 백산중공업을 나왔다.
그의 얼굴은 처참할 정도로 일그러져있었다.
**
12월 12일.
며칠째 백산중공업에서 타이거스 서울이전을 계속 공론화하자, 백산중공업의 KBO 편입을 승인한 KBO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KBO.
권영철 총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이상일 사무처장과 커피를 마셨다.
“그러니까 회원사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고요?”
“네. 솔직히 백산중공업에서 제시한 문제는 모든 회원사들의 문제였으니까요. 그동안 불만이 있어도 정치권에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되어 꾹꾹 눌러 참았을 뿐이지요. 그런데 백산중공업에서 그걸 터치니까, 표현은 안 해도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입니다. 아마 응원하고 있겠지요.”
“이러다가 백산중공업 한 사장이 미운털이 단단히 박혀 잘못되는 건 아닐지 모르겠군. 다른 회원사라고 그걸 몰라서 참은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총장님. 시기가 참 절묘합니다.”
이상일이 목소리를 낮추고 이야기하자, 권영철도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디밀었다.
“무슨 말이요?”
“대통령 선거가 코앞인데, 타이거스 연고지역에서 시민들의 불만이 쌓이고 있거든요. 장금산 후보도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소문입니다. 거기서 대량득표를 하지 못하면 무조건 패배이니까요.”
그제야 권영철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한 사장이 이런 정황을 다 꿰뚫어보고 광주시장을 들이받았다. 이 말이요?”
“거기까지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 사장이 웬만한 조건으로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공언한 만큼, 결국에는 좋은 제안을 받아내겠지요.”
“그건 그렇다 치고. 나중에 당선된 후에 곤욕을 치루지 않겠어요. 난 그게 걱정인데.”
“다 생각이 있겠죠. 그 나이에 백산중공업 대표에 올랐고, 불과 2년 만에 10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그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이다?”
“네. 아마도 사고를 크게 칠 거 같습니다.”
“휴우, 이거 백산중공업을 회원사로 받아들인 게 실수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
권영철은 답답한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
민국당 서울 대선본부.
수원에서 유세하던 장금산이 급히 서울로 올라왔고, 오정환도 호출 당했다.
당사로 들어서자, 싸늘한 기운이 몰려왔고 오정환은 그로 인해 더욱 위축되었다.
‘빌어먹을.’
“어이, 오정환. 선거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어?”
“죄송합니다. 신 의원님.”
민국당 최고의원 신혁기가 오정환을 보자마자 호통을 쳤다.
오정환은 신혁기의 추천을 받아 정치계에 입문했기에 그의 비난에도 반발하기는커녕 곧바로 사과했다.
“지금 민심이 들끓고 있는데 어떡할 거야?”
“의원님이 그 건방진 놈을 힘으로 눌러주시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당장 따라와. 성질 같아선 한 대 후려치고 싶은데, 후보님께서 당신을 빨리 보자고 하시니까.”
“후, 후보님이요. 지금 수원에 계신 거 아닙니까?”
“당신 때문에 올라오신 거 아냐. 대책을 마련하려고.”
신혁기는 분노한 얼굴로 주먹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쌩하고는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고, 오정환은 죄인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예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지자, 오정환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오정환이 회의실로 향하는 동안 마주치는 당직자들의 차가운 시선이 꽂혔고, 뒷말이 귀를 간지럽혔다.
회의실로 들어서자, 조용해졌고 모든 시선이 일제히 오정환에게 쏠렸다.
오정환은 가운데 앉아 있는 장금산을 발견하고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신혁기는 문을 닫고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장금산은 눈을 감은 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눈초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으로 보아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윽고 그의 눈이 떠지고, 입이 열렸다.
“오 시장.”
“예. 후보님.”
“해결방안을 가져왔소?”
“후보님께서 적당히 좋은 말로 격려해주시면···.”
“어이, 오 시장. 미쳤어? 당신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돼?”
“조용.”
신혁기가 발끈하자, 장금산은 그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지시를 내렸다.
회의실은 다시 적막감에 휩싸였다.
장금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백산중공업 한···.”
“한도영입니다. 후보님.”
장금산이 한도영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하자, 신혁기가 재빨리 작은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그래. 한 사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맹랑한 사람이더군.”
“그렇습니다. 아주 맹랑하고 예의가 없는 어린놈입니다. 후보님께서 훈계해주시면 말을 들을 겁니다.”
오정환은 살 길이 열렸다는 듯 장금산의 말에 급히 장단을 맞췄다.
하지만 장금산의 다음 말은 그를 좌절시켰다.
“내가 말한 맹랑하다는 뜻은 그게 아니요.”
“네?”
“우리 늙은이들처럼 앞뒤를 재지 않고 성질대로 들이받는다 이 말이오. 지금 대선이 6일 남았는데, 타이거스 서울이전 문제로 시끄러워요. 내가 공략해야 할 표밭과 타이거스 팬이 정확히 일치하는데, 아직까지 대책을 내놓지 않고 뭐하는 거요? 오 시장. 훈계니 뭐니 한가한 소리는 집어치우고. 대책을 내놓으시오.”
어느새 장금산의 눈에서는 분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려 74년이었다.
긴 인고의 세월을 보냈는데 말로 표현 못할 고통의 세월이었다.
이제 대통령이 손이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골인지점이 코앞인데, 엉뚱한 놈이 발목을 잡자 장금산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더군다나 지지율의 차이가 0.4%로 초박빙이었다.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차이였기에 장금산은 속이 타 들어갔다.
“대책 내놓으란 내 말 못 들었소?”
장금산이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그렇지 않아도 차갑던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시베리아 벌판처럼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