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ating Who Loved Me RAW novel - chapter 21
“좀 곰팡내가 나긴 하지만, 아직 쓸 만은 하군요.”
“빨간 공이 없어졌다는 것만 빼면요.”
케이트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건 다 다프네 탓이라니까요.”
콜린이 대답했다.
“전 원래 모든 일을 다프네 탓으로 돌리죠. 그러고 나면 살기가 훨씬 더 편해지니까요.”
“그 말 들었어!”
케이트가 몸을 돌려 보니 무척이나 매력적인 젊은 남녀 한 쌍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자 쪽은 한숨이 나올 만큼 잘생겼다. 새까만 머리카락에, 아주 아주 밝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여자 쪽은 아무리 봐도 브리저튼 가 사람이었다. 앤소니와 콜린과 똑같은 빛깔의 갈색 머리카락. 게다가 미소와 골격마저 같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브리저튼 가 사람들이 다 똑같이 생겼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는 완전히 믿지 못했었다.
“다프!”
콜린이 외쳤다.
“딱 잘 맞춰서 왔다. 지금 문을 세울 참이었거든.”
다프네는 거만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
“설마하니 내가 오빠 혼자서 코스를 만들게 내버려둘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그녀는 남편을 돌아다보았다.
“제가 오빠를 얼마만큼 믿느냐 하면요, 제가 오빠를 집어던져서 나가는 거리 딱 그만큼만 믿는답니다.”
“저 말 곧이듣지 마세요.”
콜린이 케이트에게 말했다.
“저 애가 얼마나 힘이 세다고요. 아마 저를 저기 호수까지 거뜬히 날려 버릴 수 있을 겁니다.”
다프네는 눈을 굴리다가 케이트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매너라곤 조금도 모르는 제 오라비께서는 계속 가만히 계실 듯하니, 제가 제 소개를 해야겠군요. 제 이름은 다프네, 헤이스팅스 공작부인이고, 이쪽은 제 남편인 사이먼이랍니다.”
케이트는 얼른 절을 했다.
“각하(공작과 공작부인에 대한 경칭은 grace(각하)이다.).”
그녀는 다프네에게 말한 뒤, 다시 공작을 바라보교 말했다.
“각하.”
콜린은 팰멜 수레 주위에 떨어진 문을 주우려고 몸을 구부리다가 그녀를 향해 손짓했다.
“이쪽은 셰필드 양.”
다프네는 혼란스런 표정을 지었다.
“방금 집에서 앤소니 오빠와 마주쳤는데, 오빠 말로는 셰필드 양을 모시러 가는 길이라 했던 것 같은데.”
“제 여동생이랍니다.”
케이트가 설명했다.
“그 애는 에드위나고 저는 캐서린입니다. 친구들은 저를 케이트라 부르지요.”
“브리저튼 가 사람들과 팰멜을 할 정도로 용감하신 분이라면, 당연히 제 친구로 삼고 싶네요.”
다프네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따라서 당신도 절 다프네라 부르셔야 해요. 제 남편은 사이먼이라 부르시고요. 그렇지요 사이먼?”
“아, 물론이오.”
그가 말했다. 케이트는 공작이 왠지 아내가 하늘이 오렌지색이라고 말했어도 똑같은 반응을 보였을 거란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가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건 아니다. 그저 그녀가 뭐라 해도 좋을 만큼 그녀를 숭배해 마지않는다는 증거다.
바로 이런 남편을 에드위나가 만나길 바랐던 거야.
“그거 반 내게 줘.”
다프네는 오빠의 손에 들린 문을 집으려고 손을 뻗쳤다.
“셰필드 양과 난…… 아, 그러니까 케이트와 난…….”
그녀는 케이트에게 아주 친근한 미소를 보냈다.
“세 개를 세울 테니까, 오빠하고 사이먼이 나머지를 세워.”
케이트가 뭐라고 의견을 내세우기도 전에 다프네는 케이트의 팔을 잡고 그녀를 호수 쪽으로 데리고 갔다.
“중요한 건 큰오빠가 자기 공을 호수에 빠뜨리게 하는 거예요.”
다프네가 내뱉었다.
“저번 일은 아마 평생 용서할 수 없을 거야. 베네딕트 오빠와 콜린 오빠는 아주 웃다가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고요. 그 중에서도 앤소니 오빠가 최악이에요. 가만히 서서 빙글빙글 웃고만 있지 뭐예요. 그 거만한 표정이라니!”
그녀는 심각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케이트를 바라보았다.
“큰오빠만큼 거만하게 웃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어요.”
“알아요.”
케이트가 낮게 중얼거렸다.
다행히 공작부인은 그 말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오빠를 죽일 수만 있었으면 죽였을 거라고 맹세할 수 있다니까요.”
“그러다가 공을 전부 호수에 빠뜨리면 어쩌려고 그러세요?”
케이트는 묻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는 가족분들과 게임을 해보지 못했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경쟁이 치열한 것 같은데, 그러다간 반드시…….”
“공을 전부 잃어버릴 거라고요?”
다프네가 대신 말을 맺어 주었다. 그녀가 씨익 웃었다.
“아마 당신 말이 맞을 거예요. 우리 가족은 팰멜 게임을 할 때는 스포츠맨 정신 따윈 완전히 내팽개쳐 버리니까 브리저튼 가 사람은 팰멜 나무 메를 집어드는 순간 세계 최고의 반칙왕에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리지요. 하지만 이 게임의 정수는 자신이 이기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을 지게 만드는 데 있어요.”
케이트는 적당한 단어를 찾았다.
“듣는 것만으로도 정말…….”
“끔찍하지요?”
다프네가 웃었다.
“그렇지는 않아요. 정말 무척이나 즐거울 거예요. 제가 보장하지요. 하지만 지금 하는 식으로 하다간 결국 남은 공 전부를 호수에 빠뜨리고 말 거예요. 그러면 뭐, 프랑스에서 또 새로 주문하면 되는 거죠.”
그녀는 문을 땅에 박았다.
“네, 좀 낭비인 것 같지요. 하지만 오빠들에게 창피를 줄 수만 있다면 그쯤은 아깝지 않아요.”
케이트는 웃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혹시 남자 형제가 있으신가요, 셰필드 양?”
다프네가 물었다.
공작부인이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에, 케이트는 정식으로 예의를 갖추는 편이 옳다고 생각했다.
“없습니다, 각하. 에드위나가 유일한 동생이랍니다.”
다프네는 손으로 눈 위를 가리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에 문을 설치하는 것이 가장 사악할까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한 곳을 찾아내곤-나무 뿌리 바로 위 -그쪽으로 달려가 버려서 케이트도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난 남자 형제만 넷이에요.”
다프네가 땅에 문을 박아 넣으며 말했다.
“덕분에 아주 놀라운 교육을 받았답니다.”
“남자 형제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혹시 남자를 때려서 눈에 멍이 들게 하질 수 있나요? 땅에 쓰러뜨릴 수 있으세요?”
케이트가 몹시 감명 받은 목소리로 물었다.
다프네가 사악하게 미소지었다.
“제 남편에게 물어 보세요.”
“내게 뭘 물어 본다고?”
반대편의 나무 뿌리 근처에 문을 설치하는 콜린 옆에 서 있던 공작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공작부인은 자못 순진한 목소리로 말했다.
“또 내가 배운 건 말이지요.”
그녀가 케이트에게 속삭였다.
“입을 다물어야 할 때가 언제냐 하는 거지요. 남자들이란 기본적으로 몇 가지만 파악하고 나면 조종하기가 아주 쉽답니다.”
“그게 어떤 것들이지요?”
케이트가 물었다.
다프네는 앞으로 몸을 바짝 숙인 뒤 케이트의 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남자들은 우리 여자들처럼 똑똑하지도 않고 우리처럼 육감이 뛰어나지도 않고 우리가 하는 일의 반도 몰라도 된다는 거지요.”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편이 지금 한 말 못 들었지요?”
사이먼이 나무 뒤에서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다 들었는데.”
케이트가 억지로 웃음을 삼키는 동안 다프네는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그게 사실인걸요.”
다프네가 매우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이몬은 팔짱을 꼈다.
“당신이 그렇게 믿게 일단은 내버려두지.”
그는 케이트를 바라보았다.
“나 역시 여자들에 대해 지난 몇 년 동안 배운 게 있다오.”
“정말이오?”
케이탁 흥미를 나타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아주 아주 중요한 비밀을 털어놓으려는 듯 몸을 앞으로 바싹 숙였다.
“여자들이란 자기가 남자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육감이 뛰어나다고 믿게 내버려두면 훨씬 더 조종하기가 쉽지요.”
그리고 그는 잘난척하는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여자들이 하는 일의 딱 반만 알고 있는 척을 하면 살기도 훨씬 더 편하고.”
콜린은 나무 메를 낮게 흔들며 다가왔다.
“세 사람 뭘로 말다툼을 하는 겁니까?”
그가 케이트에게 물었다.
“토론이야.”
다프네가 정정했다.
“아, 토론이라면 난 빠진다.”
콜린이 내뱉었다.
“색깔을 고릅시다.”
케이트는 그를 따라 팰멜 세트로 다가갔다. 그녀는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물었다.
“지금 몇 시나 되었지요?”
콜린은 회중시계를 꺼냈다.
“세 시 반이 약간 넘었는데, 왜요?”
“에드위나와 자작님이 내려오실 때가 되었다 싶어서요.”
그녀는 지나치게 걱정하는 표시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콜린은 어깻짓을 했다.
“그럴 때가 되었군요.”
그리고선 그녀가 걱정을 하거나 말거나, 팰멜 세트를 가리켰다.
“자, 당신은 손님이니까 먼저 골라요. 무슨 색깔로 하시겠어요?”
별 생각 없이, 케이트는 손을 뻗어 나무 메를 하나 집어들었다. 손에 들린 방망이를 바라보고 나서야 겨우 그것이 검정색임을 깨달았다.
“죽음의 방망이로군.”
콜린이 만족스럽다는 듯 말했다.
“케이트는 훌륭한 선수가 될 줄 내 진작 알았지.”
“분홍색은 앤소니 오라버니를 위해 남겨두자.”
다프네가 녹색 나무 메를 집어들며 말했다.
공작은 주황색 나무 메를 꺼내들며 케이트를 바라보고 말했다.
“브리저튼 녀석이 분홍색 방망이를 가지게 된 배경에 난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는 증인이 되어주시겠소?”
케이트는 사악하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공작님께서도 분홍색 나무 메를 고르진 않으셨군요.”
“당연한 것 아니오.”
그는 훨씬 더 사악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아내가 그를 위해 일부러 분홍색을 골라 놓았는데, 내가 뭐라고 그걸 방해하겠소?”
“난 노란색.”
콜린이 말했다.
“에드위나 양에겐 파란색이 좋겠군, 안 그래요?”
“아, 네.”
케이트가 대답했다.
“에드위나는 파란색을 무척 좋아하지요.”
네 명은 남아 있는 나무 메 두 개를 바라보았다. 보라색과 분홍색만이 남아 있었다.
“어차피 큰오빠는 둘 다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실 거야.”
다프네가 말했다.
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분홍색은 더 싫어하실걸.”
그 말과 함께 콜린은 보라색 나무 메를 집어들고는 헛간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몸을 굽혀 보라색 공마저 헛간 안으로 던졌다.
“이제 다 되었군.”
공작이 말했다.
“앤소니는 어디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