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ating Who Loved Me RAW novel - chapter 26
“그래야겠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평생 노처녀로 늙어죽고 싶진 않지만 여기 런던에서 남편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혹시 모르지. 널 쫓아다니는 남자 가운데 한 명쯤은 널 차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내게 와 줄지도.”
에드위나는 쿠션으로 언니를 때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마.”
“농담이 아니야!”
케이트가 항의했다.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니었다. 이 동네에서 남편감을 찾으려면 그래도 그게 가장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내가 어떤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지 알아?”
에드위나가 꿈을 꾸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케이트는 고개를 저었다.
“학자.”
“학자?”
“학자.”
에드위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케이트는 헛기침을 했다.
“사
교계 시즌의 런던에 학자가 많이 모일 것 같진 않은데.”
“알아.”
에드위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진실은-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히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나, 사실은 좀 책벌레잖아. 하이드 파크에서 어슬렁거리고 다니느니 차라리 하루 종일 서재에 파묻혀 있는 게 더 좋아. 그러니까 학구열이 있는 남자와 사는 쪽이 더 즐거울 것 같다는 거야.”
“맞는 말이다. 흠…….”
케이트는 열심히 궁리했다. 서머셋에도 에드위나의 마음에 들 만한 학자는 없었다.
“있잖니, 에드위나. 대학 주변이 아니면 진짜 학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거야. 그냥 너처럼 책을 읽고 뭔가를 배우는 걸 좋아하는 남자에게 만족해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아.”
에드위나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아추어 학자래도 난 상당히 기쁠 거야.”
케이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런던에서 독서를 좋아하는 남자 한 사람쯤은 찾을 수 있겠지.
“그거 알아?”
에드위나가 덧붙였다.
“책이란 말야. 표지만 보고선 내용을 알 수 없는 거야. 아마추어 학자에도 여러 부류가 있어. 어쩌면 레이디 휘슬다운이 끊임없이 언급하는 브리저튼 자작도 본래는 학자가 되고 싶었을지도 모르지.”
“말도 안 되는 소린 하지도 마라, 에드위나. 브리저튼 자작과는 절대 말도 하지 마. 그 남자가 난봉꾼 가운데에서도 가장 질이 나쁜 부류란건 모두가 다 알고 있어. 아니, 그 남자는 최악의 난봉꾼이야. 런던 전체에서뿐 아니라, 온 영국에서도!”
“알아. 그냥 예로 든 것뿐이야. 게다가 올해에 그 사람이 신부감을 찾을 것
같지도 않은걸, 뭐. 레이디 휘슬다운도 그렇게 말했고, 언니도 레이디 휘슬다운은 거의 항상 옳다고 했었잖아.”
케이트는 동생의 팔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걱정하지 마. 꼭 괜찮은 남편을 찾아줄 테니까. 하지만 절대-절대 절대 절대 절대 브리저튼 자작은 안 돼!”
바로 그 순간 두 여자가 나누고 있는 대화의 주인공은 화이트 클럽에서 두 명의 남동생과 늦은 오후의 술자리를 즐기고 있었다.
앤소니 브리저튼은 가죽 의자에 몸을 파묻고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위스키 잔을 빙글빙글 돌리다가 폭탄 선언을 했다.
“이제는 슬슬 결혼할 때가 된 것 같아.”
어머니가 가장 싫어하는 버릇-의자 앞다리를 들고 뒷다리로만 아슬아슬 지탱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고 있던 베네딕트 브리저튼은 의자와 함께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콜린 브리저튼은 사례가 들려 콜록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베네덕트가 때맞춰 일어나 등을 팡팡 소리나게 두들겨 준 덕분에 목에 걸려 있던 초록색 올리브가 테이블 저쪽으로 튀어나갔다.
올리브는 앤소니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앤소니는 조용히 이 모욕적인 반응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갑작스런 선언에 모두들 약간 놀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약간이라는 말로는 모자란다. 완전히, 철저하게, 절대적으로란 단어가 일단 머리 속에 떠올랐다.
앤소니도 지신이 가정을 꾸려 정착할 남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지난 10년 간 그는 가장 끔찍한 난봉꾼의 한 사람으로 마음 가는 대로 쾌락을 쫓았다. 인생은 짧으니 최대한 즐겨 보자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도덕심이란 것이 있어, 적어도 귀족 가의 영양들을 희롱한 적은 없었다. 결혼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여자들은 철저히 피해 왔었다.
자신에게도 여동생이 넷이나 되다 보니, 귀족 가문의 여인들에게 있어서 평판이란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여동생 가운데 하나 때문에 결투를 벌일 뻔하기까지 않았던가. 나머지 세여동생을 떠올려본다면……. 앤소니 역시 자기와 같은 악명을 떨치는 남자가 동생들과 어울릴 생각만 해도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절대 다른 귀족의 여동생을 유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부류의 여자들이라면-미망인이나 여배우처럼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 것인지 똑똑히 알고 있는 여자들이라면-함께 있는 시간과 육체를 기꺼이 즐겼다.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런던으로 돌아온 이래, 정부가 한 명도 없었던 때가 없었다.
아니, 심지어 정부가 두 명 이하일 때가 있었나 싶다. 그는 사교계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경마에 기수로 참가했고, 젠틀맨 잭슨(1975-1803년에 걸쳐 영국의 권투 챔피언이었다. 런던 본드 가에 권투 아카데미를 설립했다)의 권투 아카데미에서 권투를 했으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카드게임에서 이겼다(몇 번 지기도 했지만, 그런 건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는 20대의 전부를 쾌락을 쫓는 데 할애했었다. 종종 가족들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할 때만 제외하고는.
에드먼드 브리저튼의 죽음은 갑작스럽고도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기에, 그는 죽기 전 맏아들에게 유언조차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만일 아버지에게 그럴 시간이 있었다면 그가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애정과 성실함으로 어머니와 동생들을 보살피라고 당부하셨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앤소니는 파티와 경마 틈틈이 남동생들을 이튼과 옥스퍼드에 보냈고, 여동생들의 셀 수도 없이 많은 피아노 리사이틀에 참석했으며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여동생 네 명 중 세 명은 완전 음치에 박자 감각도 형편없었으니까), 가족의 재산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동생들이 일곱명이나 되다 보니 그들의 장래를 위해 충분한 재정을 확보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이 서른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영지와 가족들에게 할애하기 시작했으며, 방탕함과 쾌락을 쫓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오히려 그 편이 나았다. 여전히 정부는 있었지만 한 번에 한 명 이상은 두지 않았으며, 더 이상 경마에 빠짐없이 참석하거나 최후의 승자
를 알아보려 파티에 늦게까지 머물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물론 그의 악명은 여전했다. 사실 상관없었다. 영국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난봉꾼이란 악명에는 따라붙는 이득도 꽤 컸으니까. 예를 들어, 그는 모든 이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다.
그건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젠 결혼을 할 때이다. 정착을 해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 작위를 물려줄 의무가 있으니까 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리란 것에 꽤 깊은 안타까움-그리고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8대 종손이었다. 브리저튼의 수를 늘리고 대를 이을 의무가 있었다.
적어도 자신이 죽더라도 가족을 돌봐줄 남동생이 세 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그는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 브리저튼 가의 사림들이 모두 그러하듯 그의 아들 역시 사랑과 애정을 담뿍 받으며 자랄 것이다. 여동생들은 조카를 예뻐해 주겠지, 어머니는 아마 손자 버릇을 망쳐 놓으실지도 모른다…….
시끌벅적한 대가족을 떠올리며 앤소니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굳이 아버지가 없더라도 아들은 사랑 속에 자라게 될 것이다.
아들을 낳건 딸을 낳건, 아마 그가 죽으면 자신을 기억하는 자식도 없을 것이다. 보아하니 형제들 가운데 장남인 그가 아버지의 죽음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앤소니는 위스키를 한 모금 더 미신 뒤 어깨를 펴고 씁쓸한 생각들을 머리 속에서 떨쳐냈다. 일단은 당면 과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아내감 물색.
분별력 있고 조직적인 성격이다 보니, 그는 아내감으로 적당한 여자의 조건을 이미 머리 속으로 정해 두었다. 일단 웬만큼 매력적인 여지여야 한다. 눈부신 미녀일 필요는 없지만(뭐, 미녀라면 더욱 좋겠지만), 적어도 잠자리를 같이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 매력이 있어야 아이를 만드는 일도 더 흥이 날 테니까.
둘째로, 바보 같은 여자는 안 된다. 아마 이것이 조건 가운데 가장 어려운 부분일 터였다. 원래 그는 런던 사교계에 데뷔한 아가씨들의 지적 능력에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아가씨와 대화를 나누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음식(그 순간 그녀는 한 손에 딸기가 담긴 접시를 들고 있었다)과 날씨(심지어 날씨 얘기조차 제대로 할 줄 몰랐다. 날씨가 더워질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녀는 클레멘트에 가본 적이 없어서 잘모르겠어요(클레멘트의 날씨가 변할 것 같나요? Do you think the weather is going to turn in Clement? 란 질문과 날씨가 더워질 것 같나요 Do you think the weather is going to turn inClement?)라고 대답했었다)이야기를 나눈 게 고작이었다.
머리가 좀 모자란 아내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야 어떻게든 피해 볼 수 있겠지만 자식이 바보로 태어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셋째-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그가 사랑에 빠질 만한 여지여서는 안 된다.
이 세 번째 사항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지켜져야만 했다.
맹소적이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진정한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모님과 한 방에 있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그가 피하고 싶은 복잡한 문제였다. 사랑이라는 기적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는 전혀 없었다.
앤소니는 여태껏 원하는 것을 갖는 데 한 번도 문제를 겪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자신이 매력적이고 지성적이나 절대 사랑할 수 없는 여인을 찾게 되리란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산다 한들 무슨 상관인가? 평생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여자만을 찾아헤맨다 하더라도 찾지 못할 확률이 훨씬 더 큰데. 대부분의 남자들도 결국 실패하지 않는가
“어이, 앤소니 형님, 왜 그렇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어요? 설마 올리브 때문은 아니겠지요. 내가 봤는데 맞지도 않았잖아요.”
베네딕트의 목소리에 앤소니는 백일몽에서 깨어났다. 그는 눈을 깜박거리다가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애/”
물론 자신이 젊은 나이에 죽을 운명이란 사실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었다. 형제들에게조차.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닐 일은 아니니까. 아니, 만일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와 그런 말을 한다면 그 역시 아마 면전에 대고 껄껄 웃어 줬을 것이다.
그 누구도 그가 아버지에게 느꼈던 유대감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도 앤소니가 뼛속 깊이 느끼는, 절대 아버지보다 오래 살 수 없을 거란 필연적인 예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항상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절대로 그렇게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노력은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룩한 모든 것들-그 어떤 면에서든-을 다 해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버지는 한 마디로 그가 아는 사람 가운데, 아니 역사상 가장 훌륭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아버지를 능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다. 아버지의 시신이 뉘인 부모님의 침실에 몇 시간이고 앉아 아버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두 사람이 함께 나눴던 시간들을 기억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였다.
사소한 일들은 너무도 쉽게 잊혀질 것이었다. 앤소니가 풀이 죽어 있을 때 팔을 가볍게 쥐어 주시던 일. ‘헛소동(셰익스피어의 희극)’ 에 나오는 밸타자의 ‘더 이상 한숨쉬지 말아요’ 란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 주시던 모습, 특별히 중요한 노래라서가 아니라, 그저 당신이 좋아하시는 노래란 이유 하나만으로.
마침내 그
방에서 나왔을 때, 새벽의 첫 빛줄기가 분홍빛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앤소니는 자신이 살아갈 날이 아버지처럼 정해져 있음을 알았다.
“말해 봐요.”
베네딕트가 또다시 그의 상념을 파고들며 말했다.
“뭐, 어차피 중요하지도 않겠지만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는지 좀 듣기나 합시다.”
앤소니는 갑자기 몸을 펴고 앉았다. 다시금 해결해야 할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자고 결심했다. 일단 아내감을 골라야 한다. 그것 역시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올 시즌 최고의 다이아몬드는 누구지?”
그가 물었다.
동생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콜린이 말했다.
“에드위나 셰필드. 아마 본 적이 있을 거예요. 몸집이 작고 금발에 푸른 눈. 평소에 상사병 걸린 구혼자 무리가 주위를 양떼처럼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발견하기가 쉬워요.”
앤소니는 동생의 말에 배어 있는 신랄함을 무시하고 말했다.
“머리는 있나?”
콜린은 눈을 깜박였다. 마치 여자에게 머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는 듯이.
“어, 그런 것 같아요. 듣자 하니 미들토프와 신화에 대해 토론을 했다지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모양이에요.”
“잘됐군.”
앤소니는 위스키 잔을 테이블 위에 쾅 소리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녀와 결혼해야겠다.”
2
수요일 밤 하트사이드 무도회에서, 브리저튼 자작이 여러 명의 젊은 레이디들과 춤을 추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브리저튼은 평소 귀족 가의 규수들을 불굴의 의지로 피해 딸을 결혼시키려는 의지를 불태우는 여러 어머니들을 몹시도 안타깝게 만들었던 바, 그의 이런 행동은 “놀랍다”는 말로밖에는 묘사할 수가 없다.
혹시 자작 역시 본 필자의 최근 칼럼을 읽고 남성이란 모두가 가진 괴팍한 표현 방식으로 본 필자가 틀렸음을 입증하려는 것인지?
본 필자가 스스로에게 지나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의문을 품을 독자를 위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남자들이란 이런 것보다 휠씬 더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걸고는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레이디 휘슬다운의 사교계 소식. 1814년 4월 22일
그날 밤 열 한 시, 케이트가 가장 두려워하던 일이 일어났다.
앤소니 브리저튼이 에드위나에게 춤을 신청한 것이다.
더더욱 끔찍한 것은 에드위나가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더더더욱 끔찍한 것은 메리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교회를 예약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만 좀 하실래요?”
케이트가 의붓어머니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뭘 말이니?”
“두 사람을 그런 눈길로 바라보시는 것 말이에요!”
메리는 눈을 깜빡였다.
“내 눈길이 어때서?”
“결혼식 아침 식사 메뉴를 준비하는 눈빛 같잖아요.”
“오.”
메리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왠지 죄책감이 묻어 나오는 표정이었다.
“메리!”
“뭐, 어쩌겠니.”
메리가 대답했다.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뭐가 잘못이란 말이니? 에드위나에게 훌륭하게 어울릴 짝이잖니.”
“오늘 오후에 응접실에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 아무 소리도 못 들으셨어요? 안 그래도 에드위나 주위를 맴도는 난봉꾼과 건달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요. 괜찮은 구혼자와 부적격자를 구분해 내느라 제가 얼마나 시간을 쏟아 부었는지 알고나 계세요? 브리저튼이라니!”
케이트는 몸서리를 쳤다.
“런던에서도 가장 끔찍한 난봉꾼이라고요. 설마 그 애가 저런 남자와 결혼하길 원하시는 건 아니겠죠?”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라, 캐서린 그레이스 셰필드.”
메리가 허리를 쭉 펴서 온몸을 최대한 곧게 펴며 날카롭게 말했다. 그래 봐야 케이트보다 여전히 머리 하나 정도 작은 키이지만.
“난 네 엄마야. 비록 계모지만 그래도 엄마는 엄마잖니.”
케이트는 금세 죄책감을 느꼈다. 메리야말로 케이트에게 있어 유일한 어머니였다. 메리는 자신을 키울 때 단 한 번도 에드위나와 차별을 두지 않았다. 밤에는 침대에 눕히고 이야기를 읽어 주었으며 입을 맞추고
안아 주었다. 그녀가 소녀에서 여인이 되는 시간들을 함께 보내 주었다. 메리가 단 한 가지 케이트에게 요구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어머니 라 불러 달라고 강요하지 않은 것뿐이다.
“맞아요.”
케이트가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 뒤 잔뜩 부끄러운 심정으로 발을 내려다보았다.
“메리야말로 제 어머니예요. 그 말에 담긴 모든 의미 그대로였지요.”
메리는 한참 동안 케이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마구 눈을 깜박거렸다.
“오, 이런.”
그녀는 목멘 소리로 말한 뒤 얼른 손가방을 뒤져 손수건을 꺼냈다.
“이젠 날 아주 울보로 만드는구나.”
“죄송해요.”
케이트가 웅얼거렸다.
“자, 이쪽으로 돌아서면 아무도 보지 못할 거예요.”
메리는 새하얀 리넨 손수건으로 눈꼬리를 훔쳤다. 그녀의 눈동자는 에드위나의 눈과 똑같은 색깔이었다.
“널 사랑한단다, 케이트 그건 알고 있겠지?”
“물론이에요!”
케이트는 메리가 그런 말을 꺼냈다는 것 자체에 놀라 외쳤다.
“알고 계시죠……? 저 역시…….”
“안다.”
메리가 그녀의 팔을 어루만졌다.
“알고말고. 자기가 낳지 않은 아이의 엄마 노릇을 하려면 말이다, 책임감이 두 배가 된단다. 특히나 그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보살피려면 더더욱 힘을 쏟지 않으면 안 돼.”
“오 메리. 사랑해요. 에드위나도 사랑해요.”
에드위나의 이름을 입에 올린 순간 두 사람은 함께 몸을 돌려 무도회장 저편에서 자작과 함께 예쁘게 춤을 추고 있는
에드위나를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 에드위나는 사랑스럽고 가냘팠다. 금발은 머리 위로 틀어올려져 있었고, 몇 가닥 곱슬머리가 흘러내려 얼굴을 감쌌다. 댄스 스탭을 밟는 그녀의 포즈는 우아함의 극치였다.
자작 또한 눈이 멀 지경으로 잘생겼다는 것을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사교계의 멋쟁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번쩍거리는 색깔을 피해 검정색과 흰색으로만 차려입고 있었다. 훤칠하게 큰 키에 꼿꼿하고 당당한 태도, 거기다 밤색 머리카락이 눈썹 위로 살짝 흘러 내려와 있었다.
겉으로만 보자면 그는 남자에게서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두 사람 참 잘 어울리지?”
메리가 웅얼거렸다.
케이트는 혀를 깨물었다. 정말 문자 그대로 혀를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