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ating Who Loved Me RAW novel - chapter 27
“에드위나에게 비해 키가 너무 크긴 하지만 그 정도 장애물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케이트는 양손을 꼭 불잡고 손바닥에 손톱을 쭉 박아 넣었다. 어찌나 꼭 움켜쥐었는지 양가죽 장갑 위로도 손톱이 느껴졌다.
메리는 미소를 지었다. 약간은 은밀한 미소였다. 케이트는 의붓어머니를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춤을 참 잘 추는구나, 그렇지?”
메리가 물었다.
“절대로 에드위나와 결혼시킬 수 없어요!”
케이트가 버럭 외쳤다.
메리가 씩 웃었다.
“그래,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입을 다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참고 참고 또 참은 거였다고요.”
케이트가 거의 이를 악물다시피 해서 내뱉었다.
“그래, 그런 것 같구나.”
“에드위나의 짝으로 괜찮
은 남자가 아니란 건 잘 알고 계시잖아요.”
메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건 에드위나에게 물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에드위나도 원치 않을 거예요!”
케이트가 격하게 대답했다.
“오늘 오후만 해도 에드위나는 학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학자요!”
그녀는 고갯짓으로 동생과 춤을 추는 남자를 가리켜 보였다.
“저 인간이 학자로 보이세요?”
“아니, 하지만 말이야. 너 역시 솜씨 있는 수채화가로 보이지는 않는걸. 하지만 네가 그림을 썩 잘 그린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잖니.”
메리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 바람에 케이트는 거의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메리는 묵묵히 케이트의 다음 대답을 기다렸다.
“딱 한 마디만 말씀드릴게요.”
케이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평가해선 안 된다는 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여태 들은 바로는 절대 오후 나절을 서재에서 독서로 보내는 부류의 남자가 아니라잖아요.”
“그래.”
메리가 생각에 잠긴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 그의 모친과 아주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단다.”
“그의 모친이오?”
케이트는 대화 내용을 따라가려고 애썼다.
“그게 지금 이 얘기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메리는 어깻짓을 했다.
“그토록 우아하고 지적인 레이디가 키운 아들이라면, 소문이야 어떻든 반드시 아주 훌륭한 신사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메
리라……..”
메리가 거만한 투로 말했다.
“너도 나중에 자식을 낳아 보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내가 말해 준 적 있니?”
메리는 애초부터 말을 자르려고 작정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가 녹색 망사를 입으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 옷을 고르길 잘했구나.”
케이트는 멍하니 드레스를 내려다보며 왜 메리가 대화의 주제를 바꿔 버렸는지 의아해했다.
“그 색이 잘 어울린다. 이번에는 레이디 휘슬다운도 금요일자 칼럼에 널 불에 탄 풀밭이니 어쩌니 하지는 못할 게야!”
케이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메리를 바라보았다. 혹시 의붓어머니가 지나치게 흥분한 건 아닐까? 무도회장 안에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고 공기도 후덥지근했다.
그 순간 메리의 손가락이 왼쪽 날개뼈 아래를 찌르는 것을 느끼고는 메리에게 전혀 다른 꿍꿍이속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브리저튼 씨!”
메리가 갑자기 어린 소녀처럼 꺅꺅거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케이트는 당황하여 고개를 홱 쳐들었다. 무척이나 잘생긴 남자가 두 사람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남자는 현재 동생과 춤을 추고 있는 자작과 꼭 닮아 있었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지 않으면 입이 딱 벌어질 것만 같아서였다.
그는 맥없이 늘어져 있는 케이트의 장갑 낀 손을 잡아 손등에 가볍게 키스했다. 너무도 가벼운 키스였으므로 아예 입술도 닿지 않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셰필드 양.”
그가 웅얼거렸다.
“케이트랍니다.”
메리가 말을 이었다.
“이쪽은 콜린 브리저튼 씨. 아까 저녁때 이분의 어머니이신 레이디 브리저튼과 대화를 나누다 만났단다.”
메리는 콜린을 돌아보며 환한 미소를 내뿜었다.
“참으로 사랑스런 분이더군요.”
그도 씩 웃었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메리가 소리 죽여 킥킥 웃었다. 킥킥 웃다니! 케이트는 숨이 턱 막혔다
“케이트.”
메리가 다시 말했다.
“브리저튼 씨는 자작님의 동생분이란다. 지금 에드위나와 춤을 추고 계신 분 말이다.”
그녀가 쓸데없이 덧붙였다.
“짐작은 했습니다.”
케이트가 대답했다.
콜린은 비스듬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말투에 희미하게 배어 있던 신랄함을 그가 놓치지 않았다는 것을 케이트는 금세 깨달았다.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셰필드 양.”
그가 정중하게 말했다.
“오늘 저녁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영광을 베풀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물론이죠.”
그녀가 헛기침을 했다.
“영광입니다.”
“케이트.”
메리가 그녀를 슬쩍 밀며 말했다.
“이분께 네 댄스 카드를 보여 드리렴?”
“오! 네, 물론입니다.”
케이트는 녹색 리본으로 손목에 예쁘게 묶여 있던 댄스 카드를 풀었다. 얼마나 당황했던지 손목에 묶여 있는 리본을 푸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또 다른 브리저튼 가 사람과 갑자기 맞닥뜨렸기 때문에 침착함을
잃어서라고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게다가 그녀는 어차피 최상의 컨디션일 때조차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지 않았던가.
콜린은 댄스 카드의 가장 마지막 시간대에 이름을 써넣더니 함께 레모네이드를 가지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가보렴.”
메리가 케이트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대답했다.
“내 걱정은 하지 말이라. 네가 없어도 난 괜찮을 테니까.”
“제가 한 찬 가져다 드릴게요.”
그에게 눈치 채이지 않고 의붓어머니를 노려보는 것이 가능할까?
“그럴 필요 없단다. 나도 이만 다른 샤프론들과 어머니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겠구나.”
메리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눈에 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어머, 저기 페더링턴 부인이 계시는구나. 난 이만 가봐야겠다. 포시아! 포시아!.”
케이트는 의붓어머니가 재빨리 달아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브리저튼 씨를 돌아보았다.
“제 생각엔 말이죠.”
그녀가 건조하게 말했다.
“레모네이드는 마시기 싫으신가 보네요.”
콜린의 에메랄드 빛 눈에서 웃음기가 반짝였다.
“아예 스페인으로 가서 직접 레몬을 따오실 작정이신지도 모르죠.”
저도 모르게 케이트는 웃음을 터뜨렸다. 콜린 브리저튼을 좋아하고 싶지는 않았다. 신문에서 자작에 대한 기사를 원고 난 뒤 브리저튼 가의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좋아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 사람에 대한 선입견으로 그 가족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약간 긴장을 풀었다. 그녀가 물었다.
“목이 마르신 건가요, 아니
면 그저 예의상 하신 말씀이신가요?.”
“저야 원래 항상 예의를 아는 인간이지요.”
콜린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목이 마른 건 사실이랍니다.”
케이트는 녹색 눈동자와 치명적인 조화를 이루는 그의 미소를 보고 하마터면 신음을 내뱉을 뻔했다.
“당신 역시 난봉꾼이로군요.”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콜린은 콜록 기침을 했다. 뭐에 사레가 들린 건지 도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계속 캑캑거렸다.
“지금 뭐라고 하셨지요?”
케이트는 머릿속에 있던 말을 입 밖으로 냈다는 것을 깨닫고 당혹감에 얼굴을 붉혔다.
“아, 사과를 드려야겠군요. 용서해 주세요. 정말이지 용서받지 못할 만큼 무례한 말을 한 것 같군요.”
“아니, 아닙니다.”
그는 갑자기 왕성한 흥미를 보이며 무척 재미있다는 표정을 짓고 말했다.
“계속해 보시지요.”
케이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와선 달아날 구멍도 없다.
“제가 드리려던 말씀은 그저…….”
그녀는 헛기침을 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된다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교활한 미소는, 솔직하지 않은 그녀는 상상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케이트는 다시금 헛기침을 했다.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두꺼비를 삼킨 여자처럼 계속 헛기침만 하고 있다니.
“갑자기 브리저튼 씨께서도 형님 같은 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던 것뿐이에요. 그게 전부입니다.”
“제 형님이요?”
“자작님 말씀이에요.”
케이트는 뭐 그렇게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투로 말했다.
“형님이 두 분이나 계시거든요.”
그가 설명했다.
“오.”
갑자기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죄송합니다.”
“저도 안타깝습니다.”
콜린이 진지하게 말했다.
“대부분의 경우, 형님들이란 정말이지 귀찮기만 한 존재이거든요.”
케이트는 놀라서 외마디 소리를 내고선 얼른 기침을 하는 척했다.
“하지만 적어도 저를 제 동생 그레고리와 견주신 건 아니군요.”
그가 아주 드라마틱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흘끗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곁눈질을 했다.
“그 녀석은 열세 살이거든요.”
케이트는 그의 눈에 떠오른 웃음기를 보며, 그가 여태껏 계속 장난을 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사실 형제들을 몹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상당히 가족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로군요?”
그녀가 물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웃음기로 춤을 추던 콜린의 눈동자가 눈도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지극히 진지해졌다.
“아주.”
“저 역시 마찬가지랍니다.”
케이트도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의 뜻은?”
“그 말의 뜻은 말이지요.”
그녀는 이 말을 해선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말해 버렸다.
“누군가가 제 동생의 마음을 아프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뜻이지요.”
콜린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막 춤을 끝마치는 형과 에드위나를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