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ating Who Loved Me RAW novel - chapter 33
“그럴 게다, 케이트 그러니까 네겐 내가 있어야 해.”
그 말에 케이트는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브리저튼 경이 했던 말이 전혀 틀린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메리는 에드위나뿐 아니라 그녀 역시 결혼시킬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끔찍한 상상이다.
복도에 서 있는 메리를 보며, 케이트와 앤소니는 현관문을 나서 밀너가에서 서쪽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골목길을 따라 브롬프튼 로까지 간답니다.”
케이트가 설명했다. 아마 그는 이 부근에 별로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그 길을 따라 하이드 파크로 가지요. 하지만 자작님께서 원하신다면 쭉 슬로안 가를 따라가도 됩니다.”
“좋으실 대로 레이디가 가고 싶으신 대로 갑시다.”
그가 말했다.
“그러시지요.”
케이트가 대답했다. 그리고는 밀
너 가를 따라 레녹스 가든으로 향했다.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부지런히 발걸음만 옮기면 그도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을 못 느낄지 모른다. 원래 뉴튼과 산책하는 시간은 혼자 조용히 사색을 하는 시간이었다. 자작까지 데리고 걸어야 한다는 것이 영 내키질 않았다.
처음 몇 분 동안은 계획대로 진행되는 듯했다. 한스 크레센트와 브롬프튼 로가 만나는 모퉁이까지 두 사람은 묵묵히 걷기만 했다. 그런데 앤소니가 갑자기 말했다.
“내 동생이 지난 밤 우리 두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소.”
그 말에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다.
“뭐라고 하셨지요?”
“그가 우리 두 사람을 소개시켜 주기 전에 내게 당신 얘기를 어떻게 했는지 알고 있소?”
케이트는 고개를 젓기 전에 발을 헛디뎠다. 뉴튼은 미친 듯이 목줄을 끌고 앞으로 나가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녀석 말이, 당신이 끊임없이 내 얘기를 했다고 하더군요.”
“그으을쎄요.”
케이트가 웅얼거렸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사실 거짓말은 아닐 테지요.”
“하지만 그 녀석은,”
앤소니가 덧붙였다.
“당신이 마치 내 칭찬만을 끊임없이 늘어놓았다는 식으로 내비쳤었소.”
웃지 말아야 했지만 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앤소니 역시 미소를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가 미소를 지어 케이트는 기뻤다.
“나도 그랄 거라 생각했소.”
두 사람은 브롬프튼 가에서 꺾어져 나이츠브리지와 하이드 파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케이트가 물었다.
“그분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앤소니는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자 형제가 없나 보군요?”
“네. 에드위나뿐이랍니다. 에드위나는 어느 모로 보나 여자 맞죠.”
“그 애가 그런 짓을 한 것은 순전히 날 괴롭히기 위해서라오.”
앤소니가 설명했다.
“참으로 고상한 뜻이군요.”
케이트가 낮게 웅얼거렸다.
“그 말 들었소.”
“들으실 줄 알았어요.”
케이트가 덧붙였다.
“그리고 내 생각에.”
말을 이었다.
“그 애는 아마 당신도 괴롭히고 싶어한 것 같소.”
“저를요?”
그녀가 외쳤다.
“도대체 왜요? 제가 그분께 무슨 짓을 했다고요?”
“그 애가 사랑해 마지않는 형님을 헐뜯어서 그 애를 자극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가 넌지시 말했다.
케이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사랑해 마지않는?”
“그럼 존경해 마지않는일까?”
그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둘 다 옳은 표현은 아닌 것 같아요.”
앤소니는 씨익 웃었다. 비록 모든 일을 조종하려고 들어서 짜증스런 면은 있으나, 언니 쪽의 셰필드 양은 놀랄 만큼 재치가 넘친다.
두 사람은 나이츠브리지에 닿았다. 그는 그녀의 팔을 잡고 다리를 건너 하이드 파크 내 사우스 캐리지 로로 향하는 작은 오솔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변 광경이 푸른 빛으로 바뀌자 원래 시골에서
자란 뉴튼은 좀 더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했다. 물론 배가 볼록 나온 개가 속도를 내어봤자 거기에서 거기이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개는 기분이 좋은 듯, 꽃과 작은 동물들, 자신들 앞을 지나치는 사림들에게 온갖 관심을 다 나타내었다. 봄 공기는 약간 쌀쌀했지만 햇살은 따스했다. 전형적인 런던 날씨답게 며칠 동안 비가 내린 뒤여서인지 하늘은 놀랄 만큼 투명한 푸른색이었다. 비록 팔짱을 끼고 있는 여인이 그가 아내로 맞이하려는 여인도 아니고 그 어떤 관계도 되고 싶지 않은 여인이긴 했으나, 앤소니는 의외로 만족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로튼 로우를 건너갈까요?”
그가 케이트에게 물었다.
“흠?”
케이트가 멍하니 되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젖혀 태양을 바라보며 따스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몹시도 당황스럽게도 앤소니는 그 순간 찌를 듯이 날카로운…… 뭔가를 느꼈다.
뭔가라고?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욕망은 아니겠지. 이 여자에게 욕망을?
“뭐라고 말씀하셨죠?”
그녀가 중얼거렸다.
앤소니는 헛기침을 하며 머리 속을 정리하려고 심호흡을 했다. 그가 깊이 들이마신 것은 운나쁘게도 취할 듯한 그녀의 향기였다. 점잖은 비누와 화려한 이국의 백합 향이 독특하게 배합된 향기.
“햇살을 즐기고 계신 것 같군요.”
그가 말했다.
케이트는 미소를 띠며 투명한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아까 말씀하신 게 아니란 것은 알고 있지만, 네, 그래요. 즐겁군요. 요사이는 지겨울 정도로 비만 내렸으니까요.”
“젊은 레이디들은 얼굴에 햇살을 쬐면 안 된다고 알고 있었소.”
그가 장난스레 말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살며시 수줍은 표정을 지은 뒤 대답했다.
“레이디들은 그러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아 그러니까 저 역시 그러면 안 된다는 뜻이었지요. 하지만 기분이 너무 좋아요.”
케이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얼굴에 갈망이 스치고 지나갔다. 너무도 강렬한 그 표정에 앤소니는 안타까운 나머지 가슴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보닛을 벗을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녀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앤소니도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모자를 벗어 버리고 싶었다.
“뒤로 살짝 젖혀도 들킬 것 같지는 않군요.”
그가 넌지시 제안했다.
“그럴까요?”
그 말에 케이트의 온 얼굴이 환하게 피어올랐다. 다시금 예의 그 날카로운 뭔가가 앤소니의 내장을 후벼팠다.
“물론입니다.”
그가 중얼거린 뒤, 손을 내밀어 보닛의 챙을 조정해 주었다. 여자들은 왜 이런 것을 좋아하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리본에 레이스라니. 그것도 왜 꼭 정신이 제대로 붙은 남자라면 도저히 풀 수 없는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 놔야 하는 걸까.
“잠시만 가만히 있어요. 내가 고쳐 드리겠소.”
케이트는 앤소니가 말한 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손가락이 실수로 관자놀이를 슬쩍 스치자 숨쉬는 것도 멈추고 말랐다. 그는 너무도 가까이 있었고 그 느낌이 뭔가 너무도 기묘했다. 그의 몸에서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서 깨끗하고 비누 향이 섞인 체취를 맡을 수 있었다.
그의 존재감이 전율처럼 그녀를 뚫고 지나갔다.
그를 증오했다. 아니, 적어도 진심으로 그가 싫었고
미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욕구를 느꼈다. 살짝 몸을 앞으로 내밀어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사라질 때까지 그에게 다가가…….
케이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뒤로 몸을 뺏다. 하나님 맙소사.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잠시만.”
그가 말했다.
“아직 다 안 끝났소.”
케이트는 허겁지겁 손을 들어 보닛의 챙을 고쳤다.
“이 정도면 괜찮을 거예요. 괜히……괜스레 걱정하지 마세요.”
“햇살이 좀더 잘 느껴지오?”
그가 물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햇살이 느껴지는지 마는지 알 수도 없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아주 좋군요. 전……오!”
뉴튼이 길게 짖으며 목줄을 잡아당겼다. 그것도 아주 세게.
“뉴튼!”
그녀는 앞으로 끌려가며 외쳤다. 하지만 개는 이미 뭔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리고는 신나서 깡충깡충 뛰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 바람에 앞으로 끌려나가던 케이트는 발을 헛딛었고, 한 다리를 뒤로 빼고 한팔은 앞으로 쭉 뻗은 기묘한 모양새를 취하게 되었다.
“뉴튼!”
이번에는 좀더 가냘프게 불러 보았다.
“뉴튼! 멈춰!”
앤소니는 개가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지켜보았다.
개는 그 짧고 통통한 다리로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속도를 내고 있었다.
케이트는 목줄을 놓지 않으려고 장할 지경으로 애를 쓰고 있었지만, 뉴튼은 미친 듯이 짖어대며 앞으로 달려나가려고 마구 몸부림치고 있었다.
“셰필드 양, 내게 목줄을 건네줘요.”
앤소니는 그렇게 외치며 케이트를 도우려고 곁으로 달려갔다. 영웅 놀이를 해서 뻐겨 볼 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미래의 처형을 감동시키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인들 못하랴.
앤소니가 막 그녀 곁으로 다가갔을 때쯤, 뉴튼은 다시 한 번 목줄을 세차게 잡아당겼고, 케이트는 마침내 목줄을 놓치고 말았다. 그녀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목줄을 잡으려고 앞으로 뛰어나갔지만 개는 이미 줄을 끌며 저 멀리 달아나 버린 후였다.
앤소니는 웃어야 할지 신음을 내뱉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뉴튼은 절대로 잡혀 주지 않을 기세였다.
케이트는 잠시 얼어붙어서 한 손으로 입을 막고 그 자리에 멈춰서더니 앤소니를 흘끗 바라보았다. 앤소니는 그녀가 다음 순간 무슨 행동을 할 것인지 알 것 같다는 무척이나 끔찍한 기분을 느꼈다.
“셰필드 양.”
그가 얼른 말했다.
“뉴튼은 반드시…….”
하지만 그녀는 듣지도 않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뉴튼!”
에티켓 따위는 던져 버리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앤소니는 길게 피곤한 한숨을 내쉰 뒤 그녀 뒤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 혼자 개를 쫓아가게 내버려두어서야 신사라 자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케이트가 약간 먼저 출발했지만 그는 금세 길모퉁이에서 그녀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멈춰서 버렸다. 양손을 허리에 얹고 숨을 헐떡이며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로 간 겁니까?”
마구 헐떡이는 이 여자가 왠지 자신을 흥분시킨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며 앤소니가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녀는 계속 호흡을 골랐다.
“아마 토끼를 쫓아간 것 같아요.”
“아아, 정말 그 녀석을 붙잡기가 쉽게 되었군요.”
그가 말했다.
“원래 토끼들은 잘 닦여진 길을 따라 달리는 동물이니까요.”
그녀는 그의 빈정거리는 말투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 어쩌지요?”
앤소니는 “집으로 돌아가서 진짜 개다운 개를 구해 봐요”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녀가 너무도 걱정하는 눈치여서 혀를 깨물고 말았다.
아니,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걱정보다는 짜증을 더 많이 느끼는 눈치였지만 어쨌거나 확실히 걱정을 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가 말했다.
“누군가가 비명을 지를 때까지 기다려 봅시다. 뉴튼은 금세 젊은 레이디의 발 아래로 뛰어가 불쌍한 레이디를 겁에 질리게 만들어 버릴 테니까요.”
“정말 그럴까요?”
그녀는 별로 납득하지 않는 눈치였다.
“왜냐면 뉴튼은 척 봐도 그리 겁을 낼 만한 개가 아니거든요. 물론, 그애는 자기가 아주 무섭게 생겼다고 착각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은 아주 아주 착한 개랍니다. 게다가 사실 그 애는…….”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저게 우리가 바라던 대답인 것 같습니다.”
앤소니는 건조하게 말한 뒤, 이름 모를 레이디의 비명 소리가 들련 방향으로 뛰어나갔다.
케이트도 서둘러 그 뒤를 쫓아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자작은 그녀 앞에서 달리고 있었다. 저 사람은 정말로 에드위나와 결혼하고 싶은 모양이야. 케이트가 그 순간 생각할 수 있었던 건 고작 그것뿐이었다. 자작이 비록 놀랄 만큼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이라고는 하나, 투실투실한 코기 뒤를 쫓아 공원을 달려가는 그의
모습에서 위엄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더욱 끔찍한 것은 지금 그들이 사교계 사람들이 승마를 하고 마차를 타기에 으뜸으로 치는 로튼 로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모두가 우리를 볼 거야. 에드위나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지독하게 강하지 않은 남자였다면 버얼써 포기했을 것이다.
케이트는 계속 그의 뒤를 쫓았지만 점점 더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남성용 바지를 입어 본 적은 없지만 분명 드레스보다는 훨씬 달리기가 편할 것이다. 특히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드레스를 발목 위로 걷어올릴 수 없는 형편이라면.
그녀는 로튼 로우를 미친 듯이 가로질렀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레이디들이나 말을 끌고 나온 신사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면 신발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미친 듯이 공원을 가로지른 말괄량이가 자신이란 것을 들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뭐, 그럴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