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ating Who Loved Me RAW novel - chapter 57
“이걸 이해할 수나 있어?”
그는 으스러져라 그녀의 몸을 끌어안은 뒤, 섬세한 귓가의 피부를 깨물었다.
“물론, 당신은 알지 못하겠지.”
케이트는 자신의 몸이 그의 품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피부는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이성을 배신한 팔은 어느새 기어올라 그의 목을 감고 있었다. 앤소니는 그녀 안에서 도저히 휘어잡을 수 없는 불길을 지피고 있었다. 그녀는 원초적인 본능에 사로잡혔다. 뜨겁고 끈적끈적한 그 느낌. 그 무엇보다도 살갗 위로 그를 느끼고 싶다는 욕구.
그를 원했다. 아 얼마나 그를 원하는지. 그를 원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화제가 될 사건 때문에 자신과 결혼하려는
이 남자를 원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절박하게 그를 원했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잘못되었다, 너무도 잘못된 일이다. 이 결혼에 대해 상당한 불안감을 느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에게 그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려고 했지만 어느새 케이트의 입술은 그가 들어올 수 있게 열리고 있었으며, 그녀의 혀는 수줍게 그의 입가를 핥고 있었다.
뱃속에 욕망이 고였다-이 기묘하고 따끔거리고 소용돌이치는 느낌은 반드시 그것일 수밖에 없다.
“난 뭐가 잘못된 걸까?”
그가 들으라기보다는 지신에게 속삭였다.
“이건 내가 타락한 여자란 뜻일까?”
하지만 앤소니는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뜨겁고 촉촉하게 그녀의 뺨 위 피부에 닿았다.
“아니오.”
그는 그녀의 귀에 입술을 가져가 좀더 똑똑히 말했다.
“아니야.”
케이트는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 것을 느꼈다. 낮고 유혹적인 그의 목소리에 그녀는 방금 새로 태어난 기분을 맛보았다.
“당신은 완벽해.”
그가 속삭였다. 그의 큰 손이 다급하게 그녀의 온몸을 훑다가 한 손은 허리에, 나머지 한 손은 봉긋하게 부푼 가슴 위에 내려앉았다.
“여기, 지금, 바로 이 순간 이 정원에서의 당신은 완벽해.”
케이트는 그의 말에서 뭔가 거슬리는 구석을 찾아냈다. 마치 그녀에게-그리고 자기 자신에게-그녀는 내일이면 완벽하지 않을 거라고 그 다음날은 더더욱 완벽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입술과 손길은 집요하게 그녀를 설득했고 그녀는 불쾌한 생각들을 억지로 머리 속에서 몰아낸 뒤 아찔한 쾌락에 몸을 던
졌다.
자신이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자신이……완벽하게 느껴졌다. 여기, 이 순간 그녀는 지신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남자를 숭배 할 수밖에 없었다. 앤소니는 등의 움푹 파인 곳으로 손을 옮겨 케이트의 몸을 지탱하며 다른 손으로는 젖가솜을 찾아 잃은 모슬린 드레스 위로 그녀의 살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가락은 통제를 벗어난 듯 꽉 죄어들며, 경련을 일으키며, 마치 낭떠러지에 매달린 듯 그녀를 움켜쥐었다. 드레스를 뚫고 느껴지는 그녀의 유두는 단단하고 뾰족했다. 그녀의 등뒤로 손을 돌려 그녀의 몸을 꽁꽁 가둔 드레스 단추를 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그는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자제력까지 동원해야만 했다.
또다시 이글거리는 키스로 그녀의 입술을 찾으면서도, 그는 머리 속으로 모든 광경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이래로 흘러내리는 드레스 가슴이 드러날 때까지 감질나게 조금씩 미끄러져 내리는 모슬린. 머리 속에 생생하게 그려지는 광경. 왜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가슴이 완벽하리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감싸쥐고, 하늘을 향해 젖꼭지를 치켜올린 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혀끝이 그녀의 가슴에 살짝 닿을 때까지 고개를 숙이리라.
그녀가 신음을 하면, 조금 더 그녀를 약올리다가 꼼지락거리지 못하게 꼭 끌어안으리라. 그리고 나서, 그녀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며 숨을 가쁘게 삼킬 때, 혀를 거두고 입술을 가져가 그녀가 비명을 지를 때까지 가슴을 빨리라.
맙소사. 그녀를 너무도 심하게 원하는 나머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장소가 좋지 않다. 물론 결혼 서약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이미 어머님 앞에서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공표한 만큼, 그녀는 이미 그의 여자였다. 그렇다고 그녀를 어머니의 정원 정자 안에서 자빠뜨리고 싶진 않았다. 그에게는 자존심이란
것이-그리고 그녀에 대한 존중이라는 것이-있었다.
앤소니는 마지못해 천천히 몸을 떼고 날씬한 케이트의 어깨에 양손을 얹은 뒤 팔을 쭉 뻗어 그녀와 거리를 벌렸다. 자꾸만 애무를 계속하고 싶은 유혹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떨칠 수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거기에 유혹이 있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 순간만큼은 케이트 셰필드가 여동생 못지 않게 아름답다고 맹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의 매력은 조금 다른 종류였다. 요새 사람들이 선호하는 얇은 입술은 아니었지만 훨씬 더 키스하고 싶게 만드는 입술이었고 속눈썹은-왜 전에는 저리도 길다는 것을 몰랐을까?-눈을 깜박일 때마다 볼 위에 커튼처럼 드리워진다. 욕망으로 살짝 분홍색으로 물든 피부에는 윤기가 흘렀다. 지나친 상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그녀의 얼굴을 볼 때마다 태양이 수명선 위로 막 떠올라 하늘을 미묘한 분홍색과 복숭아빛으로 물들이는 새벽을 연상했다.
거의 1분 가까이 숨결을 고르며 그렇게 서 있었다. 앤소니는 마침내 팔을 내렸고 두 사림은 서로 한 발자국씩 물러섰다. 케이트는 손을 들어 입술에 가져갔다.
“우리는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요.”
그녀가 속삭였다.
그는 정자 기둥에 등을 기대고 흡족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우리는 약혼했잖소.”
“아니오.”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어떤 논의도 없었잖아요.”
그녀가 얼른 설명했다.
“그렇다고 서류에 서명을 한 것도 아니고 제게 지참금이 없다는 것은 알고 계실 테지요?”
그는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지금 날 떼어 버리려는 거요?”
“절대 아니에요!”
그녀는 약간 안절부절못하며 무게 중심을 이 발에서 저 발로 옮겼다.
그는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렇다면 혹시 지금 당신을 떼어 버려야 하는 이유를 내게 가르쳐 주고 있는 거요?”
케이트는 얼굴을 붉혔다.
“아. 아니오.”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만 조금 전 지신이 했던 말이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어리석은 실수를 한 것이다. 만일 이제 와서 그가 결혼을 하지 못하겠다고 발을 빼면 그녀의 인생은 그걸로 끝이다. 런던에서의 삶 뿐만 아니라, 서머셋의 그녀 마을에서도 끝나는 것이다. 타락한 여자의 소문이란 언제나 순식간에 천 리를 가는 법이니까
하지만 차선책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이 편치 않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모든 의심을 확인하고 싶었다-애당초 그녀를 신부감으로 원치 않았다는 것, 에드위나 쪽을 훨씬 더 선호한다는 것, 어쩔 수가 없어서 그녀와 결혼하는 것뿐이라는 걸. 마음은 몹시 아플 테지만 일단 그런 것을 확인하고 나면 그녀도 알고 있을 수나 있으니까 비록 진실이 그녀를 괴롭힐지라도 아는 것은 모든 경우에서 모르고 있는 것보다 난은 법이니까.
적어도 자신이 지금 어디 서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있을 테니까. 지금은 아예 바닥을 알 수 없는 늪을 딛고 서 있는 느낌이었다.
“한 가지만 확실히 합시다.”
앤소니가 단호한 어조로 주의를 상기시켰다. 그의 시선이 그녀의 시선을 붙들어 맸다. 너무도 강렬한 그 시선에, 케이트는 고개조차 돌릴 수가 없었다.
“난 당신과 결혼하겠다고 말했소. 난 약속은 지키는 남자요. 이 문제를 두고 계속 나
를 의심한다면, 그건 심각한 모욕이라 간주하겠소.”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머리 속을 끊임없이 맴도는 생각.
네가 지금 뭘 바라고 있는지 잘 생각해……네가 지금 무슨 소원을 빌고 있는 건지 잘 생각하라고.
그녀는 그녀가 사랑하게 될 것 같아 두려웠던 남자와의 결혼에 동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궁금한 것은, 그가 자신과 키스할 때 에드위나를 떠올리는가 하는 것뿐이었다.
네가 지금 무얼 바라는지 잘 생각해 봐.
그러다간 정말 네 생각대로 될지도 모르니까.
15
다시 한 번, 본 필자가 옳았음을 증명되었다. 별장 파티라는 것은 실로 놀라운 약혼자들을 양산해낸다.
친애하는 독자들이여, 이 기사는, 본지가 가장 먼저 싣는 소식이다. 브리저튼 자작은 캐서린 셰필드 양과 결혼할 것이다. 떠돌던 가십과는 달리 에드위나 양이 아니라 캐서린 양과.
그들이 약혼에 이른 경위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정보를 알아내기가 어렵다. 본 필자, 매우 정확한 소식통으로부터 두 사람이 모종의 위심스러운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들켰으며, 페더링턴 부인도 목격자 중 한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으나, F부인은 평소와는 달리 사건의 전모에 대해 입을 봉한 상태이다. 그 레이디가 가십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는 터, 본 필자는 자작(근성이 대단하기로 소문난)이 F부인이게 한 마디라도 발설할 경우 신체적인 상해를 가할 것이라고 협박한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레이디 휘슬다운의 사교계 소식. 1814년 5월 11일
케이트는 자신이 악명을 날리는 것을 도무지 소화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켄트에서의 마지막 이틀만 해도 상황은 고약하기 그지없었다. 약간은 성급하게 이루어진 정혼 후, 저녁식사 시간에 앤소니가 약혼을 발표했고, 그 다음부터 그녀는 레이디 브리저튼의 손님들이 던지는 축하인사와 질문공세, 그리고 빈정대는 농담들에 거의 숨 쉴 틈도 없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앤소니가 결혼을 발표한 몇 시간 뒤, 간신히 에드위나와 단둘이 얘기를 나누게 되었을 때뿐이었다. 에드위나는 언니를 덥석 끌어안고는 자신이 ‘흥분했으며’ ‘기쁘기그지없고’ ‘하나도 놀라지 않았다’고 선언했다.
에드위나가 놀라지 않은 것에 오히려 케이트가 놀랐다고 말하자 에드위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했다.
“자작님이 언니에게 반해 있는 것이 뻔히 보였는걸. 안른 사람들은 왜 아무도 눈치를 못 했는지 모르겠어.”
그 말에 케이트는 어리둥절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앤소니가 결혼 상대로 정한 사람이 에드위나라고 단단히 믿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케이트가 런던으로 돌아와보니 사람들의 쑥덕거림은 켄트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마치 사교계의 사람들이 한사람도 빼놓지 않고 셰필드 가의 작은 전셋집에 들러, 장래의 자작부인을 뵙는 것이 필수 불가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림들이 진의가 의심스러운 축하인사를 했다. 자작이 진심으로 케이트와 결혼하고 싶어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그런 말을 그녀의 면전에 하는 것이 얼마나 실례인지 아는 사람도 없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운이 좋으십니다.”
악명 높은 크레시다 쿠퍼의 어머니인 레이디 쿠퍼가 말했다. 크레시다 쿠퍼는 케이트에게는 한 마디도 건네지 않고 부루퉁한 얼굴로 구석에 서서 찌를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케이트를 노려보기만 했다.
“자작님께서 레이디에게 관심이 있으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쓰여 있는 얼굴로 거트루드 나이트 양이 지껄여댔다. 믿기는커녕 런던 타임즈에 기사가 실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약혼이 오보였음이 드러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완곡하게 말하는 법이 없기로 유명한 레이디 댄버리의 말.
“자직을 어떻게 함정에 빠뜨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뛰어난 수법이었던 것 같군. 레이디에게 비법을 전수받고 싶어하는 아가씨들이 여러 명 있더군. 거짓말이 아니네.”
케이트는 그저 미소만 지으며(최소한 지으려고 노력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메리가 옆구리를 찌를 때마다 “제가 운이 좋았지요”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앤소니, 그 운 좋은 남자는 케이트가 겪어야 했던 가혹한 비웃음들을 피할 수가 있었다. 그는 오브리 홀에 남아 결혼 전까지 재산 문제를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했다. 결혼식은 바로 다음 토요일, 그러니까 정원에서의 사건 후 아흐레째 되는 날로 잡혀 있었다. 그렇게 서두르면 말들이 많지 않을까 메리는 걱정했지만 레이디 브리저튼은 다소 독단적인 태도로, 결혼식을 언제 하든 다들 입방아는 찧어댈 것이며, 일단 앤소니의 이름으로 보호를 받게 되면 케이트도 사람들의 노골적인 빈정거림을 덜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령기에 이른 자식들을 결혼시키려는 외곬의 정열로 어느 정도 정평이 나 있는 자작부인은 단지 앤소니가 마음이 바뀌기 전에 그를 주교 앞에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케이트는 생각했다.
하지만 케이트도 레이디 브리저튼의 말에는 동의했다. 결혼식과 그 후에 경험하게 될 부부 생활에 대해 약간 겁이 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녀는 뭐든 미루는 성격이 아니었던 것이다. 일단 결심을 했으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
리고 말들이야 급히 결혼식을 치르면 꽤 시끄러워지기는 하겠지만 두 사람이 빨리 결혼할수록 그만큼 빨리 잦아들것이고, 따라서 자신도 그만큼 빨리 예전처럼 조용히 자신만의 인생을 꾸려갈 수 있지 않을까 케이트는 생각했다.
물론 그녀의 인생은 얼마 안 있으면 더 이상자신만의 것이 아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그런 것에는 익숙해져야만 할 터였다.
지금도 이미 자신만의 인생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혼수를 장만해 주느라 앤소니의 돈을 엄청나게 써대는 레이디 브리저튼과 함께 이 가게 저 가게로 끌려 다니느라 하루하루가 숨쉴 틈 없이 지나가 버리고 있었다. 싫다는 말은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케이트는 곧 깨닫게 되었다. 레이디 브리저튼-아니, 이제는 바이올렛이라고 부르라고 했지-의 결정에 반항하는 바보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메리와 에드위나도 몇 번 그들을 따라나섰었지만 곧 바이올렛의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에 질려서는 샤베트를 먹으러 군터의 가게로 도망가 버렸다.
마침내 결혼식을 겨우 이틀 남기고서야 케이트는 앤소니에게서 그 날 오후 4시에 들를 터이니 집에 있으라는 전갈을 받았다. 케이트는 그를 다시 만나는 것에 약간 긴장이 되었다. 왠지 몰라도 도시에서는 모든 것이 다른-더 형식적이니까-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옥스퍼드 가와 옷가게, 모자가게, 그리고 장갑가게, 그 외에도 어디든 바이올렛이 자신을 끌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가게를 돌아다니며 또 하루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 것에 감사했다.
그래서 메리와 에드위나가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바쁜 동안-깜박 잊고 그의 방문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케이트는 발치에 편안히 잠든 뉴튼과 함께 응접실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앤소니는 그 주 내내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그 생각들은 모두 케이트와, 코앞에 닥친 자신들의 결혼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허락하기만 한다면 그녀를 사랑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었다. 해결의 열쇠는 그 자신에게 사랑을 허락하지 않는 것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더 그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뭐니뭐니해도 자신은 사나이였고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신력이라는 것의 존재 역시 믿고 있었고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를 의지력이라는 것의 존재 역시 믿고 있었다. 솔직히, 사람이 꼭 어쩔 수 없이 사랑에 빠지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그렇다면 그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쉬운 일이다. 틀림없이 쉬운 일일 것이다. 그 정도가 어렵다면 사나이라고 할 수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결혼식 전에 이 문제에 관해 케이트와 이야기는 나누어야 할 것이다. 결혼 생활에 대해 확실히 해두어야 할 점들이 있었다. 규칙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만……상호간의 이해라고나 할까 그래, 그 말이 좋겠어.
그에게서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서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 케이트가 이해해야만 했다. 그들의 결혼은 사랑의 결합이 아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절대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었다. 그녀가 그런 환상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느 쪽이든 나중에 당황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물론 케이트도 동의할 것이다. 그녀는 현실적인 여자이므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싶어할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의중을 짐작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을 달가워할 여자가 아니었다.
정
확히 4시 2분 전에 앤소니는 셰필드 가의 정문을 두 번 두드렸다. 그는 우연인지 바로 그 날 오후 밀너 가를 거닐고 있던 대여섯 명의 사교계 인사들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얼굴을 찌푸리며 그는 생각했다. 원래 잘 가는 장소들에서 꽤 먼 곳까지들 나왔군.
하지만 그는 놀라지 않았다. 런던으로 돌아온 지는 얼마 안 됐을지 모르지만 그도 자신의 약혼이 현재 최고의 스캔들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휘슬다운은 켄트까지 배달되었으니까.
집사가 금세 문을 열고 그를 가까이에 있는 응접실로 안내했다. 케이트는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리고, 그 위에 그녀가 입은 연한 하늘색 오후용 드레스의 흰 장식에 맞춘 것이지 싶은, 우스꽝스럽고 조그마한 테없는 모자 같은 것을 얹은 채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하면 저 모자를 가장 먼저 없애 버려야겠다고 앤소니는 결심했다.
그녀는 길고 윤나며 숱이 많은, 사랑스러운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여자가 예의를 갖추려면 외출할 때 보닛을 써야 한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보는 사람도 없는데 집 안에서까지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감추는 것은 정말 범죄행위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심지어 인사말도 하기 전에 케이트가 은제 티 세트를 차려놓은 앞쪽의 테이블을 손짓하며 말했다.
“제 마음대로 차를 시켰습니다. 날씨가 좀 쌀쌀해서 차를 드시고 싶으실 것 같아서요. 싫으시다면 다른 것을 가져오라고 하지요.”
그다지 쌀쌀한 날씨라고 느끼지는 않았지만 앤소니는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고맙소.”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따르려고 찻주전자를 집어들었다. 그녀는 주전자를 약간 기울이다가 얼굴을 찌푸리며 다시 주전자를 바로 세우며 말했다.
“차를 어떻
게 드시는지도 모르네요.”
앤소니는 입술 한쪽이 살짝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우유를 넣어서. 설탕은 넣지 않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우유를 넣었다.
“아내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일인 것 같아서요.”
그는 소파 오른쪽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이제 알았으니 됐잖소.”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더니 한숨을 쉬었다.
“알았으니 된 것이겠지요.”
케이트가 차를 따르는 것을 보며 앤소니는 헛기침을 했다. 그녀는 장갑을 끼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손동작을 보는 건 즐거웠다. 춤을 출 때 수도 없이 그의 발을 밟았던 것에 비해, 그녀의 손가락은 길고 가늘었으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아하게 움직여서 그를 놀라게 했다. 물론 몇 번은 일부러 밟은 것이었겠고 그 이외에는 일부러 밟은 척했겠지만 사실은 정말 실수로 밟은 것이었을 것이다.
“드시지요.”
찻잔을 건네주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조심하세요. 뜨겁습니다. 저는 미지근한 차는 정말 싫어하거든요.”
그래. 앤소니는 미소지으며 생각했다. 그렇겠지. 케이트는 무엇이든 미지근하게 할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에 대해 가장 마음헤 드는 점 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부분이었다.
“자작님?”
차를 조금 더 가까이 밀며 케이트가 예의바르게 말했다.
장갑 낀 손가락을 그녀의 맨손에 스치며 앤소니는 찻잔의 접시를 쥐었다. 그녀의 뺨이 아주 살짝 분홍빛으로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왠지 기뻣다.
“특별히 저에게 묻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자작님?”
안전하게 손을 멀리 치운 뒤 찻잔 손잡이를 잡고 그녀가 물었다.
“앤소니요. 분명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리고 약혼녀와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방문할 수는 없는 거요?”
그녀는 빈틈없는 눈빛을 하고 찻잔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러실 수 있죠. 하지만 오늘 방문하신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다소 되바라진 말에 그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번만큼은 당신이 옳소.”
케이트가 뭐라고 중얼거렸다. 정확히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개의 경우, 저는 틀리지 않아요.”라는 말이었을 것 같았다.
“우리의 결혼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소.”
“무슨 말씀이신지?”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우리는 둘 다 현실적인 사람들이지. 일단 서로에게서 어떤 것들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나면 더 편안할 것 같은데.”
“그……그렇겠지요.”
“좋소.”
그는 받침접시에 찻잔을 얹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기쁘군.”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헛기침하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마치 의회 연설이라도 준비하는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 서로 그다지 우호적이지 못했소.”
그는 그녀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지금은……당신도 그렇게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는데……일종의 친구 관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