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ating Who Loved Me RAW novel - chapter 60
에드위나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언니? 왜 그렇게 이상한 표정으로 날 보는 건데?”
케이트는 아쉬운 시선으로 란제리를 바라보았다.
“모르는 게 나을 거다.”
“흐음. 저기, 난…….”
문가에서 들려온 부드러운 노크 소리에 에드위나는 말을 멈췄다.
“어머니인가 보다.”
에드위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대된다.”
케이트는 에드위나에게 눈을 굴려 보이며 일어서서 문가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메리가 양손에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 잔을 들고 복도에 서 있었다.
“혹시나 네가 뜨거운 우유를 마시고
싶지 않을까 해서.”
메리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케이트는 대답 대신 들고 있던 머그 잔을 치켜들었다.
“에드위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나 보더라고요.”
“에드위나가 여기서 뭘 하는 거냐?”
메리가 방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언제부터 제가 언니와 얘기하는 데 이유가 필요했나요?”
에드위나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메리는 약간 멋쩍은 표정을 지은 뒤 케이트에게 관심을 돌렸다.
“흐음.”
그녀가 중얼거렸다.
“뜨거운 우유가 남아도는 것 같구나.”
“어차피 이건 벌써 미지근해진걸요.”
케이트는 손에 들고 있던 머그 잔을 트렁크 위에 올려놓고 메리의 손에 들려 있던 더 따뜻한 잔을 받아들었다.
“저건 에드위나가 나갈 때 부엌에 가져다 놓으라고 하죠, 뭐.”
“뭐라고 했어?”
에드위나가 딴 생각을 하다가 멍하게 말했다.
“아, 그래. 그렇게 할게.”
하지만 그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케이트와 메리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리저리 고개를 돌린 것을 제외하면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메리가 말했다.
“난 케이트와 할 말이 있다.”
에드위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 둘이서만.”
에드위나는 눈을 깜박였다.
“저 나가야 돼요?”
메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지근해진 머그 잔을 내밀었다.
“지금요?”
메리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위나는 당황한 듯하다가 조심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농담이시지요, 네? 여기 있어도 되지요. 네?”
“안 돼.”
메리가 대답했다.
에드위나는 애원하는 시선으로 케이트를 바라보았다.
“나 쳐다보지 마.”
케이트가 간신히 미소를 참으며 말했다.
“메리 결정이잖니. 어차피 말은 다 메리가 하실 거고, 난 그냥 듣기만 할 거니까.”
“그리고 질문도 할 거잖아.”
에드위나가 지적했다.
“나도 질문할 게 있단 말이야.”
그녀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궁금한 게 많단 말이에요.”
“그래, 그렇겠지?”
메리가 말했다.
“그 질문들은 네 결혼식 전날 밤에 기꺼이 대답해 주마.”
에드위나는 뭉기적거리며 일어났다.
“이건 공평하지 못해.”
그녀는 잔뜩 투덜거리며 메리의 손에서 잡아채듯 잔을 받아들었다.
“원래 인생이란 것이 공평하지 못한 법이란다.”
메리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말도 안 돼.”
에드위나가 발을 끌며 방을 가로질렀다.
“문에서 엿들어도 안 돼!”
메리가 외쳤다.
“그런 건 꿈도 안 꿔요!”
에드위나가 느릿느릿 말했다.
“어차피 내가 엿들을 수 있게 큰소리로
말씀하실 것도 아니시면서.”
에드위나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뭐라고 끊임없이 투덜대면서 복도로 나가 문을 닫자 메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그녀가 케이트에게 말했다.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래도 동생을 위해 한 마디 거들었다.
“안 듣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메리는 그런 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손으로 문을 열고 확인을 하련?”
케이트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메리가 이기셨어요.”
메리는 아까까지 에드위나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에 앉은 뒤 케이트를 똑바로 응시했다.
“내가 왜 여기 왔는지 이유는 알고 있겠지?”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는 우유를 한 모금 마신 뒤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말했다.
“내가 결혼했을 때-그러니까 네 아버지와가 아니라, 내 첫 번째 결혼 말이다-난 결혼식 첫날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단다. 난…….”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몰랐던 탓에 더욱더 힘들었단다.”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조심스럽게 단어를 고르고도 천천히 말을 하는 메리를 보며, 케이트는 아마 ‘힘들었다’ 란 말은 진실의 반도 설명하지 못한 것이리라 예상했다.
“알겠어요.”
케이트가 중얼거렸다. 메리는 날카롭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니, 넌 모른다. 그리고 넌 내가 처했던 상황에 절대로 처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하려던 얘기가
아니야. 나는 그때 결심했단다. 내 딸들만큼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지한 채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대강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어요.”
케이트가 순순히 실토했다.
그 말에 메리는 놀란 모양이었다.
“알아?”
케이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동물들과 크게 다를 수는 없겠지요.”
메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지.”
케이트는 그 다음 질문을 어떤 식으로 표현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서머셋 집 근처에 있는 농장에서 본 바로는, 번식의 행위라는 건 전혀 즐거워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앤소니가 그녀에게 키스했을 때, 케이트는 완전히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가 두 번째로 키스했을 때는 정신을 잃건 말건 상관하고 싶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온몸이 따끔거렸으며, 만일 그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곳이 좀더 적절한 장소였다면, 그녀는 그가 원하는 대로 다 했다 하더라도 한 마디 불명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농장에서 보았던 암말은 끔찍하게 비명을 질러댔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퍼즐의 조각들이 도무지 제대로 짜맞춰 지지를 않았다.
마침내 그녀는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그다지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어요.”
메리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아까와 똑같은 표정이 메리의 얼굴에 떠올랐다. 마치 머리 속 가장 깊숙한 구석에 묻어 두고 싶었던 어두운 기억들이 떠오른다는 듯. 그녀는 다시 눈을 뜨고 말했다.
“여성의 기쁨이란 전적으로 남편에게 달려 있단다.”
“그러면 남자의 기쁨은요?”
“사랑의 행위란 것은.”
메리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단다. 하지만…….”
그녀는 기침을 하며 우유를 마셨다.
“여자란 그 행위에서 항상 쾌락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을 안하고 넘어갈 순 없겠지.”
“남자는 가능하고요?”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공평한 것 같은데요.”
메리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에 에드위나에게도 그렇게 말했지 않니. 인생이란 게 불공평한 법이라고.”
케이트는 얼굴을 찌푸리며 우유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건 심하게 불공평한걸요.”
“그렇다고.”
메리가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그 경험이 여자에게 있어서 끔찍할 필요는 없는 거란다. 너에겐 그리 끔찍한 일이 아닐 게다. 자작님이 너에게 키스하셨지?”
케이트는 고개를 숙인 채 끄덕였다. 메리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케이트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꼈다.
“얼굴을 붉히는 걸 보니 즐거웠던 모양이로구나.”
케이트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뺨이 화끈거리며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키스가 즐거웠다면, 그 이상의 것도 충분히 즐거울 거야. 자작님은 분명 널 아주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대하실 게다.”
앤소니의 키스는 ‘부드럽다’ 란 단어로 묘사할 수 있는 종류는 아니었으나, 그런 것은 어머니와 나눌 말이 아니라고 케이트는 생각했다. 지금 이대로라도 충분히 당혹스런 대화였다.
“남자와 여자는 아주 다르단다.”
메리는 그게 마치 놀라운 사실이라도 된다는 양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남자들이란…… 심지어 자기 아내에게 충실한 남자들조차 말이다, 아마 자작님은 너에게 충실하실 거라 믿는다만……어쨌건, 남자들은 그 어떤 여자에게서도 쾌락을 찾을 수 있단다.”
조금 기분이 나빠지는 말이다. 별로 듣고 싶었던 말은 아니었다.
“그럼 여자는요?”
“여자는 다르지. 음탕한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자신을 원하는 아무 남자의 품에서나 쉽게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만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난 여자란 자기 남편을 사랑해야만 부부 생활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케이트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면 남편을 사랑하지 않으셨나요?”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차이는 무척 크단다, 얘야 그것뿐 아니라, 아내를 배려하는 남편의 마음도 무척 중요하지. 자작님과 네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예상치 못하게 갑작 레 결혼하게 되었기는 하다만 그래도 자작님은 항상 널 배려하고 존중해 주시더구나. 겁낼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자작님은 너에게 잘 해주실 거야.”
그말과 함께, 메리는 케이트의 이마에 키스한 뒤 잘 자란 인사를 하고 나가는 길에 빈 머그 잔 두 개를 들고 나갔다. 케이트는 침대에 누워 한참동안 멍하니 벽을 바라보았다.
메리의 말이 틀렸다. 케이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은 두려워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자신이 앤소니의 신부감 일순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괴로웠지만 그녀는 현실적인 사람이었으므로 인생에는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앤소니의 품에서 느꼈던 욕망을-그리고 앤소니
역시 느꼈으리라 확신하고 있는 욕망을-유일한 위안거리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메리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욕망조차 꼭 그녀를 향한 것일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닌가. 세상 모든 남자들이 아무 여자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욕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마 케이트는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 만일 앤소니가 촛불을 끄고 그녀를 침대로 데려가 눈을 감은 뒤……또 다른 여자의 얼굴을 떠올린다 하더라도.
브리저튼 저택의 응접실에서 치러진 결혼식은 조촐한 가족 행사였다.
사실 장남 앤소니부터 열한 살 히아신스까지 온 브리저튼 가의 식구들이 다 참석했으니만큼 하객의 수가 그리 적은 것만은 아니었지만 화동 역할을 맡은 히아신스는 자신의 역할을 몹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레고리가 장미 꽃잎이 담긴 바구니를 빼앗으려고 하자 그녀는 그레고리의 턱을 호되게 후려갈겼다. 그 덕에 결혼식이 족히 10분은 지연되었으나,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오히려 분위기는 화기애애해졌다.
물론, 그레고리를 제외한 모두가 말이다. 그레고리는 동생한테 얻어맞고 나서 꽤나 기운이 빠졌는지 전혀 웃질 않았다. 히아신스는 지신의 말에 귀기울여 주는(목소리가 워낙 컸던지라, 히아신스의 말을 듣지 않기란 불가능했다) 사람들마다 불잡고 그레고리가 먼저 시작한 일이라고 하소연을 해댔다.
케이트는 신부 대기실의 열린 문틈으로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거의 한 시간 동안 긴장에 떨고 있었던지라, 그녀는 그 광경에 미소를 지으며 마음이 가라앉은 것에 감사했다. 레이디 브리저튼이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시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원래 쉽게 긴장하는 편이 아니지만 결혼식이 성대했더라면 아마 겁에 질려 기절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바이올렛은 케이트와 앤소니, 그리고 두 사람의 갑작스런 약혼발표를 두고 나도는 소문들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페더링턴 부인도 약속을 지켜 사건의 전모에 대해 입을 다물기는 했으나, 은연중에 넌지시 암시를 흘려 모두가 두 사람의 약혼이 일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란 것을 눈치채게 만들었다.
그 결과 모두가 얘기를 해댔다. 페더링턴 부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케이트가 꿀벌의 손아귀에-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꿀벌의 침에 -무릎을 꿇었음을 발설해 모두가 진실을 알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라는 것을 케
이트는 알고 있었다. 결국에는 바이올렛도 결혼식을 빨리 치르는 것이 최선이란 결론을 내렸다. 일주일 만에 성대한 파티를 계획할 수는 없었으므로 하객은 가족으로 국한되었다. 신부측 들러리엔 에드위나가 앤소니의 들러리로는 베네딕트를 옆에 세운 가운데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사람의 인생이란 것이 이토록 빨리 변할 수 있다니, 참으로 기묘한 일이라고 케이트는 그 날 오후 왼손의 다이아몬드 반지 위에 덧끼워진 금반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결혼식 자체는 몹시 짧았다. 기억조차 똑똑히 나지 않는 희미한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삶은 영원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에드위나의 말이 옳았다.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제 그녀는 유부녀이다. 자작부인이 된 것이다.
레이디 브리저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