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ating Who Loved Me RAW novel - chapter 70
그는 잠에 빠져드는 케이트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감은 눈꺼풀 위로 그녀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가슴이 부드럽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며 호흡의 간격을 재보았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는 것을, 뭐라고 웅얼거리는 것을 빠뜨리지 않고 들었다.
가끔 머리 속에 영원히 각인시키고 싶은 추억들이 있다. 바로 지금이 그런 순간이었다.
완전히 깊은 잠에 빠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녀는 뭐라고 약간 우스운 소리를 중얼거리며 그의 품을 파고들다가 천천히 눈을 폈다.
“아직 안 주무셨어요?”
그녀가 웅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잔뜩 졸음이 배어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너무 세게 그녀를 껴안고 있던 것은 아닌지. 하지만 그녀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절대 놓아주기 싫었다.
“좀 자요.”
그녀가 말했다.
앤소니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지만 도무지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하품을 했다.
“아주 좋네요.”
그는 그녀의 이마에 키스하며 동의하듯 “으으음” 비슷한 소리를 냈다.
그녀는 목을 뒤로 젖혀 그의 입술 위에 키스한 뒤 다시 베개에 머리를 내려놓았다.
“우리가 항상 이랬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다시금 잠 기운에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항상, 언제까지나.”
앤소니의 몸이 경직되었다.
항상.
그 말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녀는 모르리라. 5년? 6년? 길어야 7년에서 8년.
언제까지나.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었다. 그로서는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말이다.
갑자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불이 벽돌 담장처럼 무겁게 그를 짓눌렀고, 공기가 참을 수 없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가야 한다. 가야 한다. 여기서…….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숨을 헐떡이며 좀 전에 무참하게 바닥 위로 집어던졌던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끌어 모아 팔다리를 끼워넣기 시작했다.
“앤소니?”
그가 고개를 홱 들었다. 케이트가 침대에서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어슴푸레한 빛 아래서도 그는 그녀의 눈동자에 어린 혼란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상처도
“괜찮은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왜 셔츠 소매에 다리를 집어넣으려고 하는 거지요?”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곤 여자 앞에서 할 수 있으리라 감히 상상도 못했던 욕설을 짤막하게 내뱉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신랄한 욕설을 내뱉으며, 망할 리넨 셔츠를 뭉쳐 바닥으로 던진 뒤 거칠게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케이트가 근심스런 어조로 물었다.
“나가야겠소.”
그가 내뱉었다.
“지금이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앤소니?”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 그에게 손을 뻗었지만 손이 그의 뺨에 닿기 직전 그는 몸을 움찔거리며 침대 기둥에 등이 닿을 때까지 비틀비틀 뒤로 물러섰다. 케이트의 얼굴에 상처 입은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의 거부에 고통을 느끼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부드럽게 그를 만진다면 자신은 무너지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제기랄.”
그가 짧게 말했다.
“내 셔츠들은 도대체 다 어디 있는 거야?”
“당신 드레싱 룸에요.”
그녀가 불안하게 말했다.
그는 성큼성큼 새 셔츠를 찾아나섰다. 더 이상 그녀의 목소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건 그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항상, 언제까지나’ 뿐이었다.
그게 그를 죽도록 괴롭게 만들었다.
그는 드레싱 룸에서 코트와 신발까지 제대로 걸치고 나타났다. 케이트는 일어서서 방안을 서성거리며 초조한 듯 가운에 달린 푸른색 끈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난 가야겠소.”
그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케이트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가 원했던 것도 바로 그것이었으나, 앤소니는 웬일인지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그러기 전까지는 꼼짝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언제 돌아오실 거예요?”
그녀가 마침내 물었다.
“내일.”
“내일……이요.”
앤소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을 수가 없어.”
그가 불쑥 내뱉었다.
“가야겠소.”
그녀는 발작적으로 침을 삼켰다.
“네.”
그녀의 목소리는 가슴이 아플 정도로 작았다.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디로 간다는 말도 없이 앤소니는 방을 나섰다.
케이트는 천천히 침대로 걸어가 멍하니 바라보았다. 왠지 혼자 침대에 드는 것이 잘못된 일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울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마침내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걷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지신조차 놀랄 정도로, 차라리 폭풍우라도 치기를 기도했다.
앤소니는 보이지 않았다. 내일이면 그의 몸은 돌아올 테지만 그의 영혼까지 돌아와 줄지는 의문이었다. 그리고 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에겐 폭풍이 필요했다. 자신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줄 폭풍이. 혼자라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혼자이고 싶진 않았지만 그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앤소니는 갑자기 거리를 두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의 마음 속에 살고 있는 악마들이 있다. 그녀에겐 절대 보여주지 않을 그런 악마들이.
하지만 그녀가 혼자가 될 운명이라면, 남편이 곁에 있어도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하나님, 힘을 주소서. 혼자라도 강하게 버려야 할 테니까.
그녀는 차갑고 매끄러운 유리창에 이마를 기대며 생각했다. 나약함은 그 누구에게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니까.
앤소니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며 온 사방에 부딪혔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그는 희미하게 공기 중에 피어오른 안개에 젖어 미끈거리는 현관 계단을 무사히 내려와 있었다. 그는 길을 건넜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디든 이곳에서 멀어져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인도 반대편에 닿은 순간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는 고개를 들어 침실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것이 그의 뒤늦은 후회였다. 그냥 곧장 클럽으로 갔어야 했는데. 하지만 그는 그녀를 보았고 마음속의 둔한 통증은 날카롭게, 좀더 무자비하게 가슴을 후벼파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심장을 난도질해 놓은 기분이었다. 그 칼을 쥔 손은 다름아닌 그 자신의 손이었을 것이다.
그는 한참동안 케이트를 바라보았다-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긴 시간 동안 그녀가 자신을 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그를 알아보았다는 어떤 기미도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거리가 너무 멀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아마 그녀가 눈을 감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폭풍우가 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는 음울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운이 없군. 이미 안개가 물방울로 응축되어 피부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심한 비가 내릴 것이다.
떠나야 한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줄이 그를 그 자리에 붙들어 매는 것 같았다. 케이트가 마침내 창가에서 사라진 후에도 그는 그 자리에 남아 집을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집으로 달려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그녀를 품에 안아들고 동이 틀 때까지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옳을까 이젠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야, 거리에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 뒤에서야 앤소니는 자리를 뜰 수 있었다.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한 빗방울도, 추위도 느끼지 못하고 걸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채, 그는 그냥 걸었다.
21
브리저튼 부처가 억지 결혼을 한 것이라고 사람들이 쑥덕인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본 필자는 그들의 결혼이 사랑의 결합이었다는 것 이외의 말은 믿지 않겠다.
레이디 휘슬다운의 사교계 소식. 1814년 6월 15일
작은 식당의 사이드 테이블에 차려진 아침 식사를 보며, 사람이 어떻게 말도 못하게 배가 고픈 동시에 입맛이 전혀 없을 수도 있는 것인지, 이상한 일이라고 케이트는 생각했다. 허기진 배는 당장 음식을 달라고 꼬르륵거리는데, 그런데도 모든 음식이-달걀부터 스콘, 훈제 청어, 구운 돼지고기까지-정말 맛없어 보였다.
풀죽은 듯 한숨을 쉬며 그녀는 세모로 자른 토스트와 찻잔을 들고 의자 속으로 가라앉았다.
앤소니는 어젯밤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케이트는 토스트를 조금 뜯어 억지로 삼켰다. 그가 최소한 아침식사 시간에는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될 수 있는 한 뒤로 식사를 미루었지만-그녀는 대개 9시에 식사를 하는데, 지금은 이미 11시였다- 남편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레이디 브리저튼?”
케이트는 고개를 들고 눈을 깜박였다. 하인이 작은 크림색 봉투를 들고 앞에 서 있었다.
“조금 전 마님 앞으로 온 것입니다.”
그가 말했다.
중얼거리듯 고맙다고 말하고 케이트는 봉투 쪽으로 손을 뻗었다. 편지는 연한 분홍색 밀랍으로 봉해져 있었다. 가까이 보니 E, O. B.라는 이니셜이 보였다. 앤소니의 가족 중 한 명인가? E라면 물론 엘로이즈일 테지. 브리저튼 가의 형제들은 모두 알파벳 순서로 이름지어졌으니까.
케이트는 조심스럽게 봉인을 뜯고 편지를 꺼냈다-단정하게 반으로 접힌 종이 한 장.
케이트
앤소니 오빠는 이곳에 계십니다. 모습이 말이 아니에요. 물론 제가 간섭할 일은 아니지만 언니가 알고 짚어하지 않을까 해서요.
엘로이즈
쪽지를 몇 초쯤 더 들여다본 뒤 케이트는 의자를 뒤로 확 밀어내고 일어섰다. 브리저튼 본가에 가봐야 할 시간이었다.
케이트가 본가의 문을 두드리자 놀랍게도 집사가 아니라 엘로이즈가 문을 활짝 열더니 말했다.
“빨리도 오셨네요!
브리저튼 가의 남매 한두 명쯤 더 덤벼들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케이트는 홀 안을 둘러보았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엘로이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문은 두드리실 필요 없잖아요. 이 집은 앤소니 오빠의 집인걸요. 그러니 언니도 이 집의 주인이지요.”
케이트는 힘없이 미소지었다. 오늘 아침에는 그다지 그의 부인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던 것이다.
“저를 어쩔 수 없는 참견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케이트와 팔짱을 끼고 그녀를 끌고 가면서 엘로이즈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앤소니 오빠의 모습이 말이 아닌 건 사실이고, 왠지 오빠가 여기 계신 것을 올케 언니는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왜 그렇게 생각했지요?”
케이트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
엘로이즈가 말했다.
“우리한테도 왔다는 말을 하지 않았거든요.”
케이트는 의아한 시선으로 시누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무슨 말이지요?
엘로이즈는 면목 없다는 듯 연한 분홍빛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러니까 어, 오빠가 여기 있는 것을 제가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제가 오빠를 몰래 감시했기 때문이에요. 어머님도 오빠가 여기 있는 것은 모르시는 것 같아요.”
케이트는 눈꺼풀이 여러 번 빠르게 깜박이는 것을 느꼈다.
“우리를 감시했어요?”
“아니요. 물론 그러지는 않았지요. 새벽에 깨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서 나갔다가 오빠 사무실 문 아래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았지요.”
“그런데 오빠 모습이 말이 아닌 것은 어떻게 알았지요?”
엘로이즈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뭘 먹든지 볼일을 보러 언젠가는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시간쯤 계단에서 기다렸어요…….”
“한 시간쯤?”
케이트가 그녀의 말을 따라했다.
“한 세 시간 정도요.”
엘로이즈가 인정했다.
“흥미를 끄는 일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에요. 게다가 읽을 책도 있었고요.”
새삼스레 감탄을 하며 케이트가 고개를 흔들었다.
“어젯밤 몇 시에 이곳에 오셨나요?”
“네 시쯤이오.”
“그렇게 늦게까지 자지 않고 뭐 했어요?”
엘로이즈가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잠이 안 와서요. 자주 그래요. 그래서 읽을 책을 가지러 서재에 가던 길이었지요. 결국 한 일곱 시쯤에-글쎄, 일곱 시는 좀 안 되었던 것 같군요. 그러니 제가 기다린 것이 세 시간은 아니었네요…….”
케이트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빠가 나왔어요. 식당이 있는 방향으로 가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 다른 이유 때문이었겠지요. 1, 2분쯤 지나서 다시 모습을 보이더니 사무실로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엘로이즈가 화려하게 마지막을 장식했다.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고요.”
케이트는 10초가 넘도록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혹시 국방부에서 일을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엘로이즈가 씩 웃었다. 그 미소가 앤소니의 것과 너무나 비슷하여 케이트는 울음을 터뜨릴 뻔했다.
“스파이로요?”
그녀가 물었다.
케이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주 잘할 것 같죠, 안 그래요?”
“최고였을 것 같아요.”
엘로이즈가 충동적으로 케이트를 끌어안았다.
“언니가 오빠와 결혼해서 정말 기뻐요. 자, 이제 가서 무엇이 문제인가 알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