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eating Who Loved Me RAW novel - chapter 74
“도대체 한 달 동안 가만히 누워서 뭘 하라는 거예요?”
“그 동안 등한시했던 독서를 하면 되잖소.”
그가 말했다. 그녀는 짜증스런 콧김을 내뿜었다. 이를 악물고 입으로 숨을 내쉬기란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아니, 내가 언제 독서를 등한시했다고 그러는 거예요?”
그 말에 앤소니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감췄다.
“그러면 수예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그가 제안했다. 그녀는 가만히 그를 노려보았다. 아니, 지금 수예를 할걸 생각하면 내 기분이 나아질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는 침대 모서리에 조심스레 앉은 뒤 그녀의 손등을 쓰다듬었다.
“내가 곁에 있어 주겠소.”
그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벌써 클럽에서 보내던 시간을 줄이기로 결정했다오.”
케이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했고, 짜증이 났고 아프기도 한 걸 괜스레 남편에게 분풀이를 한 셈이다. 옳지 못한 일이다. 그녀는 손바닥을 그의 손바닥에 맞댄 뒤 깍지를 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건 알고 있지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앤소니는 그녀의 손을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따스한 시선이 그 어떤 말보다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다. 케이트가 말했다.
“내게 당신을 사랑하지 말라고 했지요.”
“난 바보였거든.”
그녀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가 입술을 삐죽거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반박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도 깨달았다는 것을 알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말했다.
“당신, 아까 공원에서 이상한 말을 하더군요.”
앤소니의 손은 여전히 그녀에게 잡힌 상태였지만 몸은 뒤로 살짝 물러났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소.”
“아시는 거 다 알아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앤소니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일어섰다. 두 사람의 손가락이 스치듯 하다가 떨어졌다. 아주 오랫동안 그는 다론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키지 않도록 주의해 왔다. 그러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았다. 대개는 그의 말을 믿고 그를 걱정해 주거나, 그의 말을 믿지 못하고 그가 미쳤다고 생각할 게 뻔하니까
그는 그 어떤 반응도 원치 않았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에 질린 나머지 무심결에 아내에게 그 말을 하고 만 것이다. 자신이 정확하게 뭐라고 말했는지조차 기억
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슨 말을 했건, 그녀의 호기심을 살 정도는 되었던 모양이다. 케이트는 쉽게 호기심을 접을 사람이 아니다. 모르는 척 끝까지 시치미를 뗄 수도 있겠지만 결국 그에게서 진실을 캐내고야 말 것이다.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고집 센 여자가 아닐 수 없었다.
앤소니는 창가로 걸어가 창틀에 기대고, 창문 위로 굳게 드리워진 두툼한 자주색 커튼을 뚫고 거리를 볼 수 있기라도 한 양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
“니에 대해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소.”
그가 속삭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자신의 말을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그녀가 침대에서 자세를 바꾸는 소리가 났기 때문일까. 혹은 갑자기 공기 중에 팽팽한 긴장감이 떠올라서일까. 어쨌든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는 돌아섰다. 차라리 커튼에 대고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더 쉬웠을 테지만 그녀에겐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있다. 케이트는 다리를 베개로 고인 채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근심과 호기심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가 말했다.
“어떻게 하면 이 말이 어리석게 들리지 않을지 나도 잘 모르겠군.”
“그냥 말해 버리는 게 제일 좋을 때가 있지요.”
그녀가 중얼거리고는 침대 옆 빈자리를 두드렸다.
“내 옆에 앉겠어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 가까이 있으면 말하는 것만 힘들어진다.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소.”
“아버님과 무척 가끼우셨지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생 그 어떤 사람보다도 가까웠소, 당신을 만나기 전 얘기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었나요?”
“아버지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돌아가셨지.”
그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벌에 쏘여 돌아가셨소. 전에도 얘기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벌 한 마리에 사람이 죽을 줄 누가 알았겠소?”
앤소니가 건조하게 웃었다.
“그토록 비극적인 일만 아니었던들 우습기까지 했을 거요.”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연민이 가득한 시선으로 앤소니를 바라보았다. 그는 가슴이 에이는 듯했다.
“난 그 날 밤 아버지 옆에서 밤을 샜지.”
그는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살짝 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물론 돌아가신 후였지만 난 좀더 시간이 필요했어. 난 그저 옆에 앉아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었지.
다시 한번 그의 입술에서 분노에 찬 짧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정말 어리석었지. 난 금방이라도 아버님이 다시 눈을 뜨실 거라 생각했소.”
“그게 어리석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케이트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 역시도 죽음을 목격했어요. 평소와는 조금도 다름없이 평온하게만 보이는데 살아 계시지 않는다는 결 믿기는 어렵지요.”
“그게 언제 일어난 일인지 모르겠소.”
앤소니가 말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 난 확신하게 되었지.”
그가 거칠게 말했다.
“나 역시 죽으리란 걸 말이오.”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
기를 기다렸다. 그녀가 눈물을 흘리기를, 아니 뭔가를 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가만히 앉아 그를 바라만 보았다. 마침내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아버님의 반도 안 되는 인간이었소.”
“아버님은 그 말에 동의하시지 않을지도 몰라요.”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어차피 살아 계시지 않으니, 그 대답은 영원히 모르는 것 아니오?”
앤소니가 쏘아붙였다.
여전히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다시 그는 자신이 형편없는 인간이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낮게 욕설을 내뱉으며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가져갔다. 머리 속에 맥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현기증이 일었다. 마지막으로 식사를 한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건 내가 판단해야 할 문제요. 당신은 내 아버님을 모르니까.”
그는 힘겨운 한숨을 내쉬며 벽에 몸을 기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냥 내 말을 듣기만 해요. 말하지 말고, 끼여들지도 말고, 아무런 판단도 내리지 말아요. 지금 이대로도 말을 하기가 어렵단 말이오. 날 위해 그래줄 수 있겠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앤소니는 떨리는 숨을 들이마셨다.
“아버님은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 위대한 분이었소. 난 매일 내가 아버님 발끝에도 못 미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아버님은 내가 동경하는 모든 것이었소. 비록 아버님의 위대함에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그와 엇비슷하기만 해도 난 만족할 거라 생각했지. 내가 원한 건 그게 전부였소. 아버님에게 가까워지는 것.”
그는 케이트를 바라보았다. 왠지는 알 수 없었다. 확인을 하기 위해서 였을까. 아니면 그녀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서였을까 혹은 그저 그녀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몸 속 어딘가에서 용기를 짜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내가 아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내가 절대 아버님을 능가하지 못하리란 거였소. 심지어 수명에 있어서조차.”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그녀가 속삭였다.
그는 무력하게 어깻짓을 했다.
“말도 안 된다는 것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소. 이성적인 설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그 날 밤 아버님의 시신 옆에 앉아 있을 때, 난 내가 아버님보다 오래 살 수 없다는 결 깨달았소.”
“알겠어요.”
그녀가 나직하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
그 순간 댐이 무너지듯 말이 쏟아져 나왔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튀어 나왔다-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그토록 거부했는지, 그녀가 자신의 악마와 싸워 이겼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왜 그토록 질투심을 느꼈었는지.
케이트가 손을 들어올려 엄지손가락을 깨무는 모습이 보였다. 전에도 그녀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마음이 복잡하거나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연세가 어떻게 되셨지요?”
“서른여덟.”
“당신은 지금 몇 살이지요?”
앤소니는 그런 건 왜 묻느냐는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나이를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냥 대답했다.
“스물아홉이오.”
“따라서 당신 계산으론 목숨이 9년쯤 남았겠군요.”
“길어야 9년이지.”
“그리고 당신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고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트는 입술을 꼭 다물고 코로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영원처럼 느껴지는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투명하고 단호한 시선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음, 당신이 틀렸어요.”
기묘하게도 단호한 그녀의 목소리는 그에게 안도감을 가져다 주었다.
심지어 입술 끝이 희미하게 올라가며 미소를 그리기까지 했다.
“내 말이 얼마나 어이없게 들리는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오?”
“어이없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당신이 아버님을 얼마나 숭배했는지 고려해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젖히며 꽤나 거만해 보이는 태도로 어깨를 치켜올렸다.
“그래도 틀렸어요.”
앤소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케이트가 말했다
“아버님의 죽음은 사고였어요. 사고였다고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끔찍하고 두려운 운명의 비틀림이었지요.”
앤소니는 운명론자처럼 어깻짓을 했다.
“나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죽을 거요.”
“아, 정말이지…….”
케이트는 욕설을 내뱉기 직전에 입술을 깨물었다.
“앤소니, 나 역시도 내일 죽을 수 있다고요. 오늘 마차가 내 몸을 덮쳤을 때 죽었을 수도 있다고요.”
앤소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일을 떠올리게 만들지 말아요.”
“내 어머님은 지금의 내 나이 때 돌아가셨어요.”
케이트는 거침없이 그에게 말했다.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어요? 당신 이론에 따르면, 나도 다음 해 생일을 맞기 전에 죽겠네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요?”
그녀가 대신 말을 맺었다.
거의 일 분 동안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앤소니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이걸 극복할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겠소.”
“극복하실 필요는 없어요.”
케이트가 말했다. 그녀는 떨리기 시작한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침대 옆 빈자리에 손을 없었다.
“내가 당신 손을 잡을 수 있게 이리로 와주시겠어요?”
앤소니는 즉각 그녀에게 다가갔다. 케이트의 손에서 온기가 흘러나와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들어 영혼까지 적셨다. 그 순간 그는 이것이 사랑보다 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여자는 그를 좀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전에도 그는 착하고 강인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옆에 있으면 그는 더욱 나은 인간이 된다.
두 사람이 함께라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흔이란 나이도 불가능한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만들었다.
“극복할 필요는 없어요.”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녀의 말이 두 사람 사이를 부드러운 미풍처럼 떠돌았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난 당신이 서른아홉이 되기 전에는 그걸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상상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케이트는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앤소니는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당신 인생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나도 오늘 아침에,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안순간 그걸 깨달았소.”
그가 속삭였다.
“하지만 지금은……이유는 나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걸 알 수 있어.”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당신은 하루하루를 당신 인생의 마지막 날인 양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내 아버님이 앓아누우셨을 때, 아버님은 많은 것을 후회하셨어요. 하지 못했던 너무도 많은 일이 후회스럽다고 말씀하셨지요. 언제나 당신께 시간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셨던 거예요. 전 항상 그 말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왔어요. 도대체 왜 이 나이가 되어서 플루트를 배우겠다고 마음먹었다고 생각하세요? 모두들 난 나이가 너무 많다고 악기는 어린 시절부터 연주하지 않으면 능숙해질 수 없다고 말했지요. 하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고요. 굳이 능숙해지지 않아도 좋은 거예요. 나 혼자 즐거우면 그만인 거예요. 내가 노력했다는 것만 알면 되는 거라고요.”
앤소니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정말 플루트에 끔찍하게도 재능이 없었다. 심지어 뉴튼조차 참아 주지 못할 지경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그녀가 부드럽게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