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glomerate family became a villain RAW novel - Chapter (289)
재벌가 빌런이 되었다-289화(289/290)
289화 종극 (7)
닛케이 33,000포인트.
이는 정현우가 존 피어에게 공매 철수를 약속한 지수였다.
“약속은 약속이니, 철수할 수밖에 없겠군요.”
그가 알고 있는 사실은 일본이 장기 침체로 들어간다는 것뿐. 침체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떠한 이벤트들이 등장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절반을 판다고 해도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니까.’
존 피어의 말처럼 빅토리아 펀드는 이미 공매로 수익을 낸 상태였다.
제레미 스핀이 살짝 목에 힘을 주었다.
“찰리, 지금은 철수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철수할 때가 아니라고요?”
“그렇습니다.”
제레미 스핀은 냉철하게 자료를 모으고 분석했다. 그 결과, 그는 이번 반등이 어떠한 상황에서 나왔는지 알게 되었다.
“이유가 뭡니까?”
“이번 반등이 가짜 반등이기 때문입니다.”
정현우가 멈칫하며 말끝을 높였다.
“음, 가짜 반등이라면 흔히 말하는 기술적 반등이라는 이야기입니까?”
낙폭이 너무 컸기에 그것을 만회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작동한 게 아닌가 하는 물음이었다.
“이번 반등은 기술적 반등이 아닌 인위적 반등입니다.”
프로그램 매매가 등장했지만, 주식은 기본적으로 기계가 아닌 사람이 사고파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인위적 반등이란 다소 모순되는 말이었다.
“제레미,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군요.”
제레미 스핀이 굳은 음성으로 말했다.
“지난봄 폭락 이후, 일본의 투자 회사들과 생명 보험사들은 시중의 잉여 자금을 끌어모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자금을 증시에 쏟아부은 것입니다.”
버블의 붕괴를 막기 위해 일본의 금융 관계사들이 힘을 모았다는 이야기였다.
“일본 금융권에서 떨어지는 주식을 억지로 반등시키고자 했다는 말입니까?”
“결론만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찰리, 지금의 반등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습니다. 반등을 누를 수 있는 사건 하나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겁니다.”
반등을 누를 수 있는 사건.
정현우는 미간을 좁혔다.
“상위 기업의 부도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면 닛케이가 다시 침몰할 거란 이야기군요.”
“상위 기업 부도만이 아니라 정부의 강력한 정책도 그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제레미 스핀이 모래 위에 쌓았다고 생각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주식 시장에 악재를 가져올 만한 사건은 너무나 많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세계는 혼돈에 빠져 있었다. 동유럽, 남미, 중동 어느 곳에서든 사건이 터질 수 있었다. 그는 트리거가 될 만한 사건이 터질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판단하는 중이었다.
정현우가 살짝 말끝을 높였다.
“제레미, 만약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는 최악의 상황도 가정해 보고자 했다.
“그렇게 된다면, 주가가 조금씩 빠지겠죠.”
제레미 스핀은 어느 쪽이든 일본 증시는 빠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침체와 불황은 몇 사람의 힘만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 내각이 침체를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그들의 힘만으론 부족했다.
‘세계 경제가 대호황으로 빛나지 않는다면 일본의 경기 침체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정현우는 그의 이야기를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쪽이든 침체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군요.”
제레미 스핀이 살짝 말끝을 높였다.
“찰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정현우는 일본 버블의 붕괴와 침체를 그 누구보다 강하게 주장한 바 있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정현우와 제레미 스핀.
두 사람의 뜻이 일치했다고 모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설득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제레미, 존에게도 33,000포인트를 약속했습니다.”
제레미 스핀이 마른 목소리로 정현우의 말을 받았다.
“찰리, 존은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정현우의 설득과 주장은 직관에 의한 것이었지만, 제레미 스핀의 설득과 주장은 차가운 증거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정현우 역시 그라면 존 피어의 뜻을 충분히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존은 제레미만 믿겠습니다.”
제레미 스핀은 전화를 끊기 전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찰리, 제가 존을 설득하는 동안 투자가들을 맡아 주십시오.”
투자가들을 설득해 달라.
빅토리아 펀드에 투자한 투자가들을 위해 미디어나 경제 포럼에 나와서 한마디 좀 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제레미, 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스케줄을 잡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세라가 화를 내겠는걸.’
이렇게 된 이상, 여름휴가를 예정보다 일찍 끝낼 수밖에 없었다.
“찰리, 돌아가자.”
그때 들려온 세라의 한마디에 정현우가 눈썹을 세웠다.
“지금요?”
“일이 터졌잖아.”
세라도 옆에서 두 사람의 통화를 들었기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되겠어요?”
“물론이지.”
세라가 미소와 함께 그에게로 손을 뻗었다.
“세라?”
“찰리, 파파라치들에게 작별 인사부터 하자.”
그녀는 그렇게 말한 뒤 마이애미 비치에서 그와 입을 맞췄다.
* * *
뉴욕 11번가.
화려한 샹들리에와 넓은 테이블.
그보다 더 넓고 화려한 무대.
그러나 정작 그 무대는 텅 비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의자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스 힐튼이 나오는 겁니까?”
플라자 협정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모은 플라자 호텔 컨벤션홀에 모인 이들은 빅토리아 펀드에 투자한 기업 임원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들을 모은 곳은 빅토리아 펀드가 아니라 빅토리아 코퍼레이션이었기에 사람들은 제레미 스핀이나 존 피어가 아닌 세라 힐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겠습니까?”
“찰리 정이 나오면 좋을 텐데 아쉽습니다.”
“찰리 정을 만나려면 CES에 가야 할 겁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정현우를 높이 평가하고 있었지만, 그가 등장하진 않을 것이라 이야기했다.
“미스 힐튼이라. 오늘도 그녀의 드레스가 기대되는군요.”
쨍하는 음향.
그러나 이 음향 효과는 불필요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이미 무대 위에 꽂혀 있었다.
“등장하는 모양입니다.”
“어떤 드레스코드일까요?”
“백합일까요? 아니면 장미일까요?”
짧은 침묵.
그리고 등장한 사람은 금발의 미녀가 아닌 말끔한 외모의 청년이었다.
“아! 찰리 정이군요.”
“흠, 미스 힐튼이 아니라 찰리 정이 직접 등장했다면…….”
“오늘 발표에 뭔가가 있는 겁니다.”
빅토리아 코퍼레이션의 CEO이자 세계 1위 부호인 정현우가 무대 위에 서는 일은 흔치 않았다.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정현우의 인사는 평범했다. 그러나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투자가들에게 빅토리아 펀드의 방향성을 설명하며 빅토리아 펀드가 연내 기업 공개를 마칠 것이라 이야기했다.
빅토리아 펀드의 기업 공개는 월스트리트에 한바탕 파란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투자가들은 그의 기업 공개 선언에 말끝을 높였다.
“이 시점에서 기업 공개인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야.”
“지난해는 빅토리아 코퍼레이션 투자였던가?”
“찰리 정은 올해 기업 공개로 빅토리아 펀드의 성공에 끝맺음을 지으려는 것 같군.”
투자가들은 정현우가 빅토리아 코퍼레이션 투자와 일본 증시 공매도 성공을 바탕으로 기업 공개에 나섰다고 분석했다.
“지금부터는 질문을 받겠습니다.”
정현우가 사람들에게 직접 질문을 받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흠,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는 것이 아니라 투자가들에게 질문을 받는다는 말인가?”
“찰리 정이 이런 사람이었나?”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 아닐까?”
“그래도 그렇지.”
투자가들이 고개를 갸웃한 것은 돌발 질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몇 번 문답이 오가기도 전에 대답하기 힘든 질문이 나왔다.
“이번 여름 닛케이 증시가 반등에 성공했습니다. 이대로라면 빅토리아 펀드는 공매 수익을 다시 잃게 될 것입니다. 찰리 정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닛케이 지수는 33,000포인트까지 반등에 성공한 상태였다.
정현우가 몸을 숙이며 질문에 답했다.
“닛케이 지수가 반등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펀드는 포지션을 유지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일본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질문했던 투자가가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
“아직 궁금하신 것이 있는 모양이군요. 질문하시죠.”
정현우에게 발언권을 얻은 투자가가 그에게 물었다.
“미국 쇼핑몰에 가면 일본 상품이 가장 좋은 장소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매달 발표되는 자동차 판매량을 봐도 일본 자동차 기업은 늘 상위권을 휩쓸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발언에 몇몇 투자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정은 있을 수 있어도 일본이 침체에 들어가는 것은 힘들다는 말이군.”
“일본에서의 철수는 수익을 많이 냈기 때문이지, 일본이 어려워서가 아닐 겁니다.”
사람들은 아직 일본의 침체를 예상하지 못했다.
몇몇 투자가들은 거품이 빠진 뒤 다시 일본에 투자하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정현우는 다시 목에 힘을 주었다.
“일본의 지금 상황은 매우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기업이 과대평가되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매출이나 순수익이 지금의 주가와 일치하려면 그들은 지금의 3배 이상의 자동차를 팔아야 합니다. 그것이 가능할까요? 저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일본에 유리하게 생각해도 150%가 한계입니다.”
그는 일본의 미래 가치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탁!
정현우가 손가락을 마주치자 그의 배경이 되었던 하얀 바탕에 선명한 그래프가 나타났다.
그는 시선을 그래프로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일본의 하락에 베팅한 또 다른 이유는 일본이 늙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인구 구성을 보면 매년 평균 연령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공장에서 일할 근로자가 충분하지만 앞으로 10년 뒤에는 충분한 인력을 수급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구 통계를 바탕으로 한 분석은 월스트리트 투자가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흐흠, 확실히 찰리 정이군. 흥미로운 의견이야.”
“일본의 고령화가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습니다.”
“일본 정부도 이 사실을 알고 있겠죠?”
“알고 있는 이도 있겠지만, 당장 내각에서 신경을 쓰진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근처에 노동자를 수입할 나라가 마땅하지 않으니, 그대로 늙어 버리겠군요.”
정현우는 잇달아 다른 그래프를 보여 주며 일본의 하락 이유를 설명했다.
“일본의 높은 금리도 일본 기업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최근 3년 동안 홍콩, 싱가포르, 대만, 대한민국이 일본이 놓치는 부분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들의 성장세가 계속되면 일본은 그들에게 더 많은 파이를 빼앗길 것입니다.”
일본을 대체할 수 있는 아시아 신흥 공업국들의 부상.
그는 그 내용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해서 투자가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는 ‘역시 빅토리아 코퍼레이션’이라는 감탄이 나오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찰리 정은 찰리 정이군요.”
“이래서 빅토리아 펀드를 버릴 수가 없죠.”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JP모건을 비롯한 빅토리아 펀드에 투자한 임원들은 정현우의 오늘 발표에 만족했다. 그의 발표가 모두 끝났을 때,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훌륭합니다.”
“브라보, 훌륭한 발표였습니다.”
“우리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빅토리아 펀드와 언제까지나 함께할 것입니다.”
“빅토리아 펀드의 기업 공개. 기대하겠습니다.”
정현우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의 이마에 땀이 흘렀다는 것은 그도 어느 정도는 긴장한 채 이번 발표를 했다는 뜻이었다.
그가 무대 뒤로 퇴장하자 하얀 미니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미녀가 다가와 손수건을 건넸다.
그녀는 당연하게도, 원래 오늘 무대의 주인공을 맡고자 했던 세라였다.
“찰리, 수고했어.”
정현우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쉽지 않네요.”
“잘하던데?”
“공매도 질문이 나왔을 때는 살짝 긴장했어요.”
“33,000포인트 때문에?”
정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죠.”
그는 일본 증시가 단기적으론 35,000포인트까지 반등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10년 뒤는 알지만 당장 1년 뒤는 장담할 수 없으니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또각. 또각.
날이 선 구둣발 소리와 함께 또 한 명의 미녀가 등장했다. 그녀는 정현우의 비서 루나였다.
“대표님, 급보입니다.”
정현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루나, 무슨 일이죠?”
루나가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전쟁입니다.”
전쟁.
세계 3차대전이라도 난 것일까?
정현우가 미간을 좁혔을 때였다.
루나가 처음 대답에 살을 덧붙였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고 합니다.”
정현우는 눈을 크게 떴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다면, 중동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이군요.”
세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오일 쇼크가 올 거야.”
오일 쇼크는 주가에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
“빅토리아 코퍼레이션의 주가가 떨어지겠군.”
“악재네.”
정현우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호재죠.”
세라는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크게 떴다.
“호재라고?”
“닛케이가 이번 사태를 버텨 내지 못할 테니까요.”
일본은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였다. 일본과 같은 원유 수입국의 경우 오일 쇼크가 일어나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제레미가 말하던 쇼크가 중동에서 터질 줄이야.’
그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가 이겼다.’
닛케이 지수를 무리하게 끌어올리고자 했던 일본의 금융 회사들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또 찰리가 이겼네.”
정현우는 그녀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침체를 예상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에요. 많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테니까요.”
그의 말을 들은 세라 발꿈치를 들어 올려 그에게 키스했다.
“세라?”
“돈만 아는 수전노가 아니라서 키스해 준 거야.”
세라는 말을 마친 뒤에 활짝 미소를 지었다.
정현우는 그녀의 미소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돈은 결국 덤이니까.’
그가 세라를 안으며 키스하자 루나는 살며시 자리를 비켜 주었다.
* * *
10월 2일.
닛케이 지수 2만 포인트가 무너졌다.
50%에 가까운 폭락은 전쟁 직후 20% 하락 정도를 예상하던 일본과 미국 투자가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떨어지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하더니, 닛케이가 그렇군.”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쯧쯧, 일본도 끝이란 말인가.”
일본에 대대적으로 투자했던 기업 중에는 모건스탠리가 있었다.
그들은 지난해 연말에도 파티를 벌일 만큼 일본으로의 투자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닛케이 증시는 대폭락했으며, 튼튼해 보였던 부동산마저 휘청이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모건스탠리의 손실이 100억 달러를 넘길 것 같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미스터 몬타나, 책임을 지시죠.”
모건스탠리의 빅헤드 카일 몬타나 회장.
그는 일본 투자의 실패를 책임지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알겠네. 내가 물러나지.”
10개월 전만 해도 샴페인잔을 높이 들던 그였다. 하지만 1년을 버티지 못하고 그는 모건스탠리 CEO에서 내려와야 했다.
타격을 입은 것은 그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일본 투자를 이끌었던 하워드 로빈슨도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모건스탠리 사람들은 떠나는 하워드 로빈슨을 보며 말했다.
“하워드 말이야. 이번에는 정말로 돌아오지 못할 거야.”
“그러게.”
“그와 함께 미스터 몬타나도 떠나게 되었군.”
JP모건의 에드먼도 모건 회장도 이번 폭락으로 CEO 자리를 앙리 아르노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의 퇴임에 고개를 갸웃했다.
“JP모건도 일본에 투자했던 건가?”
“그들은 빅토리아 펀드의 공매를 밀어주지 않았나?”
“이상한 일이야.”
사람들은 JP모건이 왜 이번 일로 손해를 입었는지 의아해했다.
그러나 곧 진상이 알려졌다.
에드먼드 모건은 7월, 일본 증시가 반등에 성공하자 빅토리아 펀드에 투자했음에도 단기 수익을 노리고 50억 달러의 자금을 일본 증시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터지고 말았다.
“작은 걸 탐내다가 전부를 잃었다는 말이군요.”
세라가 말끝을 높였다.
“찰리, 에드먼드 같은 사람이 왜 그런 짓을 저지른 걸까?”
“쫓겼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가 쫓겼다고?”
“회사의 오너가 바뀌었잖아요.”
JP모건을 지배하고 있던 아서 모건의 죽음.
그의 죽음 덕분에 에드먼드 노먼이 실적에 쫓기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흠, 슬픈 이야기구나.”
“월스트리트에 새로운 물결이 일어나고 있어요.”
에드먼드 노먼과 카일 몬타나 회장의 퇴장은 월스트리트를 지배하던 장년 그룹의 퇴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1990년 연말까지 월스트리트 은행들은 앞다투어 젊은 CEO를 전면에 내세웠다.
하지만 그 어느 곳도 정현우처럼 젊은 CEO를 가질 수 없었다.
1990년 12월. 뉴욕.
월스트리트 빅토리아 펀드 본사.
정현우와 마주 앉은 이는 존 피어였다. 그는 어제 상해 지사 설립을 완료하고 뉴욕으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정말로 떠나는 겁니까?”
존 피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닛케이 공매가 끝나면 은퇴하겠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존의 생각이 바뀔 줄 알았습니다.”
“쉽게 바뀔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아쉽군요.”
정현우는 진심으로 그의 퇴장을 아쉬워했다.
“제 다음도 결정된 것 아닙니까?”
“제레미 말입니까?”
존 피어가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제레미는 잘 해낼 겁니다.”
올해 여름 중국에 있는 그를 설득한 이도 제레미 스핀이었다.
존 피어가 은퇴하면 제레미 스핀은 자연스럽게 빅토리아 펀드의 CEO가 될 예정이었다.
“제레미는 잘 해내겠지요. 하지만 존만큼은 못할지도 모릅니다.”
존 피어가 정현우를 바라보며 말끝을 높였다.
“찰리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질문입니까?”
“이번 성공으로, 찰리는 아무리 써도 줄어들지 않는 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정현우는 일본 닛케이 공매와 빅토리아 펀드의 상장으로 개인 재산만 2,200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대한민국 1년 예산의 15배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 돈을 어떻게 쓸지 묻고 싶은 겁니까?”
존 피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찰리라면 보통 사람과 다른 생각을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혹시 투자에 쓰실 겁니까?”
그는 정현우가 투자의 귀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현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투자라니요. 미래를 위해 쓸 겁니다.”
“미래라고요?”
정현우가 마른 음성으로 대답했다.
“앞으로 세상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기술이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천문학적인 자금으로 미래를 이끌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이야기였다.
그의 시선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못 당하겠군.’
존 피어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앞으로 10년 동안은 그 누구도 찰리를 따를 수 없을 겁니다.”
정현우가 살짝 말끝을 높였다.
“왜 10년입니까?”
존 피어가 대답했다.
“10년 뒤에는 찰리도 청년이 아닐 테니까요.”
젊은 정현우는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나이 든 정현우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그도 예측할 수 없었다.
‘어쩌면 경험과 패기를 모두 갖춘 존재가 될지도 모르지.’
그는 완벽한 정현우를 생각하자 한기가 살짝 밀려들었다.
‘설마 세계를 지배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존 피어는 마지막으로 미국 대통령이 된 정현우를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 대통령이라.’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일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본편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