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stellations Are My Disciples RAW novel - Chapter 231
◈ 231화. 지하지인(地下之人) (3)
[내가 말하지 않았나? 너는 배우는 게 아니다. 떠올리는 거지.]김주혁은 눈앞에 보이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가 지금까지 과거를 보며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정신 차려라.]그의 앞에 펼쳐져 있는 풍경은 끝을 모를 정도로 넓게 퍼져 있는 나무와 산이었다.
정말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오롯이 산과 나무만이 보이는 그 풍경.
거기에서.
김주혁은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그 남자의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그 남자가 입고 있는 굉장히 고급스러운 옷뿐.
그에 반해 시야 한켠에 보이는 모습을 확인한 김주혁은 자신이 매우 질떨어지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김주혁이 주변을 확인하고 있는 와중에도 눈앞의 남자는 김주혁에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는 거의 대부분이 무(武)에 관련한 이야기.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듣던 중 김주혁은 문득 눈앞의 남자가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게 되었다.
기억을 보는 김주혁에게는 들리지 않았으나 남자는 분명 김주혁의 말을 듣고 반응하듯 입을 열고 있었으니까.
[너는 도대체가 고집을 꺾지를 않는군.]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 표정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김주혁은 분명 그의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의 행동은 김주혁이 굉장히 골치 아프다는 듯한 제스쳐를 계속해서 취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인정한다. 아무것도 없는 놈이 악으로 깡으로 올라온 것도 충분히 인정하고.] [거기에 더불어 자신이 가졌던 것을 모조리 가져다버리는 충격적인 짓을 하면서까지 이곳에 도달했다는 것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있는 것이, 과연 너는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나?]그 질문에 김주혁은 무엇인가를 말했다.
그것도 꽤 길게.
김주혁은 도대체 자신이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에 대한 궁금함이 떠올랐으나 곧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 그는 다시금 정신을 집중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나서야 얻을 수 있었던 것, 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거야. 충분히 그럴 만도 해.] [하지만 아니야, 하나까지 열까지, 전부 틀렸어.]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정면으로 김주혁의 앞에 섰다.
[뭐, 무(武)에는 틀이 없어? 천존은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서야 천존이 돼?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무의 끝에는 결국 틀이 없어야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형이 존재해서는 안돼.] [마찬가지로 천존께서도 결국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서야 무의 극의에 도달하셨다고 했지. 그건 네 말이 맞아.]조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매우 담백한 목소리로 그 사실을 인정하는 남자.
그에 김주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으나.
곧 이어지는 남자의 말에 김주혁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건 네가 아니잖아.]조금 전과는 다르게, 매우 진지해진 남자의 목소리는 마치 김주혁을 타박하듯 입을 열기 시작했다.
[너는 네가 무를 전부 깨우쳤다고 생각하나? 헛소리하지 마, 너는 아직 무(武)라는 글자를 구성하는 획도 몇 개 제대로 긋지 못한 상황이야.] [현재 네 머릿속에 들어있는 것이 뭔지 내가 때려 맞춰볼까? 지금 네 머릿속에 들어있는 건 오만과 교만이야. 그 두 개 빼고는 아무것도 없지. 그저 자신이 무의 끝에 도달한 줄 알고 있는 머저리 새끼처럼 말이야.] [너는 아직 무를 깨우치지 못했어. 그래, 단 하나도. 너는 무를 버려서도 안 되고 천존을 따라하는 것은 더더욱 안 돼.] [애초에 너는, 아직 그 무엇 하나 깨닫지 못하고 완성하지 못한 병신이니까.]남자의 노골적인 타박과 욕설이 이어지자 기억 속의 김주혁은 검을 뽑아 들었고.
그다음 순간.
남자가 검을 뽑아 들었다.
너무나도 평온한 자세로.
그리고 그다음, 김주혁이 남자에게 달려들었을 때, 남자는 정자세로 잡고 있던 검을 가볍게 위로 휘둘렀고.
“!”
그것으로 기억은 끝났다.
김주혁은 다시금 정신을 차렸다.
보이는 것은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지하지인이었고.
그 뒤에 있는 수많은 사슬과 푸르스름한 동굴의 모습이 여기가 기억 속의 세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각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하.”
김주혁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크킥?”
그에 조금 전까지 웃음을 짓고 있던 지하지인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으나 김주혁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고 아까 전의 말을 곱씹었다.
얼굴이 가려진 남자가 했던 말을.
그리고 그와 함께, 김주혁은 과거를 떠올렸다.
아주 옛날, 그가 한참 사투를 벌이던 그때.
자신을 노리던 적들을 인간, 몬스터 할 것 없이 베어버리고.
무기가 되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손에 쥐어 무기로 썼으며.
남의 것을 조금이라도 더 훔쳐 배워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무술을 쌓아 올려가던 그때를.
그때의 김주혁에게 자신의 것은 없었다.
그가 배운 것은 오로지 전부 남의 것.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300년 전의 세계는 남에게 무엇인가를 배운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세계였으니까.
특히 그것이 아무런 힘도 돈도 없는 고아라면 더더욱.
그렇기에 김주혁은 남의 것을 탐했다.
남의 것을 탐해 무술을 배우고 마력을 쌓으며 강해지고 강해져, 그는 나름대로 자신이 그 끝에 도달했다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그는 형(形)을 버렸다.
아니, 애초에 김주혁은 자신이 스스로 형(形)을 버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남의 무술을 배우면서도 그들이 애초에 어째서 저렇게 무술이라는 틀에 저렇게 집착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적어도 김주혁에게 있어서 무술이라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호신술이었으니까.
그는 수많은 무술들이 한 번의 휘두름에 굳이 이름까지 붙이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 그렇기에 엄연히 말해서 형을 버렸다기보단 사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필요한 것만을 배우고 어느 정도 형태가 잡히면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하지 않는다.
그게 지금까지 김주혁이 무술을 배우며 취해왔던 스탠스였고, 그렇기에 김주혁은 다른 이들이 자신의 검을 보며 이름 붙인 무신류도 그리 달갑게 여기진 않았다.
애초에 그들이 이름을 붙인 무신류는, 김주혁에게 있어서는 그저 휘두름에 불과했으니까.
무신류의 일식 무감.
그것은 김주혁의 입장에서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것일 뿐이었다.
그다음인 일점도 마찬가지로 김주혁은 그저 검을 내지를 뿐이었고.
그 이외에 다른 식들도 모두 마찬가지.
많은 이들과 그의 제자들이 김주혁의 검을 보고 이런저런 이름을 붙였으나 김주혁은 결국 검으로 하는 것은 베고 찌르고 막는 것뿐, 그 어떤 것도 명확한 형태가 잡혀있지 않았다.
김주혁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아니었다.
“…….”
김주혁은 마지막, 자신이 바라본 남자의 검을 떠올렸다.
그의 손에 쥔검이 살짤 아래로 내려왔다가 올라가는 그 순간을.
그것만으로도 김주혁은 자신이 걸어온 길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말이 맞았다.
언젠가의 기억에서 본 남자의 말처럼 김주혁은 오만했다.
언젠가의 기억에서 본 남자의 말처럼 김주혁은 교만했다.
김주혁은 그 사실을 깨끗하게 인정하고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지하지인을 바라보았다.
기괴한 얼굴이 그를 도무지 파악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모습에, 김주혁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자세를 잡았다.
“후…….”
김주혁의 상태는 최악.
그의 몸은 이미 전력을 다한 상태로 너무 오랜 시간 혹사당했고, 거기에 더해 그의 상처에서 난 출혈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김주혁은 오히려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느 순간 기억이 끊겼음에도 불구하고 김주혁은 이전처럼 기분이 나쁘거나 찝찝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끊긴 기억을 본 순간 김주혁은 상쾌한 기분까지 느꼈을 정도였다.
남자가 보여준 검.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기억은 너무나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꽝!
그 순간, 조금 전까지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지하지인이 또 한번 도약한다.
돌조각이 사방으로 튀어오름과 동시엥 부지불식간 눈앞에 가까워지는 지하지인.
카가각-!
그다음, 곧바로 김주혁의 심장을 향해 손을 내질러오는 지하지인의 공격을 튕겨냄과 동시에, 김주혁은 자세를 잡았다.
깨달음은 얻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것은 하나였으니까.
오른발과 왼발이 앞뒤로 벌어진다.
몸의 축을 오른발로 두고 납검한 촌검을 허리에 붙인다.
동시에 언제든지 납검한 촌검을 잡을 수 있게 자세를 잡는 김주혁.
그것은 발검의 자세였다.
그가 300년 전 몇 번이나 사용했고, 제자들이 무신류로서 몇 번이고 불렀던 그 자세이기도 했다.
허나 지금 김주혁이 하려고하는 것은 발검이 아니었다.
“크킥!”
김주혁의 기세가 바뀐 것을 알아챈 지하지인이 조금 전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한번 더 도약한다.
그러나 그런 지하지인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남자의 검을 떠올렸다.
아래에서부터 가볍게 올려쳐지던 그 검을.
만약 그 검을 모방한다면 눈앞의 지하지인을 막을 수 있을까? 라는 상념이 잠깐 머릿속에 떠올랐으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김주혁이 하려고 하는 것은 모방이 아니었다.
그가 하려고 하는 것은 떠올리는 것.
기억 속의 남자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굉장히 한심한 말투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배우는 것이 아닌 떠올리는 것이라고.
그것이 맞았다.
아무리 김주혁이 지금 당장 남자의 검을 모방하려고 해도 그가 보여준 검을 명확하게 모방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모방하는 것 대신, 김주혁은 떠올리는 것을 택했다.
아주 예전 그가 아무것도 모르고 남의 것을 훔쳐 배우던 시절 조잡하게 만들었던, 자신만의 형(形)을.
우웅-!
지하지인과의 거리가 약 다섯 보 정도 남았을 시점, 그 찰나와도 같은 짧은 시간에 김주혁의 몸에서 보라색 빛의 마력이 터져나온다.
사 보(四 步).
동시에 아무것도 잡지 않고 있던 왼손에 촌검의 손잡이가 잡히고.
삼 보(三 步).
김주혁의 손에서, 검이 뽑혀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보(二 步)
묵색의 검과 함께 그동안 김주혁이 쓸모 없는 것이라고 취급해 버려졌던 것들이, 다시 한번 그의 검을 타고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일 보(一 步)
아무것도 담기지 않았던 검에 수많은 조화가, 동시에 수많은 묘리가 어지럽게 담겨나가고.
그 끝에서.
일식(一式).
촤아아아악────!
개벽(開闢).
그는 맨 처음 만들었던, 형(形)을 떠올렸다.
그리고.
[봐, 잘하잖아? 무명(無明).]김주혁은, 자신의 이름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