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stellations Are My Disciples RAW novel - Chapter 290
◈ 290화 난장판 시작 (4)
칼키에게 그 말을 들은 순간과 동시에 김주혁이 보게 된 것은 누군가의 과거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건 누군가의 과거가 아닌 칼키의 과거.
그가 아주 어릴 때 가지고 있던 기억부터, 김주혁은 하나하나 칼키의 과거를 볼 수 있었다.
하나하나.
큰 사건과 작은 사건을 가리지 않고 재생되기 시작한 칼키의 과거.
그 속에서 김주혁은 이전처럼이 아닌, 그 본인 자체가 칼키가 되어 기억을 보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
분명 시간은 평범하게 흐르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빠르게 흐르지도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이 원래 자신의 기억인 것처럼 재생되는 그것들은 천천히, 시간을 들여 김주혁의 기억 속에 들어왔고.
그 어느 순간부터 김주혁은 이 기억이 칼키의 기억이 아닌 자신의 기억이라고 받아들일 정도로 동화된 상태에서 기억을 보고 있었다.
계속해서.
김주혁은 기억을 보고 난 뒤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이 언제부터 기억을 보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도 잃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기억과 완벽하게 일체화가 된 것 같은 그의 시선은 오롯이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판단한 과거의 기억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김주혁은 과거의 기억을 보았다.
자신이 목적을 잃은 채 오롯이 강함만을 추구하며 걸어가는 길을 보았고.
그렇게 목적을 잃은 채 강함만을 추구할 때 만났던 파라슈라마에 대한 기억을 보았다.
그렇게 후반에 가서는 ‘칼키’라는 이름을 얻고 그 직후 그가 핍박받는 수인족들을 구해 두 제자를 들인 기억도 얻었고.
그 뒤, 신을 소멸시킨 화신들이 제멋대로 세상을 망치려는 것을 막기위해 움직이는 자신의 모습마저도 보았다.
그야말로 한 사람의 거대한 서사가 김주혁의 기억에 동화되어 들어온 것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기억 속에 거대한 서사만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사소한,
어쩌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것들.
자신이 길을 걷다 누군가를 도와주었던 기억.
자신이 두 제자를 가르치며 일어났던 사소한 헤프닝.
그 이외에도 많고많은 자질구레한 기억들이 그의 서사에 덧칠되어 동화되었고.
그 어느 시점이 되어서, 김주혁은 자신이 칼키의 기억에 완전히 동화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허나 그렇게 칼키의 기억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그는 아까 전 이 기억을 보기 전 칼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 자신을 잘 구분해.’
분명 이 기억을 보기 전 칼키는 그런 말을 김주혁에게 했었다.
그 소리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순간 김주혁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을 잘 구분하라는 소리는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 그리 필요한 소리 같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칼키는 과거의 나다.
그 말은 곧 딱히 자신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와 같다.
어차피 칼키는 나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칼키는 그런 소리를 했던 걸까?
김주혁은 또 한번 그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원래라면 넘겼겠지만, 결국 칼키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그 말에 분명 어떤 의미가 존재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렇기에 생각하고 있던 김주혁은 문득.
“……?”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동화의 능력을 통해 그 기억을 모두 얻었을지언정, 칼키의 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분명 그는 거의 대부분의 기억을 능력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 그는 예전 칼키였을 때의 기억을 대부분 찾았으니까.
그런데 정말 기이하게도, 김주혁은 칼키의 기술에 대해서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과거의 내가 어떻게 싸우는지.
과거의 내가 어떻게 검을 휘둘렀는지.
과거의 내가 어떻게 능력을 활용했는지.
그 무엇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언밸런스에 김주혁은 이상함을 느끼며 자신의 머릿속에 동화되어 있는 기억을 찾아봤으나.
“…….”
아무리 기억을 돌려봐도 그의 전투나 검술, 그리고 능력의 활용법에 대해서는 전혀라고 해도 될 정도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런 의문이 김주혁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갈 무렵 그는 정말 본능적으로 이 이유가 칼키의 발언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너 자신을 잘 구분해……라.’
김주혁은 새로운 기억들이 계속해서 그의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와중에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XXXX
김주혁의 생각은 꽤 긴 시간 동안 계속됐다.
아니, 이미 이 시간이라는 것이 굉장히 무뎌진 곳에서 표현하기에는 조금 어리숙한 표현일지 몰랐으나 적어도 김주혁은 자신이 생각을 이어 나간 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랜 시간의 생각과 더불어 기억을 뒤져보는 도중, 김주혁은 칼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너 자신을 구분해라.’
칼키가 그런 말을 한 이유는 바로 김주혁이 가지고 있는 개화 능력 때문이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개화 능력인 동화는 남에게 동화해 그 기억과 능력을 받아들여 사용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동화는 어디까지나 남에게만 발동하는 것이지, 자기자신에게는 발동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에 김주혁은 동화를 사용했음에도 기억은 전부 받아올 수 있어도 그 능력은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지.’
개화 능력의 정확한 발동 방법을 알았으니 남은 것은 고치기만 하면 됐다.
지금까지 자신이라 인식했던 것을 ‘그’로 바꾸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그저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애초에 이미 한번 인식되는 것을 바꾸는데 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리니까.
허나 괜찮았다.
적어도 지금 이곳에 있을 때 만큼은 시간이 크게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그렇기에 김주혁은 긴 시간 동안 자신의 머릿 속 인식을 바꾸고자 노력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
김주혁은 자신의 머릿속으로 새로운 칼키의 기억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어떻게 싸우는지에 대한 기억이 생겨난다.
그가 어떤 검술을 쓰는지에 대한 기억이 생겨난다.
거기에 더불어 그가 개화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과 더불어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기억들까지도 모두 김주혁의 머릿속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모든 기억을 완벽하게 얻었을 때.
“!”
김주혁은 다시금 자신의 앞에 있는 칼키를 볼 수 있었다.
그는 김주혁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전부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성공했네.”
“덕분에.”
“생각보다 빠른걸? 뭐, 나라서 그렇게 큰 걱정은 안 했지만 말이야.”
칼키는 그렇게 이야기하곤 잡고 있던 손을 빼며 말했다.
“어때, 내가 일일이 설명하는 것보다는 기억을 되찾는 게 더 좋지?”
“그러게.”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김주혁.
확실히 칼키의 말대로 기억을 모두 얻은 기억은 현재 가지고 있는 의문이 거의 대부분 해소가 된 상태였다.
현재 그의 머릿속에는 칼키였을 때의 기억이 전부 돌아온 상태였으니까.
“자, 그럼 우선 나를 만나서 얻을 수 있는 건 전부 내준 것 같은데. 혹시 또 궁금한 거 있나?”
“이미 너랑 똑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있을 리가 없지.”
“그러냐.”
칼키는 그렇게 대답함과 동시에 다리부터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모래가 날려가는 것처럼, 서서히.
“이번에도 저번이랑 똑같네.”
“뭐, 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흔적이니까 말이야. 할 일을 다마치고 나면 이제 쉬어야지. 미래의 나한테 알려줄 건 전부 알려줬으니까 말이야.”
그런 칼키의 말에 김주혁은 저도 모르게 ‘무섭진 않냐?’라는 질문을 던지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 질문을 던지려는 순간, 이미 그의 마음속에 답이 나왔으니까.
그런 김주혁의 표정을 본 탓일까 칼키는 피식 웃으며 이야기했다.
“확실히 잘됐네.”
“고맙다.”
“고맙기는 뭘, 너는 나고, 나는 너다. 애초에 한 개체인데 뭘, 그저 조금 다른 점이라면 나는 내가 죽고 나서도 좀 길게 남아 있었다는 점 정도일까.”
칼키는 그렇게 이야기하더니 이내 어깨까지 사라진 시점에서 김주혁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자, 그럼 나는 슬슬 쉬러간다.”
“그래.”
“화신새끼들 대가리좀 깨버리고, 아수라 대가리도 이번엔 좀 성공적으로 깨버려라.”
“알고 있다.”
김주혁의 말에 칼키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피식 웃는 것으로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고,
곧 칼키의 몸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쿠그그극-!
그와 함께 깨져나가기 시작한 공간.
그러나 김주혁은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가만히 기다렸고.
곧 우주가 무너져내림과 동시에.
“!”
김주혁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매우 익숙한 천장.
그곳이 곧 미궁의 집무실이라는 것을 알아챈 김주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고.
“어? 벌써 일어났어?”
“그래.”
곧 집무실에 앉아 있는 길잡이를 볼 수 있었다.
“…….”
그런 대답과 함께 길잡이를 빤히 바라보는 김주혁.
그에 길잡이는 의중을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 이내 이해했다는 듯 말했다.
“기억, 되찾았구나?”
“그래.”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네.”
“정확히는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지.”
김주혁의 말.
그러나 길잡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 이야기는 너무 길어질 테니 나중에 하는걸로 하자, 지금은 지금대로 바쁘니까.”
“그건 그렇지.”
확실히 지금은 한가하게 과거의 추억에 빠져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윤회의 연꽃을 이용해 화신 한 명을 소멸시키러 가야 한다.’
김주혁은 그 목적을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곤 이야기했다.
“며칠이나 됐어?”
“얼마 되지 않았어, 3일 정도?”
“3일?”
“짧지?”
“……확실히 짧긴 하네.”
김주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칼키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 그때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았는데 현실에서 걸린 시간은 고작 3일 정도랜다.
‘물론 칼키도 어차피 이곳에서의 시간의 흐름은 무척이나 느리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긴 했는데.’
정말 생각보다 더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았기에 김주혁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 했다.
“자, 그럼 곧바로 가볼까.”
“그래야지. 그런데.”
“그런데?”
“화신을 소멸시키러 가기 전에, 우선 저것부터 어떻게 처리하고 가는 게 좋지 않겠어?”
“저것?”
길잡이의 말에 김주혁은 저도 모르게 그녀가 가리킨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거기서.
“어?”
김주혁은 어느새 돌아와 있는 부리가면과 이면의 지배자를 볼 수 있었다.
다만 그가 반가운 표정을 짓다가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한 이유는.
“……?”
바로 최아린과 옌랑, 그리고 부리가면과 이면의 지배자가 금방이라도 서로 한판 붙을 듯 서로를 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