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stellations Are My Disciples RAW novel - Chapter 69
◈ 69화 말버릇 좀 고쳐라 (2)
“그러니까…….”
한동안 길잡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주혁은 이야기했다.
“재앙이라는 게 미궁주가 모았던 ‘이름’으로 만드는 거라 이 말이지?”
“정답이야. 그 새끼도 자기가 주인이라고 해서 전지전능한 신처럼 모든 일을 제멋대로 할 수는 없거든.”
“그럼 내가 환생하기 전 만들어졌던 재앙도 모두?”
“당연히 누군가의 ‘이름’에 담겨 있는 힘을 매개로 해 만들어진 거지.”
“……뭐, 도대체 어떻게 이름으로 미궁을 만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구조 자체는 이해했어.”
“그래 그거면 충분해, 어차피 개념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게 딱히 현 상황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이름은 어떻게 뺏는데?”
김주혁의 물음에 길잡이는 슬쩍 미소를 짓고는 낡은 책상 위에 하나의 반지를 꺼내 놓았다.
딱히 특별한 문양이 새겨져 있지 않은 반지를.
“이걸로.”
“……이걸로?”
김주혁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반지를 짚자 길잡이는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너도 몇 번 겪어 봤다고 했으니까 미궁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지?”
“아마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막았을걸.”
“잘됐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네가 해야 할 일은 그 반지를 끼고 들어가서 미궁 내에 있는 보스를 죽이는 거야.”
“……미궁석을 박살 내는 게 아니라?”
일반 미궁과는 다르게 재앙으로 생긴 미궁에는 그 미궁의 보스라고 할 만한 객체가 꼭 하나씩 존재했다.
그러나 김주혁은 지금까지 미궁을 처리하며 그 보스를 처리한 적이 몇 번 없었다.
그 이유는 꽤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보스가 생각보다 꽤 까다롭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딱히 보스를 죽이지 않아도 미궁 중앙에 있는 미궁석을 박살 내기만 하면 미궁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맞아. 미궁석을 박살 내지 말고 그 미궁 안에 있는 보스를 잡아야 해.”
“……흐음, 그건 좀 골치 아픈데.”
김주혁은 그렇게 인상을 찌푸리며 예전 자신이 몇 번 정도 상대해봤던 미궁의 보스들을 떠올렸다.
물론 정말 당연하게도 그들은 김주혁의 상대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김주혁이 그때 당시 규격 외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재앙으로 인해 만들어진 미궁에서 나오는 보스 몬스터는 꽤 강하다.
“흐음.”
그것에 대해 잠시 고민한 김주혁은 우선 이야기를 전부 듣기로 하곤 물었다.
“그래서, 보스를 죽이기만 하면 된다고?”
“응, 그 뒤에는 똑같이 미궁석을 파괴해서 미궁을 없애면 돼.”
“그럼 이름을 빼앗을 수 있는 건가?”
“이름을 빼앗는 건 네가 그 반지를 끼고 그 보스를 죽이기만 하면 돼.”
그녀의 답변에 김주혁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잠시 고민하는 듯 짧게 턱을 만지작거리다 답했다.
“그런데.”
“응?”
“이거, 잡아도 되는 건가?”
“그게 무슨 소리야?”
길잡이가 의문을 표하자 김주혁은 반지를 한번 바라보곤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면 이 일은 미궁주한테 엿을 먹이고 그 새끼 어떻게든 조져보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그렇지?”
“근데 미궁주는 수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며.”
“그것도 맞아.”
“근데 이번에 내려오는 재앙은 이름 하나로 만들어진 거라는 소리잖아? 고작 하나 정도를 미궁주한테 빼앗는다고 녀석한테 엿을 먹일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물론 당장 앞만 보고 있었다면 김주혁은 길잡이의 생각에 딱히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김주혁이 보는 것은 이 앞을 넘어서서 그다음.
그의 목적은 당장 미궁주에게 소소하게 엿을 먹이는 게 아니라 그를 박살 내는 것이었고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아직 힘도 완전치 않은 상황에서 미궁주를 건드리는 것은 하책이었다.
그 말은 아직 준비되지 않았는데 싸움을 건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가진 김주혁의 반론에 길잡이는 합리적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확실히 네 말이 일리가 있기도 해. 실제로 미궁주가 가지고 있는 이름은 여러 개 정도가 아니야, 엄청나게 많지.”
“그럼 하나 정도를 처리해 봤자 엿을 먹일 수는 없는 거 아니야?”
“맞아, 고작 하나 정도 빼앗는다고 해서 미궁주를 엿먹일 수는 없어. 오히려 미궁주는 자기 이름이 빼앗겼는지도 모를걸?”
“……빼앗겼는지도 모른다고?”
“그 녀석한테는 자기도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이름이 쌓여 있거든. 재앙으로 소모한 이름 하나 정도야 없어진 지도 모를 거야.”
“……그럼 계란으로 바위치는 거랑 뭐가 다른데?”
김주혁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길잡이는 슥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다르지, 네가 뭘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설마 이름을 빼앗는 거로 엿을 먹인다고 표현했겠어?”
“……그거 아니었어?”
“만약 정말 그거였으면 시도조차 안 했을 거야. 그리고 내가 말했잖아? 네가 환생하고 ‘성좌’가 생겼기 때문에 엿을 먹일 기회가 온 거라고.”
그런 길잡이의 자신만만한 미소에 김주혁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XXXX
그 뒤로 길잡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눈 김주혁은 곧 이야기를 하던 중 시간이 됐다는 말과 함께 판잣집에서 나가버린 그녀를 봄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고.
“아.”
그녀에게 ‘호출’에 대해 미처 말하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찌푸렸으나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우선 듣고 싶은 건 다 들었으니까.’
말 그대로, 김주혁이 들어야 하는 정보는 전부 들었다.
한 달 뒤 일어나는 재앙에 대한 내용부터 시작해서 미궁 내에 있는 보스를 처리해야 한다는 정보, 거기에 더해 도왕에게 들었던 문의 정보까지 그는 길잡이에게 들을 수 있었고.
“허 참.”
김주혁은 조금 전 길잡이와 했던 대화를 상기하며 헛웃음을 지었다.
정확히 말하면 ‘문’에 대한 대화를.
“……투기장이라.”
길잡이는 김주혁이 설명했던 ‘문’의 정체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투기장이었을 거란 사실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투기장이 만들어진 이유까지도.
‘이름을 빼앗겨서 이명을 가지게 된 성좌들을 경쟁시켜 거기에서 만들어진 이름도 빼앗을 목적으로 투기장을 만들었다……라.’
물론 미궁주가 어째서 만들어 놓은 투기장을 고작 하루 이틀만 열어두고 닫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결국 미궁주는 이름을 한번 빼앗은 놈도 재활용해 자신의 배를 채우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존나 구역질 나는 새끼.’
김주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적어도 그가 생각하기에 길잡이에게 들은 미궁주는 천하의 쌍놈을 넘어선 무엇인가였으니까.
그렇기에.
‘반드시 조지고 만다.’
김주혁은 언제가 했던 다짐을 또 한번 하며 이내 고개를 돌려 단련실의 시계를 바라보았다.
‘두 시인가.’
이제 막 두 시를 넘기고 있는 시간.
길잡이와 이야기 한 시간이 대충 두 시간 정도였다는 것을 깨달은 김주혁은 우선 늦게나마 점심을 먹기 위해 단련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고.
“너는 설가의 여식이다. 그러니 가문의 전통을 따라 힘을 이어받아라!”
“지랄하지 마! 싫다고! 언제 딸 취급해준 적 있어? 딸 취급해준 적 있냐고!! 왜 이제 와서 지랄이야!”
“성좌님의 명령을 무시할 셈이냐?!”
“너나 그 잘난 성좌랑 물고 빨아 이 또라이야!!”
“?”
그렇게 단련실을 빠져나오던 김주혁은, 굉장히 기묘한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오만상을 찌푸린 채 열심히 욕설을 내뱉고 있는 옌랑의 모습이었고.
그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옌랑과 같은 호랑이무늬 패턴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여인이 굳은 표정으로 옌랑과 함께 열심히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었다.
‘이건 또 뭔 상황이야?’
그에 김주혁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이내 시선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어째서냐고 묻는다면 굳이 끼어들 필요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원래 남의 가정사에 끼어드는 건 괜히 귀찮아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300년 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는 김주혁은 몸을 돌려 자리를 옮기려 했으나.
“아, 주혁아!”
도대체 어느새 고개를 돌린 건지 옌랑은 단련장을 스쳐 지나가려던 김주혁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고.
김주혁은 그런 옌랑을 보며 입을 열려고 했으나.
“……당신이 김주혁인가요?”
그는 곧 옌랑의 목소리 뒤에 곧바로 들어오는 목소리에 이내 뒤쪽을 바라봤다.
보이는 것은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굳은 얼굴을 한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
옌랑과 어느 정도 닮은 점이 보이는 그녀는 김주혁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요구했고 그는 그 눈빛에 답했다.
“맞는데요.”
별다른 성의 없는, 그저 건성인 말투.
그곳에서 빈정이 상했을까, 여인의 표정이 슬쩍 굳어졌으나 이내 그녀는 입을 열었다.
“저는 설가(雪家)의 가주이자 옌랑의 어미인 설연화라고 합니다.”
“응?”
“왜 그러시죠?”
“아니…… 설련이 엄마 아니었어?”
김주혁이 이전에 보았던 설련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리자, 설연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옌랑의 어미는 접니다. 설련은 제 동생이고요.”
“아, 그래요?”
“지랄하지 마! 누가 네 딸이냐고!”
옌랑이 소리를 질렀으나 그에 신경 쓰지 않고 가볍게 대답하는 김주혁.
설연화는 소리를 지르는 그녀가 신경 쓰이는 듯 인상을 찌푸렸으나 곧 그녀는 김주혁을 똑바로 바라보곤 말했다.
“한마디만 하도록 하죠. 옌랑을 놔 주세요.”
“옌랑을 놔 달라고요?”
“네. 지금 그녀는 현재 가문 내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치러야 하는데 당신이 옌랑을 붙잡고 있는 것 같더군요.”
설연화의 말.
그에 김주혁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요? 저는 옌랑을 붙잡은 적이 없는데요?”
“……듣기로는 당신이 옌랑을 제자로 들였다고 하던데요?”
“뭐, 그렇기는 하죠.”
김주혁은 이렇게 대답하면 귀찮아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으나 그것에 대해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 이미 벤트릭 가문이 생긴 시점에서 옌랑을 제자로 키울 필요가 사라지기는 했는데…….’
그가 제자를 키우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는 했으나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예전처럼 캐시카우를 한번 만들어 볼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벤트릭 가문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시점에서 김주혁이 더 이상 제자를 키울 이유는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김주혁은 옌랑을 내칠 생각은 없었다.
옌랑이 떨어져 나가는 걸 보면 봤지 자기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제자를 버릴 만큼 김주혁은 쓰레기가 아니었으니까.
“설련에게 들었어요. 당신이 옌랑을 이겼다고 하더군요.”
“그런데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옌랑의 스승 역할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뭐요?”
김주혁이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명백한 불쾌의 표현.
그러나 설연화는 그런 김주혁의 불쾌 표현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할 말을 이어서 하기 시작했다.
“옌랑은 당신보다 더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단호함이 가득한 설연화의 목소리.
그러나 그 말에 김주혁은 인상을 풀고 피식 하는 웃음을 지으며.
“……그걸 당신이 판단하는 건 좀 웃기지 않나?”
그렇게 대답했다.
“뭐라고요?”
“말 그대로,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모를 아줌마가 본인도 아니면서 그걸 판단하는 게 웃기지 않나 싶어서.”
김주혁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자 설연화는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곤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은 설가(雪家) 성좌보다 자신이 더 낫다, 뭐 이런 말을 하는 건가요?”
누가 봐도 설가(雪家)의 노여움을 산 상황.
그러나 김주혁은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하는 비웃음을 짓곤.
“그렇다면 어쩔 건데?”
그렇게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