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nstellations Are My Disciples RAW novel - Chapter 89
◈ 89화. 김주혁은 모르는 사이에 (1)
사실 최근 발할라 아카데미는 이런저런 말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었다.
세계 3대 아카데미의 이사장이 갑작스레 마켓의 오너인 ‘블랙 캣’으로 바뀌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도 말이 나올 여지는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협회나 길드, 심지어 악인집단까지 블랙 캣의 행보를 기다리는 와중에도 그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블랙 캣은 어떠한 신념으로 움직였다기보단 그냥 단순히 자신의 성좌인 ‘이면의 지배자’가 시키는 대로 행동했을 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블랙 캣은 아카데미의 이사장이 된 지 한 달 반이 지난 지금 상황에서도 딱히 이렇다 할 행보를 보여주지 않고 있었고.
그 대신.
[이면의 지배자가 지금 당장 협회를 박살 내는 게 어떻냐고 물어봅니다.]“그……하셔도 되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괜히 귀찮아지는 게 아닐지.”
블랙 캣은 자신의 성좌님인 이면의 지배자를 말리고 있었다.
[이면의 지배자가 그럼 그냥 좀 참아줘서 스승님 주변을 알짱거리는 길드 녀석들 모가지를 잘라 버리자고 말합니다.]“……그렇게 했다간 오히려 김주혁 님이 더 귀찮아지실 확률이 농후합니다.”
[이면의 지배자가 우리가 대놓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묻습니다.]“아마 그래도 김주혁 님이 귀찮아질 겁니다.”
[이면의 지배자가 그럼 이번에 건방지게 스승님을 죽이겠다는 소문을 퍼트린 악인집단을 묻어버리는 것은 어떻냐고 물어봅니다.]“그 건에 대해서는 지금 조사를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면의 지배자가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더 이상 성좌님의 알림창이 올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이면의 지배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기대 앉았다.
‘죽겠다…….’
사실 그의 노동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딱히 변한 것이 없었다.
그것은 발할라 아카데미가 생겨도 마찬가지.
그는 어디까지나 몇 개 정도의 소소한 일에 결정을 내릴 뿐 딱히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블랙 캣은 피곤했다.
이유는 바로 자신의 성좌인 이면의 지배자 때문.
‘사람들은 세상을 10번도 넘게 구하고 있는 내 행보에 대해서 알까.’
빈말이 아니라 블랙 캣은 정말로 세상을,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협회와 길드, 그리고 어딘가에서 나대고 있는 악인집단의 목숨까지 10번 정도는 구했다.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자신의 성좌인 이면의 지배자 때문.
‘……스승님이라.’
블랙 캣은 발할라 아카데미를 사고 난 뒤, 자신의 성좌인 이면의 지배자와 김주혁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알아냈다.
뭐 사실 블랙 캣이 알아내려고 한 것은 아니었고 그저 자신의 성좌가 김주혁을 ‘스승님’이라고 몇 번이나 호칭한 덕분에 알게 된 것이지만.
‘…….’
물론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돼서 자신의 성좌인 이면의 지배자가 김주혁을 스승님으로 부르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정말 신기하게도 그 관계는 어딘가 뒤틀리거나 오해가 빚어낸 것이 아닌, 정말 진짜 스승과 제자의 관계 같았다.
실제로 김주혁은 이면의 지배자를 마치 제자 대하듯 대했으니까.
‘도대체 뭘까.’
솔직히 처음 이 사실을 알았을 때, 블랙 캣은 원인과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을 이해했다.
어차피 원인과 과정을 그가 이해하기에는 불가능해 보였으니까.
스승님은 평범한 인간.
그런데 제자는 성좌?
그냥 논리 자체가 맞아떨어지지 않기에 그는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사실 이해해 봤자 지금 이 상태가 바뀌는 것도 아니니까.’
아무튼, 블랙 캣은 김주혁과 이면의 지배자의 관계를 눈치챘고, 자신의 성좌님이 어째서 김주혁을 깍듯이 대하고 또 많이 챙기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에 들어선.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정말 지극히 개인적으로 조금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조금 심한 게 아니라 많이 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랙 캣이 바라보고 있는 성좌님의 행동은 자신이 보고 있더라도 조금 극단적이었으니까.
‘……김주혁을 귀찮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협회를 박살 내자고 하고.’
물론 블랙 캣의 설득으로 협회를 박살내는 건 막긴 했다.
‘김주혁이 욕한 길드를 박살 내버리겠다고 하고.’
물론 이것 또한 블랙 캣의 설득으로 막았다.
‘김주혁을 죽이겠다고 소문을 퍼트리고 있는 악인집단을 모조리 찢어죽이겠다고 하고.’
이건 블랙 캣도 같이 도와서 그 정보를 찾고 있었다만, 아무튼 그 이외에도 자신의 스승님을 귀찮게 하는 특정 누군가에게 굉장히 과할 정도로 극단적인 행동을 보여주고 있는 성좌님이 블랙 캣의 입장에서는 조금 신기했다.
마치 일반적으로 자신의 스승을 대하는 것보다는 마치…….
우우우우웅-!
블랙 캣이 그렇게 고민하던 중 울리는 스마트폰의 진동에 그는 곧 생각을 멈추고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고.
“예.”
[반갑소, 블랙 캣. 저번에도 안부 차 연락을 드렸던 것 같은데,]“기억하고 있습니다, 분명…… 히어로 아카데미의 이사장님이셨나요?”
[기억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히어로 아카데미의 이사장 베크.
블랙 캣이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거의 곧바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아카데미를 통해 연락이 왔었기에 그는 베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고.
“아닙니다. 그보다 무슨 일로……?”
[아, 다름이 아니라 연락한 것은 이번에 열리는 ‘세계 대항전’ 때문이네만 혹시 좀 길게 통화가 가능한가?]XXXX
조금 늦은 저녁 시간.
병상에서 일어나 다시금 학교에 오게 된 오세혁은 발할라 부지 한쪽에 만들어져 있는 체력 단련실 앞에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바로 김주혁에게 감사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고, 이렇게 발할라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관속에 있거나 아니면 몬스터한테 먹혀버려 시체조차 남지 않았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배움을 청한다.’
김주혁에게 배움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오세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김주혁을 자신의 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지긴 했으나 자신의 재능이라면 언젠가는 무조건 김주혁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아니었다.
김주혁은 오세혁의 생각보다도 강했고, 애초에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고 여길 정도로 많은 차이가 났다.
사실 오세혁은 은연중 그것을 느끼고 있기는 했다.
다만 그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
허나 이번 재앙 사태에서 일어난 일로 오세혁은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동시에 김주혁을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한 그를 동경할 수 있게 되었다.
‘…….’
오세혁은 눈을 감고 그 순간을 떠올렸다.
김주혁의 검이 자연스럽게 그어지던 순간을.
그와 함께 자신을 향해 달려오던 수십수백의 몬스터가 등급과 고저의 차이 없이 모조리 똑같은 죽음을 맞이하던 그 순간을.
그 순간을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오세혁은 저도 모르게 몸이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 정적이면서도 압도적인 무위는, 언젠가 오세혁이 상상하고 그가 되고 싶었던 진짜 강자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오세혁은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그가 저녁까지 수련을 한다는 정보를 듣고 김주혁에게 감사를 할 겸, 동시에 부탁을 하러 온 것이었다.
“후우.”
또 한번의 한숨.
단련실에 들어가는 것뿐이지만 괜스레 긴장되는 느낌에 오세혁은 조심스레 단련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고.
“…….”
곧 그제야 오세혁은 단련실이 텅 비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너무 늦게 왔나…….’
그제야 지금 시각이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는 것을 자각한 오세혁은 내일 다시 찾아오기 위해 문을 닫으려 했지만.
스읍.
“……?”
이내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오세혁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고, 이내 얕은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저도 모르게 걸음을 옮겼다.
왜인지는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굉장히 발걸음 소리를 죽이고서…….
그렇게 오세혁이 도착한 것은 단련실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휴게실이었고.
스-
또 한번 들리는 목소리에 오세혁은 저도 모르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
“……스……읍?”
오세혁은 옌랑을 볼 수 있었다.
“…….”
“…….”
오세혁은 옌랑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김주혁과 함께 다니는 학생으로 이미 발할라 학생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자자했으니까.
그녀가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이미 김주혁의 옆에서 같이 다니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꽤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기에 오세혁은 자연스레 인사를 건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미묘한 상황만 아니라면.
“…….”
오세혁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옌랑을 바라보았다.
그다음에는 옌랑이 손에 쥐고 있는 수건을 바라보았고.
그 수건이 옌랑의 얼굴에 붙어 있는 것도 보았다.
물론 딱 이 묘사까지만 보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 이제 단련이 끝나서 단련실을 정리하고 모든 불을 끈 다음에 이 적적한 곳에서 땀을 닦으며 나가려고 했구나!
물론 어디까지나 어거지로 끼워맞춘 거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라면 이해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옌랑이 들고 있는 수건이 그녀의 입가와 코에 붙어 있다는 묘사가 추가되면 어떨까.
거기에 더불어 오세혁이 들었던 소리가 숨을 들이켜는 소리였다면?
“…….”
“…….”
긴 침묵이 지속된다.
오세혁은 그 숨막힐 듯한 침묵 속에서 열심히 해야 할 말은 찾고 있었다.
이렇게 말해야 하나?
아니 저렇게?
아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이야기해야…….
혼란의 도가니로 가득 차버린 그의 머릿속.
그러나.
“봤구나?”
곧 오세혁은 자신의 귓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고.
“봤지?”
“…….”
곧 옌랑을 바라봤다.
왠지 하이라이트가 사라져 버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옌랑을.
그리고.
“안 봤-”
“봤잖아.”
“아니 그-”
“봤잖아.”
“……봤-”
“그렇지? 봤지?”
그 대화의 끝에.
“죽어.”
오세혁은 둔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에,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그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하루 일과로 단련을 하고 있던 김주혁은 자신을 찾아온 오세혁을 볼 수 있었다.
“정말 고맙다.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정말 죽은 목숨이었을 거다.”
“어……어, 그래.”
굉장히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는 김주혁.
그도 그럴 게.
“야, 너…… 병원 갔다 왔다고 하지 않았냐?”
현재 김주혁이 보고 있는 오세혁의 얼굴은, 절대 일반인의 얼굴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박살 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근데 왜 얼굴이 그러냐?”
“굴렀다.”
“……굴렀다고?”
김주혁은 오세혁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성한 곳이 없어 보이는 얼굴.
도저히 굴러서는 생기지 않는 모습이기에 김주혁은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으나.
“……아니 아무리 봐도-”
“굴렀다.”
“아니-”
“굴렀다.”
“맞은 것-”
“굴렀다.”
“……아, 그래.”
왠지 눈빛에 보이는 애절한 느낌에 김주혁은 곧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고.
오세혁은 전속력 달리기를 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옌랑을 보며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