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ess's Shield Protects the Kingdom RAW novel - Chapter (95)
제95화
마지노 요새.
외적으로부터 필라도르 왕국의 수도, 베르티를 지키는 철벽의 요새다.
필라도르 왕국의 지리적인 위치가 후방인 만큼 실제로 요새가 쓰인 적은 없었지만.
만약 신성제국이 침략해 왔더라도 이 요새만큼은 쉽사리 뚫기 힘들었으리라 평가받는 요새였다.
‘하지만 신성제국에 왕국이 통째로 붙어먹었으니 뭐, 다 의미 없는 이야기지만.’
외적을 막는 요새이니, 평상시라면 미다스 후작가의 병력이 요새에 들어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왕국군이 먼저 요새에 도착한다면 미다스 후작군은 요새를 돌파할 가능성이 전무했다.
애초에 왕국 최후의 보루로 만든 요새이니, 아무리 후작가라 하더라도 일개 가문이 점령하는 것은 요원한 일.
그러면 끝이다. 애초에 지금 미다스 후작이 일으킨 반란은 기습이기에 효과가 있는 거지, 전쟁이 길어지면 왕국 전역에서 반역 가문인 미다스 후작가를 진압하려 할 테니까.
게다가 자칫 일부 병력만 요새에 들인 상태에서 왕국군이 역습이라도 한다면, 후작군이 지리멸렬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마지노 요새에 도착해서 성벽을 탈취해야 하는 거야.”
마지노 요새로 향하는 길. 나는 미르온에게 일의 전말을 알려주고 있었다.
상황을 들은 미르온이 고개를 끄덕이다 내게 물었다.
“아, 공자님. 어떻게 마지노 요새라는 걸 알아채신 겁니까? 제가 느끼기에 암살자의 대답은 보험으로 물어보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역시 감이 좋아.’
미르온의 감에 대해 새삼 감탄하며 말했다.
“베르사유의 성격 때문이야.”
“성격이요?”
“그자는 미다스 후작가를 싫어해. 애초에 왕가의 열등감이 시작된 이유는 나일이 더 풍요롭기 때문이지.”
“음, 그렇죠?”
“베르티의 가장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어디일 것 같아?”
“그야… 당연히… 아!”
비로소 눈치챈 미르온이 탄성을 일으켰다.
“그래, 빈트 평야야. 거기서 미다스 후작가를 기습하면 자신들의 식량이 모조리 못 쓰게 되니까, 그걸 바라지 않을 거란 말이지.”
나일보다는 뒤떨어진다는 평이 많지만, 베르티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양 역시 적지 않으니 말이다.
저만한 곡식을 쓰레기로 만들며 미다스 후작군을 잡기에는 너무 아까우리라.
게다가 빈트 평야보다 마지노 요새가 수성에 유리한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시간이 왕국군의 편인 상황에서 굳이 무리할 이유는 어디도 없었으니까.
베르사유가 그런 이점을 놓칠 리가 없었다.
“서두르자. 필라도르 왕국군이 도착하기 전에 잠입해야 하니까.”
저 멀리 마지노 요새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
나와 미르온은 말에 채찍질을 가하며 속도를 올렸다.
각자의 생각이 부딪히는 전쟁의 물결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극비리에 벌어지고 있는 필라도르 왕가와 미다스 후작가의 전쟁.
평범한 시민들은 이 상황에 대해 아예 무지했기에, 필라도르 왕국민들은 겉으로 보기에 전혀 변함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마지노 요새 역시 마찬가지였다.
와글와글!
“자, 자! 싸요, 싸!”
“이것 좀 보고 가셔. 이번에 자운에서 들여온….”
요새 내의 시장은 평소와 똑같이 활기가 넘쳤다.
“거기 등빨 좋은 형씨! 이거나 좀 보고 가지!”
좌판에 조악한 무기를 몇 가지 깔아놓은 상인이 후드를 쓴 채 지나가던 이를 불렀다.
사내가 발걸음을 멈추자 호객이 성공한 것으로 생각한 상인이 신이 나서 설명을 했다.
“형씨 덩치를 보아하니 힘깨나 쓰는 모양인데, 이 무기 한번…!”
아니, 하려 했다.
하지만 후드 속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상인은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스으윽.
남자는 상인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조용히 후드를 쓴 채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남자의 신형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상인은 호구를 잡는 데 거의 성공했다가 무위로 돌아갔음에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깜짝이야. 무슨 사람 인상이 저렇게 살벌해?”
상인은 꿈에 나올까 두려운 남자의 얼굴을 금세 잊은 채 재차 호객 행위에 나섰다.
스으윽.
상인의 호객 행위에 넘어가지 않은 남자는 시장의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남자의 행동이 수상하다 여길 수 있었음에도, 그 어떤 행인도 남자를 제지하지 않았다.
저런 어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뒷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그런 광경이 마지노 요새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마지노 요새의 뒷골목 가장 깊은 곳.
여러 행색을 가진 이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상인들과 같은 모습을.
누군가는 거지와 같이 허름한 모습을.
또 누군가는 용병과 같이.
통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이 모였고,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척.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잡상인에게 호객 행위를 당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모두 모였나?”
“예. 푸른 들 기사단, 전원 집결 완료했습니다.”
푸른 들 기사단.
미다스 후작가의 기사단 중 하나로, 잠입과 정찰을 주로 수행하는 이들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이들이 맡은 임무는 미다스 후작군의 진격 경로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마지노 요새는 후작군의 진격에 있어서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요충지다.
따라서 정찰에 만전에 만전을 기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정찰 결과를 보고할 수 있도록.”
“상점가에서 걸음걸이가 균형 잡힌 이들을 다수 발견하였습니다.”
“농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농민의 복장을 하고 있지만, 몸에 잡힌 근육이 농민의 것이 아닌 자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회관도….”
보고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푸른 들 기사단의 단장, 맥스의 표정이 굳어져갔다.
“…역시. 쉽지 않군.”
단원들이 발견한 이들은 분명 왕가에서 파견한 이들일 터.
그토록 은밀히 반란을 준비했음에도 왕가 역시 마지노 요새에 방비를 해둔 것이다.
“예, 아무래도 저희가 채 발견하지 못한 간자가 있던 모양입니다.”
“으음, 그렇게 잡아냈건만….”
맥스의 입에서 침음성이 새어 나왔다.
“왕궁의 간자가 보내온 내용에 따르면 각국의 귀빈들을 모두 연금해둔 상황이라 합니다.”
“큰일이군. 이미 반란에 대해 왕가가 어느 정도 방비를 한 이상, 마지노를 돌파하면 제롬 공자가 베르티의 성문을 열어주어야 할 텐데…. 이대로라면 공자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겠군.”
맥스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젓자 한 단원이 제롬을 의심했다.
“혹시 제롬 공자가 이중으로 저희를 배신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그건 아닐 거다. 우리가 익힌 연공법은 방패가의 것. 그게 새어 나가 봐야 좋을 것이 없어. 이건 간자의 탓이라 보는 게 옳겠지.”
맥스는 제롬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켰다.
그때, 제롬을 의심했던 단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단장님.”
푹!
“커헉…?!”
“피, 피터! 미쳤어?!”
피터라 불린 기사가 갑작스럽게 찌른 검에 단원이 쓰러지고.
생각지도 못한 돌발 상황에 푸른 들 기사단의 단원들이 몇 초 늦게 깜짝 놀라 그를 제지하려 했다.
하지만 피터가 조금 더 빨랐다.
푸우욱!
“끄억…!”
기어코 찌른 단원의 숨통을 끊은 피터는 잽싸게 다른 단원들과 거리를 벌렸다.
“후,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무진장 힘들었네.”
“…피터, 너인가?”
맥스는 그 와중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피터는 그런 맥스를 바라보며 비열하게 웃었다.
“큭큭큭! 항상 느끼는 거지만 단장은 그 차분한 표정이 정말 재수 없어요. 뭐, 그 표정을 보는 것도 오늘로 끝이겠지만.”
피터가 손을 들어 올리자, 골목 곳곳에서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밀과 낫이 교차되는 엠블럼.
곡물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필라도르 왕국이 자랑하는 제2 왕국기사단의 엠블럼이었다.
피터는 그중 한 명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네가 말한 인원 모두인가?”
“헤헤, 맞습니다. 단 한 명도 빠지지 않고 전원 모아 놨습니다.”
피터가 말을 거는 이는 맥스 또한 익히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제2 왕국기사단의 단장, 융켄이었다.
“후작님께… 무언가 서운한 점이라도 있었나?”
냉정을 잃지 않은 맥스가 담담히 물었지만, 피터는 그런 것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후작님께서 잘해주신 것은 맞죠, 분명. 하지만 언제까지 정찰이나 하는 기사로 만족해야 합니까. 저는 그리 살고 싶지 않아요. 게다가.”
히죽!
“가라앉을 게 확실한 배에 올라타 있을 순 없잖아요?”
피터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전무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미다스 후작군을 얕보지 마라.”
맥스는 그런 피터를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피터는 그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흥! 계란으로 바위를 쳐봤자 계란은 계란일 뿐.”
피터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포위한 기사들이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왔다.
“잘 가세요, 단장. 단장 몫까지 제가 잘 살 테니까. 그럼 이만.”
맥스는 다가오는 제2 왕국기사단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푸른 들 기사단은 첩보가 주된 임무인 반면, 왕국기사단은 순수하게 무력만을 따지는 단체.
비록 같은 단장이라고 해도, 융켄과 자신의 경지에는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무장조차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승산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군.’
사실 계산할 필요조차 없이 뻔한 결과였기에, 맥스는 결국 최후의 명령을 내렸다.
“푸른 들 기사단은… 전원 산개하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떤 희생을 내서라도 후작님께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한다.”
“명을 받듭니다!”
맥스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푸른 들 기사단의 단원들이 각기 다른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휴, 귀찮게 하는군.”
딱!
제2 왕국기사단장인 융켄이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튀겼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이놈들만 모조리 제압하면 이번 반란, 쉽게 제압할 수 있으니.”
그렇게 말한 융켄은 피터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기에 피터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령으로 복귀한 후, 마지노 요새 정찰 결과 아무 이상이 없으며 단원들은 확실히 매복하고 있다고 보고하겠습니다.”
“…쯧. 그래, 잘 아는군. 실수하지 말도록.”
융켄이 피터와는 말도 섞고 싶지 않다는 듯이 혀를 차며 고개를 돌렸다. 담담히 말했지만, 그 어투에는 숨길 수 없는 경멸의 감정이 가득했다.
‘쓰레기 같으니.’
비록 적이지만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 주군을 손바닥 뒤집듯이 배신하다니.
순수한 기사인 융켄의 입장에서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도 거북하게 느껴지는 폐기물이었다.
‘후, 어쩔 수 없지. 이 또한 왕국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길이니.’
미다스 후작의 반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고통받는 것은 왕국민들이니 말이다.
스르릉!
푸른 들 기사단의 저항이 생각보다 길어지는 듯하자 융켄 역시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다.
더 시간을 끌다가 놓치는 불상사가 생겨서는 안 될 일이니 말이다.
“어이쿠, 이런. 거기까지만 하시죠. 단장님께서 끼어들면 문제가 커지니까요.”
“?!”
갑자기 들려온 낯선 목소리.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미처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옆구리를 향해 밀려오는 풍압은 융켄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게 만들었다.
콰아앙!
“크윽!”
좌아아아아악!
검을 든 팔로 방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밀려오는 충격에 고랑이 파였다.
왕국기사단에 주어지는 명검에는 실금이 났고, 복부를 보호한 팔꿈치 부분에는 권격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고작 주먹으로 오러를 두른 검에 금이 가게 만들다니?!’
융켄은 자신도 모르게 올라오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흠, 그걸 막다니. 역시 근위기사단장인가?”
융켄을 놀라게 만든 청년이 방금 전까지 융켄이 서 있던 자리에서 주먹을 털며 태연히 중얼거렸다.
콰아아아앙!
멀리서 들려오는 묵직한 쇳소리에 시선을 돌린 융켄의 시야에 잡힌 것은, 왕국기사단원들이 한 덩치가 휘두르는 해머에 고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자, 단장님. 죄송하지만 저희도 시간이 많지 않아서요.”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쥔 청년이 몸을 풀며 말했다.
“조금 빠르게 가겠습니다.”
피이잇!
청년의 몸이 마치 밤하늘에 빛나는 달과 같이 유려한 발걸음으로 융켄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