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1
011화
푸르릉!
“그래. 오랜만에 나오니까 좋지?”
투레질하는 말들의 등을 빗으며 로렌스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주머니에 넣어 놓은 당근 조각을 하나씩 먹이고 마차와의 연결부를 꼼꼼히 살폈다.
로렌스의 시선은 멈추지 않았다.
바퀴는 이상이 없는지, 혹여 더러워지거나 파손 된 부분이 없는지 눈에 힘을 주고 샅샅이 살펴나갔다.
이미 어제 밤에 최종 점검을 마쳤지만 충직한 늙은 하인은 그러한 사실을 잊은 채 더욱 열과 성을 다해서 마차를 확인했다.
“괜찮구나.”
가볍게 한숨을 쉬며 허리를 핀 로렌스의 눈에 그림 같은 저택이 들어왔다.
“햐아.”
저절로 감탄이 나오는 풍경.
고위 귀족가의 저택치고는 크지 않은 편이었다.
서민의 저택에 비하면 궁궐이 따로 없지만 귀족가의 저택치고 부지를 넓게 쓴 것도 아니고 층수도 2층에 불과하니 규모만 놓고 본다면 시골 어딘가의 기사 장원 정도의 크기.
하지만 본디 부동산이라는 것은 입지 아닌가.
이 저택이 위치한 곳은 유피테르 내부에 조성된 광대한 숲의 내부.
높은 지대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숲은 도시의 경관을 살리는 의미도 있지만 고위 귀족들의 별장을 짓기 위해 조성한 면이 꽤 컸다.
실제로 숲의 한가운데에는 황제의 별장이 있었고, 황제의 별장을 중심으로 적당히 거리를 둔 고위 귀족들의 별장이 곳곳에 조성되어 있었다.
이 숲에 별장을 소유한 것은 귀족중의 귀족들 뿐.
어지간한 백작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지방의 하위 귀족들은 유피테르에 이러한 별장들이 있는 것도 모르는 이들이 태반일 정도였다.
3개월 전 처음 이 별장을 인수받고 내용을 들었을 때, 기절할 만큼 놀랐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라 로렌스는 고개를 저었다.
메카니 공작가를 향해 베로아가 쌍심지를 켜고 덤벼든 배상 요구.
그 배상 요구의 결과가 이 별장의 소유권과 적당한 수준의 배상금이었다.
물론 적당한 수준이라는 것이 공작가의 기준이라는 것이어서 백작가의 시녀장 출신이었던 베로아도 놀랄 만한 금액이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했던 것은 이 별장.
칙령으로 더 이상 숲에 별장을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 유피테르 숲의 별장은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었고, 그러한 별장을 백작도 아니고 백작가의 후계자 중의 하나에게 보상으로 내놓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과한 대응이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메카니 공작가에서 제법 발언권이 있는 렌의 증언과 마법사와 정령사까지 동원한 현장 실사를 통해 아렌의 무력과 발전 가능성까지 파악한 공작가의 꼼수가 끼어 있었지만 베로아로서는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이 경애하는 도련님이 명예에 합당한 대우를 받았으니 만족했을 뿐.
아렌으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메카니 공작가는 별장의 소유권을 그라인드 백작가가 아닌 아렌 드 그라인드 앞으로 돌려놓는 수완을 보였다.
그 짧은 사이에 그라인드 백작가에서 아렌이 받는 대우와 2부인과의 알력을 파악하고 혹시라도 추후에 아렌이 그라인드 백작가와 연이 끊어질 때를 대비한 메카니 공작가의 투자선점이었지만 그런 내용까지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니었고.
그런 것 보다는 본인 소유의 집이 생긴 것이 아렌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백작가의 후계자라는 고귀한 신분이기는 하지만 그 자리는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신세.
냉정하게 말하면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 신세였던 아렌에게 자신만의 근거지가 생긴 것이니 제 아무리 무던한 아렌이라고 할지라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은 가득하지만 불안하기 짝이 없던 입지에 내심 미래를 걱정하던 하인들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으니 이제는 시비를 걸어왔던 크리앙이 예뻐 보일 지경.
삭초제근朔草諸根이 무림의 불문율이라지만 아렌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크리앙에 대한 모든 생각을 접었고, 그것은 베로아와 벡스터를 비롯한 하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도련님 나오셔요.”
저택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유나의 목소리가 상념에 빠져 있던 로렌스를 현실 세계로 돌려놓았다.
허겁지겁 달려와서 로렌스의 옆에 자리를 잡은 유나와 센드를 보면서 로렌스도 몸가짐을 바로 잡았다.
잠시 후, 정복을 멋지게 차려 입은 벡스터가 앞서고 베로아를 뒤에 세운 아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백금발과 그림 같은 이목구비를 가진 왜소한 소년.
보는 순간 모성애가 절래 일어날 것만 같은 아름다운 소년이지만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 때문에 전체적으로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렌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로렌스와 유나, 센드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아렌은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연히 하인들의 말 수도 줄어들었으니 그저 몸짓으로 충성심을 표한 것뿐이었다.
“음.”
아렌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아렌의 뒤에 시립해 있던 베로아가 로렌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준비는 다 됐나요?”
“예. 시녀장님.”
오늘을 위해 잘 먹이고 관리한 말들은 몸에서 윤기가 흘렀고, 로렌스가 방금 전까지 심혈을 기울였던 마차역시 특별한 흠을 찾을 수 없었다.
베로아가 만족하며 미소를 지었고, 벡스터가 마차의 문을 열었다.
“타시죠. 도련님.”
아렌이 천천히 마차에 올랐고 이어서 벡스터와 베로아가 아렌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저택을 부탁한다.”
“예. 걱정 말고 다녀오세요. 시녀장님.”
다부지게 고개를 끄덕이는 센드와 유나를 보면서 로렌스는 마차를 천천히 출발시켰다.
* * *
카일룸 제국이 왕국이었던 시절 현명하고 위대했던 왕은 국가의 미래가 인재를 길러내는 것에 있음을 확신하고 인재를 모집하고 교육하기 위해 도시를 건설했다.
성을 하나 짓는 것도 천문학적인 인력과 자금, 시간이 들어가는 일인데 하물며 하나의 도시를 조성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대역사.
많은 신하들과 귀족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왕은 국운을 걸고 도시를 건설했고, 결국 그 도시에서 교육받은 인재들은 왕국이었던 나라를 위대한 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만들었으니 후세의 모두가 현명하고 위대한 왕을 칭송했으며 그가 만든 도시를 찬양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 도시의 이름은 유피테르.
천공신의 이름을 딴 도시는 그 이름에 카일룸 제국의 위상을 하늘로 드높이기 위해서 오늘도 무수한 인재들을 육성하고 있었다.
“조금 다르구나.”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나아가는 마차 안에 앉아서 느긋하게 밖을 구경하던 아렌이 중얼거렸다.
워낙에 입지가 좋은 곳에 위치한 터라 사람들이 가득했던 유피테르의 거리가 오늘따라 한산해 보였기 때문.
거리 곳곳에 자리한 수많은 가판들도 문을 닫았고, 이쯤이면 응당 달려와야 할 호객꾼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거리를 오가는 몇몇과 간간이 보이는 마차의 행렬만이 유피테르의 거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오늘이 아카데미 입교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렌의 눈동자에 희미하게 어려 있는 의문을 본 베로아가 말을 이었다.
“유피테르 아카데미는 제국의 인재가 모이는 곳이고 아카데미를 졸업한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제국의 중책을 맞게 되거나 영지의 후계자가 됩니다. 애초에 아카데미에 입교 자격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고위 귀족의 자제이거나 능력을 인정받은 인재라는 것이죠.”
귀족도 다 같은 귀족이 아니듯, 유피테르 아카데미는 귀족의 자제라고 해도 무조건적으로 입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최소 백작.
남작이나 자작, 훈작사의 자제들은 아카데미에 입교하기 위한 자격을 증명해야 하고, 그렇게 거르고 걸러진 인재들만이 유피테르 아카데미에 입교할 자격을 얻는다.
자연히 엘리트 의식이 싹틀 수밖에 없고 어쭙잖은 선민의식은 아직 어린 인재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기 마련.
그렇기 때문에 아카데미 입교일만큼은 유피테르 전체가 멈춘다.
그들에 대한 기대와 축하의 의미도 있지만 주목과 부담감을 주어 행여나 엇나갈 수 있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유피테르는 교육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중계 무역로의 위치도 굉장히 가치가 높습니다. 하루를 멈추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유피테르에서 거래되는 재화를 생각하면 손해가 막심하죠. 그럼에도 이 전통은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도 멈출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막대한 금액을 손해 보더라도 너희들을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직접적이고 강력한 의사 표현.
입교를 허락받고 한참 엘리트 의식에 젖어 있을 학생들에게는 따끔한 일침이 될 수 있을 것이리라.
“아카데미가 보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 속에 로렌스의 목소리가 들렸고 어느덧 마차는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위대한 왕의 거대한 동상이 굽어보는 아카데미의 정문 앞에는 수많은 마차들이 주기해 있었다.
“아카데미 내부에는 마차를 몰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베로아가 아렌에게 조용히 말했고, 미리 이야기를 들었는지 나이만큼이나 능숙한 솜씨의 로렌스가 솜씨 좋게 한쪽에 마차를 주기했다.
벡스터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내렸다.
“내리셔도 됩니다.”
입고 있는 정복만큼이나 절도 있는 태도로 주변을 살핀 벡스터가 로렌스와 문 옆에 시립했고 어느새 밖으로 내린 베로아의 뒤로 아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카데미에 입교가 허락된 사람이라면 고위 귀족이거나 세상이 인정한 인재.
특별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마차 옆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았다.
“으. 음!”
“허어!”
엄격한 교육을 받고 품위를 지키는 것이 가문의 얼굴이라는 생각을 가진 귀족가의 시종들이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탄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세상 속에 속한 것 같지 않은 그 미모에 한번 놀라고, 그 미모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분위기에 다시 한 번 놀라는 과정이다.
“가시죠.”
주인이 주목을 받는 것은 하인 된 자로서 가슴이 뿌듯해지는 일이지만 얼굴에 힘을 주어 표정을 감추고 벡스터가 앞장섰다.
깊숙이 허리를 숙여 주인의 외출을 배웅하는 로렌스를 뒤로 하고 셋의 발걸음이 아카데미의 정문으로 향했다.
* * *
문을 지키는 기사에게 신분을 증명하고 아카데미의 내부로 들어서니 좌우로 나무가 무성한 대로가 펼쳐졌다.
빽빽한 숲 한 가운데 나있는 대로 너머로 건물들이 보였고, 그곳까지 걸어가야 하는 상황.
제법 먼 거리이기는 하지만 일행은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경애하는 도련님이 두 다리로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분통이 터지려 했지만 베로아는 마음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 내부에서 마차를 타거나 말을 탈 수 있는 것은 오직 황제와 황제가 허락한 사람 뿐.
그나마도 급한 경우에 소식을 전달하는 전령에 한할 뿐이고 마법 통신이 대중화된 이후부터는 실질적으로 황제 이외에는 아카데미에서 마차를 탈 수 없었으니 백작가의 자제인 아렌이 걸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일행의 앞에도 드문드문 걸어가는 입교생들이 보였고 모두가 같은 상황이니 베로아도 묵묵히 걸음을 옮기며 주변을 살폈다.
앞으로 아렌이 다녀야 할 아카데미의 내부를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 놓으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니 멀리 떨어져 보이던 건물도 이제는 제법 가까워 보이는 거리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 도련님을 쉬게 해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베로아의 마음이 차분해지는 그때.
“재미있는 일이 있는 모양이구나.”
문득 발걸음을 멈춘 아렌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건물 저 너머를 응시하는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