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2
012화
트리안은 제국의 최북단에 위치한 고른 자작가에서 태어났다.
귀족적인 권위가 강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약간 경직된 분위기가 있기는 하지만 카일룸 제국은 대륙의 문화를 선도하는 곳.
피와 강철이 지배했던 과거의 모습을 버리고 본격적인 문화가 피어나고 있는 곳이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풍요로운 제국 중앙과 남부의 이야기.
황량한 동부와 혹독한 북부는 자연에 맞서 생존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특히나 북부는 사시사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것도 모자라서 시도 때도 없이 몬스터 무리가 몰려오는 곳이니 자연히 사람들은 거칠고 투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유피테르 아카데미의 입교 자격을 확보한 그날부터 트리안은 가문의 기대를 몸에 얻고 북부에서 중앙으로 향했다.
남쪽으로 향할수록 따뜻해지는 날씨와 풍요로운 대지에 감탄하던 것도 한때.
북부와 비하면 너무나도 평화로운 땅을 바라보면서 트리안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고, 제도帝都의 화려한 모습과 유피테르의 풍요는 그의 울분을 폭발시켰다.
북부의 전사는 거칠고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지만 지극히 냉정한 사내들이다.
하지만 트리안은 북부의 전사라고 불리기에는 아직 미숙한 면이 있었다.
분노로 가득한 지금의 트리안은 북부의 전사이기보다는 갈 곳 없는 울분을 폭발시키기만을 기다리는 토라진 아이에 가까웠다.
늘 삶과 죽음을 함께하는 북부를 벗어나다보니 때늦은 반항기가 찾아온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트리안의 눈에 비친 유피테르 아카데미의 신입생들은 그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애송이들뿐이었고 상대적인 박탈감과 갈 곳 없는 분노는 폭발 직전에 이르러 있었다.
부모님이 정성스레 장만해 주신 가죽 갑옷은 튼튼했고 그의 생명을 몇 번이나 살려 준 그의 보물이었지만 입교생들의 화려한 복장과 비교하면 빛이 바랬다.
분노는 더욱 가증되었고 자연히 그의 행동은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툭.
그리고 그 순간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심지가 당겨지기 시작했다.
“비켜.”
입교생들이 모이는 장소로 선택된 공터는 제법 넓었지만 200명에 가까운 인원과 그 수행원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었다.
자연히 밀도가 높아졌고 높아진 밀도만큼 불가피한 접촉도 일어나기 마련.
들끓는 속을 다스리기 위해 그늘 쪽으로 향하던 트리안에게 누군가가 부딪쳤고 트리안은 초월적인 이성으로 분노를 억누르며 상대방에게 나름 정중하게 말했다.
“······말이 짧군.”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트리안의 기준.
북부인 특유의 큰 덩치와 투박한 외모, 거기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에 짧은 말투가 합쳐지니 좋게 봐 주면 험악한 용병이고 나쁘게 보자면 연쇄살인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각자의 능력을 증명하거나 고위 귀족의 자제들뿐.
고작 연쇄살인마 따위에 벌벌 떨 자들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은 사내도 다르지 않았다.
“뭐?”
“말이 짧다고 그랬다. 행색을 보아하니 제대로 된 예절을 배우지 못한 모양이군.”
삐쩍 마르고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오만한 말투로 말했다.
화려하지만 과하지는 기품 있는 의상은 남자의 신분을 짐작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고위 귀족의 자제, 아니더라도 만만치 않은 귀족 가문의 자제이리라.
하지만 트리안은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눈앞의 남자가 말 한마디로 북부의 신민들을 지키는 자랑스러운 가문을 모욕했다는 것뿐.
사람이 머리끝까지 화가 나게 되면 도리어 차분해지는 법이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트리안은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 검 손잡이를 잡았다.
“······뭣!”
아무런 말도 없이 임전태세에 들어간 상대의 태도에 당황하며 사내, 네이던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벌렸다.
스르릉.
웅성거리던 공터의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고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트리안은 애송이들이라 폄하했지만 이곳에 모인 이들은 자신의 자격을 증명한 엘리트들뿐.
이 자리에서 들리지 않아야 할 무기의 소리에 집중하지 않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무슨 짓이냐.”
이제는 완전히 검을 뽑아들고 기세를 풍겨내기 시작한 트리안을 보면서 네이던은 이를 악물며 물었지만 이어진 트리안의 대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이름은 트리안 드 고른.”
형형한 눈빛의 트리안이 노려보는 것을 보면서 네이던은 아차 했지만 이미 뱉어진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가문의 명예를 모욕한 대가를 받겠다.”
행색만을 보고 실력 좋은 용병이거니 섣불리 판단한 네이던은 상대방의 가문을 모욕한 셈이 되어버렸다.
“······네이던 드 가룸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사과를 하면 끝날 일이다.
고작해야 말 한마디이니 상황에 따라서는 서로 간에 돈독한 친교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할 수도 있었을 것.
‘고약하게 됐군.’
하지만 네이던은 그럴 수 없었다.
일단 네이던의 성격이 지극히 귀족적인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이들 앞에서 물러나서는 안 된다.’
앞으로 제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것이 분명한 인재들 앞에서 자칫 약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평생 동안 그 평가가 따라다닐 것이다.
귀족 사회는 의외로 좁은 법.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여기서는 강단 있게 맞붙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네이던과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훙.
마음을 굳힌 네이던이 양 손을 앞으로 내밀자 주변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법사냐.”
나직이 으르렁거리며 트리안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불어넣었다.
훅.
순간적으로 검을 감싸는 오러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입교생들의 눈에 흥미로운 눈빛이 깃들었고.
“호오.”
나직한 감탄사와 함께 아렌의 일행이 공터로 들어섰지만 아무도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 * *
“흐음.”
절도 있고 우아한 손놀림으로 찻잔을 들어 향을 음미한 베네프트 교수는 공터로 들어서기 시작한 입교생들을 관찰하고는 혀를 찼다.
“올해 입교생들은 수준이 좋지 않군요.”
“글쎄요. 실력들은 제법 있어 보입니다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흘기는 베네프트 교수의 모습을 본 리암은 쓴 웃음을 지으며 또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실력은 키우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품성이에요! 엘레강스한 품격을 갖춘 인재들만이 제국의 미래를 지배할 수 있는 겁니다!”
리암의 눈에 들어온 입교생들은 충분히 절도가 있고 품위가 넘쳐흘렀지만 베네프트 교수의 말에 반박하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다.
공터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자신의 교수실에서 입교생들을 내려다보던 베네프트는 입교생 하나하나를 바라보면서 쉴 새 없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저 학생은 엘레강스라는 것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군요! 복장만 화려하게 한다고 엘레강스가 피어오르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저 머저리는 뭐랍니까? 실용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예장용 검을 차고 오다니! 그나마 저 학생은 조금 쓸 만하군요. 걸음에 품위가 있어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자신만의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오만함을 가진 베네프트의 말을 듣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울분이 치솟기 마련이지만 이미 단련될 대로 단련된 리암의 겉모습만은 평온 그 자체였다.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본인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베네프트의 단점은 엘레강스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그 성격.
그 신앙과도 같은 집착에 그를 상대하는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들까지도 고개를 흔들며 도망갈 정도였지만.
그런 단점을 묻어버릴 정도로 베네프트의 실력은 뛰어났다.
마법학에 관해서는 유피테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권위자이자 뛰어난 마법사이기도 한 베네프트는 의외로 배려심이 있으며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고, 그것이 리암이 베네프트의 밑에서 그를 호종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오! 엘레강스! 걸음과 시선 움직임에 품격이 가득하군요!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군. 저 아이는 누구죠?”
“서든 백작가의 자제입니다.”
일반인을 한참 상회하는 초월적인 기억력을 가진 리암은 한번 본 것을 잊는 법이 없었고, 그것을 잘 아는 베네프트 역시 리암을 음으로 양으로 챙겨주고 있었으니 둘은 제법 잘 맞는 사이였다.
“저런.”
진흙 속에서 보석을 발견한 듯, 자신의 기준에 맞는 학생을 발견한 것에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인 것도 잠시.
트리안과 네이던이 대치하는 상황이 눈에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매년 거르는 법이 없네요.”
원래 싸움구경과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는 법.
희미하게 웃으며 말하는 리암에게 베네프트가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다 엘레강스한 정신을 갖추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올해 신입생들은 특별히 신경 써야겠군요.”
입교생들이 들으면 경기를 일으킬 만한 말을 태연스럽게 지껄이는 베네프트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리암은 공터로 시선을 집중했다.
어느덧 대치를 끝내고 전투 상황으로 돌입한 둘.
입교생들이 알아서 자리를 구석으로 물러나며 자리를 마련해 둔 덕분에 마법사에게 공간의 불리함이 사라진 탓일까.
꽤나 치열하게 전개되어 가는 대결의 모습에 베네프트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북부인으로 보이는 검사의 검에 흐르는 강맹한 오러는 무엇이든 부숴 버릴 것만 같았고 귀족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꽤나 실전경험이 많은지 대응하는 마법사의 절도 있는 대처는 눈을 즐겁게 만들 정도.
물론 베네프트나 리암의 눈에는 거기서 거기인 애송이들이기는 하지만 원래 싸움 구경은 하수들의 개싸움이 재미있는 법이다.
“호오. 북부인으로 보이는데 제법 몬스터를 상대해 본 모양이군요. 투박하지만 실전적이에요. 엘레강스한 마음가짐만 갖추면 제법 괜찮은 기사가 될 수 있겠어요.”
“마법사도 대처 능력이 나쁘지 않습니다. 하긴 가룸 백작가도 숭무崇武적인 기풍이 강한 가문이기는 하죠. 책상머리에서 공부만 시킨 마법사는 아니군요.”
말리기는커녕 이런저런 평가를 하기 시작한 베네프트와 리암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고 그러는 와중에 싸움은 점점 점입가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트리안의 오러가 날뛰기 시작하고 네이던도 점점 파괴력 있는 마법을 쏘아내는 모습에 공터에 있는 입교생들도 조금씩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때.
“뭔가요!”
“위험합니다. 교수님!”
네이던이 날려 보낸 빛의 구체를 트리안이 회피했고, 공터의 구석으로 향하던 빛의 구체가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더니 쏘아져 나갔던 것보다 몇 배나 빠른 속도로 그들이 있는 교수실로 날아들었다.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오는 구체에 순간적으로 놀란 베네프트의 앞으로 리암이 나서며 급하게 방어막을 전개했다.
콰장창!
폭음과 마법의 폭발이 교수실을 덮쳤고, 방어막과 부딪친 빛의 구체는 임계점을 넘어서서 그 힘을 세상으로 해방했고, 폭음과 함께 일어난 힘의 폭발은 커다란 창문이 자리하던 교수실의 벽을 순식간에 테라스로 바꿔 버렸다.
“······ 윈드WIND.”
은은한 빛이 일렁이는 방어막의 뒤에서 베네프트의 나직한 영창소리와 함께 바람이 불었다.
절묘한 컨트롤로 발현된 바람은 교수실에 가득한 먼지를 밀어내기 시작했고 동시에 그들은 다시금 공터를 바라볼 수 있었다.
전투는 멈춰 있었다.
둘만의 투덕거림이면 상관없지만 건물 한쪽 면이 날아가 버렸으니 대형 사고였고 자연히 멈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트리안과 네이던을 포함한 공터의 모인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해 있었다.
베네프트와 리암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공터의 한쪽으로 향했고, 그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너무도 아름답지만 표정이 없어서 기괴한 분위기를 풍기는 소년.
아렌이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곳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