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뜻하지 않은 괴현상에 헤르메스의 영지민들이 술렁인 것도 잠시, 영지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교역도시의 특성상 영지민들은 대부분 바빴고, 마법과 몬스터가 실존하는 세상이니 억지로 넘어가지 못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헤르메스에서 일어난 이상기후는 빠르게 제국 전체로 퍼졌고, 이 일로 인해 이후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저택으로 돌아온 아렌은 집 안에 박혀서 조용히 지냈다.
아침마다 놀러오는 엘렌과 놀아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밖으로 외출하지 않는 아렌이었지만, 저택의 그 누구도 방심하지 않고 항시 아렌의 일거수일투족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자온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은 에드워드는 아렌의 무심한 눈길을 받으며 식은땀을 흘렸지만, 어떻게 넘어갈 수 있었다.
자온은 헤르메스의 치부와도 같은 곳.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는 에드워드의 변명이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고, 목숨을 건진 에드워드는 바인드를 소개받았다.
정보길드는 유능하기 그지없어서, 자온에 떠돌고 있는 하급과 중급의 영약들을 종류별로 쓸어왔고, 봉인체에 대한 정보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님을 아렌도 인지하고 있었기에 넘어갈 수 있었다.
신중하게 영약을 고르고 로렌의 치료를 계획하는 아렌을 뒤로하고 바인드와 에드워드는 머리를 맞댔다.
실질적인 아렌의 가신이었으니 그라인드와도 무관한 사이가 아니게 된 바인드와 백작가의 내부를 총괄하는 에드워드는 할 이야기가 제법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숙덕이던 둘이 만족한 얼굴로 악수하고 헤어졌고, 아렌이 로렌에 대한 치료계획의 방향을 잡을 무렵 제도에서 달려온 전령이 헤르메스에 도착했다.
* * *
“얍.”
힘이 잔뜩 들어간 기합과 함께 몸을 일으킨 엘렌이 두 눈을 몇 번 끔벅이더니 침대 밑으로 뛰어내렸다.
푹.
다행이도 침대 밑에는 제법 두꺼운 쿠션들이 깔려있어서 엘렌이 다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아직 어린아이가 하기에는 위험한 행동인 것이 사실, 아니나 다를까 날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그러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헤헤헤헤.”
엄한 표정으로 질책하는 시녀의 모습에 엘렌은 어깨를 움찔거리더니 이내 환하게 웃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아예 침대 밑에 쿠션을 두껍게 깔아 놓은 것이었으니, 엘렌의 유모는 진지하게 침대의 높이를 낮추는 것에 대해서 잉그리드와 상의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뿐.
헤헤거리며 눈치를 살피는 엘렌의 모습에 유모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아무튼! 다시 이러시면 안 돼요!”
“응. 응.”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엘렌의 모습에 자그마한 한숨을 내쉰 유모가 엘렌의 손을 잡더니만 침실 밖으로 이끌었다.
베실베실 웃으며 유모에 이끌린 엘렌이 대기하고 있던 시녀들에게 넘겨지고, 시녀들이 엘렌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니 인형 같은 모습이 되었다.
“정말 아가씨는 모시는 보람이 있다니까.”
“어쩜 이리 귀여우실까.”
시녀들의 손길과 미소에 환하게 웃은 엘렌이 유모의 손을 잡고 방을 나섰다.
잉그리드에게 인사를 마치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엘렌이 향한 곳은 아렌의 방.
잉그리드와 아렌의 복잡한 관계를 잘 아는 유모의 표정에 근심이 어렸지만, 엘렌은 그저 아렌을 만나러 간다는 것이 좋았다.
한참 예쁜 것을 좋아하는 어린 아이에 천성이 밝은 엘렌이다.
거기에 아이답게 자신에게 향하는 호의와 적의를 본능적으로 구별할 줄 아니, 사실상 백작가 전체에서 아렌을 앞에 두고 긴장하지 않는 것은 엘렌이 유일했다.
엘렌은 아렌이 좋았다.
지금처럼 훌쩍 커지기 전에도 자신과 항상 놀아준 오빠이고, 아렌이 자리를 비웠을 때, 한참 안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는 며칠을 울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예쁘고 커져서 돌아왔지 않은가.
엘렌이 무슨 말을 하든지 아렌은 귀를 기울였고, 아빠만큼이나 커다란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으니, 아렌과 함께 있을 때 엘렌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아렌 오빠아아.”
아렌의 문을 활짝 열며 들어선 엘렌이 희미하게 웃으며 자신을 반겨줄 아렌을 상상하며 환하게 웃었다.
“어라?”
“엘렌 아가씨.”
하지만 아렌은 자리에 없었고, 방을 한참 정리하던 베로아가 허리를 숙이며 엘렌을 맞았다.
“베로아아.”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부르는 엘렌의 모습에 베로아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올랐다.
아이의 미소에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힘이 있는 법이고, 그것이 엘렌처럼 귀여운 아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베로아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기꺼운 마음으로 엘렌의 앞에 무릎을 꿇고 눈을 맞췄다.
“잘 잤나요? 아가씨?”
“응!”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 엘렌이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더니만 베로아에게 물었다.
“아렌 오빠 어딨어?”
종달새가 지저귀는 것 같은 엘렌의 목소리에 미소를 지은 베로아가 엘렌의 옷차림을 정리하며 답했다.
“도련님은 백작님에게 가셨습니다. 이야기 하실 게 있다고 하시더군요.”
백작가에서 어느 정도 직책에 있는 사람들이 다 모인 회의였지만, 엘렌의 눈높이를 생각했을 때는 이 대답이 맞았다.
“그래?”
금새 시무룩해진 엘렌을 보며 미소 지은 베로아가 말을 이었다.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으니까 그 동안은 저희와 시간을 보내시는 게 어떨까요?”
베로아의 손짓에 뒤에서 공손하게 서있던 유나가 앞으로 나섰다.
“유, 유나아?”
“예. 유나입니다. 아가씨.”
고개를 갸웃거리는 엘렌에게 웃어 보인 유나가 정령을 불렀다.
공기중의 수분이 뭉치더니만 이내 엘렌의 눈앞에 물방울로 이루어진 작은 소녀가 나타났고, 엘렌의 두 눈이 화들짝 놀라 커다래졌다.
“와아아!”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엘렌의 눈앞에서 운디네가 슬며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운디네에 마음을 빼앗긴 엘렌이 환하게 웃으며 뒤를 쫓았다.
그렇게 방의 한쪽으로 움직이는 엘렌과 유나를 바라보던 베로아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금 전의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싸늘한 표정을 지은 베로아의 눈에 놀란 눈을 하고 입을 막고 있는 유모와 시녀들이 보였다.
“저, 정령.”
“쉿.”
손가락을 들어 시녀의 입을 막은 베로아에게서 위엄이 흘렀다.
“아가씨가 놀라십니다.”
“예. 예.”
운디네를 쳐다보며 연신 웃음을 터트리는 엘렌을 일변한 베로아가 유모와 눈을 맞췄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눈동자에 흠칫한 유모였지만, 이내 이를 악물었다.
아렌과 잉그리드의 불화는 저택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훌리오의 비참한 최후는 잉그리드를 앓아눕게 만들었으니, 베로아를 바라보는 유모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유모와 시녀들 역시 게하르의 사람들이다.
당연히 아렌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고, 그것은 아렌을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는 베로아 역시 그랬다.
그라인드의 풍요에 취해서 부드러워졌다고는 하지만 유모와 시녀들 역시 북부의 여인들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는 중부의 여자 따위는 단숨에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 있었지만, 도저히 베로아에게 덤벼들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가씨는 저희가 돌봐드리겠습니다.”
“그럴 수는 없어요.”
냉기마저 감도는 베로아의 말에 유모가 한발 앞으로 나섰고, 베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보시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며 등을 돌리는 베로아의 모습에 유모와 시녀들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 *
끼이익.
육중한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귀공자가 느릿한 걸음으로 방에 들어섰고, 한 명을 제외한 장내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도련님.”
경쟁하든 고개를 숙이는 가신들의 모습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걸음을 옮긴 아렌이 유일하게 앉아 있는 사내, 알코르에게 고개를 숙였다.
“간밤에 편안하셨습니까.”
“……그래. 앉아라.”
그런 아렌의 모습에 복잡한 표정을 짓던 알코르가 비어 있는 자리를 가리켰고, 아렌이 우아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았다.
그 모습에 몇몇의 가신들이 감탄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이내 각자의 자리에 앉은 가신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저택 내부에 위치한 회의실이다.
업무의 분업이 잘 되어있는 그라인드 백작가는 가신들의 재량권이 높아서 어지간한 일들은 각자가 알아서 처리하지만,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이렇게 회의실에 모여서 성과를 공유했다.
하지만 오늘은 정기 회의의 날이 아닌 알코르의 호출로 인해 모두가 모인 자리다.
각각의 가신들은 권한이 막중한 만큼 꽤나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러한 자신들을 불러 모은 일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궁금했고, 너무 큰 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 표정이 굳어진 것이다.
수십 명의 가신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보면서 알코르가 입을 열었다.
“에드워드.”
“예. 백작님.”
심각한 표정을 지은 에드워드가 자리에서 일어나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냈다.
화려한 금박이 입혀진 종이의 모습에 대부분의 가신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몇몇 노년의 가신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늘 아침에 제도에서 도착했습니다.”
“크흠.”
“……황제인가.”
제도라는 단어에 가신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위대한 정복군주인 황제지만 정작 고위 귀족들 중에서 황제를 좋아하는 이들은 몇 없었다.
탁월하기 짝이 없는 능력으로 영토를 넓힌 것은 좋았지만, 그것은 온전히 황제 자신의 능력이었으니 귀족들의 영향력은 늘어나지 않았다.
비대해진 황권은 사사건건 귀족들을 옥죄려고 들뿐이니 당연히 황제를 좋아할 수 없었고, 거기에 현 제국의 영토 절반 이상이 한때 제국과 반목하던 지역이었으니 정복자에 대한 시선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라인드 백작가의 경우에는 옛 왕국시대 때부터 제국에 속해 있던 귀족가문이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황제에게 꽤나 많은 재산을 뜯겼고, 그것은 제아무리 황금의 그라인드라고 할지라도 쉽게 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또 뭘 요구하려는지.”
“……이번에는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과도한 전비 지원에 머리가 아픈데 여기서 추가로 뭘 원한다는 거는 말이 안 되지요!”
자손이 귀한 그라인드에게 병역의 짐을 지우는 대신 황제는 막대한 전비를 요구했고, 혈손을 우선시하는 그라인드는 묵묵히 황금을 바쳤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 아니겠는가.
그라인드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라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날아든 황제의 서신은 가신들의 분노를 폭발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열이 오른 가신들이 제각기 한마디씩 거들자 회의실은 금세 난장판이 되어 버렸다.
제각각 쌓여있던 분노를 표출하며 목소리를 높이려던 그때였다.
“그만.”
나직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있는 모두의 귀에 박혀들었고, 등골에 소름이 돋는 느낌에 모두의 입이 멈췄다.
알 수 없는 공포심에 조심히 시선을 돌린 모두의 눈에 표정 없는 얼굴을 한 아렌의 모습이 들어섰다.
“백작님께서 계신 자리다.”
아렌의 목소리가 주는 위엄에 모두가 허리를 빳빳이 세웠다.
“예의를 지켜라.”
그 순간 모든 가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알코르를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백작님!”
그 모습에 아렌은 만족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알코르의 표정은 더욱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