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nts gone crazy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마차가 저택으로 들어서자 에드워드를 비롯한 사용인들이 두 줄로 늘어서 아렌을 맞았다.
로렌스의 마차 솜씨는 날로 늘어나 이제는 탑승자에게 어떠한 진동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고, 그만큼 탁월한 조종기술은 마차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해진 자리에 서게 했다.
호종하던 기사가 조심히 문을 열었고, 아렌이 마차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고생하셨습니다. 도련님.”
인사와 함께 에드워드가 고개를 숙이자, 두 줄로 도열해 있던 인원 전체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경외와 공포가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끼며 아렌은 고개를 끄덕이며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사용인들은 감히 움직이지 못했고, 오직 에드워드만이 아렌의 뒤를 따르며 저택으로 향했다.
“영지에 재미있는 자들이 모여 있더구나.”
“그라인드의 위광에 취해 제멋대로 모여든 모양입니다.”
아렌이 감지하는 범위는 갈수록 늘어나서 이제는 헤르메스 전체를 아래에 두고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정보가 아렌의 뇌를 두드리고 있었고, 일반인은 접하는 것만으로도 미쳐 버릴 정도였지만 이것마저도 수련의 일환으로 생각하는 아렌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항상 감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헌데 유독 오러와 마나를 각성한 자들이 늘어났으니 외부에서 온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었고, 오러와 마나는 신분의 척도를 의미하는 것.
귀족이나 기사 신분의 사람들이 분명했고, 그것을 물은 것인데, 유능한 에드워드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답을 한 것이다.
“뭐. 괜찮겠지.”
에드워드의 대답에 아무렇지 않게 넘겨 버린 아렌이었지만, 에드워드의 생각은 달랐다.
귀족들만큼 힘의 방향에 민감한 자들은 없었고, 그러한 자들이 속속들이 헤르메스로 모여든다는 사실은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기 때문이다.
‘힘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황제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지금 귀족들이 세력을 모으기 시작한 거야.’
이제 제국의 각 지역에서는 거대한 세력들이 출현하게 될 것이고, 분명히 그 중에는 그라인드의 이름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무리는 잘 했느냐?”
“기사단과 마법사, 정령사를 보냈습니다. 전과 같이 철저히 털어오겠지요.”
자신만만한 에드워드의 대답에 아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코프를 시작으로 아렌이 붕괴시킨 성만 벌써 네 개.
잔혹하기 짝이 없는 행위였지만 명분이 확실하고 끝을 알 수 없는 힘을 지닌 아렌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지전의 일종이라고 봐도 되었으니, 네 개의 영지를 병합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알코르와 아렌은 그러지 않았다.
땅이라는 것은 귀족의 모든 것.
제아무리 성이 날아가고 영지민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땅만 남아 있다면 어떻게든 일어서는 것이 귀족이다.
그런 땅을 무리해서까지 얻을 필요는 없다고 알코르는 판단했고 아렌도 동의했다.
그라인드 역시 땅이라면 충분했으니까.
애초에 영지를 병합할 목적이었다면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성을 파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대한 그라인드의 분노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제국은 그라인드의, 정확히는 아렌에 대한 공포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앞의 이익을 버려둘 수는 없는 법.
황금의 그라인드라고 불리는 백작가의 가신들은 절대 허투루 일하는 법이 없었고, 아렌이 파괴한 성의 잔해를 샅샅이 뒤졌다.
유서 깊은 가문이라면 보물 하나쯤은 전승되어 오기 마련이고, 비상시를 대비한 황금이나 보석 등을 쌓아두기 마련이다.
거기에 무사하다는 전제가 붙어야 하기는 하지만 각종 서적과 영약 등등, 성 하나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았고, 성의 재정을 관리하는 아인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아버님은 어디 계시지?”
첨예해진 감각이 저택 내부를 구석구석 살피고 있어서 알코르는 물론이고 저택 내부에 있는 인원 전부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아렌이었지만 굳이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손님이 오셔서 응접실에 계십니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드워드가 대답했고, 아렌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백잠님이 맞아야할 정도의 손님인가?”
“보통 신분은 아니십니다.”
알코르는 당대 그라인드 백작이다.
신분의 높음은 물론이고 끝도 모를 황금을 가졌다는 그라인드 백작의 자리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작위만 백작일 뿐이지 실제로는 공작에 준하는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알코르였고, 그런 알코르가 직접 나서서 맞아야 하는 상대는 제국에 몇 없는 상황이다.
거기에 아렌으로 인해서 백작가의 위상이 하늘 끝까지 치솟은 지금은 더욱 그러했으니, 자연히 상대의 신분이 높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러면 아버님은 나중에 뵈어야겠군.”
손님이 있는 상황이니 방해를 할 수는 없는 법.
아렌이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리려는 그때, 에드워드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이 도착하시면 모시라는 분부가 있었습니다.”
“그런가?”
“예. 로렌 도련님도 같이 계십니다.”
“흠.”
잠시 생각하던 아렌이 에드워드을 바라보았다.
“앞장서라.”
“예.”
저택의 내부를 가로지르는 둘의 모습을 본 사용인들이 분분히 허리를 굽혔다.
* * *
사내는 전형적인 귀족의 용모를 가지고 있었다.
후덕해 보이는 인상과 푸근한 미소를 가지고 있는 얼굴은 자비로워 보였지만, 냉정하게 빛나는 눈빛은 이 사내가 결코 만만치 않은 사람인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푸짐한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절대 우둔해 보이지 않았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맺힌 굳은살과 거친 손바닥은 꾸준한 수련을 쌓아온 사람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화려한 복식을 갖추고 있었지만 과해 보이지 않았고, 행동 하나하나에 기품이 넘쳐흘렀으니 누가 보더라도 자연스레 허리를 굽히게 만드는 위엄이 있었다.
“공자의 완치를 축하하오. 이제 그라인드는 걱정이 없겠구려.”
“과분한 말입니다. 아직 여러 면에서 모자랍니다.”
정중하지만 무게감 있는 말에 알코르 역시 힘을 실어 대답했다.
아직은 병색이 완연한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움직임이 가능해진 로렌 역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응접실의 분위기는 미묘하기 그지없었고, 각자의 주인을 호위하는 기사들은 첨예한 기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자제분도 이번에 제법 성취를 보았다고 들었습니다.”
“……허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인데 귀가 밝으시구려. 염려해 준 덕분인지 이번에 괜찮은 결과를 보았다오. 뭐 그래도 어디 둘째 공자만 하겠소?”
푸근하게 웃고 있지만 뱀같이 번들거리는 눈빛에 로렌은 내심 피곤함을 느꼈다.
꾸준한 치료로 영육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세인은 상상하기 힘든 힘을 조금씩 사역하기 시작한 로렌이었지만 이런 자리는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며 타인과의 접점이 거의 없었던 로렌은 사람과의 관계가 많이 어색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시 한번 되새김질한 로렌이 결의를 굳히며 고개를 들었고, 그 모습을 본 사내가 눈을 빛냈다.
“역시. 그라인드의 자제들은 하나같이 비범하기 그지없군. 공자 역시 인재임을 똑똑히 확인했소이다.”
귀족들만큼 소문이 빠른 자들도 없다.
그런 귀족들 사이에서 로렌에 대한 이야기는 제법 널리 퍼져있는 상황이었고, 그렇기에 별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사내는 마음이 흡족해졌다.
‘생각 같아서는 괴물하고 맺어 줬으면 하지만 그건 무리겠지.’
영지에서 금이야 옥이야 키워 온 딸아이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아려왔지만, 사내는 마음을 다 잡았다.
상대가 너무 거물이기도 하고 그 잔혹한 성정을 생각하면 차분해 보이지만 강단이 확실해 보이는 로렌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비록 정략에 의한 결정이지만 딸의 행복을 놓치기 싫은 마음이 가득했으니 사내는 이 순간 마음을 정했다.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사내가 입을 열어 뭐라고 말하려는 그때, 문이 열리며 아렌이 들어섰다.
응접실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모였고, 소리 없는 찬탄이 감돌기 시작했다.
훤칠한 체격과 화려한 용모도 그랬지만, 아렌에게는 그 이상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비범하기 짝이 없는 기도에 방금 전의 결심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 사내의 시선을 뒤로 하고 아렌이 알코르의 앞에 섰다.
“다녀왔습니다.”
“수고했다.”
이번에도 성 하나를 날려 버리고 수많은 인명을 학살했을 것이 분명한 아렌이 잠시 외출 나갔다온 것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에 사내는 기가 막혔고,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답하는 알코르의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랐다.
“다친 데는 없어?”
“괜찮아.”
로렌의 말에 가볍게 대꾸한 아렌의 시선이 사내에게로 향했고, 그 순간 사내는 아득한 기분을 느꼈다.
눈.
밤하늘을 보는 것 같은 깊은 시선은 사람의 것이 아닌 것 같았고, 사내는 흔들리는 결심을 다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내는 왜 아렌이 백작위를 잊지 않는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이런 괴물에게 세속의 작위 따위는 하찮기 그지없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인사드려라. 당대의 메카니 공작이시다.”
“마르틴 드 메카니라고 하네.”
인연이 있는 이름의 등장에 아렌의 눈이 빛을 발했다.
유피테르에서 아렌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한 이름인 것이다.
비록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이어지는 보상과 저택은 아렌을 심히 만족시켰고, 시비를 걸어줬던 크리앙이 감사할 지경이었으니 아렌은 절로 호의가 일었다.
“아렌 드 그라인드다.”
아렌으로서는 드물게 호의가 듬뿍 담긴 인사에 마르틴의 몸이 덜컥 굳었고, 알코르는 이마를 찡그렸으며, 로렌은 쓴웃음을 지었다.
* * *
“하. 하. 그래 공자의 괴벽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 신경 쓰지 않네.”
“이해해 주어서 고맙군.”
아렌으로서는 나름대로 예의를 차린 것이지만 마르틴의 얼굴은 미묘하기 그지없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작님. 주의를 주었지만 고쳐지지 않더군요.”
말 한마디로 화기애애하던 자리를 살벌하게 만든 아렌이었지만 어찌어찌 넘어갈 수 있었다.
아렌의 모든 것은 그야말로 제국 귀족들의 핫 이슈.
아렌의 과거부터 유피테르에서의 행적까지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었고, 그중에는 어떠한 상대에게도 반말로 일관하는 아렌의 말투에 대한 것도 있었다.
항간에는 황제 앞에서도 반말로 일관하지 않을까하는 것으로 내기까지 할 정도였으니 속이 조금 상했지만 마르틴은 참아낼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그림 같은 모습으로 찻잔을 들어 올리는 아렌의 모습을 일변한 마르틴이 고개를 흔들고는 자세를 바로 했다.
올 사람들은 다 왔으니 이제는 본론을 이야기할 차례가 된 것이다.
그런 기세를 느낀 것인지 알코르와 로렌역시 눈을 빛냈고, 아렌 역시 찻잔을 내려놓았다.
“황제의 무도함은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니 넘어가도록 하지요. 뭐 그래도 업적은 어디가지 않으니 우리들이 지금까지 묵묵히 감내해 온 것 아니겠소?”
마르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도하고 제멋대로 기는 하지만 황제는 그런 행위들이 용납될 만큼의 업적을 쌓았다.
“하지만 황자들이 그래서는 안 되지. 그 치들이 뭐 한 것이 있다고 날뛰는 것인가? 거기다 이번의 일로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연히 드러난 셈이요.”
당사자인 그라인드의 사람들 앞에서 마르틴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전형적인 남부 귀족인 그로서는 이번의 일이 절대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된 것이다.
“세력을 결집해야 하오. 황제와 황자들을 제어할 수 있을 만한 세력. 그렇기에 내가 그라인드에 온 것이고.”
찻물을 들이키며 잠시 숨을 고른 마르틴이 입을 열었다.
“메카니와 그라인드 간의 혼사를 추진하고 싶소.”
마르틴의 날카로운 눈빛이 로렌에게로 향했다.